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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년 여 만의 공룡능선과 반 토막 서북주능-"고통 즐기기 등산기"
[설악은 악산들의 연장이 아니다]
설악은 설악이다.
그저 좀 힘든 악산들의 연장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운악산, 감악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암봉이 멋있고 산 맛이 나는 산들이 어디 한 둘이랴?
올라갔다가 내려 오면 대 여섯 시간 걸리는 산들이 또 한 둘이랴?
아주 어거지로 산행을 했다.
이런 무리한 산행이 또 언제 있었을까?
20 여 년도 지난 한참 전에 명지산에 막걸리 먹고 올라갔다가 조난당했다가 구조된 것 말고는 정말로 어거지 산행이었다.
대개 공룡능선 산행은 대개 다음과 같이 무려 10 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비선대 - 공룡능선 - 대청봉(11km, 10시간 40분) |
비선대 -( 3:10)- 마등령 -( 2:20)- 공룡능선1275봉 -( 3:00)- 희운각 -( 1:30)- 소청봉 -( 0:40)- 대청봉 |
새벽에 일행들과 만나서 고속도로를 달려 와 소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 반 정도..
7시 50분 쯤 출발할 때엔 그야말로 룰루랄라 시작이었다.
1 박 2 일의 일정으로 잡아 마등령 공룡을 거쳐 귀떼기청봉 서북주능 대승령으로 하여 12 선녀탕까지 잡았다.
애초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좀 빨리 걸으면 삼거리나 귀떼기 지나서 비박을 하고 편안하고 여유있게 서북주능을 거쳐 십이탕으로 무난하게 내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한 마디로 크나큰 착오였으며 바로 어거지 산행의 시작이다.
[계단의 천국- 설악]
금강굴 옆을 거쳐 마등령 오르는 길은 안전하기 짝이없는 길이다.
그러나 안전하고 안정적일 뿐, 다리 특히 무릎에 무리가 가는 건 어마어마하다.
내가 제일 가벼운 짐을 졌지만 어깨에 걸리는 배낭의 무게가 온 어깨를 파고드는 것 같다.
웬만한 오르막길은나무계단에 폐타이어를 잘라 붙였지만 여전히 무릎에 무리를 심하게 주고,
돌계단으로 만들어 놓아 모두 다 깔딱고개가 되어 버렸다.
나의오르막 오르기의 주법은 "미리 쉬기" 와 "여러번 자주 쉬면서 출발을 빨리 하기" 인데,
수술을 한후로는 숨이 차서 힘든 대신 다리의 피로는 더 느껴진다.
"힘드는 재미", "지루한 재미"를 씹고 되씹어 가면서 마등령에 도착하니 오후 1 시가넘었다.
소공원에서 다섯 시간 여 걸린 셈이니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등령을 치고 오를 때 무릎에 무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려 파스를 붙이고 무릎보호대를 찼다.
서울에서 일 주일 전엔 왼쪽 무릎이 아파서 약침을 맞은 덕에 왼쪽 무릎은 멀쩡한 대신 오른쪽이 조금 무리가 느껴져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마등령 오르는 길에 만난 어느 고사목. 그 옆에 어린 나무의 파아란 잎들이 꼭 고사목에 새싹이 나서 자란 것 같다>
마등령 정상에 조금 내려와 독수리 고사목 부근 마당에서 누룽지를 끓여먹고 두 시 가까이에 공룡능선을 밟기 시작하다.
한참을 쉬었더니 무릎은 그런대로 견딜만하여 나의 주법대로 걸어 내려 가는데, 오르막 내리막 계단들이 정말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어 향기가 먼저 올라 갔다가 자신의 배낭을 부려 놓고 다시 와 나의 배낭을 지고 올라 가기도 하였다.
왼쪽 무릎은 아프지 않아 왼쪽 무릎으로 버티며 오른쪽 다리를 뻐쩡다리로 끌거나 왼쪽 다리를 떼어 디딘 후에 오른쪽 다리를 내려 놓고는 다시 왼쪽 다리부터 출발하는 식으로 걸었지만 한계가금방 왔다.
[멋진 1275 봉]
나한봉 1275 봉 칠형제봉 범봉 신선대를 보는 맛이나 그 부근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은 너무나 뛰어났지만,
출발하기 위하여 걸음을 떼면 온 신경은 무릎으로 쏠렸다.
특히 1275 봉의 웅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웅장해 보인다.
그러다가 로프나 계단이 있는 내리막에서 좀 쉽게 내려 가는 방법을 찾아 냈으니 바로 뒤로 내려가면서 무릎을 굽히지 않는 뻗쩡다리로 내려가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왼쪽 무릎마저 아프기 시작하였다.
산행이 힘들면 웬 봉우리가 그렇게 많고,오르막은 왜 그렇게 긴가?
도대체 끝은 왜 이렇게 안 나는가?
끝은 있기나 한 것인가?
이 종종걸음, 그것도 느릿느릿한 종종걸음으로 언제 희운각에 도착할 것이며 내일의 등산은 어떻게 수행할까?
왼쪽 걸음 한 걸음.
