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더 반가운 늦가을의 서정-서울싱잉커플즈 31 주년 연주회를 보고

기본카테고리 2010. 11. 17. 18:06

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이승철의 ‘그사람’ 을 접하고 나서 그 아이의 노래를 몇 곡 배워 부르다가 그 앨범에 있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라는 노래가 새삼 좋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싱잉커플즈의 연주회 초대장을 보고서 이문세의 노래들이 들어 있음을 보고 벌써부터 친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부부합창단의 정기공연은 편안하게 우리 곁으로 닥아 온 것입니다.

올해의 연주회는 창단 35 주년 기념, 제 31 회 정기연주회로 열렸습니다.

이번 연주회는 나의 친구 종훈이네 골프연습장이 유례없는 호우와 태풍을 정면으로 맞아, 친구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가 교회와 합창단 식구들의 기도와 봉사, 친구들의 염려로 그 어려움을 뚫고 이루어진 것이라서 은혜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서울싱잉커플스 연주회는 항상 성가로 문을 엽니다.

아마 ‘오늘의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자’ 는 기도하는 마음들로 시작하는 뜻이겠지요. 나는 주일성수는커녕 매 주일 마다 교회에 빠짐없이 나가지도 못하지만 어쩌다가 예배를 드리면 늘 은혜와 감동을 받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래도 나의 걸음을 여기로 인도하심에 대하여 깊이 감사를 드리는데 오늘 역시 고향에서 어줍지 않은 약초를 수확한답시고 교회를 못 갔는데 여기 와서 예배를 드리고 또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첫 스테이지의 제목인 “오랜 약속은 오늘도” 라는 이름은 성경의 말씀과 그 은혜를 알지 못하면 붙일 수 없는 제목입니다. 이사장님인 박문현 경희대 후배의 믿음의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가사라는 생각이 들어 감명 깊었습니다.

올해엔 자막으로 가사를 볼 수 있어서 아름다운 노랫말 들이 귀에 쏙쏙 들어 와 더 좋았습니다. 특히 올 연주회의 최고 야심작이라고 할 뮤지컬 곡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 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외형 상의 키워드는 뱀과 지팡이인 것 같은데 성서적인 깊은 뜻이 무엇인가를 추측해 봅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 자체가 은혜인데 다른 내용보다는 “나는 말 재주가 없으며, 말더듬이입니다.” 라는 앙살이 나와 좀 비슷한 것 같아 ‘성서는 정말로 고금을 막론하고서 실생활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신기했지요. 연습할 때 제일 공을 들였다더니 이해가 갔습니다.

언젠가도 썼지만 합창단복 감상하기는 매 해 또 하나의 즐거움과 흥미꺼리입니다. 밝은 보라색이 주는 신비감과 단아함을 느끼게 하는 여성 파트의 드레스가 지휘자와 남성 파트가 입은 검정 단복과 짙은 자주색 보타이의 심플함이 잘 어울려서 성가 모음의 오프닝과 썩 잘 맞는 느낌입니다.

“꿈꾸며 노래하며” 스테이지는 친구와 함께 노래하며, 자기의 껍질을 깨고서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을 그리고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성가의 장과 대비하여 인간의 꿈, 친구들의 우정을 간절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첫 곡은 씩씩함을, 두 번 째 곡은 뜻을 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도 옛날에 패닉의 달팽이를 참 좋아했는데, 달팽이의 바다, 거위의 꿈이 결국은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 때 이적을 알아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꽤 대단한 젊은 뮤지션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싱잉커플스의 연주회는 가을과 겨울에 주로 하는 것으로 압니다.

작년엔 KBS 에서 비가 오는 까만 밤의 운치를 담은 날에 연주회를 했는데 올해엔 낙엽이 한창 떨어지는 만추의 남산 자락에서 열렸습니다.

화려함과 번성의 계절인 봄이나 여름이 아니라 마무리와 갈무리의 계절인 이즈음에 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들을 더욱 가깝게 합니다.

가을 노래들 중 김준범 선생님이 작곡하고 이은순 시인이 만들었다는 “가을”은 그야말로 마음을 적시고 파고듭니다.

“돌아오는 길 나직한 속삭임

풀벌레 소리는 귓가에 서성이고

풍성한 들녘엔 당신의 고운 웃음

황금빛 거리가 강물처럼 흐르네

아 가을은 깊어라

아 그대 그리움처럼”

가을이 가지고 있는 공통 언어들, “그리움” “구름” 산너머“ ”그대“ ”기다림“ 등이 엮어지는 가을 서정은 “아아!” 하는 긴 한숨과 탄식, 경탄을 불러 옵니다.

봄과 여름이었다면 “이야!” “와아!” 였을 테지만요.

