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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Girl on the bridge 감상...고통과 환희를 같이 느끼게 하다
모처럼 일찍 귀가하면 그간 모자랐던 잠 보충하자는 생각에 일찍 자려 한다.
그러다가 요새처럼 열대야로 인해 잠을 못 이루게 되면 그야말로 한 편을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딱 이틀 안에 완전시청을 이룬 영화 한편이 있으니 바로 '걸 언더 브릿지'이다.
이 영화는 이태리 흑백영화 같다.
나는 대사를 갖고는 이태리 영화인지 프랑스 영화인지 잘 구별이 안 된다.
좀 보다가 엉뚱한 대사나 행동, 소품이나 엑스트라가 등장하게 되면,
프랑스 영환가 보다 하게 된다.
이 영화는 내가 보기에 이태리 영화임에 분명하다.
왜 컬러시대에 흑백으로 찍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영화에 빠져들면서 흑백이 아니면 안 되었는지 모른다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흑백을 잘 맞췄다고 본다.
주인공은 단순한 짝이다.
서커스에서 사람을 과녁으로 하여 칼을 던지는 남자와,
그 사람의 과녁이 되는 여자.
영화는 이 여자가 여러 사람에게 둘러 싸여 자신을 회상하는 씬부터
시작되는데, 어째서 이 여자가 진술하듯이 회상을 하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해하기 위해 역탐색을 한 결과 알게 된 것은
여자의 머리 모양이 평범하고 무뎌보이는 머리 모양이었고- 뒷 부분에서의 머리 모양은
아주 샤프하고, 개성있는 짧은 커트 모양- 진술의 내용이란 것이 자신은 아주 재수없고,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기 위하여 어떤 다리 위의 난간에 올라 서는 것으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번지점프대 끝에 발끝이 약간 나가게 걸치는 것처럼 조금 조금씩 발을
밀면서 떨어지려다 -내가점프대에서 그러다가 두 번 째에 점프한 적이 있다- 잠깐 숨을 고르는 순간,
아저씨 한 사람이 나타나 김을 뺀다.
얼굴 윤곽이 뚜렷하여 코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크고 강인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다.
'왜 망설이느냐', '다리에서 떨어지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고 하면서...
여자는 좀 창피하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변명한다.
'물이 너무 차가울 것 같다 ' 고.....
남자가 자기는 서커스에서 사람을 과녁으로 하여 칼을 던지는 묘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밝히면서
기왕에 죽을 것이라면 자기를 도와서 일을 같이 하자고 한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를 자극하는 몇 마디를 더 던지자, 여자는 그냥 강물로 점프한다.
남자는 '이런, 정말 뛰어내리다니' 하면서 뒤따라 뛰어 내린다.
둘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순시선에 의해 구조되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다.
이후로 둘은 서커스에서 칼을 던지고, 과녁이 되는 일을 하게 된다.
약 12자루의 단도가 하나씩 하나씩 여자 몸 주위에 날아가서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박힐 때마다 여자는 공포에 부르르 몸을 떨면서도
이상한 쾌감에 웃음을 짓는다.
이 배우의 양극적인 감각 연출은 두고 두고 뇌리에 남는다.
여자는 누군가에게 토로한다.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느껴본 적이 있는가 라고......
머리 위, 얼굴 양옆, 가슴 양옆, 허리 양옆, 허벅다리 양옆, 다리 양옆,
가랑이 사이에 꽂히는 단검들.....
실패하지는 않지만, 끝나고 나면 작은 상처가 팔 다리에 하나씩 생긴다.
두 남녀 사이에는 생사에 대한 교감과 일치가 확인되고, 쌓인다.
이는 흔히 이루어지는 섹스가 주는 쾌락과 일체감이 아니며,
이들은 성적인 접촉을 전혀 나누지 않는다.
반대로 여자가 틈틈이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나누지만,
남자는 질투의 감정이 생기면서도 주의만 줄 뿐 제지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의 교감과 일치로써 이 일을 발전적으로 계속해 나간다.
즉, 여자를 세워 놓고 커텐으로 두어겹 가리고 난 후 남자는 칼을 던지기도 하고,
회전시켜 가면서 칼을 던지기도 한다.
남자의 긴장은 도를 더해 가고 여자는 공포가 주는 고통과 환희에 떤다.
둘 간에 보이지 않는 대화의 깊이도 한층 깊어진다.
남자는 여자를 통하여 자신의 영감을 키우고, 여자는 남자의 부추김에
따라 자신을 키워 가다가 카지노에서 엄청 많은 돈을 따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노상 음식점에서 아주 핸섬하고 젊은 사내가
요리를 하는 것을 보고 여자가 맘을 뺏기는 것을 안 남자가 기차 시간을
알려 주면서 역으로 혼자 온다.
기차 플랫홈에 몇 개의 궤짝짐이 쌓여 있고,남자는 선로를 걸어 간다.
앞에서 열차가 나타난다.
남자는 피하지 않고 계속 걷는다.
부딪칠 듯이 가까워 오자 남자가 " 뒤" 라고 중얼거린다.
그 순간 열차는 다른 선로를 통하여 오른쪽으로 비켜 나가 버린다.
남자가 다시 "앞" 이라고 중얼거리니, 여자가 앞에 딱 나타난다.
여자가 자기 타입이 아니라며 그 젊은 아이를 버리고 남자에게 온 것이다.
둘은 강하게 포옹하며 역 근방의 어떤 헛간을 찾아간다.
