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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삼청공원 눈 속 산책
12월 16일은 행사가 두 개 겹쳤다.
백단학회의 밤과요새 내가 유일하게 공적으로 맡고 있는 기관의이사회이다.
이사회를 일찍 끝내려 하였으나 논의 자체가 진지하게 길어져 10 시 반 정도 되어 끝난 후
월드팡팡에 오니 11 시가 다 되었다.
선배님들은 다 가고, 내 밑의 후배들만 남아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마치고 나서 나가니 눈이 펄펄 날린다.
차에도 눈이 많이 쌓여 뒷창 유리에서 눈을 쓸어내려야 했다.
눈을 보면 아직도 그냥 설레이고 걷고 싶어지며 감상에 젖어 들고 싶어지는데다 아내와 함께 펑펑 쏟아지는 서울 도심 길을가니 저절로 기분이좋아진다.
아내는 술을 많이 마신 기분까지 곁들여 있어 나의 기분에 편승되어눈 오는 김에 삼청공원 가자고 하니까, 한마디로 오우케이다.
서울 길도눈이 많이 내릴 때엔 운치가 더욱 깊어진다.
서울 가로수는 이제 풀라타너스가 좀 줄고 은행나무가 많아졌다.
길 가의 은행나무 가지에 쌓인 눈들과 간혹 보이는 축축 늘어지고 가지가 넓게 퍼진 침엽수의 눈들이 참 예쁘다.
어떤 사물이 예쁘고 좋을 때 어떻게 예쁜지, 얼마나 좋은지를 표현하려 해도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은행나무 가로수, 히말라야시다 나무에 덮인 눈이 어떻게 예쁜지, 왜 예쁜지를 설명하라면, 그냥 예쁜 거야 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마음을 편하게,기분좋게, 흐뭇하게, 감정을 차분하게, 뭔가 아련한 그리움이, 선한 생각이 들게, 눈이 시원해서......
이래서 좋고 예쁜건가?
그래도 이런 이유는 족하지 않다. 결코 족하지 않음은 뭐가 부족해서 인가, 그냥 자연스럼인 것을 억지로 표현하려 한 것인가?
형상의 낯섬, 희소성, 자극되는 호기심이 예쁘게 보이는 것일까?
지금으로선 어떤 이유와 설명을 갖다 붙여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냥 보자.
그냥 즐기자.
그냥 좋아하자.
경복궁 앞의 사거리에서 삼청동 가는 길은 은행나무 길로써 눈을 푹 맞고 있다.
가지만 드러나 있던은행나무에 윤곽을 따라 눈이 두껍게 덮여 감탄을 자아낸다.
테니스 장 쪽에다 차를 세우고 공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니, 길과 나무에 눈이 가득하다.
온통 하얗다.
키가 큰 노송에도 눈이 많이 쌓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데 눈이 쌓인 소나무를 밑에서 올려다 보니 새로운 그림이다. 까만 배경 위에 하얀 장막이 하나 더 있는데 처음 접하는 느낌이다.
산책 길은 한 사람 정도의 발자국만 희미하게 나 있어 이렇게 눈이 많이 오기 시작하면서는 저 사람이 마지막이었나 보다.
눈이 쌓인지 얼마 안되서인지 정말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정확하게 난다.
오랜만의 눈 속 산책이어서 그랬는지 아내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정말 좋다!"
"와아! 좋다!"
테니스장 위의 계단을 올라서니 바로 삼청공원 입구에서 얼마 안 떨어진 매점이 나온다.
여기서 전 부터 잘 다니는 평지 코스로 방향을 잡아 賞雪과 嘗雪을 만끽한다.
개나리 만발했을 때 휴가 나온 경석이와 같이 사진 찍던 곳에 오니 개나리의 늘어진 윤곽에 가느다랗게 눈이 쌓여 겨울 하얀개나리를 보여 준다. 카메라를 가져 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하며 핸펀으로 찍으니 좀 부옇다.
눈 개나리를 이렇게 자세하고 천천히 감상할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이랴?
삼청공원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오래되어 굵고 높게 자란 아까시나무다.
겨울 나무들 중에서 특히 예쁜 것이 하늘 향해 까맣고 울퉁불퉁하게 가지를 벋고 있는 감나무와 아까시나무이다.
감나무 줄기의 회색 결은 꼭 거북이 등 무늬를 닮아 있는데 눈이 쌓이면 더욱 예쁘다.
우리 마당의 감나무의 감을 따는 시기는 눈에 한 번 덮이고 나서이다. 눈이 덮인 감들과 나무 선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오늘의 삼청공원 아까시나무도 하늘을 향해 벋은 까만 원줄기 기둥이 예쁘게 눈에 들어 온다.
꼭대기는 하얀 선이다.
길 가의 철쭉, 영산홍,병꽃 등 키 작은 나무들은 동글동글 눈꽃을 달고 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은 동그란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아주 또렷하여, 여섯 모가 보일 듯이 반짝인다.
까만 공간에 그려지는 하얀 눈을 한층 정겹게 만드는 것이 가로등이다.
날리는 눈송이가 그리는 그림의 다양함이 어지럽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질서를 갖고 날리는 것 아닌가 하는 거꾸로 느낌이 든다.
산책 길에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과 조명 효과, 눈의 날림과 반짝임이 오래동안 남을 것 같다.
평탄한 큰 길을 쭈욱 내려갔다가 다시 오솔길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은 약간 오르막 길인데 역시 한 사람의 발자욱 밖에 없는데, 아주 얕아 걷자 마자 눈이 쌓인 것 같고 길에서는 한 사람도 만나질 못했다.
평소에는 걷고 뛰는 사람이 제법 많았는데 오늘은 하나도 없다. 물론 눈 내리는 날 운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나처럼 즐기는 사람도 없는데......
이 코스는 참 호젓하다. 서울에 이런 호젓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얼마나 좋은가? 한강과 북한산과 고궁이 가까이 있다는 것과 함께 삼청공원이 이렇게 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조용하게 만들고 ,뭔가 생각하게 만들고, 자연에 기울이게 하는 길이라서 내가 참 좋아한다.
이 좋은 밤 눈길을 어찌 그냥 지난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복작대는 것 보다도 얼마나 좋은가?
우리 부부 둘이서 넓고도 조용한 삼청공원의 하얗고 까만 밤 눈 경치를 맘껏 누렸다.
<색소폰- 눈이 내리네>
<200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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