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년 만의 지리산 종주

흔한 생각과 취미 2006. 10. 3. 17:34

지리산은 남자의 산이다.

공중 화장실을 가면 금방 알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여자 화장실 앞에 긴 줄이 서 있는데 반해,

여기에서는 남자 화장실 앞에 긴 줄이 서 있다.

그만큼 여자 보다는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빼어 난 경치를 자랑하는 설악산 금강산에 비하면 정말로 묵묵한 느낌을 주는 산

이다.


77 년 2 월에 한의사 친구 하나와 지리산 종주를 목표로 하고 여행을 떠났는

데, 미리 워밍업 삼아서 계룡산 대둔산 순천 진주를 거쳐서 지리산으로 갔었다.

저녁에 중산리에 떨어져 법계사까지 가서 자고 아침에 천왕봉에 올라서

눈길을 빠지고 뚫으면서 꾸역꾸역 걸어 벽소령인가에서 비박하고는 하루 종일

걸어 내려 가 노고단을 지나 화엄사에 내려와 잠으로써 지리산 57 키로 종주를

마쳤었는데 30 년 만의 종주에서는 거꾸로 코스이다.

다행히, 성삼재 까지 차가 올라가기 때문에 화엄사에서부터 오르는 빡센 일정은

아니라서 좀 안심이 되었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여기저기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들어 가, 토요일 하루만 진료 공백을

감수해도 되는 일정을 찾아보니 유명산우회라는 곳에서 1 박 3 일로, 9월29일

출발하여 10 월 1 일에 돌아오는 일정이 있어서 6 명을 신청하였다.

아우 기선이가 미리부터 나의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였기 때문에 든든하고도,

맘 편하게 계획을 진행하였다.


9월 29일 밤 10 시에 동대문에서 나 아우 향기가 탄 버스는, 10시 반

서초구민회관에서 무애 아이거 팰킴을 태우고는 지리산으로 출발.

버스에서라 조금이라도 잠을 자겠다는 기대로 마신 양주 댓 모금이 전혀

도움이 안 된 채 새벽 2 시 반 쯤에 반선에 도착하여, 새벽밥을 먹고 모닝

출력을 약간 하고는 등반대장으로 부터 점심 도시락을 받아 챙기고는 3 시 반

쯤 성삼재로 올라가는데, 꼬불꼬불 커브 길을 가다 보니 멀미가 막 난다.


욕지기와 어지럼증을 간신히 참고 도착하니 새벽 네 시가 되어 간다.

기선에게서 헤드랜턴과 스틱을 받아 들고는 오르기 시작하였다.

어제 버스 안에서 마신 양주가 내 몸에는 별로 안 맞았나 보다. 트림이 자주

나며 트림할 때마다 그 양주 냄새가 난다.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오늘의 일정은 세석산장까지 13 시간 이상 걷는 것인데, 이 시간을 언제 다

채우고 세석산장에 떨어져 밥을 먹고 첫 잠을 자게 될까 벌써부터 끔찍해 진다.


별이 참 크고 밝고 많다.

아이거가 오리온좌와 삼태성 소 삼태성을 가르쳐 준다.

약간 쌀랑한 가을 날씨에 기분이 참 상쾌하다. 페이스를 아주 느긋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보폭을 천천히 떼고, 속도를 천천히 하였다.

보통 40 분 정도 걸리는 성삼재 ->노고단 길을 빙빙 돌아서 한 시간 만에 올랐다.


지리산은 “등산로”라는 이름 대신에 “탐방로”라고 바뀌었을 정도로 등산로가 잘 닦여 있다.

넓고 편편하여 걷기에 그만이다.

깜깜한 산길을 헤드랜턴으로 비추며 올라가는 무리들이 나름대로 장관을 이룬다.

이제는 대개 할로겐 등으로 바뀌어 불빛들이 하얗게 반짝인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 백 년 전 사람이 지금에 나타나서 이것을 본다면 꼭 귀신들의 춤으로 봤을지 모르겠다.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서 움직이는 랜턴의 불빛들이 어느 때 부터는 반가운

친구의 모습이다.