헛간은 어두웠으나 나무 벽 사이로 햇빛이 화살을 이루며 들어오고 있었다.
햇살이란 빛의 화살이란 뜻인가 보다.
아주 깜깜하지는 않았지만, 어둑어둑한 공간에 들어와 가로 혹은 세로로
가로지르는 빗살들.....
'음...드디어 얘들이......'
그러나 여자가 겉옷을 벗고 벽에, 사이사이로 통과해 들어오는 햇살로 뚫린 그 벽에 서면서부터
나의 상상은 어긋났다.
남자는 가져 온 칼들을 옆에다 내려 놓고는 신중한 자세로 칼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공간은 나무벽 사이를 뚫고 들어 온 햇살......
바깥의 밝음을 뒤로한 채 서 있는 여자 몸의 어두움과 여자를 가르는 햇살....
남자의 얼굴에도 그 빛 화살들이 비치고 어른거린다.
딱! 딱! 거리며 박히는 단검들의 소리......
여자의 공포에 떠는 모습, 쾌감에 떠는 표정과 몸짓들.....
기다림이 만드는 고요와 긴장.....
불안과 성취감이 교차하는 여자의 얼굴.......
난 이 장면이 이 영화를 흑백영화 아니면 안 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공포와 기쁨, 고통과 환희, 긴장과 허탈, 기다림과 맥풀림.....
철저하게 이분적이고, 양극적인 존재와 인성에 대한 관찰......
그리고 조화와 절제에 대한 갈증과 기아감의 표출이라니.....
칼 던지기 일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사람의 탁월한 선택과 결정.....
남자는 일관되게 여자를 사랑하고, 자신의 영감과 교차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여자는 여기에 안주하지 못한다.
남자는 수시로 여자로 하여금 행운을 시험해 보게 하고, 행운의 결과를
확인시킨다.
심지어는 마술사의 트릭까지 사용하여 여자 자신을 행운녀로 만들어 준다.
여자는 우연히 줏었던 고급라이터의 임자인, 막 결혼한 갑부를 유람선에서 만나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도피행을 결행한다.
남자의 말리는 말에 여자는 이제 자신의 외로움을 끝내 줄 사람이라고
하며 듣지 않는다.
"여태까지 침대에서 내게 오른쪽에 누울 것인지 왼쪽에 누울 것인지를
묻는 사람은 당신과 이 사람 뿐이었다" 고....
남자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결국 여자는 떠난다.
그리고 그 사내와 멋지게 춤추던 막 결혼한 여인은 울부짖다가 배 난간에 올라서서
자살을 기도하게 된다.
"기왕에 죽을 바에야 일을 같이 하지 않겠는가?" 라는 남자의 제의에 여인이 응하여 과녁이 된다.
여인은 공포와 쾌감에 의해 몸부림 치고 신음을 하다가 결국은 허벅다리에 칼을 맞고는
언제까지고 멎지 않을 듯한 비명을 계속지르다가 후송된다.
이건 결국 사족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부분이다.
바람둥이 사내가 맞을 칼을 왜 이 여인이 대신 맞아야 하는지에 대한
앞 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섣부른 복수? 관객에 대한 써비스?
일엽편주로 바다로 나간 두 남녀는 표류하다가 헬기에 구조되고,
그 사내는 응급요원인 해군인지 공군인지 모를 여인에게 마음을 뺏기고는
여자를 차버린다.
그래서 여자는 다시 빈털털이가 되어 버려서 남자를 그린다.
거리에서 세장 카드로 연출하는 야바위를 만나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지만 실패한다.
여기도 내가 보기엔 사족이다.
혹시 헛간에서의 칼 던지기 장면까지의 감독과 그 후의 감독이 다른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남자는 텔레파시로 여자를 계속 부른다.
"거기로 오라"
남자도 결국 짚시처럼 방황하면서 어느 거리 시장에서 칼을 팔려고
좌판을 벌리고 있다가, 여자의 뒷 모습을 보고 쫓아 가다가
트럭에 치었지만,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확인하니 다른 여자다.
좌절과 절망에 빠진 남자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면서 절룩거리며
한 다리 가운데에 서 있다.
다리 난간 밖으로 몸을 이동시켜 난간을 잡은 손에서 슬슬 힘을
빼고 있으려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왜 여러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하느냐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여자다.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한다.
실은 첨 만났을 때, 자신도 죽으려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불운이 계속되어, 하는 일마다 실패했다.
당신을 만나 운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행운의 존재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 남자가 얼마나 배려 깊고,
따뜻하게 대해 줬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여자의 고백과 동시에 서로 포옹을 한다.
마지막, 포옹 장면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두 사람의 키의 차이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전엔 머리 하나 이상이었는데, 머리 반의 차이도 안 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 오른 영화가 두 편 있었다.
하나는 "길"이란 영화다.
잠파노의 안소니 퀸, 젤소미나( 배우는 깜박...)가 나왔던 "길".
"길"엔 가슴 속 깊은 곳을 침투해서 긴 여운을 남기는 노래가 있는
것 처럼, 여기 이 영화엔 언젠가 나왔던 트위스트 곡(?)이 있다.
혹시 이 영화의 감독이 젤소미나를 죽음에 몰아 넣은 잠파노의 아픔을
풀어 주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또 하나는 쉰들러 리스트라는 가짜 흑백영화 장면이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알 것이니 재론하지 않겠다.
좋은 영화 만나기가 참 힘들다.
물론 오직 주관적인 나 만의 생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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