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

기본카테고리 2006. 2. 1. 11:23

<강육향 - 중국노래 - 존재의이유(김종환) >

여하한 것이라도 존재하는 것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반드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

악이 존재함으로서 선이 돋보이고

그름이 있어 옳음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는가?

2006.2.1

깨달음이란 말

기본카테고리 2006. 2. 1. 11:19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버린다"는 뜻이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것이다.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과정이다.

2006.2.1>

한국 보수교회의 성역, 색깔론 <펌>

기본카테고리 2006. 1. 25. 18:33
수백만 신도를 거느린 한국 보수교회의 편협성은 사회 민주화를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이다.
교회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성역'이라 하는데, 한국 보수교회는 도리어 색깔론의 '성역'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 보수적 개신교회들은 아주 정치의식적이다. 대체 설교시간 때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때가 없다.

차라리 교회 간판을 걷어치우고, 미국의 기독교 극단주의자들처럼 솔직하게 극우단체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 '교회(敎會)'라는

좋은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방법일 듯 싶다.

동네 골목마다 들어선 이들 교회들은 '사상적 골목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바퀴달린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 믿는자라면 모두 반(反) 사학법 투쟁에 함께하자!'

이들 교회들은 정치선동과 동원에 몹시 능수능란하다.

이들의 하나님은 한나라당의 하나님이며, 맥아더의 하나님이며, 부시의 하나님이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큰 형님' 미국을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로 상상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들에게는 예수 믿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그렇지 않은 사회는 나쁜 사회일 뿐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기독교를 안 믿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문제가 아니다.

수십만 사상자와 이재민들을 앞에 두고, 공공연히 쓰나미같은 재앙은 동남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은 때문이라 이야기한다.

사학법이나 살인미군처벌 문제에 대해서는, 은연중에 '친북 빨갱이들이 하나님에 대적하려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겁을 준다.

공포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수천 수만의 신도들이 이들 '골목대장'을 좇아 각종 정치집회에 몰려다니면서 예수를 외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 보수 교회들, 공포심을 조장하는 '정치적 색맹'들은 몹시 위험한 존재이다.

이들에게는 민주주의의 '무지개'를 이해할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기본적으로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그 일곱 색 하나하나에는 모두 수 만가지의 서로 다른 색깔들이 내재해 있다.

그렇게 다양한 차이점들을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지개는 존재할 수 없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좌파/우파, 친북/친미 만이 존재할 뿐이다.

신자/불신자, 천사/악마, 천국/지옥 이라는 이분법이 이들의 정신세계를 온통 지배하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학법을 개정하자는 이들을 어떻게 '친북좌파'라 몰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이들이, 종교라는 허울좋은 방패 속에 숨어 이분법적 증오라는 독화살을 쏘아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회라고 해서 민주주의의 무풍지대가 될 수는 없다.

신을 운운하며, 민주주의의 '무지개'를 온통 검은 색으로 칠하려 하는 '정치적 색맹'들의 사회 보수화 시도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

<2006.1.25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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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목사들의 바퀴달린 십자가 <펌>

기본카테고리 2006. 1. 25. 12:36
'예수님의 십자가'가 쇼로 보이나?

류황희(reformanda) [조회수 : 1051]

영락교회에 목사들이 모여서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모형 십자가를 끌고 행진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피가 거꾸로 솟아 올랐다.

당신들 정말 기독교 목사 맞는가? 나랑 같은 기독교 목사가 맞는가 말이다. 내가 섬기는 주님이 당신들이 섬기는 주님과 같은 주님 맞는가? 내가 왕으로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들의 왕이 맞는가 말이다.

당신들이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끌고 가기 퍼포먼스’를 하신 것 같은가? 예수님께서 “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셨기에 예수님 흉내를 내기 위해서 모형 십자가에 바퀴를 달아서 끌고 다닌 것인가? 그런 퍼포먼스를 전문으로 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신들은 분명 내가 섬기는 예수님과는 다른 저기 미국 어딘가에서 활동한 어떤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내가 섬기는 예수님께서는 결코 퍼포먼스를 하지 않으셨다. 진리를 위해서 정말 죽으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쇼가 아니었다.

당시의 종교 기득권층(사두개인과 바리새인)에 반대해서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이것에 대해서 절대 타협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적극적인 것은 정치 권력가 빌라도가 아니었다. 빌라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놓아 주려고 애를 썼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당시 유대의 종교 기득권층(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종교 기득권층에 대항하여 진리의 길을 가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고, 이 후에 그의 제자들이자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도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과 고통에 맞서 나갔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하시면서 세상 국가의 정당한 통치행위에 대해서 인정하셨고, 사도바울도 국가의 선을 장려하고 악을 막는 순기능으로 인해서 국가 권력에 순응하도록 요구하셨다.

이것을 모르지 않을 진데, 어찌 당신들은 모형 십자가로 쇼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한 죽음의 십자가에 먹칠을 하는가! 당장 그 더러운 짓거리를 멈추고, 거짓의 십자가를 내려 놓아라.

진정 죽음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을 때는 살인마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였다. 그 때는 “전두환 장군님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하면서 조찬 기도회를 하더니, 이제 정권이 자신들을 죽일 힘도, 의지도 없는 시대가 도래 하자 십자가를 앞세워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그 추한 이빨을 드러낸단 말인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뭐라고 하겠는가? 순교의 각오를 하고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봐줄 것 같은가? 거짓되고 야비한 기회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이 보이지 않는가? 제발 양심을 회복하고, 안약을 사서 바르길 바란다.

학교 경영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세상 국가의 순기능에 대해서 성경의 요구대로 순종해야 할 때이지 모형 십자가 끌고 다니면서 세상 국가를 위협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세속주의에 편승해온 자신들의 옷을 찢으면서 회개해야 할 때이다.

나는 바벨론으로 순순히 끌려가라고 예언했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라. 그동안 많은 잘못이 있었다. 바벨론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의 날을 주실 때까지 거기서 회개의 기도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006.1.22 일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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