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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을 앞 둔 분들을 위해 썼던 글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고심하고 노고가 많으십니까?
원래 오가기 힘든 땅이기에 더욱 설레고 벅찬 기대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공적인 임무와 개인적인 감동의 무게가 참으로 무거울 겁니다.
저 역시 그랬었지요.
저의 99년 방북 경험담을 여러분께 들려 드립니다.
.................................................................................
*** 더 신경 쓰는 북 쪽 사람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신경을 쓴다면 우리보다 저 쪽 사람들이 아마 더 썼을 겁니다.
그리고 저 쪽 사람들은 이 쪽의 맘을 보다 편하게 해 줘야 하고 열게 해야 하고
안전을 보장해야 하고 좋은 인상을 갖게 해야 하고, 또 자기네의 열악성을 감추고
우월한 부분을 자랑도 해야 하니 더 고생하였을 겁니다.
검증과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자존심 상하는 부담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이러 저러한 걱정은 젖혀두고라도 저 쪽 사람들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이 쪽 사람들의 심적 불안을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맘 편하게 해라......."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쪽 사람들의 긴장을 풀게 하는 노하우를 터득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술 담배 잘 하고 잘 놀고, 육담도 잘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아마 그 기술의
일환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한민족의 대표 얼굴인 "소탈함"을 그대로 보여 주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그렇게 술을 고래로 마시는 사람들 얘긴 드물더군요.
****한민족의 고유 정서- 소탈함
그 대신 북경과 평양 일정에서 만나게 되는 시설의 관계자들, 그리고 안내원, 접대원,
운전수, 해설원, 실무 참사에 이르기까지 소탈하고 부드러운 인상은 거의 공통이었지요.
친절하고 잘 웃고........
이에 맞춰 우리도 겸손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워야겠지요.
그러나 지나친 저자세와 편의적인 타협은 당연히 금물입니다.
*
****모르면 편하게 물어 보라
모르고 궁금하면 물어 보는 게 상책입니다.
그 사람들이 웃옷 깃에 부착하고 있는 것......
'뺏지' 라고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어 보았을 겁니다.
그 얘길 듣고 솔직히 물어 보니 "초상휘장" 이라고 하면 된답니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등에 대한 호칭 같은 것, 우리도 그 쪽에서 부르는 호칭을
따라 가는 게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혹은 총 비서 등 등........
****입국 신고서와 짐 검사
순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맞 닥뜨리는 것이 입국신고서입니다.
어느 나라 항공에도 다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신경을 자극 하였습니다.
바로 "민족"을 쓰는 난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도 그냥 요식 행위를 위한 난이지 꼭 뭘 테스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민족이라고 썼고, 상임 대표 님은 같은 민족끼리 무슨 민족이야 하면서
안 쓰셨고, 누구는 조선민족, 또 누구는 우리민족으로 각자 다르게 썼는데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짐 검사가 상당히 꼼꼼해 보였습니다.
특히 책에 대해선, 엄격히 물어 봅니다.
꼭 가져갈 것인가를 묻고는 반드시 가져갈 것을 약속하게 합니다.
그러나 책의 목록을 작성한다거나 압류하는 일은 없습니다.
***** 김일성 주석 부자에 대한 경의 표시
북에 가면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것이 김일성 부자에 대한 경의 표시입니다.
기독교 신자는 특히 우상숭배 아닌가 싶어 더욱 거부감을 갖게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멀뚱멀뚱 혹은 뻣뻣하게 서서 눈을 부릅뜨고 있을 수도 없고,
옆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수도 없구요.
김일성 부자에 대한 경의 표시는 곳곳에 다 있습니다.
만경대 고향집 생가에도 있고, 혁명기념탑에도 있고 묘향산 국제 친선 박람관엔 밀납 동상도 있습니다.
우린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하니 안내원이 꽃다발 준비를 권하더군요.
뭐 강요는 아니라고 하면서.....
그래서 7 불 짜리 꽃다발을 사서 김 일 성 주석 동상에 가서 헌화하고 묵례를 표했는데
우선 안내원들이 상당히 고마워 하고, 호감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의 집에 초대되어 갔으면 어느 정도 그 집에 대한 존중심과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상례인 것처럼 자연스레 대처했으면 합니다.
스님이 교회에 왔을 때, 목사님이 사찰에 갔을 때 경건함을 보이는 것처럼....
빨리 적응을 하려면 거기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낯설고 물 설은 땅에서, 수 십 년 간 다른 문화와 정치 속에서 살아 온 데를 갑니다.
아니 적대하던 곳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보이기 보다는 집과 제도를 더 잘 보기 쉽겠지요.
그러나 평양행 비행기를 타고나서부터 사람이 먼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수 천 년 동안 같은 말을 써 오고 하나의 정서를 간직해온 한 핏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풀어진 경직성
출퇴근 시간이 되어 교통이 번잡할 때 사람들은 꼭 교통경찰의 신호에 따라서만
길을 건너가지 않더군요.
일 주일에 한번 있는 평양 대청소의 날에는 전차 철길을 닦는 사람들이 일할 때엔
전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한가로이 내려와 무한정 기다립니다.
도토리를 따서 자루에 담아 등에 진 젊은이, 까맣게 탄 아주머니가 예사로 활보합니다.
인민학교 아이들은 재갈재갈 떠들며 떼지어 갑니다.
세계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정성옥의 환영 행사에 나온 시민들은 모두 밝은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몇 몇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춥니다.