어쩌면 우리 모두를 닮았습니다.

눈과 귀와 마음이 하나가 되어 뭔가를 실체적으로 그려 내어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가을의 서정은 우리의 정서에 딱 맞습니다.

뭐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쉬는 시간에 로비에서 만난 중동 친구들 모두 얼굴엔 “역시!” “참 좋지?” 하는 기분 좋은 미소들이 걸려 있습니다.

오늘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만 온 것 같다“ 는 희순의 이야기에 “메마른 사람들이 와서 가슴을 적시고 가야 하는 건데......”하면서 모두 웃었지요.

네 번째 스테이지부터는 평상복을 입고 노래하기 때문인지 정기연주회가 주는 약간의 무게감마저 덜어 집니다.

캐쥬얼은 여성보다는 남성단원들이 좀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여성단원들은 전문기능을 가진 멋쟁이 같고, 남성들은 이웃집 아저씨 같아서 아마 그런 듯......

하얀 드레스셔츠와 분홍색 조끼의 종훈이, 흰 자켓과 진녹색 스커트의 여성희 여사의 입장을 보고는 ‘역시 옷을 잘 입는 부부구나’ 하는 부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르르 흘러내리는 황금색 비단이 주는 세련됨을 느끼게 하는 상임반주자의 정식 유니폼도 멋있었지만 위 팔뚝의 까만 나비가 앉아 있는 캐쥬얼 복을 보면서 올해에도 나비의 안녕함을 보고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의원에 있는 나무로 만든 약 2 미터짜리 나비와 서른 마리의 작고 예쁜 나비들이 생각났습니다.

평상복 차림으로 부르는 가요합창은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네...’ 의 요즈음의 감수성이 “그 때 그 추억” 으로 끌고 갔습니다.

역시 이문세도 가을 서정에 잘 맞는 가수인가 봅니다.

재밌던 것은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부르는 창법이었습니다.

“그대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하고 부를 때,

저렇게도 부르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참 재미있어 했습니다.

낮고 느리면서도 꽤나 끈끈하게 느껴졌거든요.

끊어지지 않는 긴 꼬리를 끌고 다니는 듯한......

마지막 스테이지는 우리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노래합니다.

손자손녀들 십 여 명-아, 어쩌면 아들딸도 끼어 있을 듯-이 자유롭게 뛰어 나와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의 추임새를 넣는 것이 참 예뻤습니다.

공들인 편곡을 통하여 3 절 속에 숨겨 있는 모두의 속마음을 좀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이 노래에서 견우직녀의 사랑이야기, 밀양 랩소디로 이어지는 한 편의 뮤지컬은 합창단과 객석을 한 덩어리로 만듭니다.

특히 밀양아리랑은 원곡에서 전통적으로 느끼는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하는 수줍음을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는 씩씩한 바람을 경쾌하게 표현하고, 드디어 만족한 만남을 그린 듯이 다시 부드럽고 은근하게 마무리 하여 아주 새로웠습니다.

조용하고 순수한 사랑을 락 풍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부합창단의 내공을 확고하게 증명시켜 주었으며 -락은 樂이긴 하지만요- 이 연주회의 최종 결론을 맺었지만 뭔가 아쉬웠습니다.

모든 스테이지가 끝나고의 앙콜 곡을 기대하고 감상하는 것도 연주회의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밀양 랩소디를 이 연주회의 “結”로 삼기에는 뭔가 모자라는 듯하다가 두 번째의 앙콜 곡인 “넬라 판타지아”로 비로소 꽉 찬 느낌이었습니다.

남자의 자격에 나왔다는 이것을 나는 첨 듣지만 “結”로 삼기에 정말로 합당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성가는 문을 닫으면서 쪽문까지 걸어 잠그는 인상이 들어서 오히려 뱀발 같기까지 하더군요.

제가 합창단을 몇 년 간 쭉 지켜보니 노안은 남자에게 더 빨리 오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남성단원들이 안경을 더 많이 끼고 계시더군요.

그리고 여성단원들의 머리 모양들을 보고서는 일반 사람들보다 파마 짧은 머리보다 긴 생머리가 많은 것을 보고는 노래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더 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악보를 보는 숫자가 좀 많아진 것을 보고는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생각하게 됨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듯합니다.

생명이 늘 제자리에만 있을 수 없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생물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아 저절로 겸허해지는 것도 은혜이겠지요.

올해에도 특별한 감동과 편안함을 주신 서울싱잉커플즈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 애 많이 쓰셨습니다.

작년에 쿠키를 못 가져 와서 늘 마음이 걸려서 올해엔 쵸코릿과 빵을 더 가져왔습니다만 맛있게들 드셨는지요?

<201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