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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기와 핵실험을 연결시키는 조중동- 천하고 값싼 글쓰기 [펌]
2006년10월9일은 우리 민족사에 크게 기억될 날이 될 듯하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의 단일후보로 유엔총회에 추천된 것은 단군 이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까. 그러나 불행히도 이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우리는 북한 핵실험이라고 하는, 민족사적인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1차 핵실험 당일의 충격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햇볕정책·대북포용정책에 사태의 책임을 묻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이하 조중동)는 역설적이게도 무척이나 신이 난 듯이 보인다. 연일 사설과 해설기사에서 지난 8년간의 대북유화정책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마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남대 강연을 계기로 햇볕정책에 대해 히스테리적인 사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오늘 10월12일자 조선일보는 김 전 대통령을 겨냥해 햇볕정책 목숨보다 나라 운명을 걱정해야 한다는 제하에 이른바 ‘퍼주기’가 북핵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北의 실체에 국민의 눈 가린 좌파정권’이다. 굳이 내용소개는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미국이 못살게 굴어서 핵개발 했다”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사설 외의 다수 해설 기사들 논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게 퍼 준 결과가 핵실험이었으니 김대중 정부 이후 지금까지 8년간의 대북정책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당사자들이 책임져라는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간 북핵 문제에 대해 낙관적으로 발언한 것들에 대해 ‘이런 발언만으로도 그는 탄핵감’이라고 했다.
내 주변의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 속한 사람들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상으로 대뜸 하는 말들이 ‘북한 퍼주기’이다. 나는 이렇게 묻곤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퍼 줬는지는 아십니까?”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에서는 “8년 동안 8조원 상당”이라고 썼고 중앙일보 오늘자 사설에서는 “지난 8년간 ··· 4조5천억원”이라고 썼다. 이는 한나라당 진영 의원이 낸 정책자료집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8조원이라는 액수는 8년간 남에서 북으로 넘어간 모든 돈을 다 더한 액수다. 그 중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지원한 액수를 뭉뚱그려서 다 더하면 대략 4조5천억원이다. 그러니까 8년 동안 8조원은 적어도 ‘대북정책’에 의한 ‘퍼주기’와는 거리가 먼 액수로서 대표적인 침소봉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조5천억원에도 다양한 주체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정부가 ‘대북유화정책’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원한 액수는 이보다 적다. 게다가 어디까지를 ‘정책에 의한 퍼주기’로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유화정책=퍼주기’라는 등식은 쉽게 성립될 것 같지가 않다.
대충 정부가 갖다 준 돈이 8년간 4조원이라고 해도 1년에 5천억원 지원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한해 예산이 230조원정도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재직 때 말했듯이 OECD 권고 사항 중 하나가 GDP의 약 0.5%를 가난한 나라 도와주는 것인데, 800조원에 육박하는 우리 GDP 기준으로 볼 때 이 액수는 4조원 가까이 된다. 그러니까, OCED에서는 매년 대한민국에게 약 4조원 가량의 돈을 가난한 나라 도와주는 데 쓰라고 권고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등지의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 이만큼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8년간 퍼주기 했지만 따지고 보면 OECD 권고사항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 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빨갱이 원조국”인 구 소련에 떼어먹힌 30억 달러가 ‘북방외교’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다음으로, 조중동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정권의 본질을 잘못 알고 속아 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퍼주기’ 해 봤자 어차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햇볕정책이 작금의 북핵사태를 자초했음은 물론 한미동맹에도 균열을 가져왔다는 결론은 이런 식으로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 핵실험의 결과만을 놓고 과거를 왜곡해서 끼워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과연 북한 핵문제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대단히 본질적인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중동의 주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우선, 햇볕정책이 북한 핵개발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퍼주기를 했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을 리는 없다.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했던 김영삼 시절에는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다가 김대중이 퍼주기 시작하니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결심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좀 더 세련된 주장은 이렇다. 대북지원금이 김정일 손으로 흘러들어가 핵무기 개발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니까 결국 햇볕정책이 핵무기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이전에는 돈이 없어서 핵무기 만들 꿈도 못 꾸다가 대북 지원한 쌀 팔아서 돈이 생기고 보니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한해 국방비가 약 5조원이다. 그 유명한 ‘선군정치’를 펼치는 김정일이 한해 평균 5천억원(실제는 이보다 적겠지만)의 남한 지원금 ‘때문에’ 정권과 체제의 명운이 걸린 핵무기 개발을 결심하고 결행했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조중동의 주장의 핵심은 ‘퍼주기를 했더라도’ 어차피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퍼주기 하면 핵개발 안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조중동이 주장하는 바를 다시 말하자면, 사실 기껏해야 햇볕정책이 북한 핵실험의 주변부적인 요소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한 지금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북한은 왜 남한이 ‘퍼주기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퍼주기 자체가 북핵사태의 전부인 양 오도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에 버금갈 만큼의 명백한 국민기만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미국 언론이다. 