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글] 시민단체의 기생충론 반론

그리고 뭔가... 2005. 4. 26. 18:50

-시민단체를 기생층에 빗대서 비난했는데?

=시민단체가 기생층이라면, 진짜 생산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따지면, 정치인 등 제조업말고는 모두가 기생층이다. 직접 권력과 관계되지 않고, 시민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보통시민의 생각을 대변하고, 시민사회 일부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많은 분들이 기생층을 먹여살리는 분들인데, 기생층이라고 생각한다면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부정하는 극단적 발언이다.

**시민단체 감시로 예산낭비 크게 줄어…

-시민단체가 비생산적이라는 것인데?

=민주주의에 많은 비용이 들지만,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 때 사회나 국가의 실패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보다 민주주의 실현에 드는 비용이 훨씬 적다. 시민단체도 시민운동을 하지 않아서 드는 정부나 기업 실패에 따른 비용보다 훨씬 더 저렴하다. 시화호 문제를 보더라도, 호수를 만들려고 둑을 쌓았다가 다시 바닷물이 들어오게 둑을 트면서 모두 1조5천억원이 들어갔다.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으면, 이만큼의 돈이 절약됐을 것이다.


최악의 예산낭비 사례를 꼽아 우리 단체가 주는 ‘밑 빠진 독상’도 2000년부터 30회를 수여하면서, 현재까지 16번의 국책사업을 수정시키거나 중단시켰다. 자그마치 1조5천억원 이상의 예산낭비를 막았다. 요즘은 기획예산처 등에서도 참조해 예산삭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의 운영에 들어간 돈은 자원봉사 등으로 1억원도 안된다. 실제로 시민단체의 활동은 대부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


**자원봉사로 ‘밑빠진 독’ 상 30회 운영… 1조5천억 예산낭비 막아
-주 의원이 어떤 사고방식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보나?

=지극히 이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여긴다. 이념이 비슷한 단체는 기생층이라고 하지 않고, 못마땅하면 기생층이라고 치부한다. 다원적인 시민사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반대되는 생각을 갖는 사람도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인데, 이념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자기 편이 아니면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 의원이 “대한민국은 NGO의 천국이다”고 주장했는데, 한국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성장 배경과 역할은?

=1990년대 시민단체 활동이 활성화됐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에 정치나 종교집단 등 도덕적으로 사회적 신뢰를 얻은 곳이 없었다. 두번째, 개혁정당이 없었다. 정치세력에 기대를 할 곳이 없었고, 80년대 인적자원이 시민운동으로 넘어오면서 운동을 수행하는 주체가 됐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가 많다고 하는데, 미국에는 600만개가 있다. 일본에는 30만개가 된다. 우리는 ‘새마을운동협의회’ 등까지 모두 합쳐 2만개 수준이다.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큰 느낌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소수의 단체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집단과 개혁정당이 없어 시민단체가 사회적 입장을 계속 밝혀야 했다.
90년대 한국사회가 급격히 민주화 되고 안정화되면서, 제도와 질서가 자리잡고 깨끗해지고 있다. 금융실명제, 정보공개법 도입 등에 시민단체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사회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법과 제도의 개혁을 주도했고 그 수혜로 정치나 사회부분에서 개혁이 진척된 것은 틀림없다.

**한국에 시민단체 많다고? “미국엔 600만개, 일본엔 30만개”
-주 의원의 경우처럼,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지원이 자주 논란이 되는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 신보수주의가 커지면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졌다. 대처나 레이건 등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가 하던 사회복지 등을 시민단체에 맡기면서 역할이 커진 것이다. 정부 역할의 축소되면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이다.
국가 예산으로 공무원을 고용할 것을 시민단체가 대신 하니까, 정부의 실패를 방지하고 효율적인 예산운용과 사업진행을 위해 시민단체의 활동확대는 필연적이다.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은 선택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확대될 것이다.
다만, 지원의 방식이나 내용 등은 사회마다 특성이 있으니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재정이 100억원이 넘는 민간재단이 시민단체를 지원하기도 하는데, 정부 등의 이해관계를 벗어나도록 사회가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은 사업별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지원결정을 정부가 할 게 아니라, 제3의 기관이 심사한다면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회비 납부를 보면,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아직 굉장히 전 근대적이다. 회비로 자급하는 곳은 참여연대 정도 수준이고, 나머지는 힘들다. 회비로 모이는 액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나마 나아서, 후원회비가 경상운영비의 75%를 채워준다.

