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가 본 정욕

기본카테고리 2005. 4. 18. 15:48

<고한우 -네가보고파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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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을 갈아입을 때 마다 드러날 기름기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 준령을 넘는 것 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곪
아무 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 올린 듯한 진한 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 아무리 거드름을 피워 봤 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 없는 잔소리
백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겉 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군가 인용한 박완서 씨의 글 에서...

지저분한 것 들을 다 참아 내고 의처증까지 참아 내게 하는 것은

정욕 때문 이라.......

세상을 많이 산 글 쟁이 할머니의 깨달음의 소산 이라니 맞을 게다.

왜 닳고 닳아 빠진,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간다..

정욕이라고 표현해 놓으니 훨씬 머리가 반짝이는 것 같다.

난 마누라가 아닌 남편이라서 정말 그런지는 실감이 안 간다.

마누라의 지저분과 의부증을 참아 내게 하는 것이 정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춘기 때 라면 또 몰라도......

오늘 집에 가면 마누라에게 물어 봐야지...

왜 사랑이란 말 대신 정욕이라고 했을까?

사랑의 본질, 아니 본성은 정욕이기 때문일 게다.

아니....사랑은 겉 옷일 수 있으나

정욕은 벗어 버릴 수 있는 옷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일까?

사랑 없는 정욕...

정욕 없는 사랑...

이렇게 놓고 보니 헷세의 "나르찌스와 골트문트" 도 떠 오른다.

육체적 쾌감, 쾌락을 전제 하지 않는 사랑이 사랑일 수 있을까?

극치적인 쾌감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닐 것 이다.

물론 있다면 더 말 할 나위도 없지만..

단지 그것을 바란다는 것, 그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아니, 귀하다.

사람 이라는 것, 한 없이 크고 귀한 존재 자체 임을 인정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완 동물이나 성자가 아닌, 바로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완 동물의 똥 오줌을 참아 내는 것은 사랑이다.

성자에게선 방귀나 가래를 상상할 수도 없다.

정욕의 대상인 사람끼리라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많을 수록 선이 되는 관계란, 또 얼마나 행복인가?

부부 간의 정욕을 좀 더 찬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