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생각과 취미

추억의 비행 일지...(유명산 21세기 맞이)

가을강 2005. 4. 25. 17:51
21 세기 해맞이 비행

양평 유명산에서 59회 째의 비행......

길이 얼어 차가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여, 동쪽 사면 능선 길의

중간에서부터 허덕허덕 지고 올라갔습니다.

해 뜨기 전의 산이기 때문에 영하 15도를 예상하여 옷을 잔뜩 끼어

입은 덕에 춥지는 않았으나 몸이 무거워 더 힘이 들더군요.

내복, 스웨터, 남방, 모직 목도리, 겹 점퍼......

그래도 기체 가방을 등산 가방처럼 몸에 딱 붙는 것으로 바꾼 덕에

기체가 뒤로 자빠지는 불편함은 없었지요.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아직 해는 뜨지 않고 있었습니다.

A 이륙장에서 조금 있으려니 해는 용문산 옆의 삼각봉우리에서

빛살을 먼저 보내면서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빛의 화살은 여섯 갈래일까요?

빛살만의 생명은 불과 몇 초.......

어느새 붉은 광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빨갛더니 금새 노오란 투명한 덩어리로 변하고, 금새 백색의 덩어리로.....

이윽고 터지는 함성!

이야앗!!!

야호~~!!!!~~

B 이륙장에선 만세 삼창까지 터져 나오고.......

모두의 안전비행과 평화를 기원하였지요.

모두가 한 마음이었습니다.


바람이 좀 세져서 빨리 뜨기로 하였습니다.

기체를 펴 놓고, 비행복을 꺼내 입고 하네스를 입으니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 먼저 세팅한 것이 맞지 않아 늘여서

채워야 했지요.

내가 이륙할 때 마다 늘 웃어 주는 귀여운 하늘전사의 도움으로

라이저를 채우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자리에 섰습니다.

바람은 좀 더 세지고, 얼굴을 감싼 마스크가 너무나 갑갑하게 느껴졌지요.

무전기를 쉽게 찾아 잡으려고 오른손엔 얇은 장갑을 꼈고

왼손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이륙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스카이필 리니야드 창 세동자.......뒤에서 막강한 기운이 받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팰킴은 하얀 눈 위에서 비디오 촬영을 준비하고 있고.....


눈 앞에 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고, 점점이 발자국들이 찍혀 있습니다.

이윽고 눈을 박차고 뛰면서 어깨를 잡아 올렸습니다.

이상하게 텐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지요.

그러나 라이저를 놓을 새도 없이 좌측풍이 불어 오른쪽이 기우는

느낌이 들어 오른쪽으로 내달았습니다.

라이저를 놓고 계속 내닫는데 “견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런데 견제를 하고 뛰어도 몸이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저앉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막말로 ‘열라 졸라’ 뛰니까 조금 떠올랐습니다.

두 번인가를 더 주저앉을 것을 이겨내고 더 ‘열라 졸라’ 뛰니

드디어 지면의 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이고.... 이륙하기 정말 힘들대요......


이륙하자마자 앞을 보니 소구니 산 앞의 골짜기가 너무나 가깝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약간 오른쪽으로 좀 더 진행을 하니 조금씩 고도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무전기를 통하여 전사의 엄청 크고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놀라게 합니다.

“주능님!!! 왼쪽으로!!!” “왼쪽!!” “왼쪽!!!”

그 말대로 왼쪽으로 조금 틀어도 계속해서 그 소리가 들려옵니다.

왼쪽으로 틀어도 왼쪽을 외치니 정말 미치겠더군요.


나중에 착륙하고 나서 그 때의 얘길 듣고 또 지금 와서 생각하니

위에서 보기에 내가 소구니 산 너머로 넘어갈 듯해서 그런 것이라더군요.

그러나 나는 고도가 너무 낮아 계곡으로 더 빠지면 오히려

불시착하게 될 것 같은 위기감을 가졌었고, 오른쪽 너머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뜨자마자 바로 왼쪽으로 잡았으면 고도 획득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결국 고도와 방향을 제대로 회복하니 하늘 아래가 정말로 편안해

보이더군요.

그러나 그 때부터 겨울 하늘의 매서운 추위가 새로운 상대로

닥쳤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달려서 이륙을 한데다가 긴장도 많이 하였고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 허리가 꽉 조여져 하네스가 너무 좁혀

있어 제대로 앉기에도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코와 입을 막은 마스크를 아예 턱 밑으로 내려서 숨을

고루니 숨쉬기엔 편하나 너무나 추웠습니다.

손은 또 얼마나 따가울 정도로 차든지....


그러나 바로 아이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 와 “이제 됐 구나

하고 안심을 하기 시작하였지요.

“주능님, 이제 괜찮습니다. 고도가 충분하니 한화 쪽 까지 가서

손이라도 흔들어 주십시오.”

그 말대로 한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밑을 내려다보니 한화콘도의

운동장과 놀이시설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아직도 긴장과 추위가 풀리지 않아 손은 못 흔들어 줬습니다.

다른 사람도 이 정도로 장시간을 비행하였을까 싶을 정도로

오늘의 비행은 정말로 길게 느껴지더군요.

저고도 상태와 고도 회복을 위한 과정이 너무나 오래 걸린 것 같고

더욱 더 천천히 하강하게 된 것 같아요.


착륙장을 훌쩍 지나가면서 앞산의 칠 부 능선을 훑으면서 가다가

왼쪽으로 선회하여 착륙장 방향으로 들어가니 고도가 아주 딱 맞았습니다.

그 사면으로 들어서면서 왼쪽 위의 철골구조물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저 철골구조물을 거뜬히 지나치게 되었구나 하고 대견해 했지요.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배풍을 덜 감안한 탓인지 두 발로

착륙하지 못하고 약간 쿵하고 엉덩이 착륙을 하고 말았지요.


착륙하자마자 아이거의 유도에 대해 진심의 감사를 보냈습니다.

유명산에서 비행하고 착륙하면서 오늘처럼 쉽게 착륙장으로

들어 온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역시 아이거도 소구니 산 쪽으로 넘어가면 와류권이기 때문에

걱정했었다고 말하더군요.


몇 번의 고비가 있었던 새해맞이 비행이었습니다.

춥고 힘도 들었던......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기고 해 낸 비행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륙보조를 해준 전사를 비롯한 항동 식구들과

유도를 잘 해준 아이거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어찌나 추웠든지 지금도 손끝이 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