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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복성에 대한 단상
기독교와 교회에서의 기복성을 부정하고 타기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되며,
이기적이니, 탐욕적이니, 반 사랑적이니 하는 표현으로 무시하거나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단지, 복 받기를 경쟁적으로 하는 것으로 비춰지거나 자신의 유익과 다른 사람의 상대적인 불이익이 전제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다른 사람이 가져 갈 복을 뺏어 오는 결과로써 인식되는 것은 일종의 복의 독점욕이리라.
물론 이렇게 하여 일어난 축복이란 것도 다 하나님의 영역이고 능력이니까 우리가 신경쓸 게 못 되겠지만 이런 것들은 계속되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진실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결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냥 받아 들이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뜻을 얻으나 못얻으나 그저 감사하는 일이 사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복을 기도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 이전에 "복이란 무엇일까?"
예수가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장에서 말씀한 것을 상기해 보면 복이란 것의 개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경적으로 보면, 피조물들이 조물주에게 무엇인가를 기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니, 심지어는 복을 구하지 않는 것, 기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나쁜 일이며 악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미워 하시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필요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일종의 오만이다.
신의 도움이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이란 일체 필요가 없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교만이다.
그러므로 복을 구하는 것, 복 받기를 기도하는 것, 뭔가가 나아지기를 기도하는 것, 건강을 되찾게해 달라는 기도들 역시
'겸손'의 증좌이다.
구하는 것 자체는 인간의 기본 자세이지만, 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이미 파생적인 문제이다.
합격이건 사업성공이건, 평온 무사한 일상이건, 건강이건 간에 기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08.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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