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망친 건 사랑없는 기독교이다 [펌]

기본카테고리 2010. 8. 7. 14:43

영국의 저명한 문학비평가·문화이론가 테리 이글턴(사진)이 쓴 <신을 옹호하다>는 제목만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책 같다. 종교인·신앙인이라면 신을 옹호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이 책의 포인트는 부제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에 있다. 통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무신론자=유물론자’로 통하는데, 마르크스주의자가 무신론을 비판하고 신을 옹호한다는 사실이 이 책을 눈에 띄게 만든다. 지은이 이글턴이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이다. 그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계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이 원초적 환경이 그대로 그의 정신세계의 뼈대가 된 셈이다. 이 책에서 이글턴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걸고 무신론을 비판한다. 2008년 4월 미국 예일대에서 했던 특강이 이 책의 바탕이 됐다.

이 책의 또다른 포인트는 이글턴이 비판하는 대상이 명성에서 이글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라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정치적 스펙트럼상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도킨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조지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히친스도 헨리 키신저를 베트남·캄보디아 민간인 학살의 전범으로 재판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키신저 재판>을 썼다. 이 두 사람은 강경한 기독교 비판자라는 점에서도 유사한데, 도킨스는 2006년 <만들어진 신>을 출간했고, 히친스는 2007년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펴냈다. 두 사람은 여기서 기독교가 저지른 잘못과 종교가 지닌 불합리성을 가차없이 성토했다. 얼마나 강력하게 비판했던지 “반종교적 광기를 내뿜는 도킨스 앞에서는 종교재판소장이 무기력한 자유주의자로 보일 지경”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맹렬해진 미국 안 기독교 근본주의 창궐에 대한 비판의식이 이런 종교 비판으로 나타났던 것일 터인데, 이글턴은 이들보다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관점에서 두 사람의 종교 비판이 지닌 문제점을 반비판한다.

» 테리 이글턴 문학비평가·문화이론가

그렇다고 해서 이글턴이 도킨스와 히친스의 모든 비판을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기존 종교에 대해 퍼붓는 비난 중 아주 많은 부분이 지극히 옳은 소리며, 종교의 문제점들을 그토록 설득력 있게 제시한 데 대해서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 마땅하다.” 문제는 이들이 종교에 관해 어이없을 만큼 무지한 상태에서 열변을 토한다는 데 있다. 이글턴은 “<영국 조류도감>을 어쩌다 좀 들여다봤다고 해서 생물학의 심원한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오만”이라고 비판한다. 또 두 사람의 신학 이해가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걸 안타까워하면서, “어떤 소설에 대해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무서운 부분도 있는데 끝에 가서는 무척 슬프다는 식의 평을 해놓고는 문학비평가를 자임하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꼬집는다.

그렇다면 이글턴이 생각하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그는 통상의 기독교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신을 제시한다. “예수가 ‘아버지’라고 일컫는 이 존재는 심판자가 아니고 가부장도 아니며 비난하는 자도 아니고 초자아도 아니다. 그는 사랑하는 자이고 친구이며, 함께 비난받는 피고이고 우리를 비호해주는 변호사다.” 그렇다면 심판자·비판자 하느님은 누구인가. 지은이는 그 존재가 바로 사탄이라고 말한다. “사탄은 이를테면 못되게 구는 힘센 왕초로 해석된 하느님이다.”

지은이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예수 그리스도를 사회주의 운동 창시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린다. 예수는 “성경에서 ‘아나빔’이라 부르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연대한” 죄로 “고문받고 처형당한 정치범”이다. “로마는 정치범만을 십자가에서 처형했다. 바울의 서신에서 아나빔은 세상의 보잘것없는 인간들을 뜻한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간 쓰레기, 그러나 하느님 나라로

지은이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예수 그리스도를 사회주의 운동 창시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린다. 예수는 “성경에서 ‘아나빔’이라 부르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연대한” 죄로 “고문받고 처형당한 정치범”이다. “로마는 정치범만을 십자가에서 처형했다. 바울의 서신에서 아나빔은 세상의 보잘것없는 인간들을 뜻한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간 쓰레기, 그러나 하느님 나라로 알려진 새로운 형태의 인간 세계에서는 주춧돌 구실을 할 사람들이다.” 예수는 이들을 대표하는 존재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굶주린 사람의 배를 채워주고 이민자를 환영하며 아픈 이들을 찾아가 돌보고 부자들의 횡포로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는 문제다.”


이글턴은 자본주의가 기독교와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실상 자본주의야말로 그 본질상 무신론적이라고, 그것도 “한결같이 나쁜 방향으로 무신론적”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경건한 태도로 뭐라고 주장하든 간에, 현실에서 드러나는 물질적 행태와 거기에 내재된 가치관과 신조들은 신을 부정한다.”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려면 이 무신론적이고 사랑 없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이글턴은 도킨스와 히친스가 19세기 계몽주의자·합리주의자들의 단순한 이성주의에 입각해 종교를 미신으로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철학자 찰스 테일러가 <세속의 시대>에서 한 주장을 받아들여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과학적 증거가 꾸준히 축적된 결과로 세계에 대한 종교적 관점이 패퇴했다’는 닳고 닳은 신화, 경이로우리만큼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신화”를 단호하게 반박한다. 이런 신화 속에서 “‘믿음의 시대’는 ‘이성의 시대’ 앞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러나 자기 한계를 알지 못하는 이성이란 또하나의 극단, 일종의 자기도취일 뿐이다. 도킨스와 히친스는 “우리가 신화와 미신의 해로운 유산을 떨쳐버리기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 자체가 신화다.” 지은이는 도킨스와 히친스의 종교 비판에 맞서 이렇게 선언한다. “종교는 오만하게 거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끈질기게 해독해야 할 대상이다.”

한겨레신문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

<20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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