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뭔가...

2100 억 짜리 사랑의 교회 건축에 대하여 [펌]

가을강 2009. 12. 21. 11:07
"사랑의교회는 토건 마케팅 교회"
<88만 원 세대> 저자 우석훈 교수, "교회는 사회적 완충 역할 해야"
입력 : 2009년 12월 19일 (토) 10:03:10 [조회수 : 683]이명구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건축을 시작하면서 사랑의교회(목사 오정현)는 '다음 세대와 민족을 섬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서는 제자 훈련의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공간은 너무 좁기 때문에 건축을 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을 감당할 만한 '크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명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어떨까. 또 교회 건축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무엇일까. 12월 18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2.1연구소에서 환경경제학자 우석훈 교수(<88만 원 세대> 저자·2.1연구소장)를 만났다. '사랑의교회 건축의 사회적, 경제적 의미'와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과 교회 건축의 의미'를 짚어 보았다.

▲ 우석훈 교수는 사랑의교회 건축에서 대기업의 마케팅 논리를 발견한다고 했다. 건물을 지어 돈을 더 벌려는 것이라는 말이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우석훈 교수는 사랑의교회 건축에서 대기업의 마케팅 논리를 발견한다고 했다. 새로운 CEO가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를 잘 구슬려서 전과는 다른 공격 경영에 나선 것이고, 이 형식은 토목건축이라고 했다. 건물을 지어 돈을 더 벌려는 것이라는 말이다.

교회마저 자본주의의 대원칙인 '경쟁'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면, 종교가 가지는 사회적인 완충 역할을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품어 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질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사랑의교회 건축을 어떻게 보는가.

생태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것 같지도 않다. 건물을 짓는다는 건 더 커지기 위해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 성경하고 아무 상관없는, 세속의 대기업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건물은 목표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무엇을 위해 늘리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건물 짓는 게 목표인 것 같다. 더 커져서 더 교인 수를 늘리고, 돈을 더 벌겠다는 거 아닌가.

사랑의교회 건축이 한국 사회에 어떤 파장을 주리라 보는가.

▲ 우 교수는 "생태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것 같지도 않다. 건물을 짓는다는 건 더 커지기 위해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지금 사회에서 존경받는 대상이 아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성'과 같다. 누가 감히 교회가 하는 일에 뭐라고 하겠는가. 어쩌면 신의 마음을 사는 것보다 자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건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탁하고 싶고 어려우면 손을 벌리고 싶은 교회여야 한다.

사랑의교회는 인원이 많아서 장소가 좁은 불편함을 10년간 감수해 왔다.

공간이 부족한 것은 알겠다. 좁은 공간 자체가 교인 수를 적절히 조절하는 거 아닌가. 정 많아서 불편하다면, 나눠서 조그맣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길을 찾지 않은 거 아닌가.

사랑의교회는 옥한흠 목사 때 몇 번이나 건축을 미뤘던 적이 있다. 담임목사가 오정현 목사로 바뀌고 5년 뒤 건축을 시작했다.

경영 방침이 바뀐 거 아닌가. 새로운 CEO가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회를 잘 구슬려서 전과는 다른 공격 경영으로 나선 것이다. 그 형식은 토목건축이다. 건물을 지어 돈을 더 벌려는 것 아닌가. 아예 사랑의교회라는 간판 내리고 토건 마케팅 교회로 바꿔라.

사랑의교회는 교회 건축을 통해 '다음 세대와 민족을 섬기겠다'고 했다.

그런 명분으로는 사회를 설득하기 어렵지 않겠나. 더 커져서 더 큰 일을 하겠다는 논리에 사회의 시선은 냉랭할 것이다. 사랑의교회 건축이 명분이 없는 일이지만, 딱 한 가지 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돈이 나랏돈이나 강도질한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분도 없고, 절차상 설명도 별로 없고, 내 돈이니깐 내 돈 쓴다는 논리에 한국 사회가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의교회는 건축을 결정하면서 공동의회를 거치지 않았다. 당회나 제직회의 결의로만 건축이 결정되고, 교인들에게 헌금 약정 주일을 선포했다.

