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여행

기본카테고리 2006. 12. 20. 10:24

지난 일요일에 춘천을 갔다 왔다.

기선이 화룡이 부부와 우리 부부, 이렇게 세 쌍이서...

며칠 전 부터 청평사를 가 보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따른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철도공사 홈피를 보고 청량리에서오전 11: 35 분 출발, 남춘천에서 저녁 8: 05 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예매하였다.

집에서 일찍 나섰으나 전철 갈아타기를 잘못하여 아슬아슬하게 청량리역에 도착한 탓에 예약은 취소되어 여섯명이 모두 찢어지는 좌석표를 갖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1,2,3 호차에 제각기 흐트러지게 되었으나 내가 숫기를 발휘하여 한 쌍씩 짝을 지어 앉혀 주었고 가평에서 부터는 결국 한 곳으로 몰아 앉게 되었다.

확실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아직 순진하고 말을 잘 듣는다. 어른들이 뭔가 부탁을 하면 잘 따르는데 그 덕을 본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다 눈 내린 춘천을 즐기러 가는 사람들이었는지 웬지 들떠 보이고 기대에 찬 표정들이다.

우리도 오랜만의 열차 여행들이고 창 밖에는 어제 내린 눈이 쌓여 있고, 간혹 가다 눈이 펄펄 내리기도 한다.

북한강의 구비가 보일 때마다 산과 들은 모두의 탄성을 자아낸다.

"정말 오랜만이예요. 참 좋아요" 라는 감탄이 계속 터져 나온다.

여자들을 좀 더 자주 데리고 나오거나, 자주 나가게끔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새삼든다.

이제 나이가 몇인데......

아내가 여자는 나이 먹으면 집에서 자꾸 나가려 하고, 남자는 자꾸 들어 가려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럴싸하다.

지윤이 엄마는 아직도 꿈 많은 소녀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어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한다.

그리고 어디를 놀러 가면 먹을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라서 같이 가는 사람은 늘 덕을 톡톡히 본다.

열차에서는 찐 계란을 먹는 것이 어릴 때 부터의 추억이고 소풍 갈 때 이것저것 주섬주섬 끊임없이 먹는 것처럼 우리의 춘천열차 여행은 먹거리가 풍부한 여행이다.

찐 계란 배 감 과자 빵 커피 코코아 홍차......등등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팩 소주까지 챙겨 와서 여섯 명이서 아주 달게 마셨다.

석민이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올 수를 맞았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하였다고 하는데, 감성도 깊어 노래도 잘하고 참 순한 성격을 가졌다. 지난 번 캄보디아 여행에서 사진사 역할을 하느라고 꽤나 힘들었다고 한다. 인숙이와 더불어 포상휴가의 주대상이었다. 이제 아이들이 커서 어머니를 맡기고 나올 수 있는 정도가 되었는데 이번 춘천 열차 여행에서 또 깊은 재미를 맛보기를 기대해 본다.

수다와 감상과 감탄에 젖어 열차여행 분위기, 창 너머로 지나가는춘천 가는 길 풍경들을 만끽한다.

복선 공사로 인해 남춘천이 종착역인데, 어느새 도착하였는지 모를 지경으로 시간은 빨리 갔다.

청량리에서의 쓴 경험을 거울 삼아 예약한 상경 표를 아예 끊었다. 나는 예매를 하였기에 좌석이 있었지, 창구에는 이미 "좌석 없음" "입석" 만 알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알아 온 소양댐 가는 버스 시간 1시 55 분을 믿고서 좀 시간을 끌었더니 역 앞에 있던 버스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류장 앞의 포장마차에서 라면 등 간식을 점심으로 먹고서 한 시간 후에 12-1 버스에 올랐다.

춘천의 버스는 멀미가 안 난다. 운전을 곱게 해서 그러는지 신호등이나 회전 길이 적어서 그런지 차 안에서 조금 잤다.

시내버스에서 잠을 잘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세 시 쯤 소양댐에 도착해서 돌아가는 버스 시간과 청평사 가는 시간을 보니 남춘천 가는 12-1은 5시 반이 막차, 후평리 가는 건 여덟시 까지 있는 것 같고, 청평사 가는 배 시간은 네시, 나오는 시간은 4시 반이 막배다.

청평사는 오봉산 가는 길에 한 번 들렸고, 아내와도 한 번 갔었으니 미련을 두지 않고 선착장에 가니 양구까지 왕복하는 자기부양 쾌속선이 있다. 어른이 왕복 1 만원이라 한다.

내가 전에 양구에서 춘천 갈 때 타 보고 싶었던 물 길인데, 드디어 소원 풀이를 하게 되었다. 정말로 꿈은 이루어지나 보다.

좋은 꿈을 더 많이 꾸어야겠다.

선착장엔 양구 물길 유람선으로 "추억 만들기" 를 하라는 간판도 보인다.

이 배는 다른 철에는 주민들의 왕래 수단 구실을 조금 하였는지 몰라도대개는 유람선의 기능을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물길이 아름답다. 소양댐을 조성하면서 잠긴 마을들 이야기를 배 안의 방송 멘트로 듣고, 잠긴 양 옆의 산이 참 예쁘다.

