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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법난이 뭐였더라? [펌]

가을강 2010. 4. 12. 15:03

누군가 10.27 법난에 관하여 내게 물어 온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불교계 내부의 싸움에 전두환 정권이 개입하여 스님들을 매우 핍박하고 자기네 말을 잘 듣는 지도부를 세운 사건" 이라고 대충 이야기 해 줬는데 나도 까맣게 잊었었다.

최근에 명진 스님에 대한 안상수 대표의 "좌파 스님 배제" 운운 사건에 10.27 법난이 다시 인구에 회자되던 차에 프레시안에서 한 꼭지를 봤길래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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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전인 1980년, 전두환 군사반란 세력이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국가권력을 강탈한 이후, 바깥 껍데기는 기독교를 표방하지만 내용이나 실상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대중들의 고환(苦患)을 짜내 사리사욕에 빠져있던,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인 대형교회 목사들, 그리고 일부 얼빠진 불교계 승려들까지 나서서 서울 시내 호텔에서 교회에서 절간에서, 전두환을 위한 예의 '구국조찬기도회'라는 '쇼'를 열곤 했다.

민을 배반한 30년 전 일부(一部) 불가의 파장은

기독교를 표방하면서 세상 권세에 상습적으로 빌붙어 돈을 챙기고 욕심을 챙기는 반기독교 대형교회들 목사들이야 원래부터 생리가 그렇다 치지만, 일부 승려들이 불법한 군부권력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태도란, 당시 눈뜨고 있던 민중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민중들이 절 문을 발로 차고 침을 뱉고 절 문 앞에 소변까지 보면서 권력에 빌붙는 '기생불교'라고 욕을 해대는 건 당연지사였다.

스님들이 '그게 아니다. 일부 승려들이 그러는 것이다'라고 해명했지만 민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런 것이 역사 면면하게 민중들과 같이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한국불교가 정작 민중은 전두환 총칼에 살육(殺戮)을 당하고, 삶은 진구렁이나 숯불과 같은 도탄(塗炭)에 빠져 몹시 고통스러운 지경인데, 민을 살피고 민을 일깨워야 할 불가가 도리어 군사반란독재자인 전두환을 찬양하는 행태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불가와 민의 괴리를 조작하고 이 틈새를 파고든 부당한 권력

일반 민중의 마음은 크게 상처받았고 불가 일부의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이 때 민중은 불교계와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불안한 권력을 놓치지 않겠다고 오리무중 권력을 만들어나가고 있던 와중인 전두환 신군부세력은 영악하게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민중과 불교계의 괴리, 이 틈새를 비집고 전두환 세력은 1980년 10월27일 새벽 4시, 전국의 사찰과 암자 5천731곳을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하여 일제히 수색하면서 권력에 고분고분하게 협조하지 않는다고 밉보인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과 불교 관련 인사 153명을 군보안대로 강제 연행하고 고문한다. 이것이 '10.27 법난'이다.

2000년 불교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모욕

전국의 사찰들이 군홧발의 신음에 빠졌다. 군홧발로 법당을 난입한 경찰과 군인들은 모든 스님들을 법당 앞으로 모이게 하고 줄을 세웠다. 나이 드신 조실 스님까지 줄에 세우라고 명령했으니 스님들은 너무나 황당하고 무례함에 분노를 떨었지만 군홧발로 스님들을 밟고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리면서 폭언을 일삼으니, 총칼의 서슬과 갑작스런 침입에 뭘 어찌할 수가 없었던 스님들은 수사기관으로 붙잡혀가 무릎을 꿇리고 각목을 무릎사이로 집어넣고 무릎 누르기, 새끼손가락에 볼펜을 끼워놓고서 누르기, 입과 코에 고춧가루빙초산을 섞은 물 붓기, 물고문, 전기고문, 잠 안 재우기 등 온갖 가혹행위를 당했다. 당시 계엄군에 끌려간 스님 중 많은 수가 무차별한 폭력과 고문으로 시달렸고 목숨까지 빼앗긴 스님도 있었다.

당시 군부는 유랑잡승과 불순분자, 군 기피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진짜 속내는 그 때까지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5·18 광주학살로 인한 민심동요의 조짐을 빨리 다른 곳으로 돌리고, 스님들이 사회민주화 운동가들과 연합해 저항세력으로 성장할 우려가 크다고 인식하면서 불만세력에게는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확고하게 보여주겠다는 전두환 세력의 거침없는 태도가 2000년 불교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불가에 안긴 것이다.

전두환이 '참선'을 운운하는 무인지경에 불가는

1980년 12월11일 당시 정화중흥회의 의장 등 승려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전두환은 대통령이란 계급장을 찬탈하고 앉아서 문답형식의 대화를 승려들과 나눈다. 당시 전두환은 "종단정화가 빨리 종식되어 국민정신계도에 앞장서 달라" 면서 "절은 참선 등 수행하는 곳인데 어떻게 깡패들이 서식할 수 있느냐" "내가 서돈각 박사를 잘 아는데 서울대 총장할 사람을 동국대가 데려가서 재단분규로 욕보이게 했으니 종단 및 재단 분규는 다시 없기를 바란다"는 등의 발언을 한다.

단군이래로 제일 큰 도둑질을 한 전두환이가 스님들을 부도덕한 도둑놈 무리로 만들면서 '참선'운운한 것이다. 그러나 불가는 숨죽이고 더러운 모욕을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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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