임걸령 반야봉 토끼봉 삼도봉 연하천 벽소령......

30 년 전에 수없이 되 뇌였던 지리산 내 지명들을 다시 만나면서 길을 재촉한다.


제법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하늘 쪽 시야가 넓으면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 을 부르기도 한다.


......................................

하루를 너의 생각하면서 걷다가 바라 본 하늘엔

흰 구름 말이 없이 흐르고,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가........


아무리 걸어도 길은 끝이 없어 보인다.

정말 꾸역꾸역 걷는다는 다짐대로 걷는다.

걸으면서 자꾸 생각해 보고, 자꾸 다짐하고 확인해 본다.

“왜 산에 오르나?”

“힘들기 때문에 오른다. 힘들지 않으면 산에 뭐 하러 가겠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가는가?”

“지루함을 마주하기 위해서 간다. 지루함에 익숙해지고 싶다. 지루함을 견디는

것이 수양이 아니랴?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용어로 범벅이 된 통계학 수업처럼

수양 삼는다.

알지도 못하고 귀에 익지도 않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기분으로 걷는다. 고행을

수행하는 구도자들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처럼 걸을 뿐이다. 힘들지 않고서 얻

을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 고통을 통한 수행이 쾌락으로 이어짐은

항상 확인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려 올 걸, 왜 오르나?”

“쉬기 위해서 걷는 것처럼, 내려오기 위해서 오른다. 그 휴식과 숨 고름의 쾌락을 즐긴다.”


산길에서는 3 킬로가 넘으면 더 얼마나 긴지 실감이 안 간다.

즉, 3 킬로나 4 킬로나 20 킬로가 주는 느낌은 거의 비슷하다.

거리와 시간은 줄지 않고 그냥 막막하게 멀기 만하다.

이정표 앞에서 “어휴~” 소리와 한 숨만 터진다.

그러나 3 킬로 미만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그 때부터는 줄어 가는 게 눈에 보이고 몸에서 감지된다.


이 킬로 대의 거리... 일 킬로 대의 거리, 영 점 킬로 대의 거리는 안도와 힘을 준다.


이번 등산에서는 체력 안배와 칼로리 보충을 비교적 잘 했다.

기선이가 꼼꼼하게 과일과 과자 등 간식 꺼리를 잘 준비한 덕에 많은 사람이 편할 수 있었다.

나는 산에서 너무 지치면 아무 것도 입에 안 들어간다. 그저 물만 마실 뿐이다.

그러고 나서는 더 더욱 탈진 되어 몸에 엄청난 무리가 따른다.

설악의 가리봉능선 서북주능 용아장성을 오르고 나서 오른쪽 갈비뼈 밑과 속이 뭉클하고

당겨 간이 부은 느낌을 늘 갖게 되고 허리의 지실 혈 부위가 켕기고 몸이 붓는 것을 보면 신장 까지 큰 부담을 받게 됨을 실감했었지만 이번 등산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다.

특히 물은 거의 두 시간 거리 안에서 보충을 할 수 있어서 물병 무게를 느끼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충분하게 섭취하였다.


날씨는 새벽의 맑은 하늘에 비해서 부옇다.

안개와 구름이 많아 얼굴이 덜 타지만 시야가 좋지 않아,

능선에서 둘러 볼 때 보이는 주위의 산 능선들이 그렇게 또렷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엔 좀 선듯해져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길게 쉬지 않았으며

옷을 여러 번 바꾸어 입어서 최적의 컨디션이 계속되도록 한 것도

이번 등산을 성공리에 마치게 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리산은 탐방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 등산로 양 쪽에 쑥부쟁이 구절초 들국화를 많이 심어 놓았다.


대피소 언덕과 평지에도 이 종류의 꽃들이 지천이다. 꼭 자연적으로 자란 것인지 씨를 뿌려 놓은 것인지 혼동스러울 정도로 많다.


