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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며..(♬)
<배경음악-해변의 길손>
이제
자란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좋아진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10년 전에 심은 나무가 훌쩍 커 버려 내 키를 훨씬 넘기고
아이들이 어느새 나의 한창 시절의 나이가 되어 있음을 알고
TV가 번갈아 장수 프로를 틀어 댈 때에도 이제 채널을 돌리지 못한다
장수촌의 할배 할매들이 건강한 웃음을 지어 보일 때
기껏해야 저 정도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어쩌면 저 모습만도
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세배돈 준비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세배돈 받는 나이가
다시 되면 기분이 어떨까?
당뇨에 고혈압에 심장병에 신경통에 시달리는 노년이 되면
결국 어떤 생각을 하면서, 무엇을 즐겨 가면서 살아야 할까?
아니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지내 가야 할까
지나간,
아니 지나온 것이 가슴에 사무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살갗은 메마르고 눈빛도 희미하고 귀도 흐릿하고 손발에 힘이 없어지고
욕망도 없어지면 무엇으로 살까?
우리 엄마 아버지는 어떻게 노년을 마주하셨을까?
하고 싶은 것을 못 하실 때 어떠셨을까?
운명에 익숙해 져 나중에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졌을 때 어떠셨을까?
좋은 기억들을 떠 올리며 사실까?
아니면 떠 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들마저 잊었음을 분 해 하셨을까?
세상의 돌아 감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언제 아셨을까?
정작 이것이 궁금한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다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너희들에게 폐만 된다"
"그저 늙으면 빨리 가야지......" 라는 말씀들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
한낱 겸허와 미안한 뜻으로 하시는 말씀으로 알았다
사실 그 말씀의 무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거웠음을 몰랐다
그래서 이것 저것 생각한다
잘 생각할 수 있는 지금에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뭔가를 느낄 수 있는 아직이라는 시간에 생각한다
선운사 옆길, 맑은 시냇물에 비치는 나무들의 예쁨을 느낄 수 있는
지금에 생각한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걱정해도 안 올 시간이 아니란다
그 때 가서는 잊는단다
인간에게 주어진 끔찍한 운명 중의 하나가 기능한단다
"망각"이 일하게 된다 고......
레떼의 강물의 고마움 마저 알지 못하게 될 정도로 잊는다고......
그리고는 포기한다고.....
전에는 "연약한 순응" 이라며 그저 멀리만 하려 했던 것......
망각과 포기.......
이것이 나를 지키는 벗이 된단다
그 때는 그 때
지금은 지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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