의사 결정 과정도 기업 논리와 똑같다. 민주주의의 1인 1표제와 달리, 기업은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1원 1표제다. 주식을 소유해야, 돈이 많아야 의사를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성경의 논리라면 누구나 동등해야 하지 않나. 힘 있는 일부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1원 1표라면 성경의 원리에 위반되는 거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 특히 기독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본주의는 경쟁을 강화시킨다. 이 폐해를 완화시키는 장치는 종교밖에 없다. 시장의 낙오자와 약자를 도와주고 세워 줘야 하는데, 지금 교회가 가는 방향은 자본주의가 가는 방향과 딱 맞는다. 사랑의교회가 토건에 몰입하는 것은 결국 교회도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맘몬의 방향이다. 성경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나와 있지 않는가. 세상과 똑같이 가면 종교가 무슨 필요인가. 돈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하지 않나.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가 그런 이야기를 한 거 아닌가. 한국 사회가 기독교에 요구하는 것은 예수가 한 대로만 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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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의 서동진 목사의 글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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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가 제시한 교회 건축의 필요성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배당이 성도들의 수를 다 수용할 수 없다. 둘째, 건축을 하지 않으면 2,000억 원을 모을 수 없다. 인프라를 위해서 투자하고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나님나라, 사회, 선교, 다음 세대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건축 비용을 다른 곳에 쓴다는 것은 일리가 없는 말이다. 셋째, 지금은 국제화 시대이다. 교회가 커야 세계를 흔들 수 있다. ('사랑의교회 건축, 옥한흠 목사의 진짜 생각은?' 참고)

첫째, 예배당이 성도들을 다 수용할 수 없다.

옥한흠 목사가 말한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일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건축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 말하는 명분이 바로 '교회가 포화 상태이다'라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건축에 동의한다. 그리고 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성도들의 수가 차고 넘쳐서 성도들을 수용할 수 없는데, 왜 반대를 하냐?"라고 말을 하면서 비난하고 정죄한다.

하지만 옥한흠 목사는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내놓았다. 은퇴 후 옥한흠 목사는 '교회를 키운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라고 했고, 많은 사람들을 이 말에 대해서 '교회를 분립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라고 해석했다.

그렇다. 교회가 포화 상태이면 교회를 분립하면 된다. 분립을 통해서 포화 상태가 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랑의교회가 새 교회를 건축하는 것보다 분립을 통해서 건강한 교회의 한 모델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둘째, 건축을 하지 않으면 2,000억을 모을 수 없다. 인프라를 위해서 투자하고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나님나라, 사회, 선교, 다음 세대에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건축 비용을 다른 곳에 쓴다는 것은 일리가 없는 말이다.

지금까지 사회에 무관심해 온 교회가 인프라를 형성한 후에 사회에 공헌을 하겠다는 말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100만 원 버는 사람이 이웃을 돌보지 않는다면, 1,000만 원을 벌어도 이웃을 돌보지 않는다. 사랑의교회가 지금보다 거대한 교회가 된 후에 이웃을 돌보겠다는 말을 신뢰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셋째, 큰 국제화 시대이다. 교회가 커야 세계를 흔들 수 있다.

큰 교회가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초대교회는 수만 명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120명으로 시작했으며, 전 세계를 변화시켰고, 변화시키고 있다. 교회는 오히려 로마의 국교가 되어 거대해졌을 때 타락했다는 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 그리고 세계를 흔들고 바꾼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이었지 결코 다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큰 교회가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며, 비기독교적이고, 비성경적이다.

사랑의교회가 2,100억을 들여서 거대한 예배당을 짓는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메가처치 논박>의 저자 신광은 목사는 사랑의교회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수십 년 후에 미래의 사랑의교회 중직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1985년에도 새 교회를 건축했고, 2009년에도 새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 교회를 건축해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미래에 스가랴 선지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가 지난날 거대한 교회를 지었는데 그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함이었느냐? 너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의롭고 올바른 재판을 하여라. 서로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라. 과부와 고아와 외국인과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마라. 다른 사람을 해칠 마음조차 품지 마라."

[스가랴의 원문: 7장 5절~10절]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 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 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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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축을 위해선 2100 억이 모이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을 위해서는 돈이 모이지 않는다라는 건축 설득논리를 보고는 기도 안 찬다.

안 모이면 모이게 해야 할 것 아닌가?

건축을 위한 작정 헌금을 하게 하면서, 구제를 위한 작정 헌금은 시켜보았는가?

결국 안 모인다는 논리란 게 '안 모으겠다' 라는 말 이외에는 무엇이겠는가?

목사의 최대관심사가 건축에 쏠려 있다는 반증 말고는 달리 없다.

<2009.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