인도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정성옥이 자기들 옆을 지나게 되면 정성옥의 손이라도
잡아 보려고 대열을 무너뜨려 가면서 도로 한복판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한 떼의 아주머니들에게 캠을 들이 대니 손을 흔들며 반색을 하기도 하고
옆에서 자기네도 찍어 달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다른 데, 다른 경우는 모르겠으나 평양의 정성옥 환영 인파에서 보고 느낀 것은
당국의 지독히 경직된 규제와 주민의 위축은 이제 풀린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심하게 얘기하여 나사가 풀린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할 정도였습니다.
***** 변경되는 일정, 중간 협의 - 묘향산 둘러보기
일요일은 다 쉬기 때문에 묘향산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묘향산 둘러보기는 애초의 일정에 없던 것을 저 쪽이 끼워 준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일정협의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평양에 가면 바로 호텔을 잡고 일정협의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쪽에 미리 제시한 방문처와 할 일들을 토대로 하여 저 쪽에서
안내원을 통하여 협의를 합니다.
대개 이 날의 일정협의와 합의가 방문기간의 주요 틀이 됩니다.
물론 중간에 재조정을 할 수도 있으나, 우리 뜻대로 이루어진다 라기 보다는
저 쪽 편의에 따라 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이 쪽의 설득력과 의지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정도 가능합니다.
김정숙 탁아소를 우린 꼭 들르고 싶다고 했을 때 저 들은 이상하게 기피를 하더군요.
애들이 낮잠 자는 시간이다, 밥 먹는 시간이다, 원장이 없다는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그러나 우리가 어린이 의약품 지원을 위해 왔는데, 아이들도 안 볼 수는 없다고
계속 버티자 시간을 잡아 주더군요.
한 마디로, 정당한 것에선 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묘향산......
기기묘묘함과 웅장함을 겸하여 갖춘 명산이라는 묘향산.....
여기에서는 묘향산이 아닌 북한산 도봉산 어귀 정도의 냄새만 맡고 왔습니다만.....
가고 올 때의 풍경과 사람 사이의 정..... 관광지 풍물을 언뜻 봤지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평양과 묘향산 가는 길...
어느 강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강에서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는 사람도 눈에 띄고
체로 사금을 걸러내는 사람도 눈에 띄더군요.
도토리 짐을 등에 지고 가는 아낙네와 청소년들도 자주 보게 되고.....
자전거를 탄 사람도 가끔 보이더군요.
묘향산에 가면서 안내원들이 자랑을 하였습니다.
묘향산 입구 계곡에선 불고기를 구워 먹어가면서 술 한잔 할 수 있다.....
멱도 감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나도 멱을 감을 수 있느냐고 하니까, 된다고 장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향산 호텔에 가니까, 비가 와서 그런 준비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내원들은 여기 향산 호텔 접대원과 묘향산 해설원들과 아주 친하여
스스럼없는 농담도 주고받고 히히덕거리는 폼새가, 꼭 서울 같습니다.
*****관광 목적이 아닌 묘향산 행
묘향산에 데리고 온 목적은 금방 드러났습니다.
당일로 와서 묘향산을 얼마나 등산하겠으며 뭘 보겠습니까?
여기에 바로 김 일 성 부자가 세계 각지, 심지어는 이 쪽의 재벌 들, 언론사 사장들이
선물한 것을 모아 놓고, 밀납 인형까지 만들어 경배를 받는 국제 친선박람관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코스의 방문은 빠뜨릴 수 없는 절차이고 뭔가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도 있는 것 아닌가 미루어
추측하게 되더군요.
*****선물을 거부하는 관습
그래도 우린 특별 대우를 받아 건성건성 볼 수 있는 특권을 받아 대충 지났지만
일단 여기에 발을 디디면 여기 안내원의 꼼꼼한 해설을 받아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걸어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여기 박람관에서 근무하는 해설원 들의 서열과 기세가 상당히 세어서 우릴 안내한 안내원들이 쩔쩔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경을 다 마치고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 옥으로 된 반지와 목걸이 펜단트를 많이 사면서
짐짓 깎아 달라고 하니까 아주 곤란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사서 안내원이나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 하니까 아주 질색을 합니다.
선물 받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과 조심스러움이 아주 티가 날 정도입니다.
*****관광지 안내원들의 씩씩함
묘향산 여자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서산대사가 수도했다는 금강굴엘 올라가는 가는데
이 안내원의 장난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아주 활달하고 시원시원합니다.
휘파람이라는 노랠 불러 달라고 하니 선뜻 부르고, 금강굴 앞에 있는 개복숭아를 따서
아무렇게나 쓱쓱 문질러서 먹으라고 주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사진도 같이 찍더군요.
아주 정 가게 하는 아가씨였습니다.
이 안내원에게도 옥 반지 라도 주려니까 안내원이 정색을 하고 못 주게 하더군요.
계곡에서 불고기를 굽고 술 한잔을 못하고 향산 호텔에서 정식으로 때운 것을 아쉬워하며
그럼 계곡에서 멱이라도 감자고 하니까, 나 혼자 감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묘향산 계곡에서 멱까지 감고 왔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친해지면 얼마든지 스스럼없이 가까워지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캄캄한 평양
향산에서 평양으로 오는 길은 너무나 늦어져서 깜깜하더군요.
그 깜깜한 길을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라이트도 없이 잘 왕래합니다.
차는 거의 안 다녀서 오직 캄캄함뿐이었지요.
평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검문까지 받게 되었는데
통행증이 있어서 인지, 안내원의 끗발 때문인지 별 일 없이 통과하였습니다.
평양에 들어오니 가로등은 거의 없었고, 기념물-개선문 같은- 있는 곳만 환하여
평양의 전기 사정이 열악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평양 시내의 길가에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지 더위를 피하려고 나왔는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 옆을 쌩쌩 달려가는 우리는 저들에게 무엇인지 새삼 가슴이 무거워 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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