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주의

기본카테고리 2006. 10. 19. 08:39

*정의 및 개념


♤. 파벌 [派閥]

어떤 사회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세력을 확대 ·유지시킬 목적으로 의제적 동류의식

(擬制的同類意識)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부조리한 배척활동

을 하는 집합체.

종교 ·학문 ·예술영역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형성되어 있지만, 그 특이한 속성은 정치집단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파벌의 유형은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심리적 측면에서 보면, ① 과거의 출신 ·경력 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이 우월감을 다른 생활

차원까지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집단 구성원을 경멸하는 우월적 파벌.

② 반대로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방위적으로 결속력이 강한 집단이 형성되는

열등적 파벌.

③ 같은 기능을 가진 복수의 집단이 대립하여 인사(人事)라든가 금전면에서 이해경쟁(利害競爭)

을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대항적 파벌.

④ 이익과 출세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어떤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일적(독점적) 파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규제력과 기능면에서 보면, ① 파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약간의 이익이나 보호를 받는 정도가

낮은 수준의 파벌.

② 구성원이 어느 정도 고정화되고, 외부와 대항이 있으며, 이해관계가 뚜렷한 중간 수준의 파벌.

③ 비밀유지나 이를 위한 상호감시 또한 사생활의 침해까지 야기시킬 정도의 결속과 유기성을

가지는 높은 수준의 파벌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파벌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봉쇄적 성격을 들 수 있다. 이는 파벌의 구성원이 외부와 차단됨으로써 공동의 안정감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② 보다 적극적인 차별과 배타성을 야기시키는 배타적 성격을 들 수 있다.

③ 비합리적 성격을 들 수 있다. 이는 근대사회의 이념인 합리주의에 반(反)하는 인습적(因襲的)이

고 감정적인 의리나 인연과 같은 것이 앞서는 것을 뜻한다.

④ 이해(利害)에 매우 예민한 성격을 들 수 있다. 이는 개인 이기심이 집단 이기심으로 대치된

것이기 때문이다.

⑤ 주종적(主從的) ·가족주의적 성격을 들 수 있다.

파벌이 유대를 유지하고 계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내부 통제가 당연히 필요해진다.

그 때문에 보스와 부하 사이에 온정주의적이고 내유외강적인 상황들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파벌이라는 말은, 대개의 경우 비난의 뜻이 담긴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근대사회의 이념인 개인주의 원칙, 인격완성, 개성발현, 실력발휘 등과 어긋나는 기회의

불균등, 출신배경의 존중 등과 같은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역기능에 대한

비판적 ·반성적 의식의 발로이다. 근대화가 늦은 한국에서도 파벌행동이 앞서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가족제도라든가 신분제도의 잔재와 타성에 기인한다.

이렇게 파벌이 뿌리깊게 남아 있는 원인은, 개인주의의 미발달, 창조성 결여 등과 함께 근대사회의

또 다른 측면, 예를 들면 능률주의에 꼭 위배되는 것은 아니며, 도리어 개인단위의 경쟁이

집단단위의 경쟁으로 대치되어 능률향상에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파벌집단과 파벌행동을 공식집단(formal group)에 대한 비공식집단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파벌은 한편으로 근대적인 공식집단을 무시 ·파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형태의

비공식집단의 형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일면적으로는 비공식조직이면서도, 실제로는 자유와 인간성을 부정할 가능성을 내포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같은 파벌의 구성원이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필요 이상의 거짓된 친밀성

을 유지한다거나, 반대로 파벌 밖의 구성원과 본심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으면서도 극단적인

대립 ·증오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서유럽의 언어에는 파벌에 해당하는

적당한 말이 없다.

영어로 정계(政界)의 파벌은 ‘political faction’, 재벌(財閥)은 ‘plutocracy’, 군벌(軍閥)은

‘military clique’ 등 각기 표현이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말의 가족주의적인 연줄과 비슷한

표현으로 ‘nepotism’이라는 말도 있다. 문벌(門閥)과 같이 오래 된 것에서부터 학벌(學閥)처럼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것, 또한 규벌(閨閥)과 같이 좁은 범위의 것에서부터 지벌(地閥)과 같이

넓은 범위의 것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으며, 구조 ·기능상 상당히 이질적인 것도 있어,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다. 그러나 ‘particularism(특수주의)’과 같은 말은 상당히

