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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배송 완료가 되다.
어제 도로에서 롤러코스트를 탔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퀵 서비스 오토바이를 타 본 것이다.
어제 경희대학교 60 주년 기념 경희한의대 홈커밍데이에 한의대총동문회장 이름의 축사를 하기 위하여
신월동에서 오후 다섯 시 반에 병원을 나섰다.
그런데 주차장에 나가 보니 뒤차의 운전기사가 없어서 기다리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차를 두고
택시를 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키는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동인데 할 수 있겠냐고 하기에 처음엔 다 수동으로 면허를 땄는데 못하겠냐고 하면서
화물차 운전석에 앉아서 기어 중립 상태에서 시동을 걸어 보니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차는 클러치를 넣어야 시동이 걸리나 보다 싶어서 클러치를 밟고 시동을 거니까 걸린다.
그 다음 백 기어를 넣고 차를 움직여서 아주 조금씩 차를 뒤로 뺐다가 1단 혹은 2 단을 넣고 움직이려 하니
차가 안 움직인다. 끙끙거리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부탁하니 금방 차를 움직여 치워 준다.
곰곰이 생각하니 클러치를 안 밟고 기어를 넣으려 했나 보다고 속으로 우스웠다.
수동 차를 프레스토, 스텔라, 소나타까지 십 년 가까이를 운전해 놓고서 이렇게 깜박하다니......
이 덕분에 시간을 잡아먹고 난폭 곡예운전을 감행하여 성산대교에 들어서니 벌써 여섯 시가 넘고
연희 인터체인지를 지나고 나니 6시 15분이다.
교통방송에 전화를 해서 도로 사정을 물어 보니 내부순환도로가 정릉까지 꽉 막혀 있고,
시내 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다가 퀵 서비스에서 사람도 데려다 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02-114 에 전화해서 ‘홍제동 부근의 퀵 서비스’를 물으니 곧 연결을 해 준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하니까 어디까지냐고 묻기에 경희대라고 하니 5 만원이라고 한다.
나중에 휴대폰 문자를 보니,
"배차되었습니다. 담당 라이더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하이퀵-
6시19 분의 문자이다.
서대문 구청 부근의 동신병원 뒤 주차장에 내 차를 두고 큰 길로 가서 퀵 오토바이를 만나서
시간을 보니 이미 6시 25분이 넘는다. 기사의 얼굴을 보니 40대 중반을 넘어서 호인형 이어서 약간 안심이 되었다.
몇 시까지 도착해야 하느냐고 묻기에 6시 30분이라고 대답하면서 이미 늦었지만 빨리 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헬멧은 아예 줄 생각도 안 해서 달라고도 하지 않았으며 꽁무니에 앉으니 의자가 제법 푹신하다.
기사에게 허리를 잡아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냥 뒤를 잡으라고 한다.
드디어 정장 입고 팔을 뒤로 돌려 편치도 않게 잡은 시내 폭주 오토바이를 탄 것이다.
기사가 네비게이션으로 최단거리를 찍으니 13.5 키로 나온 시내로 간다면서 구 화장터 길로 오토바이를 몬다.
내가 그 길에 대하여 불안해 하니까 바로 의주로에서 유진상가 방향으로 꺾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삼거리 중간에 여경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고, 순찰차가 중앙 안전지대에 서 있었는데
과감하게 꺾고는 속도를 낸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교통법규위반의 종합 세트를 목격한 셈이다.
길은 여전히 교통정체가 엄청 심해서 신호등 마다 차가 길게 서 있다.
차선을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면서 중앙선을 넘나들고,
횡단보도를 종단하기도 하면서 요리조리 빠져 나가며 질주한다.
어떻게 저렇게 좁은 차 사이를 잘 빠져 나가나,
앞뒤에서 꼭 받힐 것 같은데도 스치지도 않는 걸 보니 정말로 신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악터널 방면의 구기동 세검정 길은 커브가 심하여 오토바이가 옆으로 쓰러질듯하여
어느 때는 반대 방향으로, 어느 때는 기우는 방향으로 몸을 쓰니까,
기사가 오토바이가 기우는 방향으로 몸을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고속으로 달릴 때엔 맞바람에 얼굴이 서늘하고 온 머리카락이 다 날리는 것을 느낀다.
지갑이 빠지진 않을까,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 빠름에 넋을 뺏길 정도이다.
이런 쾌감으로 오토바이 뒤에 타고 질주하는가 보다.
중간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를 여러 번 보았는데, 우리 오토바이의 주행만큼 현란하지 않다.
추월의 짜릿함, 아슬아슬함, 거리가 줄어가는 맛, 바람이 주는 쾌감...
오토바이와 몸의 옆으로 쓰러질 듯한 휘청거림과 회복이 주는 평안함......
무섭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었지만 그냥 믿기로 하고 억지로라도 안심하기로 하니까
그런대로 마음이 놓이고 편하다.
어찌 보면 도박과 같은 모험을 한 셈이었는데,
만약에 사고가 난다면 행사에 반드시 차질 없이 참여해야 한다는 나의 집념과 성의를 봐서 실수를 좀 덮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 영웅적 순교 아닌 순교(?)로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한 마디로 순 ‘허영심’ 이 더 크다.
그보다는 공인으로서의 체면, 명예, 학장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회장직을 수행 하면서 스리랑카 갈 때, 항공권을 구할 수 없어서 나 혼자서만 갔던 것이 새삼 기억난다.
그것도 영어도 못하면서 방콕에서 갈아타기까지...
그러고 보니 스리랑카 국제협력의 이었던 한규언 선생을 그 자리에서 나중에 만나게 되었다.
후문으로 하여 행사장인 평화의 전당에 도착하여 앞줄 귀빈석을 보니 역대 학장님들, 병원장님들,
역대 협회장님들이 쭉 앉아 계신다. 대충 인사를 하고 보니 총장 축사가 진행 중이고 프로그램 지를 보니까
바로 다음이 나의 축사 순서이다. 정말 천만다행이 아닌가?
이때의 1 분은 정말로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서대문 구청에서 여기까지 20 분이 채 안 걸린 셈이다.
사회자가 늦게 도착한 외빈을 소개하면서 나의 축사를 소개한다.
단상에 올라가서 “ 길이 엄청 막혀서 차를 버리고 퀵을 불러 타고 왔습니다.” 하니까
청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는데 정리가 안 되어서 좀 뻗쳤는데 이게 더 멋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행사 다 마치고 나서 꺼 놓은 휴대폰을 켜 보니 눈에 들어오는 문자가 있다.
"배송이 완료 되었습니다. 빠르고 친절한 -하이퀵- 6:53에 배송 완료”
집에 오는 길에 몸이 좀 으스스 하고 뒷목과 팔과 어깨가 좀 아프다.
아마 맞바람을 오래 맞고, 오랫동안 팔로 뒤를 잡아서 그런가 보다.
오늘 생애 처음의 탐험을 안전하게 끝냈다.
<2009.5.20>
<Ronan Keating - Life Is A Rollerco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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