눈으로 덮인 산과 나무들, 그냥 느껴지기만 하는 물과 날씨가 주는 추위가 그저 정겹기만 하다.

쾌속으로 스쳐 지나가는산 능선들은 야트막한데, 저 밑으로 100 여 미터나잠겼다고 생각하니 좀 끔찍한 느낌이다.

30 분이 못되어서 양구선착장에 도착하여10 여분 쉬었다가 다시 내려 왔다.

내려오는 경치는 해 지는 방향이라서 지는 해를 잠깐 잠깐이라도 볼 수 있었다.

춘천과 양구 수로 여행을 우연찮게 해 치운 것이 너무나 신기하다.

여름이나 단풍 든 가을에 수면에 비친 산 자락들도 보고 싶다.

닭갈비 식당은 명동에 몰려 있다고 하여 명동 골목을 찾아가니 정말로 닭갈비 막국수 촌이다.

꼭 안동 찜닭 골목과 흡사하지만 안동보다는 훨씬 화려하고 크다.

같이 몰려야 장사가 더 잘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여기도 되는 데는 아주 사람이 많고 한산한 곳은 또 참 한산하여 골목 끝까지 갔다가 젤 사람 많은 곳을 찾아서 들어갔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어디가 맛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사람 많은 곳, 자가용 많이 주차된 곳이 맛있다는 것이 상식아닌가?

오십세주를 마시며 닭갈비와 막국수의 맛을 즐겼다.

이 집 음식은 짜지 않고, 너무 맵지 않아서 먹기가 편하다. 짜지 않은 채 맛있는 집이 드문데 그래서 손님이 많이 몰리는 것 같다. 특히 이렇게 맛있는 막국수는 처음이다. 사리 하나를 더 시켜서 국물까지 즐겼다.

텁텁한 달착지근함과 시원함과 깨끗함을 느끼게 하는 맛이다.

그 유명한 춘천 닭갈비는 배추와 가래떡 고구마가 많아 닭고기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지만, 비벼서 익은 것을 보니 그렇지도 않다.

아내는 이런 맵고 짠 음식에서 양배추와 야채를 참 좋아하는데, 나도 그 식성을 닮으려고 하는 중이라서 양배추를 많이 먹었다. 고구마가 익으면, 닭고기가 익은 것이라고 서빙 직원이 알으켜 줘서 먹기 시작할 시간을 정확히 알아서 더 일찍 먹거나 더 늦게 먹게 되지 않아서 맛있었다.

밥 한공기를 비벼 눌려서 빡빡 긁어 먹는 고소한 맛도 그만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맛있는 식사를 가볍게 마무리하여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맛의 여운을 더 즐기는 것 같다. 특히 짜고 매운 음식을 먹고 나서는 더 그렇다. 아구찜 감자탕 꽃게탕 해물탕 닭도리탕등.....

오십세주의 맛이 좀 시큼하였다.

술이 식초가 된 것은 아닐텐데 왜 그럴까? 전에 느꼈던 것처럼, 그래서 백세주를 더 좋아 하지만, 백세주는 정말로 파는 곳마다 맛이 다른 것인가? 입과 코에서 느껴지는 맛이 어디서는 약간 탄 냄새를 풍기고, 어디서는 달고, 어디서는 새콤하였는데 발효 상태가 좀 다양한 것 아닌가 싶다. 양주 로얄살류트의 냄새가 바로 백세주와 닮았다고 하여 영신이 아빠 부부의 집에서 한 병 이상을 비웠다가 고생한 것이 생각났다. 그날 난 아내를 업고 집에 가야 했다.

하여튼 오늘 마시는 오십세주에서는 음식이 약간 쉰 냄새가 났지만, 다들 잘 마셨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보니 박근혜의 사인이 문에 붙어 있었고, 이름깨나 많이 날리는 사람의 이름들이 붙어 있는데 기억이 별로 안난다.

길에서 대봉시를 몇 개 사서 열차에 탔는데, 감이 너무나 물러서 서로 눌린 탓에 터져서 바구니에 물이 흥건하다.

하나를 무식한 방법으로 먹고 나니 배가 벙벙하게 차 오른다. 홍시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다.

그 먹는 모양을 보고 평시의 이미지가 깨진듯이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감탄해 한다.감탄인지 실망인지.....

내려 올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나와 아내 계수씨들이 좌석 두개를 마주 보며 앉고 기선이와 화룡이가 나란히 앉아 간다.

화룡이 계수씨가 홍익회원에게서 뜨거운 물을 얻어 내가 말레이지아에서 사 온 홍차인 보를우려 준다.

춘천 열차에서 보차를 마시는 분위기란......

잠을 좀 자려고 술을 마셨지만, 그 좋은 분위기에 젖어 잠을 하나도 못 잤다.

청량리에 오니 10 시......

그동안 그렇게 동경하던 춘천 열차 여행을 다녀 온 것이다.

탈 것이 편하고 빠르대도 이동 자체가 피로를 주는 것 같다. 공간 이동 자체가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매 번 느낀다.

추억과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한 춘천 여행길이었다.

<2006.12.21>

<김현식 - 춘천 가는 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