그리고 현호색과 용담의 짙은 남색 감투 모양의 꽃 들이 무지 많았다.

바곳의 꽃과 현호색의 꽃은 어떤 때에는 헷갈린다.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헷갈리는 것처럼...

고산지대라서 단풍은 띄엄띄엄 물들었으며, 활엽수의 잎들에 물기가 빠져 낙엽이 되어 바람에 날리기도 한다. 생각보다는 단풍이 반짝거리지 않고 푸석한 느낌이다.

명색이 탐방로라서 가끔 가다가 나무에 이름표를 붙였는데 신갈나무와 사스레 나무가 제법 많았다.


가곡 "고향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고향집 눈길에서 꽃 등불이 타겠네'

'고향집 싸리울에 함박눈이 내리네'


지리산에는 대피소가 꽤 많다.

내가 다닌 코스에만도 노고단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등...

각 대피소마다 잠을 자거나 깨거나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워낙 대피소가 많아서인지 대피소를 이용하는 하는 사람들이 제법 여유들이 있어 보인다.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는 기색이 거의 없다.


비누와 치약을 못 쓰게 하며 모든 화장실은 자연발효 방식으로 되어 있고 주변이 깨끗하다.

또 흡연구역이 설정되어 있어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흡연을 즐긴다.


성삼재에서 새벽 네 시에 출발하여 오후 5 시 반 쯤에 숙소인 세석산장에 도착했는데

온 몸이 뻐근하고 무릎이 아프고 피로하여 쓰러지기 일 보 직전이다.

바람이 휭휭 불어 와 옷 속을 휘집기에 정신을 추슬러, 고어텍스 런닝셔츠와 남방을 벗고는 면 런닝셔츠를 입고 겨울 티로 갈아입으니 한결 나았지만 약간의 오한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빨리 내의를 갈아입은 게 참으로 잘 한 일이었다.


산악회에서 지급한 도시락과 라면을 끓여 먹고 숙박 준비에 들어갔는데, 철저한 예약제가 정착이 되어 있는 듯하다.

등산객이 예상보다 많이 몰려 숙박 공간이 모자랐는데, 예약한 사람들과 60 세 이상의 사람들, 초등학생을 동반한 부모 외에는 다 내 쫓겼다가 추첨하여 숙박을 허용하는 것 같았다.


가져 간 구미강활탕 백산을 일행들에게 한 봉씩 복용시키고 나도 먹었는데

다음 날 몸이 덜 쑤실 것을 기대한 것이었는데 적중한듯 싶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나가니 여기저기 비박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산악회를 따라서 온 우리는 서울에서부터 예약이 되어 있어 자리 배정과 모포 확보가 되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여자 숙소와 남자 숙소가 나뉘어져 있었는데, 내 옆의 다른 사람이 자면서 코를 엄청 골아 대고 간간히 방귀를 꿔 대서 잠자리 상황은 아주 나빴다.

저녁 7 시 쯤 숙소에 들었는데, 잠을 거의 못 자다가 다행히도 한 시간 가까이 잘 수 있었다.


성삼재에서 세석대피소까지 걸린 시간은 약 13 시간 반 정도 걸린 셈이니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그 이유는 아이거의 집 소동 때문이다.

화개재 (뱀사골 내려가는 부근) 쯤에서 리냐드님에게서 ‘아이거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 는 급한 전화가 왔는데 아이거의 누님이 아이거네 집을 아침에 방문하여 벨을 누르니 개만 짖고 어머니가 아무 기척이 없어서 결국, 119 에 전화를 하여 문을 부수고 들어가 어머님의 안전을 확인한 사건이다.

다른 사람들은 핸펀을 다 꺼 놓고 있어 나하고만 통화가 된 것인데,

나와 기선이가 굉장히 앞섰기 때문에 아이거를 기다리는 시간이 30 분 이상이 걸린 것이다.