오른쪽 걸음 한 걸음 마다 무릎이 시끈거리고 무릎 바깥쪽이 당기며 힘을 줄 수가 없어 시끈거릴 때마다 "앗!" 하는 비명이 저절로 터진다.
신선대까지만 가도 희운각은 금방이라는데 도대체 신선대는 언제나 나오나...
이름도 예쁜 무너미고개는 어디에 있나?
물 마시느라고, 과일 먹느라고, 쵸코렛 과자 먹느라고....
그리고다리를 편히 하느라고 쉬는 시간을 더욱 자주 가지다 보니 날이 어둡기 시작하여 헤드랜턴을 켰다.
신선대를 한참 지났지만 희운각이아직도 먼 것 같아 랜턴을 켰는데 접촉불량인지라 주우다풍의 일자 랜턴으로 바꿔서 길을 줄였다.
그저 가다 보면 언젠가 도달하려니 하는 느긋함으로 가자고 다짐 다짐을 한다.
"산은 힘드니까 가는 거야"
아파도 시끈거려도 힘이 빠져도 계속 다짐한다.
이 어둡고 먼 길이 이기나, 나의 의지가 이기나 보자.
아플 때에는 저절로 이가 악물어진다.
[결국 내게 온 희운각]
어쨋거나 다리가 옮겨 가서 희운각에 도달한 건지, 희운각이 내게로다가왔는지 모르지만 희운각보이기 시작하였다.
향기가 부지런히 먼저 내려 가 저녁 준비를 위해 물까지 길어다 놓았다.
이 때가 밤 9 시가 다 된 것 같다.
산장 사무소 직원이 다리를 많이 걱정한다.
무릎이 계속 아파서 굽히기가 많이힘들었지만 계곡에 가서 찬물 찜질을 한참 했다.
비박을 하려 했더니 국립공원관리 직원이 대피소에 세 자리 여유가 남았다고 하여 15000 원을 주고 세 자리를 샀다.
희운각 대피소는 아직 수리가 끝나지 않아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등산객을 위하여 임시로라도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어 다행이다.
비몽사몽 하는 동안에 그런대로 새벽이 와서 일찍 등산하는 사람들이 설쳐서 잠을 더 잘 수가 없어 일어나서 침 맞고 파스를 붙였다.
주우다풍님에게서 압박붕대를 얻어 칭칭 감아 보았지만, 피가 안 통하도록 세게 묶으니 너무 저려서 바로 풀었다.
[사람과 친한 설악 다람쥐]
아침 밥을 먹는데 다람쥐가 모여 들어서 과자를 주니 제법 가까이 와서 먹는다.
다리 위에서도 먹고, 땅에서도 줏어서 볼록한 볼을 아주 빠르게 움직여 먹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생명이 있는 모두가 다 적응하게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가까워 지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에 적응을 하고, 도토리 등 보다 단 맛에 길들여지고...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소청을 향하여 희운각을 출발하다.
아침에 다풍님에게 진통제를 얻어 먹은 덕인지 무릎이 좀 덜 아픈 듯하여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좀 걸어 보니 진통제 덕이 아니라 평지일 때 좀 편한 것, 그리고 많이 쉰 덕에 좀 편한 때문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마의 돌계단을 올라 보니, 그리고 내리막을 걸어 보니 왼쪽 무릎 아픈 것이 어제 보다 더 심하다.
어찌 이렇게 걸음 걸음 마다 아플 수 있는가?
[더 위력이 막강해진 공포의 깔딱고개]
소청을 오르는 깔딱은 향기 말처럼 전보다 결코 쉬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돌계단이 더 가파르고 불편하여 이를 더 악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주법대로 먼저 출발하여 홀로 고통등산을 수행하였다.
다른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왼쪽이 더 아프구나, 오른쪽이 더 아프구나. 시끈거리며 힘이 빠지는 것이 이렇게 심한데 무사히 하산을 할 수는 있을까?
걸음 떼는 방식을 바깥 쪽에서 안으로 모으며 걷기도 해 보고, 안에서 바깥으로 벌리며 걷기도 해 본다.
왼발을 먼저 들어 오른발을 끌어 올리는 방식, 그 반대의 방식, 첫째 계단, 두번째 계단씩 힘들어 올라가는 방식,
게 걸음으로 걷는 방식, 지그재그로 걷는 방식, 다리를 굽히지 않고 뻗쩡다리로 걷는 방식......
아예 무릎은 구부린 채로 걷는 방식....
마주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이따금 하였지만 자신있게, 안 아픈 것처럼 웃으며 인사하며 올라갔다.
드디어 공포의 깔딱도 끝나고 소청대피소와 중청의 갈림길에 올랐지만 다리는 여전히 아프고 힘들어서 좋은 줄을 모르겠다.
동쪽을 향해서 걷는 것이어서 햇빛이 계속 쬐어 스포츠 타올을 머리로 부터 목까지 내려 햇빛을 가리고 걷는다.
중청으로 올라가는 길에 일행에게 나는 새디스트가 되었다, 고통을 쾌락으로 삼고 있다. 나는 변태다 하면서...
중청산장이 가까이 보이는데도 더욱 짧아지는 속도가 느리다.
<2008.8.15.
<남택상 - 조두남 곡 -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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