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달 신고 귀면암 까지- 비오는 설악에서의 작은 풍경

기본카테고리 2005. 7. 7. 10:26

<Love Changes Everything - Dave Koz>

비는 추적추적...

샌달 신은 맨발 뒷꿈치가 아파서 일회용 밴드를 감고 오른다.

비선대 까지 매표소 에서 3.5 km 란다.

쉬엄 쉬엄...흥얼 흥얼...

비 안개가 산 봉우리들을 휘 감아 몇 폭의 동양화를 그려 낸다.

계곡 물은 맑았지만 그렇게 차디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따뜻해 보인다.

자동차가 세 대나 교행할 수 있을 만큼 길이 잘 닦여 있어 샌달 채로도 편 하다.

두 시 쯤 되어 비선대에 도착.

슬슬 걸어 올라 가서 마중 합시다 하니, 형도 아내도 그냥 비선대에서 쉬시겠단다.

그래서 자두와 살구 봉다리를 꾸려서 올라 가기로 하였다.

청소하는 아저씨께 빠알간 자두를 한 개 드리니 참 반가워 하신다.

샌달을 신고서 설악 등산이라...

정말 뉴스에 날 일 아닌가 싶어서 더욱 조심 조심 하기로 하였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샌달 차림으로 올라 가려니 꽤나 건방져 보이지만,

좀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설악에서 사는 사람 처럼 보이지 않을까?

설악을 아침 산책 코스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람 같지 않을까?

우스꽝 스러운 생각을 실 없이 해 가며 올라 간다.

주황 색 계단, 철 다리가 오늘은 고맙고 편하기 까지 하니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 지기는 하는가 보다.

근데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늦게 내려 오는 건가...

만날 때가 된 거 같은데, 안 보인다.

학창 시절에 농촌 봉사를 갔다가 서울에 도착하면 선배와 후배들이 청량리나 서울역에

나와서 반갑게 맞아 주고, 위로해 주고 하여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 가면서

길 에서의 조우의 기쁨을 상상해 가면서 걸음을 재촉 한다.

이러다가 정말 양폭까지 가는 거 아닌가 하면서 계속 걸음을 재촉 하다 보니

어느 새 귀면암 이다.

쭉쭉 솟은 설악 봉우리들, 모였다가 둘렀다가 다시 흩어 지는 안개...

금강의 상팔담과 삼선암을 연상 시키는 설악 이다.

내려 갈 때 미끄러우면 차라리 맨발로 가는 게 오히려 안전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는 중에 저 앞에 낯 익은 여자 얼굴이 보인다.

아! 선주다!

근데 너무 애 띠어 보이는데?

어? 저 앞에는 성관이구나!

성관아! 고생이 많다.

선주도 고생 많았지?

하는 사이에 재학생 아이들이 보인다.

성덕 형님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쌩쌩해 보이신다.

야호! 다 힘 들었지?

모두 다 우중 등산을 한 티가 물씬물씬 난다.

너무나 힘들어 하고 꽤나 지쳐 보인다.

인사도 제대로 반갑게 못 할 정도 이다.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살구와 자두를 건넨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산에서 과일 먹는 행복과 기쁨도 표현 못 하고는 먹어 댄다.

나 한테는 하나 먹어 보라는 말도 못 하고...

참 고생들 많이 한 모양이다.

비선대에 도착 하니 오후 세 시 반 경...

등산에서 지치고 지친 사람들과 맘 편하게 쉬면서 먹는

막걸리 오뎅 오징어 볶음 파전......

이 맛을 어디에서 또 찾으랴!

설악동에 내려 오면서 핸펀으로 소나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저 높이에서 부터 비를 맞아 제 몸의 음영을 빗 물로 만들고 있다.

이 소나무는 원래 부터 이렇게 높이 자라 있는 것은 아닌데도

애초 부터 그냥 큰 채로 있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올려다 보며 감탄하고 사진을 찍고 있으나 2-30 여 년 전에는 이 보다

훨씬 작았을 것 이다.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컸다니...

소공원을 꾸미고 있는 여기 저기의 나무들...

단풍나무 소나무들도 내가 어릴 때엔 얼마나 작았는지 기억도 못 하지만

저렇게 자랐으니 참 무상한 생각도 든다.

사람은 이렇게 크진 않찮는가?

아~ 크는 게 있긴 하구나.

마음, 정신, 철....

산 중 마중의 기쁨과 행복을 맛 보기 위해 달려 온 속초 길...

그야말로 만끽 하였다.

모두 모두 반갑고 정다웠고 나의 행복 그림의 모자이크 조각들 이다.

200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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