정작, 아이거는 태연하고, 오히려 화가 나서 제 누나를 비판한다.

현관 키의 비밀번호를 잊은 채 벨을 눌렀다가 개가 짖으니 무서워한 노모가 문

가까이 못 가신 것인데 그렇게 소동을 피워서 애꿎은 현관문만 파손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소방대원이 갑자기 문을 부수고 들어오니 또 얼마나 놀라셨겠나 면서

일부러 전화도 안 한다.

사실 93 살 잡수신 노인네라 하더라도 당신 손으로 조석을 끓이시고 잘 다니시던 분들은 웬만하면 갑자기 자는 듯이 돌아가시진 않는다.

병석에서 시름시름 하시는 노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면 그냥 숨을 놓고 만다.

우리 어머님 같은 분이 걱정이다.

아이거의 엄니는 오늘의 소동때문에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실 것 같다.


어쩌다가 잠이 살짝 들었는데, 옆에서 두런두런 한다.

코골이 등산객 일행 너 댓 명이 일어나서 하루 일정을 서두는 통에 같이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1 시 50 분이다.

숙소 계단을 내려가는데 무릎 아픈 것이 장난이 아니다. 무릎을 펴기가 상당히 어렵고 종아리 허벅지가 보통 당기는 것이 아니다.

바깥에 나가서 스트레칭을 천천히 하고 발목 무릎 허리 목 돌리기 운동을 조금 하고 나니 몸이 그나마 부드러워 진다.


산에서는 모닝 출력을 좀 더 확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제 새벽 반선에 내렸을 때에도 억지로 출력을 성공시켰는데,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결과는 대 성공이다. 오늘의 산행 일정이 사뭇 순탄할 거라는 자신을 가져 본다.


일행을 재촉하여 출발을 서두르니 새벽 3 시 이다.

천왕봉 일출이 아침 6 시 반 정도라 하니 지금 출발해야 볼 수 있다.

등반대장 말로는 천왕봉 보다는 중봉 일출이 더 장관이니 40 분 더 가서 중봉 일출을 맞을 것을 강추 하는데, 의지를 받쳐 줄 만한 체력이 될까 미리 회의해 보다.


이정표를 보니, 장터목산장까지 3.6 킬로미터, 천왕봉까지 5.3 킬로미터이다.

나는 아직 산행 길에서 3 킬로가 넘으면 굉장히 먼 느낌인데, 약 600 미터만 가면 바로 2 킬로대로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한결 발걸음이 가볍다.

아까 몸을 풀어서 그런대로 걸을 만 하였는데도 세석산장 위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걸음을 크게 뗄 수가 없다. 그래서 노인 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밤길이나 새벽길은 같은 거리라 해도 낮 보다는 상당히 짧은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아마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예정 거리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그런 것 같다.

낮에도 힘이 들면 앞을 보지 말고, 눈앞의 땅만 보고 걸어야겠다.


장터목 방향으로 가는 새벽길은 어제 성삼재 노고단과 달리 별이 하나도 안 보인다.

이런 하늘 낌새로는 안개와 구름으로 인해 해돋이를 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마음에 구름이 낀다.


장터목을 향하여 가는 길은 여전히 오르락내리락 이라서 산행 피로가 훨씬 덜하다.

천왕봉이 가까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세석까지의 길 보다는 오르막이 좀 더 많고 가파른

느낌이지만, 그런대로 적응이 된다.


탐방로 곳곳에서 똥 냄새가 많이 난다. 전에 나는 이 냄새를 똥푸레 나무에서

나는 냄새로 착각했었는데, 정말로 사람의 똥 냄새임을 확인하였다.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데까지는 아마 3-40 미터 반경 걸리는 것 같다.