벌(閥)의 성격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독립독보(獨立獨步)를 내세우는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는, 상대적으로 파벌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불안과 의존, 도피의 심리가 파벌의 형성과 참가의 한 요인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표현의 문제는 차치하고 어느 나라에도 정도의 차는 있다 하여도 보편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적성과 적응에 있어서의 시행착오가 능률본위의 사회적 ·문화적 요소와 결합됨으로

써 비롯되는 집단 구성원의 교체빈도가 높은, 다시 말해서 사회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는 파벌이

심각할 정도로 사회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 파벌주의 [派閥主義]

공적(公的) 사회에서 친분, 추종자 등의 사적(私的) 관계에 의하여 자파(自派)의 세력확대,

지위·경제적 이익의 획득 등을 추구하는 행동양식 또는 의식상태.

공적(公的) 사회에서 정실(情實)이나 친분, 추종자 등의 사적(私的) 관계에 의하여 자파(自派)의

세력확대, 지배권의 확립 및 명예·지위·경제적 이익의 획득 등을 추구하는 행동양식 또는 의식상태

를 말한다.

특히 관청·정당·노동조합·학계 기타 사회적 집단에서 널리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파벌주의는 근대의 비개성적인 조직 내부에서 개성적인 정서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면도 있으나,

반면에 정실인사 등으로 자유로운 사회적 이동을 방해하며 조직 전체의 합리화와 능률을 저해하고

근대적인 공적 생활을 교란하는 중대한 폐해를 안고 있다.

* 좌우익의 과격한 갈등 속에 정치적, 종교적, 지역적, 지식적 파벌주의자들만이 부귀영화를 누린 한반도에서 파벌주의에 타협하지 않는 보편주의자들의 삶이란 구조적으로 고단한 것이다.

맹목적 지역주의, 교조적 냉전이념, 근본주의 종교 등 각종 형태의 분파주의(sectarianism)에 세뇌된 편향적 군중(crowd)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반도에서 각종 파벌과 세력을 초월한 보편주의(universalism)를 신봉하는 공중(public)들이 설자리는 그렇게 넓지 않다. 평상심과 보편성을 상실한 파벌주의 사회에서는 특수한 이념이나 세력에 치우친 파벌주의자들이 설치면서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어있다. 자신의 입지와 이익에 예속된 분파주의자들은 전체 공동체와 경쟁 상대방을 무시하고 사회를 통째로 지배하려는 불의를 감행하려는 맹목적인 군중으로 변하게 되어있다. 남한 사회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좌파 정치세력의 총수인 노무현 대통령의 분파주의적 의식구조가 전체 사회에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을 구별하는 연구자들은 공동체와 상대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군중(crowd)과 공동체와 상대를 인정하는 책임적인 공중(public)을 구별한다. 전체 공동체의 운명과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공격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이나 광신적 자기희생(fanatic self-surrender)을 즐기는 군중은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과 상식을 존중하는 공중과는 다르다. 특수주의에 매몰된 군중은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과 상식을 중시하는 공중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다.

파벌에 갇힌 분파주의는 분쟁을 낳고, 파벌을 초월한 보편주의는 통합을 낳는다. 상대방을 배척하지 않고 전체 공동체를 책임지고 고민하는 보편주의자들만이 한반도에 만연한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과 화합을 이룩할 주체적 공중이 될 것이다.

[사회 전반의 파벌주의] '패거리주의'가 경쟁력 좀 먹는다

[한국경제 2006-04-17 11:47]
재벌,학벌,파벌…. 모두 '패거리 벌(閥)'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들이다. 이처럼 '벌(閥)'은 어떤 무리 중에 부정적인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에 주로 쓰이는 한자다. 그 부정적인 속성이란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챙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이 되는 배척활동을 하는 것 때문에 나타난다.

'파벌' 역시 그렇다. 사전적으로는 '개별적(個別的)인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따라 따로따로 갈라진 사람들의 집단(集團)'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뜻이 담겨 있지만,그 속에는 자신의 세력권을 끊임없이 넓히려는 속성이 있음을 은연 중에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출신지역,출신학교,같은 성씨 등을 기반으로 뭉치려는 속성이 강하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동창회,향우회 등의 모임이 수도 없이 열린다. 공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리를 지어 서로 돕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뭉쳐 '패거리'를 형성해,자기네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며 이권과 좋은 자리를 나눠 가지는 행태를 보이면 그때부터 그 집단은 사회적 해악이 된다.

