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뭔가...

비정 카이스트 총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사람들의 야만![펌]

가을강 2011. 4. 11. 13:16

카이스트에서 올해에만 학생 네 명과 교수 한 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자살귀신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 집 부모들은 그 아이들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고 카이스트에 입학한 것을 행복해 했을까?

그 아이들이 거기를 안 들어갔으면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과연 '입학 행복'감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조중동과 서남표 총장은 '해외 일류 명문대에서도 자살자는 많다' 라고 요설을 되풀이 하여, 자살이란 어쩔 수 없는 관례임을 떠들지만 '자살'을 일반화 시키는원초적인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에 어불성설이다.

대학을 죽기 살기의 서바이벌 현장으로 만들어 놓고 살아남는 자를 이 사회의 엘리트로 키운다는 것인데, 참으로 이런 엘리트에 의해 리드되는 우리나라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다.

자살자를 낙오자로 낙인찍는다면 경쟁의 굿판에서 살아남아 등록금을 벌금으로 내거나 중도에 학업으 포기하는 것은 삼류 낙오자인가?

경쟁지상주의가 나라와 사회 발전의 첩경일까?

그런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정당한 것일까?

장관 후보자들이 떡 먹듯이 저지른 불법 비리, 병역기피와 면제 같은 것들도 그들이 인정하는 경쟁력일진대 과연 얼마나 정당한가?

언론사의 사주와 간부의가족들의 병역면제율은 타 직종보다도 더 높다하지 않던가?

'자살'은 낙오자의 비겁한 선택이며 많은 사람들이 멀쩡하다고 입에 거품물고 떠드는자들은 정말로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칭송하는 엘리트에 의해 끌려가는 나라는 더욱 삭막하다.

그것은 결코행복한 나라,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서남표는 어떻게 카이스트를 좀 먹었나?

[공작의 꼬리 경쟁·11] 차등화 보상 동기와 근원적 동기

차등화 보상 동기와 근원적 동기

차등화 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차등적 금전적 보상을 통하여 일의 동기 제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업무 실적이 좋으면 월급을 올리거나 진급을 시키고, 나쁘면 급여를 깎거나 심지어 퇴직을 시키는 당근과 채찍을 들 수 있다. 당근과 채찍은 보상 동기 제공이라는 점에는모두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당근과 채찍에 심리적으로 달리 반응하는 자세한 면은 무시하기로 한다. 어떤 경우에는 당근이, 어떤 경우에는 채찍이 더 효과가 있다. 예를 들면, ①어떤 임무를 수행 하면 급여를 올려주는 당근 제공과 ②급여를 미리 올려주고, 그 임무를 수행 하지 못하면 다시 급여를 회수하는 채찍 정책을 비교 할 수 있다. ①과 ②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②의 경우가 더 열심히 해서 임무를 달성하려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어떤 실험에서 실험 대상들에게 어떤 물건(커피 잔)에 대해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를 물었다. 평균 5달러라고 답변했다고 하자. 그 다음 실험에서는 커피 잔을 그들에게 주고, 얼마에 그 잔을 팔 용의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평균 가격이 5달러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자신이 이미 소유한 것과 앞으로 소유할 것에 대하여 심리적 가치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직장을 잃을지도 모르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아예 직장을 잃은 사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현재는 보상 동기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특히현대 경제는 보상 동기에 의해 움직이며, 교육이나문화 등사회 전체에 이 보상 동기의 영향이 깊숙이 퍼져있다. 다니엘 핑크는 보상 동기에 의문을 던지고, 인간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동기인 근원적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채찍과 당근은 과연 교수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프레시안(허환주)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게 하는 동기는 어디서 오는가?

제1 동기 :음식이나 물에 대한 욕구, 또는 성적인 신체적 욕구 같은 것들.
제2 동기 : 보상 동기. 어떤 행위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나 그 반대인 벌이 주어졌을 때, 보상을 받거나 벌을 회피하기 위한 동기.

근원적 동기는 우리의 본능적 욕구의 제1 동기나 보상 동기로 인한 제2 동기와는 다른 우리가 행위 자체로부터 얻는 것이라고 하며 제3 동기라고 한다. 이 동기는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서 또는 벌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보수와 관계없이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그림을 그린다던가, 수수께끼를 푼다거나, 어떤 연구를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들이 이에 속한다.

오랫동안 제1 동기와 제2 동기가 우리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근원적 동기는 무시되었다. 그런데 1940년경 미국의위스콘신 대학의 심리학자인 해리 하로우는 원숭이들로 하여금 어떤 간단한 작동을 하는 실험을 했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경우와 마른 포도의 보상을 주는 두 경우에 원숭이들이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마른 포도의 보상을 주는 실험에서 원숭이들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실수를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로우는 보상이 있을 때 하는 행위와 보상이 없을 때 하는 행위에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하게 하는 이 제3의 동기를 "행위 자체의 보상"이라고 했다. 이 제3의 동기는 심리학계에서 별로 크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1969년 카네기 멜론 대학의 데시라는 심리학 박사 과정 학생이 하로우와 유사한 실험을 통하여 주목을 받게 된다.

데시는 두 집단의 대학생들에게조각 맞추기 작업을 하게 한다. 그 실험은 3일에 걸쳐 아래 있는 표에 따라 실행했다. 집단 A와 집단 B, 두 집단에게 조각을 주고 특정한 모양이 되도록 맞추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조각들을 맞추는 과정 중에 약 8분 동안의휴식을 갖게 하는데, 아래 표는 이 휴식 기간에 두 집단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한 결과이다.