물론 등산객이 배설한 것의 냄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 설악산 대청봉이건 지리산 천왕봉이건 간에 무박 산행, 야간 산행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정상적인 출력을 할 수 없어서 산에서 여기저기 지뢰를 묻지도 않고 뿌려 놓은 것이라 생각 되었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는 비닐 봉투를 휴대하여 배설물을 싸 가지고 오

면서 자신의 배설물은 그냥 버리고 오다니...

피디수첩에서 애꿎은 녹용을 다루지 말고 무박 똥싸개들의 실태나 좀 고발하지...

산악회에서 지퍼 달린 비닐 봉투를 나눠 줘서 자신의 배설물은 자신이 되 가져

오기를 권장하면 어떨까...하는 우스꽝스런 생각도 든다.

어떤 짐승들은 자신이 배설하고서는 시늉으로라도 흙으로 덮는데 인간이 되어서

그냥 싸지르고 가다니...

하여튼 무박 야등 똥싸개들의 만행 흔적은 지리산 탐방로 곳곳에서, 평지, 오르막, 내리막을 가리지 않았다.

언젠가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라도 투고를 해야겠다.


깜깜해서 헤드랜턴을 밝히고 산행을 할 때에는 앞서서 가는 사람의 불빛으로

거리로 가늠 하는데 결과적 거리는 짧은 느낌(축지법 쓴 것처럼)이지만, 일단 선등자들의 불빛은 굉장히 멀어 보인다.

어휴, 저기 까지 언제가나 하는 생각에서 미리 주눅이 들지만, 막상 가보면 사실 별 것 아니었음이 매 번 확인되어 스스로도 대견하였다.


오르막을 오를 때, 나는 나름대로 터득한 보법이 있다.

미리 쉬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르막을 오를 때엔 심리적으로 능선까지 올라가서 푹 쉬자

라는 생각에서 피치를 올리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나는 잘라서 쉰다. 능선 아래 5-10 미터쯤에서 미리 쉰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 오르막이 훨씬 쉬우며 올라가서도 길게 쉬지 않는다.

즉, 나의 요령은 자주 쉬고, 빨리 출발하는 것인데, 일행들에게 확인하니

이런 방법이 훨씬 산행 피로를 줄이는 것 같다고 동의한다.


이럭저럭 거리가 줄어드는 재미는 2 킬로 대부터 임이 확실하다.

촛대봉을 지나니 장터목까지 2.7 킬로미터, 연하봉에 이르니 장터목까지 0.8 킬로미터

대견하고 신기하다.

장터목에 이르니 새벽 5 시 정도...

지리산 산장 중에서는 제일 크다고 생각될 만큼 아주 웅장하다.

잠깐 숨을 돌리고 바로 천왕봉을 오르기로 하는데, 무애와 아이거가 이 산장에

서 눈 좀 붙이고 중산리로바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무애는 "환자 입니다." 하고 꼬리를 내린다.

무릎이 좀 션찮다던 아이거, 세석에서 다리에 쥐가 난다던 무애에게 강하게 권할 수 없어서 그냥 잘 쉬었다가 오라고 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1.7 킬로......예상 시간으로는 1 시간 20 분 정도이다.

모든 거리와 시간은 처음에는 다 끔찍하다. 언제 끝낼지 자못 걱정부터 든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정표 상의 숫자를 생각하면 답답한 생각부터 들지만 막상 오르기 시작하면 이런 마음 자체도 잊혀 진다.


우리의 앞에서 보이는 가깝고도 먼 헤드랜턴의 불빛들을 따라 가면서 얼른 0.7 킬로가 지나길 기대하며 걷는다.

정말로 어느새 1 킬로미터 미만으로 떨어졌다.

정상인 천왕봉을 앞두어서 그런지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그러나 중간 중간의 봉우리에 올라서면 시야가 툭 툭 터진다.

고도 낮은 봉우리들이 내가 딛고 올라서는 봉우리들에게 조아리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겹겹이 봉우리이고, 봉우리들을 이어가는 능선들의 꿈틀거림이 뿌듯하다.


새벽길은 역시 빠르다.

어느덧 천왕봉 덩어리인 듯하다.

