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에서 고비 사막 까지의 크로스 컨츄리

기본카테고리 2005. 4. 19. 18:31

적당히 딴딴해진 허벅다리,

튕길 듯한 탄력있는 어깨,한껏 취한 휴식과
목표의식에 의해 단련된 굳고 날카로운 눈,

수 없는 훈련과 단전호흡으로 뭉쳐진 딱딱한 아랫 배.
이제 준비는 끝났다.

우주의 시계를 따라 그는 가기로 했다.
해가 더 빨리 떠서가 아니다.
메마른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이어서가 아니다.
더 푸른 풀이 있어서도 아니고,

먹을 것이 더 많아서가 아니다.
그가 나는 것이 운명이듯이 거기가 존재하는 것은 운명이다.
그래서 운명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날아야만 한다.

3월 30일 .......
바람은 겨울보내기를 아쉬워 하는 꽃샘 바람.

제법 강한 북서풍에 가끔 북동풍 마저 들어오는 측풍이다.
이 정도면 임진강 끝의 강화 앞 바다의 파도 높이는 2-3미터 정도?
그는 드디어 배에 잔뜩 힘을 주었다가 빼면서 철원의 땅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볼로 휘몰아 들어오는 찬 바람,

온몸의 털이 다 솟구치는 느낌.
쭉 뻗은 양 다리의 가벼움은 실 오라기 보다 가볍다.
눈썹은 휘날려도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이 땅이 갈라 지기 전 부터 제일 기름지고 찰진 쌀과 콩과 옥수수를 생산하던
너른 땅이 조금씩 커지고,그 땅의 것들이 작아지기 시작한다.

아!
이제 날았다! 이제 뻗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귓가를 스치는 마지막 겨울 바람,

그는 이것과 경쟁하듯 속도를 점점 높인다.
임진강을 건너기도 하고,종주하기도 하고,
백두대간의 온 산을 굽어 보며 릿지를 타기도 하고,

골짜기를 횡단하기도 하며

어느새 맞은 황해도 위를 지난다.
온갖 재주를 다 시험해 가면 하나도 지루하지 않는 비행이다.
하늘 꼭대기로 솟아 오르다 다시 땅에 곤두박질 치듯이 뚝 떨어지고,
회오리에 휩쓸려 뱅글뱅글 돌다 다시 중심 잡아 수평을 회복해가며 비행한다.

하늘을 보라!
도대체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가?
imf 는 뭐고,

정치는 뭐고,

싸움은 무어냐?
무아 속에서 인간 이외의 것을 벗 삼아 날으니 바로 한반도 크로스컨트리다.
매일 400킬로 씩 날아 열 이틀 걸린 그랜드 크로스컨트리 이다.

저기가 어딘가?
버얼건 땅,

황금 빛깔을 보이는 저곳이 어디인가?
그 옛날 고구려라는 거대한 나라가 지배하고

말 달릴 때 먼지 자욱하던

그 땅의
한 쪽.
고비사막 아닌가?
얼마나 이 사막을 달려 보려 했던가!

우리의 아버지,어머니가 꿈에서도 못 잊어하던 모래의 세계.
그의 기억의 시작인 그 모래 땅.
운명을 따라 그도 역시 오고 만 것이다.

여기 까지 오는 동안 그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무엇 하나라도 부정타면 이 대장정은 실패라는 얘기를 골 백번도 더 들었다.
오직 경건과 기도로써 채운 1500km의 열이틀.
다른 팀은 아흐레 간 2000km를 날았다니 참 대단하다.

하기는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제 기분좋은 피로가 온몸을 감싼다.
이 성취의 뿌듯함이여!

그는 해냈다!

그 역시 외친다.

여기는 "몽골 동남부 산악지대인 할하호루! 한반도 크로스컨트리 성공! 송신!"

< 99년 5월5일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철원에서 살던 어느 독수리가 몽골 까지 씩씩하게 날았 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