○기회 박탈하고 사회 전체의 경쟁력 해쳐

파벌주의의 해악은 '패거리'에 속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쇼트트랙 파벌 갈등에서도 드러났듯,파벌 간 다툼은 대표선수의 선발과 올림픽 종목별 출전 선수를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가장 뛰어난 경기력을 가진 선수를 선발하는 게 아니라 각 파벌이 모두 불만이 없게 적당히 안배하는 과정에서 500m 등 일부 종목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의 출전길이 막히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비단 스포츠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실제로 실력이 있으면서도 학벌이 딸려 취직을 못한다거나,능력은 되는 데도 '빽'이 없어 출세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아직도 들려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패거리주의'의 문제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는 한 직장 내에서도 출신 학교별로 패거리를 형성해 승진?인사 등에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시도하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적당한 '패거리'에 들지 못하는 사람은 확실히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상 직장에 들어와서도 승진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패거리주의'는 전체 사회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능력에 따라 취업?승진이 이루어지지 않고 학벌이나 파벌 등 패거리의 영향력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반복되면 구성원들은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오로지 자신이 속한 패거리의 세력권 확대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올바로 쓰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권의 예를 들어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정치가가 이념과 정책의 차이에 따라 각각 다른 무리를 지어 경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을 펼쳐 보이기 위해 정권을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바로 정당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은 이념이나 정책에 따라 패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출신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지역 보스 밑에 해당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모여 있는 식이었다.

이렇다보니 나라 전체의 살림살이 향상을 위한 정책 대결은 뒷전이고,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는 데만 몰두하는 정치풍토가 오래 지속됐다. 그 피해는 역시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이처럼 사회의 중요 부분에서 패거리주의가 만연하면 사회에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집단의 목적은 '사회적 존경'이 돼야

그렇다고 이미 끈끈하게 형성돼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다 해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연과 교감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집단이 각자 어떻게 사회를 위해 공헌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 '패거리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된 '로터리클럽'이나 '라이온스클럽'이 그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다.

타향에 나와 있는 같은 지역 사람들로 뭉친 향우회나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로 구성된 동창회도 달라질 수 있다. 일단 본래의 목적에 맞게 집단 내부에서 구성원이 겪는 어려움을 정당한 방법을 통해 상부상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비록 지금까지는 이런 모임들이 패거리주의의 온상으로 여겨졌을지라도,지금부터라도 집단의 세력권 확대에만 몰두하는 속성을 버리고 집단의 이름으로 사회적 공헌을 하려고 힘쓰면 된다.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말고,'존경'을 받기 위해 뛰라는 것이다. 그러한 '존경'은 구성원에게 크나큰 자부심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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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이나 기업의 인사 얘기가 아니다. 지난봄 프로농구팀 감독 선임과정에서 관계자들이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파벌 문제는 모두 쉬쉬하지만 ‘공공연한 비밀’이다. 파벌은 주로 학연, 지연 내지 특정인에 대한 선호에 따라 갈린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체육계 파벌은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선·후배들끼리 끈끈한 응집력을 발휘한다. 선수 스카우트와 대표팀 선발은 물론 협회 집행부 등 행정부문 장악에도 힘을 미쳐 그들만의 아성을 철통처럼 구축한다.

지난 4월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안현수 선수의 부모가 공항에서 연맹 부회장을 폭행, 파문을 일으켰던 쇼트트랙이 단적인 경우다. 구타와 훈련거부 등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켰던 국내 쇼트트랙계는 당시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 지도자가 가르치는 선수들이 과잉경쟁을 벌이다가 경기 도중 한 명은 넘어지고 다른 한 명은 실격당하는 불상사를 빚었다.