**시민들 회비납부는 미흡…활발한 곳도 경상비 75% 수준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사회적 의식을 변화시키는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 집중할 게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사람은 늘리되, 일의 구조조정은 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모순은 많은데, 나름대로 절제한다고 하지만 다 처리하려다 보니까 거대 이슈중심으로 간다. 전투에서 가끔 이겨야 시민들도 호응하는데, 너무 큰 일에만 집중한다. 일을 구조조정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뒤를 돌아보는 활동이 필요하다. 또 회원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돈뿐 아니라, 진짜 사회적 의식이 있는 시민들을 늘려나가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90년대 시민단체가 큰 역할을 해냈지만, 앞으로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정치나 종교도 과거보다 신뢰를 얻을 것이고, 정치나 종교도 시민단체의 성과를 바탕으로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 시민단체가 사회적 민감한 현안보다는, 사회 서비스 사회복지 등 좀더 사회 밑바닥에서 활동하는 게 필요하다.

-머릿속에 그리는 ‘시민사회’의 모습은?

=시민사회는 이미 이루어져 있다. 시민사회의 수준이 어떠냐의 문제다. 진정으로 발전된 시민사회는 소수에 대해 배려하고, 편견을 없애는 공론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다.
독일에서 스킨헤드족들이 테러를 했을 때, 독일에서 60만명이 거리를 나와서 규탄시위를 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장애인이나 외국인노동자들을 대하는 것를 보면, 개선할 것이 많다. 이념적 문제도 소수자의 면에서 본다면 풀릴텐데, 편견과 이념의 잣대로만 보니 풀리지 않는다.

**12년째 상근, 상근자 15명중 서울거주 1명, 점심은 도시락, 차도 거의 없어
-기생층이라고 비난받았지만, 월 급여 등 활동여건은 무척 열악한데?

=92년부터 경실련에서 일해오다가 99년 ‘함께하는 시민행동’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부인은 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자로 5년째 일하고 있다. 둘이 합쳐 수입이 한달에 200만원 정도 되는데, 활동비도 포함돼 있다. 그래도 세살난 딸을 키우고 있다. 시민단체 중에서 중~상 수준이다.

미국의 시민단체와 교류하는데, 보통 상근자가 평균 5만달러 정도 받는다. 우리 수준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최저생계비를 살짝 넘어가는 수준이다. 빚이 없으면 생활은 가능하지만, 축적은 못한다. 시민단체들이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게, 상근자들이 많이 그만둔다. 4~5년이 되면 못 버티고 떠나고,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결혼할 때, 아이를 낳을 때, 아이가 학교를 갈 때 그만둔다.
저희 단체 상근자 15명 가운데, 서울에 사는 사람이 딱 1명이고 대부분 경기도쪽에 산다. 저도 장모님 댁에 얹혀 산다. 월급으로 전셋값 마련이 어렵다. 상근자의 3분의2 정도가 도시락을 싸온다. 하루에 4~5천원 식비를 내면 감당이 어렵다. 차를 갖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자기가 돈을 내야 하는 자리는 잘 안간다. 옷이야 덜 입으면 되는데, 먹고 자는 문제는 어렵다.

**상근자들, 결혼할때, 출산할 때, 애 학교갈 때 많이 그만둬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운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웃음) 하지만, 회원들이 만나면 미안한 마음에 고생한다고 챙겨줘서 잘 먹는다. 또 이런 여건 속에서도 한명의 시민으로서 주말에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마음이 풍요로운 게 아닌가 싶다. 한달에 20~30만원의 급여를 주는 극단적인 단체에 비하면, 우리는 무척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간다. 워낙 사치와 낭비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책도 사본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일하는 보람, 꿈이 있을텐데?

=‘희생과 봉사’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명예와 자부심은 분명히 있다. 법제도를 바꾸고 사회의 문제를 바꾸면서 성취감도 맛본다. 전문성을 쌓아가면서 여론도 형성한다.
사회적 의식이 높아지고 인식이 바뀐다면 분명히 중요한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참으면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돈 문제 빼고는 남부러운 게 없다. 남들한테 받는 게 없으니까, 무슨 얘기든 하고 싸울 수 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을 하는데, 보상이 적을 뿐이다.

**돈 문제빼곤 ‘남 부러운 게 없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운동을 현실로 봐줬으면 좋겠다. 시민단체 활동을 말하면서, ‘희생과 봉사’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순된 게 아닌가 싶다. ‘당신들은 희생과 봉사를 하는 사람이니까 특별한 사람들이다’고 여기고, ‘나는 일반적인 사람이니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시민단체 활동가는 돈이 없어도 이슬을 먹고 산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사는데, 돈을 적게 받고 생활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일뿐이다.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해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외부적으로는 시민운동과 시민사회의 활동을 이념적,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주장이 다를 수 있는데 이념적 잣대로 판단한다면, 인류사회가 만들어가는 시민사회를 송두리째 부인하고, 퇴보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