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관련 무능한 군의 아주 특별한 전투능력 [펌]

기본카테고리 2010. 5. 21. 12:39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군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남자들이라면 현역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이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우리 군은 이 대목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발표를 보니 군은 아예 실패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 보였다. 발표 내용은 쉽게 말해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르게 북에 감쪽같이 당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표정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별로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고 의기양양해 보이기까지 했다. 쌍끌이 어선이 수거했다는 북한 어뢰 부품을 놓고 설명하는 장면은 마치 전투에서 노획한 전과물을 자랑하는 모습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어느나라 군대도 이처럼 부끄러운 일을 이토록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군의 발표는 ‘작전 실패냐, 경계 실패냐’는 이분법적 접근을 단호히 거부한다. “잠수함이 기지를 이탈해서 잠항이 시작되면 세계 어느 나라의 기술로도 추적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불가항력이요 속수무책이라는 뜻이다. 이런 답변 앞에서는 ‘어뢰가 터지는 순간까지도 왜 음향탐지기(소나)가 포착하지 못했느냐’는 따위의 질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결국 천안함 침몰 사건은 작전 실패도 경계 실패도 아니고, 그러니 용서를 하고 말 것도 없는 이야기가 돼버렸다. 이런 허무개그 수준의 이야기를 어깨에 번쩍이는 별을 셋씩이나 단 장군이 천연덕스럽게 했다.

이번에 보니 우리 군의 전투능력이 마냥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정보를 흘려 분위기를 몰아가는 심리전, 고공플레이를 통한 공중전, 인터넷 누리꾼들과의 각개전투, 고소·고발전 등 어느 것 하나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게 없다. 수색, 탐지, 구조 활동 능력은 쌍끌이 어선 등 민간 부문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다른 분야의 전투능력만큼은 훈장감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번 사건을 예산과 장비의 부족 탓으로 몰아가 대대적인 예산 확보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단적인 예다. 세계에서가장 빈털터리 나라 군대를 상대로 하면서도 끊임없이 돈 부족 타령을 하는 모습은 무척 역설적이다.

군이 ‘주적’ 개념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기회에 강한 군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국방백서에 ‘주적=북한’이라고 적어놓기만 했더라면 이런 변을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투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안보 대상이 뚜렷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은 군에게는 천군만마다.

이런 군을 보면서 다시 기억에 떠오르는 군대용어가 있다. “에프엠(야전교범)대로 해!” 이 말을 그대로 군에 돌려주고 싶다. 군 스스로 평소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니 별도의 부연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국방백서는 그만두고 침몰 사고 전후 대처 과정에서 에프엠대로 한 게 얼마나 되는지 군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창피해서 당장 옷을 벗겠다는 장성이 한두명쯤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아직은 감감무소식이다. 오히려 사고원인 발표가 있고 난 날 오후에 곧바로 전군 작전지휘관회의라는 이벤트를 여는 기민성을 발휘했다. 소는 잃었지만 지금부터 외양간이라도 고치겠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패장들의 작전회의’를 지켜보는 심정은 영 개운치 않다. 이미 합참의장은 며칠 전 간부 600여명을 강당에 모아놓고 정신교육까지 시켰다. 정신교육 대상 1호가 돼야 할 사람이 부하들의 맹성을 촉구하는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다.

하기야 군은 지방선거 국면에서 이미 정치적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니 내심 벌이 아니라 포상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겨레신문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201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