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늘 겸손하고 싶다.

기본카테고리 2009. 8. 10. 12:10

올해에는 내 기억이 날 만한 죽음이내 주변에서 이어진다.

그저께 사촌동생이 세상을 떴는데 둘째 작은아버님의 둘째 아들인데, 납골당에서 보니 63 년 생이다.

둘째 삼춘은 올해 79 이 되셨는데 작은 어머님을 수 십년 전에 먼저 보내셨고,

다섯 남매를 두셨다가 아들 하나를 먼저 보내신거다.

살펴보면 각 집안에 흉사는 늘 있게 마련인데 여러 자식을 둔 사람이 하나도 일찍 여의지 않고

모두 건강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닌 듯 싶다.

우리 집안만 보아도, 막내 삼촌이 40 대에 세상을 일찍 뜨셨으니 아버님 형제 들 중에선

맏이인 우리 아버지 보다 가장 먼저 가신 것이다.

나는 아버님이 막내 아우가 별세를 하였을 때 그렇게 비통해 하시던 모습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그러니까 아버님 형제 분 다섯 분 중에서 남아 계신 분들은 이제 작은아버님 두 분, 고모 한 분이다.

세 분들이 다 70 대를 넘으셨다.

우리 사촌 형제들을 한 번 세어 보자.

우리 : 6 남매

둘째 : 5 남매

세째 : 3 남매

고모 : 3 남매

네째 : 3 남매.....

총 17 형제이구나.

우리 6 남매 중에서 아들 삼형제는 벌써 한 번씩 죽을 고비는 넘긴 셈이다.

형이 위출혈로 위 절제, 내가 심장병으로 심장수술, 동생이 대장암 수술.....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데 얼마나 큰 불효를 저지를뻔 했는지 모른다.

동생이 암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오그라들던지....

그래서 차마 수술 현장엔 가지도 못하고 기도원에 가서 하루 종일 장모님과 금식기도만 하면서 수술 잘 끝나기만 기다렸다.

그 때에 막내삼춘이 돌아가실 때 아버님이 끓이시던 애를 내가 끓인다고 뼈 속 깊이 인식했다.

그것이 벌써 3-4 년 되었으니 암 생존률 5 년 기간이 다 되어간다.

이렇게 형제 하나의 불행은 당자의 불행에 끝나지 않고 대표선수로서의 불행의 의미가 있는 거 같다.

둘째 작은 아버님의 자손이 다섯인데, 47 세 된 자손이 간암으로 아버지 보다 먼저 갔으니

작은 아버님은 얼마나 애통해 하실지 걱정된다.

늙은 부모님들이 대개 하시는 말씀 중에서 거의 공통된 이야기는,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내가 아파야 하는데..." 하는 신세 한탄이시다.

이것만 보아도 식구 한 명의 죽음은 대표성을 띄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작은집 사촌 형제 부부와 마지막 점심을 먹으면서 한 마디 하였다.

" 부모가 편찮으시거나, 돌아가시거나, 형제 중 한 명이 불행을 당하면 다른 식구들을 대신하여 그런 것이다.

그러니 모두들 더 낮춰서 살고 잘들 지내자" 라고....

현숙이 신랑 정 서방이 헤어지면서 금초하러 갈 적엔 꼭 연락을 해 달라면서 명함을 건넨다.

이번 벌초에는 작은집의 정서방을 꼭 불러 봐야겠다.

장례날은 너무나 뜨거운 날씨여서, 고인 가족들의 시선을 좀 흐트리는 데에 일조를 하였다.

<2009.8.10>


<Kenny G - My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