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장로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방인성 목사-펌]

기본카테고리 2008. 10. 11. 16:10

성서에 목사는 없다! 지금의 장로도 없다!

성서에 목사와 장로는 같다. 그

리고 성서에서 목사라는 직위는 없다.

목사라는 단어가 에베소서 4장 11절에 한번 나온다. 그

러나 이 목사라는 단어 역시 헬라어로 목자라는 뜻이다. 영어성경 KJV, NIV에서 목사로 오역하면서 굳어졌다.

그리고 이때 교회지도자인 장로는 바로 교회의 감독이다. 즉, 목사란 직위로는 장로다.

성서에서도 집사는 공궤(구제와 봉사), 장로는 가르침과 설교, 다스리기를 잘하는 사람으로 명시되어 있다.

성경에서 목사라는 직위는 없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단, 직위는 성경에서 장로와 집사뿐이다. 이때 교회 지도자인 장로가 교회의 감독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들(현대어로 목사와 장로를 포함한)은 목사란 직위로는 장로다.

여기서부터 교권이 시작되었다.

집사는 공궤(구제와 봉사), 장로는 가르침과 설교, 다스리기를 잘하고, 치리 역시 말씀으로 성도들의 신앙의 삶, 영적인 문제들을 잘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교회 안에서 장로를 뽑을 때 장로가 무엇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이해하고 뽑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장로는 돈이 있거나, 영향력 있거나 목사를 잘 도울 사람을 뽑다보니 장로가 목사를 섬기고 교권이 생기고 했다.

초대교회의 교회정치구조는?

교회 정치구조는 반드시 복수지도체제가 돼야 한다. 디도서 1장 5절에 장로들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초대교회는 지도자를 복수로 세웠다.

그러나 감독체제는 가톨릭처럼 단수 대표를 세워 체제를 유지한다.

이 배경을 한 영국 성공회 아래서 프로테스탄트가 파생됐고,

칼빈이라는 신학자가 제네바라는 도시를 변화시키면서 장로회 제도가 만들어졌다.

칼빈의 장로회 제도의 탄생 배경

칼빈의 교회정치론에 있어 당시 제네바의 역사적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칼빈이 당시에 장로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확히 파악해야만 한다.

영국은 대의정치 제도였다. 가톨릭처럼 감독정치를 하고 있었고, 단수로 감독을 세워 체계가 있었다.

러나 디도서 1장 5절에 ‘장로들’이라는 명시를 보면 지도자를 복수로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프로테스탄트가 나왔고, 장로교회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당시 칼빈은 제네바라는 한 도시를 개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의회 의원들이 장로로 선출됐다.

이때 목사와 장로에 대한 직분의 차별이 생겼고, 이것이 칼빈주의자들의 오해로 말미암아 현재의 목사와 장로가 됐다.

그러나 현재 장로교 원론에서도 목사와 장로는 같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장로에게는 강독권(설교), 성례집례, 축복권이 없다.

한국교회정치의 대안 모델 제시 - 함께여는교회는 운영위원장이 있다

목사와 장로는 동등하게 성도들을 보살피고, 당회를 구성한 목사와 장로는 동등하다.

당연직으로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회장이 되면 안 된다.

당회원이 당회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러면 장로교의 대의정치 원리에서 장로회를 구성할 때 당회원이 회장이 될 수 있어야하는 데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프로테스탄트 중에 감리교나 침례교나 루터가 말한 대로 만인제사장직을 선택하고 있다.

만인제사장의 논리로 당회원 즉 장로를 교회구성원들이 뽑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서 만인제사장직을 구분하고 있다.

목사는 말씀사역에 집중하면 된다. 그래도 마이크를 들고 있기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목회는 가벼워진다. 장로들이 목회영역에서 도와야 되는데 특별히 재정문제에 관여를 많이 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한국교회공동체는 없어졌다.

예수가 머리가 되고 중심이 되어야 예수공동체가 신비성과 섬김과 나눔과 사랑이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재정·인사·행정문제는 성도들과 1/N이 되어서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참여하고 있다.

단, 목사가 설교하고 가르치고 성도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낸다.

향후 목회 영역에 장로를 뽑으려 한다.

성경을 잘 가르치고, 은사가 있다면 설교도 나눠서 할 수 있다.

부목사도 담임목사와 동등한 장로의 한 사람이다.

앞서 목회했던 성터교회에서는 당회장이 다른 장로, 제직회장도 다른 분, 공동 회장도 다른 분이었다.

그리고 이분들이 회의를 주관했다. 담임 목사가 쥐고 가야된다는 주장 내지는 이렇게 하니 복잡하다며 불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동호 목사의 <생사를 건 변화>에서 ‘목사는 전문가다’라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본다.

교회를 전문가가 해야 된다는 것, 혹은 전문가 의식. 이것은 자본주의 의식이다.

자본주의 의식이 아닌 '은사가 무엇인가'를 통해 진정한 은사로 구분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제안 - 권력의 분산

한국교회는 체질상 개교회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복수지도체제다.

복수지도체제란 말은 교인들이 뽑은 지도자들이 동등한 권한을 갖고 역할분담을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재정이나 행정에 대한 권력 집중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도자 본연의 임무, 말씀으로의 다스림, 성경의 가르침, 설교를 할 일이다.

나머지 일들인 구제·재정·행정은 집사들이 해야 될 일이다. 성도들과 권력을 나눠야 한다.

‘교회 안에서 목사란 누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분명해야한다.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장로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목사와 장로가 같다면 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가?' 이것을 깊이 생각할 때 한국교회의 개혁은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목사가 교황처럼 군림하고 장로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재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성서에 집사들이 구제를 맡아왔기에 재정은 집사들의 역할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재정과 가르침이 집중화되면 부패한다는 것이다.

<2008.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