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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 기사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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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31. 10:53
‘1천일 기도’ 마치는 봉은사 명진 스님 노 전 대통령 국민장 때 딱 한번 외출해 ‘파계’ 권력에 더 큰 ‘죽비’…‘용산’에 먼저 달려갈 참 ![]() 봉은사에서 변한 것은 이런 외면만이 아니다. 조계종 사찰 중 예산이 가장 많아 ‘돈 있는 곳에 잡음 있다’는 사바세계의 실상을 늘 보여주던 그 봉은사는 지난해부터 불전함을 신도들이 관리하는 등 모든 재정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주지가 자기 돈처럼 쓰던 불전함마저 공개해버린 뒤 ‘큰 절 주지가 오가는 스님들 차비도 주지 않는다’는 핀잔을 듣는 인색한 사찰이 되어버렸지만, 돈을 둘러싼 고질적인 시비는 사라졌다. 들짐승처럼 전국 산하와 거리 누비던 ‘야인’ 봉은사 주지 명진(59) 스님이 봉은사를 ‘감옥’삼아 산문 밖 출입을 삼간 채 새벽 4시30분 새벽예불, 오전 10시 사시 예불, 오후 6시30분 저녁 예불까지 하루 세 차례 1천배씩 하며 정진해온 1천일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두문불출하는 수행자들의 기도정진이야 드문 일은 아니지만 들짐승처럼 전국의 산하와 거리를 누비던 명진 스님이기에 더욱 유별났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야인’인 그가 대찰의 주지라는 직책을 맡은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그가 한 곳에서 1천일을 그대로 머문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실천운동가로서 거리를 누빌 때도 안거 때가 되면 3개월씩 선방에 들어가 정진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안거를 끝내면 곧바로 거처를 옮기며 떠도는 바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2006년 12월5일부터 바람기를 잠재운 채 봉은사에 머문 지 오는 30일로 꼭 1천일이 된다. 그 천일 동안 그는 몸살이 걸려 으슬으슬 한기가 들고 온몸이 오그라드는 날에도 하루 세 번의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딱 한 번 빠진 적이 있다. 지난 5월29일 경복궁에서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때 불교행사를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2999번이 된다. 어떤 이들은 “기도 정진 중에 외출했으니 천일기도는 무효“라고도 했고, 일각에선 “왜 노 전 대통령 때는 나오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는 문상을 하지 않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노환으로 돌아가셨지만, 노 전 대통령은 현대사에서도 가장 비극적이고 충격적으로 억울한 상태에서 자살을 했고, 봉은사 신도로 등록돼 있는 부인 권양숙 여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1988년부터 봉은사 신자였던 권씨는 언니, 동생, 며느리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3일 전 봉은사를 찾아 명진 스님과 함께 새벽기도를 드린 바있고, 노 전대통령 서거 뒤 명진 스님에게 직접 전화해 마지막 가는 길을 안내해줄 것을 청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천일기도를 마치고 강원도의 한 선방으로 2개월간 결제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기도 한번 빼먹은 것을 60일간 참회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볼 것”이라고 했다. 경내에 ‘중수부 검사들의 출입 금지’ 펼침막 ![]()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는 그의 ‘행동’에 보수적인 이들은 “왜 기도 중인 스님이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종교 차별을 한다며 서울광장에 20만명의 불자가 항의한 집회를 예로 들면서 “ 자기들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의 약자들이 당한 일에 대해선 ‘정치적’인 일이라며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라고 답했다. 그는 또 “왜 ‘진보’편만 드느냐”는 지적에 대해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도 가치가 있다”면서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정직하냐, 정직하지 않느냐에 있다”고 했다. 현 정권은 청문회에서조차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밥 먹듯 해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도덕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박종철군 사건’ 당시 거짓말을 한 치안감을 구속시킨 군사독재시절만큼의 잣대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법원이 공개하라고까지 한 용산참사 수사기록 3천 쪽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무리한 진압이었음을 자인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강남 한복판 대찰에서 ‘운동권 스님’이 잠재운 우려 그의 이런 결기 때문이었을까. 처음 그가 봉은사 주지에 임명됐을 때 “웬 ‘운동권 스님’이 왔느냐”는 마뜩찮은 눈초리가 적지 않았다. 출가 승려로서 살아가던 그가 승려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것도 봉은사였다. 85년 이곳 봉은사에서 열린 ‘10·27 법난(80년 신군부가 절을 짓밟은 사건) 규탄대회’로 그는 감옥에 감으로써 ‘운동권 스님’으로 서막을 열었다. 운동권이라는 경계의 눈초리에도 1천일 전 50명이던 일요법회 참석자는 이제 1천여명으로 늘었다. 약자들과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신자들의 의식도 강해져 불경기였지만 보시금도 30% 가량 늘었다. 그 신도들의 응원을 업고 그는 오는 30일 스스로 가둔 통금이 해제되면 가장 먼저 용산 참사 현장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있는자들만의 요람이 될 법한 부촌의 대찰이 천일기도를 마친 그와 함께 세상의 약자들을 보듬기 위해 두 팔 벌리고 산문 밖으로 나가고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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