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세간과 시간

기본카테고리 2010. 2. 18. 10:57

오늘 아침에 아내가 "한경이가 없으니 일이 없어. 바깥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 오면 한경이 살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어지러웠는데 이젠 깨끗해요." 라고 말한다.

아이 하나가 있으면 축소판 어른 한 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 하나 이상의 살림이 생기는 것 같다.

어른들의 물건들은 거의 정체적이지만, 아이의 물건들은 정말로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옷 양말 손수건 턱받이 장난감 그림책 먹거리와 그것을 위한 도구들은 거의 쉴 새 없이 쓰여진다.

정말로 치울 틈이 없을 정도이다.

어린애가 있으면 어린애에게 시선을 뗄 수가 없고, 쉼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아이를 중심으로 해서 집안의 많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집안의 중심이 된다.

어른들의 살림이래야 집에서 매일 입는 옷, 외출할 때 입는 옷, 씻고 먹는데에 필요한 도구들.....

한 번 장만하면 몇 년 이상 고정되는 사물들이다.

시간의 흐름이 정체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갓난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기 까지는 새 살림이 빠르게 바뀌게 된다.

한경이가 이제 20 개월이 되어 가는데다가, 오월이면 작은 녀석이 태어나면 아이 살림은 앞으로도 10 여 년 이상은 빠른 주기로생겼다가 없어질 것이다.

아내는 이럴 때 어지럽고 차분함을 반복해서 맞게 되어 피곤하겠지만 나는 이러한 것이 살아 있음을 늘 느끼게 하고, 정체된 어른들의 생활이 갖는 나른함을 씻어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특히나 아파트 라는 평면 공간에서의 삶이 아니라 이층과 마당이 있는 입체 공간이라는 데서 누리는 대가족이 함께 하는 삶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따로 살다가 일이 있으면 찾아오고, 아들과 손주들이 보고 싶으면 내가 찾아 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자식과 손주가 너무 뛰어나서 공부와 자기실현과 성취욕이 커서 내가 그 뒷바라지를 하는 것을 내 만족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하다.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가서 우리 부부나 아들 내외, 혹은 손주가 떨어져서 살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다.

한국에선 왜 못 산단 말인가?

얼마나 영화를 보고, 얼마나 잘 될 것이라고 가족 간의 별리와 해후를 생활화 하겠는가?

나는 한국에서라도 행복을 느끼며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항상 이에 대해 생각하고 노력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욕심을 크게 갖지 않아야 할 일이다.

<201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