머리 조심해야 하는 통천문을 지나니 정상이 눈에 보일 듯 한데도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앞에 버틴다.

그렇게 반항해 봤자 이미 정상 까지는 영 킬로 대이므로 금방 지난다.


애초의 짐작대로 해돋이는 볼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해돋이 염원은 충분히 만날 수 있었다.

미련이 남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동녘을 향하여 구름 위의 해라도 보려고 서 있었으니까...


"한민족 기상의 발원지"

"천왕봉 1915 m" 라는 글이 새겨진 표석에서 순서를 기다려서 기념 촬영을 몇 장 찍고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아침 7 시 조금 넘어서 법계사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는데 5.3 킬로 미터란다.

아까의 장터목에서 중산리 까지가 5.3 킬로미터라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천왕봉 에서의 거리와 같다.

법계사까지의 길은 내리막이나 평지는 거의 없이 깎아 내린 내리막길이다.

특히 잔 돌이 많은 너덜지대가 있어서 위험하기 까지 하다.

30 년 전에 법계사에서 자고 새벽에 천왕봉을 올랐는데, 이렇게 가팔랐던 것 같지 않았는데 오늘 낮에 보니 무지무지 가파르다.

발이 조금만 미끄러져도 넘어지거나 발목을 삘 것 같이 위태롭다.

어휴, 이 길을 어떻게 올라갔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남강의 발원지라는 천왕샘에서 남강 물을 다 마시듯이 싫컷 마시고 법계사로 계속 내려 갔다.

30 년 전에 바로 법계사에서 잤었는데 지금 법계사는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고 부산하다.

법계사에서 라면을 끓여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식탁에 같이 앉아서 커피와 라면을 나눠 먹던 사람 중에 한 명은 2 주 째 연속 지리산 종주라면서 자랑스러워 한다.

음...정말 부럽긴 한데, 무슨 재미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뭔가 대접 상의 종주인 낌새가 보여 질문을 포기했다.

이 아저씨에게 법계사에서 중산리까지 내려가는 길은 좀 평평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내려가는 게 속 편할 거라고 일러준다.

법계사에서 중산리 까지 3.6 킬로인데, 내려가는 길이 내가 생각하던 신작로가 전혀 아니다.

전에 이 길을 밤길에 올랐는데, 그때도 아마 어둠의 덕을 톡톡히 보았었나 보다.

그야말로 깔딱 고개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산청 진주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이 코스를 당일 등산으로 잡고 올라오는 것 같은데

보통 험한 길을 올라오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서울 도봉산이나 북한산도 하루 코스로 오르고 내려가는 것을

비교한다면 크게 다를 게 뭐 있겠나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먼 길을 돌아서 내려가는 길에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사실 어제 새벽 성삼재에서 등산을 시작할 때를 생각하면 나머지 몇 킬로는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만,끝장을 앞두고서는 100 미터도 길다.

오르는 길 1 킬로 보다 더 긴 것이 도착 지점 앞 100 미터인 것 같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군대생활, 끝나지 않는 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중산리에 다 도착하니 오전 11 시 반 정도 되었다.

다리 옆 계곡 물에 머리를 감고 발을 담그니 이제야 지리산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장 50 킬로미터 산길, 총 23 시간, 4 만 보를 무사히 걸어 냄으로써 꿈만 같은 지리산 종주를 다시 이룬 것이다.

아우 기선이의 표현대로, 수술 후 "가혹 조건에서의 테스트" 를 아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내 나이에서 언제 또 지리산 종주를 할 것인가?

두고두고 마음이 뿌듯해질 것 같은 지리산 종주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등반대장으로 부터 지리산에도 서북주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리산 서북주능을 한 번 겪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동리에서 인월면으로 넘어가는 약 20 킬로의 길인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하니 맘 편하게 이 능선을 언젠가 넘어 보기로 굳게 결심하고는 지리산 종주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안치환 - 부용산>

<2006.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