한국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무렵 미국에서는 북한 무시 일변도의 부시 외교정책이 대대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조중동이 힘 있는 미국정권에 감히 비판이나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언론은 한국정부를 마음대로 난도질할 수가 있을 터인데 한국정부의 대북화해정책이 북핵사태를 불러왔다는 분석을 찾기가 어렵다. 아마 그런 기사가 났다면 조중동이 수 면에 걸쳐 도배를 했을 터인데 말이다. 보수적인 워싱턴포스트조차 “외교정책 위기의 핵심은 악의 축”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핵문제의 본질적인 질문, 즉 왜 북한은 남한이 ‘퍼주기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다. 뭉턱뭉턱 생각해 보자면, 94년 1차 핵 위기-제네바 합의-2002년 2차 핵 위기-2006년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남한의 대북정책은 김영삼 정부의 강경정책에서 김대중·노무현의 유화정책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클린턴 정부 때 북미공동 코뮤니케까지 발표하며 수교직전까지 갔다가 부시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94년 핵 위기 때는 미국과 한국 모두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했다. 민주당의 클린턴조차 북폭직전까지 갔던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약 대북유화정책이 북한에게 쓸모없는 것이고 강경일변도로 북한을 몰아붙이는 것이 북한에 대한 최선의 정책이라면 1차 핵위기는 카터가 김일성을 만나기 전에 잘 해결이 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쟁일보직전상황이 아니었던가. 1차위기를 넘긴 것은 북미직접대화였고 포괄적 타협이었다. 강경일변도였던 김영삼 정부는 판에 끼이지도 못한 채 경수로 분담금만 떠안게 되었다.
지난 8년간 남한에서는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대북유화정책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까, 이 기간 동안에 2차 핵위기가 생긴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변화와 직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체결까지 갔다가 다시 위기상황이 도래한 것은 워싱턴포스트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느닷없는 ‘악의 축’에 그 기원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말마따나 지금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모두 부시행정부 시기에 만든 것들이다.
북한이 6자회담 불참이유로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것은 미국의 대북금융제재이다. 사실 아직도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불량국가로 낙인찍혀 전략물자반입도 허용되지 않는다. 윈도우 XP나 팬티엄III 등등은 북한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미국의 사실상의 경제봉쇄를 버텨 오던 북한이 마카오 은행계좌 동결로 치명타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정부가 조중동이 주장하듯 유화정책을 버리고 강경정책으로 선회한다고 가정해 보자. 북한은 어차피 수십 년 동안 혼자서도 (중국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잘 살아왔던 나라였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경제제재에도 그럭저럭 버텨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좀 더 제재를 가하는 것이, 그리고 좀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북한에게 큰 위협이 되겠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조중동은 한국정부가 북한과의 타협 없이 강경하게 몰아부쳐 김정일을 굴복시켜서 얻을 것은 꼭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부시조차 초강경으로 밀어부쳐도 굴복은커녕 된서리만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돼서 북한의 선택의 폭을 줄이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조중동의 대북강경책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위험천만한 불장난에 불과하다.
이번 북핵사태의 근본원인은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그 동안의 모든 과정이 간단히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한의 햇볕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북핵문제에 관한 한 남한의 한계이다. 그 본질은 결국 북미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 햇볕정책의 결과적 실패는 그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변화 없이는 북핵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미국 쪽에서의 더 많은 햇볕이 결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은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문제라기보다 미국과 북한의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중동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들 ‘좌파정권’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독재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대한민국에 대한 자학적 사관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런 조중동이 왜 ‘좌파정권’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학적인 것일까. 민주화가 그리도 못마땅한가. ‘좌파정권’은 (결코 좌파적이지도 않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란 말인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닌가. 노무현의 안일한 대북관이 북핵사태를 불러왔으니까 탄핵감이라고 한다면, 어쨌든 전쟁을 막지 못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란 칭호를 반납해야만 하고 그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라도 해야 순서가 맞지 않나.
한편으로 보자면 대북강경책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조중동에게 이번 북핵사태는 이미 예견된 사건이다. 그들은 대결을 원해왔고 긴장을 원해왔고 파국적 상황을 원해왔다. 이는 일본 보수파나 미국 네오콘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뭇 심각한 그들의 안색 이면에서는 아마도 표정관리 하느라 여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조중동은 어째 신이 나 보인다. 그래,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나?
조중동이여, 차라리 춤이나 한판 춰라!
<2006.10.13 한겨레의 기고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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