쇼트트랙뿐만이 아니다. 펜싱계도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의 갈등이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올 초 ‘남현희 성형파동’의 이면에는 파벌 간의 알력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펜싱협회는 표면적으로는 남현희 선수의 무단 성형수술에 대한 책임과 지도력 부재를 이유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조련했던 이성우 코치를 해임했다. 하지만 이 코치의 해임은 비한국체대 쪽이 장악하고 있는 협회 집행부가 한국체대를 견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메달종목 탁구도 예외는 아니다.‘장기집권’을 해온 천영석 탁구협회 회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반(反)회장파’와 ‘친(親)회장파’가 지난 5월 정면 충돌했다. 당시 ‘반회장파’에서는 천 회장이 약속했던 출연금을 내지 않았고 대의원들을 무시한 독선적인 운영을 해왔다며 총회를 소집했다. 하지만 천 회장 측은 긴급이사회를 열어 반대파들을 처절하게 눌렀다. 두 달여 동안 대의원 확보경쟁을 펼친 양측의 싸움은 현 집행부측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선수층이 얇은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은 협회의 두 거물 K씨와 L씨 간의 자존심 싸움이 문제를 일으켰다. 각자의 클럽을 이끌고 있는 이들은 지난해 4월 동아시아대회 대표선수 선발을 놓고 맞붙었다. 파벌다툼은 메이저 종목도 마찬가지. 국가대표 축구팀의 감독으로 매번 비싼 돈을 들여 외국인을 기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파벌 때문. 토종 지도자는 대표팀 선수를 발탁하는 데 있어서 파벌과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프로농구도 마찬가지다.10년째를 맞은 국내 프로농구에서 ‘OB(졸업생)’들이 실력을 행사,Y대 출신들이 줄곧 감독을 돌려 맡는 구단도 있다. 또한 ‘명장’으로 불리는 A감독은 K대 출신을 드래프트에서 뽑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쇼트트랙 파문이 일어났을 당시 “쇼트트랙뿐 아니라 전체 스포츠계의 파벌과 집단이기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후 넉 달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체육회 관계자는 “스포츠 파벌을 뿌리뽑기 위해 체육회 내부에 관련 부서를 만들거나 현황에 대해 실사를 벌인 적은 없다.”면서 “체육회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채호 선생의 당파론

3백 년 동안 사색(四色)의 당파 싸움이 크게 국가에 해를 끼쳤다 하지마는, 당론이 극렬할수록 제각기 나는 옳고 저는 그르다는 것을 퍼뜨리기 위하여 사사로운 기술이 성행하고 당의 시비가 매양 국정에 관계되므로 따라서 조정의 잘잘못을 논술하게 되어 모르는 사이에 역사의 사사로운 저작의 금지가 깨뜨려져서 마침내 한백겸. 안정복. 이종휘. 한치윤 등 사학계에 몇몇 인물이 배치되었음도 그 결과이다.

혹 어떤 이는, “사색 이후의 역사는 피차의 기록이 서로 모순되어 그 시비를 가릴 수가 없어서 가장 역사의 난관이 된다.”고 하지마는, 그들의 시비가 무엇인가 하면 아무 당이 이조의 충신이니, 역적이니, 아무 선생이 주자학의 정통이니 아니니 하는 문제들뿐이라,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면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둘러 임금의 시체를 두 동강이 낸 연개소문을 쾌남아라 할 것이요,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여 명륜당(明倫堂) 기둥에 공자를 비평한 글을 붙인 윤백호(尹白湖)를 걸물(傑物)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냉정한 두뇌로써 회재.화담(花潭:徐敬德). 퇴계.율곡(栗谷:李珥) 등의 학술상 공헌의 많고 적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자학의 정통이 되고 안 됨은 희담(戱談)이 될 분이요, 노론(老論).소론(少論).남인(南人).북인(北人)의 다툼은 그 정치상에 미친 영향의 좋고 나쁨을 물을 뿐이며, 이조의 충성된 종 되고 못 됨은 잠꼬대에 지나지 않을 뿐이요, 개인의 사사로운 덕의 결점을 지적하여 남의 명예를 더럽히고 혹은 애매한 사실로 남을 모함하여 죽인 허다한 사건들은 그 반면에 있어서 당시 사회 알력의 나쁜 습속으로 국민과 나라를 해친 일종의 통탄할 사료가 될 뿐이다.

만일 시어머니의 역정과 며느리의 푸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일에 낱낱이 재판관을 불러 그 굽고 곧음을 판결하려 한다면 이는 스펜서의 이른바 이웃집 고양이 새끼 낳았다는 보고 같아서 도리어 이로써 사학계의 다른 중대한 문제를 등한히 할 염려가 있으니, 그냥 던져둠이 옳다. 그리고 빨리 지리 관계라든가, 국민생활 관계라든가, 민족의 성쇠라든가 하는 큰 문제에 주의하여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것을 구하여 조선 사학계의 표준을 세움이 급무 중의 급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