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싱잉커플스 32회 정기연주회 후기-어느 분주한 가을날의 음악회

기본카테고리 2011. 11. 1. 10:41

매 해 가을이면 내게 배달되는 초대장이 있는데 그게 오면 항상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떠오르지요.

특히 올해의 제 32 회 서울싱잉커플스 정기연주회는 예년보다 더 깊은 가을 내음을 주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이 날은 시제 날인데다가 한 분 밖에 안 계신 고모부님이 영면하셔서 남은 사람과 가 버린 사람의 거리가 닿을 수 없게 된 날이어서 그런지 이번 연주회는 이 노랫말이 새삼 더 가까이 다가왔지요.

더욱이 오늘의 무대 색조까지 노래서 은행잎처럼 가라앉는 듯이 편안했습니다.

병원을 오픈하여 45 명을 책임져야 하는 요즈음의 내 심정과 상황을 극복할 힘을 주는 오프닝이 마음에 와 닿아 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평화와 믿음, 그리고 기쁨과 사랑’의 물결로 저의 가슴은 잔잔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년처럼 합창단을 찬찬히 봅니다. 친구 종훈과 그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요.

종훈 부부는 늘 그 자리입니다. 맨 뒷줄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플로어 무대 맨 오른쪽......

내가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늘 그 자리라는 것이 참 편하고 마음 놓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자기 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한 겨울에 아무 것도 없이 빈자리로 보였던 어느 곳이 새 봄이 되면 그에 딱 맞는 임자가 자리하는 것처럼.

두 번째 스테이지는 여성합창단의 가을 노래 모음으로 꾸몄는데,

초생달 뜬 오늘 가을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노래들입니다.

귀에 익은 비발디의 경쾌한 ‘가을’로 들어가 동요 ‘가을밤’이 고향을 그리는 동심을 엿보게 합니다. 가곡 산들바람을 들을 때엔 참으로 예쁜 바람, 예쁜 달, 예쁜 가을을 느끼게 하더니 여성 합창 사이에 남성 단원이 부르는 ‘낙엽따라 가 버린 사랑’과 가을편지는 결실의 계절이면서도 괜히 허해지는, 아니 결실의 결과로 허해진 어디 한켠을 돌아보게 하는 ‘숙살’의 가을을 보게 하다가 봄을 건너보는 가을 3 악장으로 끝을 맺은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스테이지 남성합창은 맑고 가늘면서도 심장을 깊숙이 파고드는 힘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의 전주가 참 좋았습니다. 거기에 맞추어 묵직하게 시작하는 남성합창단의 ‘한계령’은 내가 설악산 서북주능을 지날 때마다 고생한 생각을 나게 했지요. 장수대와 대승령, 그리고 귀떼기청봉 오르는 너덜지대는 내 심장을 두 번이나 벅차게 만들었거든요.

한계령 다음에 이어지는 곡, ‘그대 곁으로’의 곡조와 노랫말, 그리고 창법이 너무 고요하여 저절로 울적한 마음이 들었는데 팜플렛을 보니

“강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곳 언덕 위에 날 묻어 주

들새 노래 나 즐기면서 쉬려네

한 번 다시 듣지 못할 그대 음성 간직하며

강바람이 솔솔 부는 그 언덕 위에 쉬려네.....”

자기 무덤 자리를 유언하는 가사였네요.

하하하~ 북극의 농담이었습니다.

이 곡의 느낌을 잊게 만드는 노래가 바로 ‘강원도 아리랑’입니다.

이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들 중에서 내가 제일 감탄하는 것이 민요인데,

올해에도 편곡과 싱잉커플스 창법의 개가를 또 듣고 보게 되어서 즐겁습니다.

제가 특별히 기대하게 되는 스테이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게스트 연주입니다.

올해엔 타악 연주였는데 언젠가 수준 높은 비보이들의 힙합 춤에 빠진 적이 있던 기억이 납니다. 이 합창단의 파격의 절묘함을 볼 수 있어서 저는 이 스테이지를 좋아합니다. 5인조 그룹의 백색 드레스코드가 요란함을 덜어준 듯 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특히 이 스테이지에서 내가 감탄한 것은 관객들이 적 황 청의 삼색 깃발에 맞춰 박수를 쳐가면서 ‘헝가리 춤곡 5 번’을 연주한 것은 정말로 놀랄만했습니다.

서로 잘 모르는 관객들이 어찌 저렇게 바로 즉석에서 리드에 맞춰 박자를 잘 맞추든지요? 이 연주회의 관객들의 음악적 소양과 경지를 새삼 확인한 기회였습니다.

왁짜지껄의 재미를 자신도 모르게 씻어 보내고 만 것이 ‘집시의 노래’ 스테이지입니다. 이 스테이지부터 자유복 차림으로 노래하는데 문자 그대로 ‘자유로운 어울림’입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연주하는 ‘집시바이올린’은 관객의 감성의 틈을 깊고 확실하게 파고 들어 타악 연주 후의 별도의 탈출 계기 마련이 필요 없는 몰입을 이끌었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거기에 싣는 사람의 소리와 합창, 허밍이 아주 좋았습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 평소에 잊고 있다가도 갑자기 듣게 되어도 좋은 노래......

이런 노래들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맛이 나는 것을 확인하고선 항상 놀랍니다. 라팔로마 베사메무쵸......

네 아빠와 네 딸들이 함께 부르는 ‘검은 눈동자’ 를 만나고서야 올해의 합창의 대주제는 “가족” 임을 알았지요.

아니면 마시구요~

웃음과 “우리”를 대단원으로 구성한 것도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이 합창단의 공연 기획과 연출은 늘 흥미롭고 경이로움을 갖게 합니다.

컴맹 엄마, 거시기 머시기......거시기유전은 가사도 꽤 재미있어 보였는데 귀로 전달이 잘 안 되어 좀 아쉬웠습니다. 자막처리라도 있었으면 했지요.

순서가 모두 끝나면 일부 관객들은-저도 포함하여- 앙콜을 몇 곡까지 외쳐야 하는지 눈치를 보고 조심도 하였는데 올해는 그 고민을 지휘자가 풀어 주셨습니다.

단원들은 더 노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근엄한 관객들이 쭈뼛거리면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눈치 없이 소리를 지르면 그것도 호응이 없으면 얼마나 쑥스럽겠습니까? 저는 언젠가 이 연주회에서 앙콜을 외치다가 목이 갑자기 쉰 적도 있었거든요.

이래저래 더욱 더 편하고 즐거운 연주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즐겁게, 신나게 춤을 추며, 웃으면서 기쁘게 살아가자. 신나게 살아가자. 우리들은 그렇게.”

정진걸 이윤형 조남일 기백석 친구들과 같이 해서 참 행복했습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201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