첫날에는 집단 A와 B는 조각들을 맞추는 작업에 대한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았다. 8분 동안의 휴식 시간에 몰래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아무런 보상이 없었지만 이 두 집단은 휴식 중 모두 평균 약 3분 45초 정도의 조각들을 맞추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둘째 날에는 집단 A는 조각을 주어진 모양으로 맞추면 일정액의 돈을 지급하고, 집단 B는 첫날처럼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 집단 A는 첫날보다 훨씬 많은 시간인 8분 중 약 5분 동안 맞추려 시도를 한다. 이는 제2 동기에서 말하듯이 금전적 보상이 집단 A의 학생들에게 조각 맞추는 일에 더 많은 흥미를 보이고, 또 실제로 더 많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상이 없는 집단 B는 전날과 비슷한 시간을 조각 맞추는 데 할애한다.

셋째 날에는 두 집단 모두 보상을 주지 않는다. 집단 B는 전날보다 약간 더 많은 시간을 조각 맞추는 데 보낸다. 그리고 집단 A의 경우 조각 맞추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 8분 중 단지 3분 정도만 시도를 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금전적 보상이 주어진 집단 A의 학생들은 조각 맞추기 자체가 갖는 근원적 흥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둘째 날 더 적극적으로 조각 맞추기를 한 것은 금전적 보상 때문이고, 이런 보상 경험이 조각 맞추기라는 것 자체로부터 얻는 흥미를 사라지게 했으며 근원적 동기의 저하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데시의 실험에서 나타난 보상동기에 의한 근원적 동기의 저하는 어린이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을 레퍼, 그린 그리고 니스벳이란 세 심리학자의 다음과 같은 실험이 보여준다.

이들은 어린이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그림을 그리게 했다. 집단 A의 어린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리면 상을 줄 테니 그림을 그리겠는가 물어보고 나서 그림을 그리게 했고, 집단 B와 C의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그림 그리기를 끝냈을 때, 집단 A의 어린이들에게 약속한 대로 상을 주었다.

집단 B의 어린이들에게도 그림을 그린 후에 예기치 않은 상을 주었다. 집단 C의 어린이들은 아무런 상을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2주 뒤에 아이들에게 그림 도구를 주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게 했으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집단 A의 아이들은 집단 B와 C의 아이들에 비해 그림 그리기에 현저하게 낮은 흥미를 보이고, 또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데 적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집단 A의 어린이들의 행위는조건부 보상의 부정적인 면을 잘 보여준다. 보상 동기가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그림의 자체적 흥미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일하는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에 대한 기대에 의하여 동기 부여가 된 경우에는 어떤 행위나 활동에 대한 그들 자신 고유의 동기, 즉 근원적 동기가 약화된다.

이러한 실험들에서 유추되는 재미있는 현상은 보상 동기와 근원적 동기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 근원적 동기의 저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보상 동기는 결과에 의존하고 일의 과정이 무시된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생기는 만족 역시 무시된다. 예를 들면 등산이 좋아서 산에 가는 경우는 산행을 하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나 최초 14좌 등정과 같은 타이틀을 따기 위한 경쟁에서는 그 결과에 따른 보상 동기에 의한 등산이 된다. 결과에 따른 보상이 강조되고 그 행위 자체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경시되어, 등산이라는 행위는 빨리 끝내야 하며 보상이 요구되는 고통이 될 것이다.

"해야 되는 걸 하는 것이 일이고, 안 해도 되는 걸 하는 것은 놀이다"라고 미국의 소설가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서 근원적 동기와 보상 동기의 대비를 재미있게 보여준다.

어느 날 톰은 담장에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물론 그는 그 일을 하기 싫었으며, 묘안을 생각해냈다. 그는 친구들에게 페인트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떠벌리고, 친구들은 그 페인트칠을 하게 해달라고 톰에게 구걸하게 된다. 그래서 친구들은 재미있게 페인트칠을 하게 되고, 톰은 하기 싫은 일을 쉽게 끝마치게 된다. 톰 소여에게 페인트칠은 안 하면 벌을 받게 되는 보상 동기에 의한 것이고 그 친구들에게 페인트칠은 근원적 동기 즉 재미에 의한 것이다.

금전적 보상이 근원적 동기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가 금전적 보수나 그 반대로 실업과 같은 벌에 의한 보상 동기가 강화될수록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근원적 동기를 잃어,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행위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보상이나 벌에 의해 규정되는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일이나 행위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감소하거나 사라지고, 오히려 고통이 늘어나며, 그 고통의 보상으로 금전적 보수가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근원적 동기의 중요성은 단지 행위 자체가 주는 만족감뿐만이 아니다. 많은 미술, 음악,문학 등의ㅇ
예술 작품, 위대한 과학의 업적, 새로운 기술 개발, 의학의 발전 등등은 근원적 동기로부터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 근원적 동기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로 <위키피디아>를 들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9년에 16년 동안이나 시장에서 판매해왔던백과사전 <엔카르타>의 생산을 중단한다. 그 이유는 <위키피디아>라는인터넷 백과사전 때문이다.

이 사전은 누가 돈을 줘서 만든 것이 아니며 돈을 받고 그 정보를 파는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참여해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급여가 그 사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동기가 아니며, 그저 각 개개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이윤이 목적이 아닌 금전적 동기 부여가 제공되지 않는데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백과사전을 누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독보적 사전이 되었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나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은 보상 동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돈으로 환산된 가치를위하여 작품을 만들거나 연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갖는 근원적인 동기로부터 나온 것이다. 독일의홈불트 대학을 세운 철학자 훔볼트는 인간은 시장과 같은 외부적 제약들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창조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자유를 지니고 있다고 했으며, 이것을 인간의기본 본성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장인을 생각해 보자. 그가 외부에서 주는 금전적 보상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가 하는 일은 존경할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멸시한다. 그러나 그가 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존경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니까."

/서상철 캐나다 윈저 대학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201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