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이야기

흔한 생각과 취미 2005. 4. 19. 15:16

시간의 간이역에


만추를 싣고


들어온 기차는


고향을 찾는 도시인을


내려 놓는다


소란한 만남을


가지고 떠난 자리에


웃음을 기다리며


서있는 늙은이


만지작 거리는 두손에는


작은 노을 숨쉬고


건네줄 피붙이는


어디를 도는가


기차는 느린 걸음으로


빠져나가 가까워지는


어둠으로 달리고


그림자는 길어지는데...



벤치에 놓여 있는 감 하나


가지 마다엔 노을이 달려있다.

.........................................................................................

이 감은 가을과 기다림, 헤어짐, 남겨 짐의 감인가 보다.

동요, '나뭇잎 배' 같은 약간은 허전한 단조의 느낌을 주고.....

어릴 때 에도 단조를 깔고 있는 노래들이 좋았다.

오빠 생각, 섬집 아기, 과꽃, 가을, 기러기......

그러나 감은 나에게 한번도 그런 느낌을 안 주었는데....

나에게 있어서 감은 부지런함, 새벽, 투명한 빛, 달디단 물 덩어리로

상징 된다.

그리고 약간은 도톰 하고, 풍요스러운 빛깔과 은은한 향기를 뿜어 내는 꽃...

초등학교를 수원에서 다니다가 여름 방학 때면 고향 집엘 간다.

그 때의 감나무엔 적당히 굵어진 감들이 달려 있다.

장중감, 대접감, 쪽감 등의 감나무들이 동네엔 골고루 있는데,

밤 새 많은 감들을 떨구어 놓는다.

비나 바람이라도 많이 불면 참 많이도 떨어 진다.

워낙 감을 좋아해서 날이 밝기도 전인 새벽에 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선

감을 줏으러 감나무들을 찾아 다닌다.

그 감 들 중에 혹시 일찍 익은 연시라도 있으면 정말 땡 잡은 기분이고,

땡감들을 서늘하고 어두운 항아리에다 보관해 두면 며칠 지나면 물렁물렁 해 진다.

이렇게 하여 익혀서 먹으면 제법 달콤 하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감나무의감을 줏어서 먹어보면,

껍데기는 두껍고 살도 적고 단 맛도 별로 이지만,

어릴 적엔 그렇게 맛있었다.

방학 초기엔 땅 바닥에 흔하던 감 들이 방학이 끝나 갈 무렵엔 참 드물어 진다.

그때엔 경쟁자들이 생겨서 다른 아이들이 줏어가나 하고 생각하고

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후래쉬를 들고 감을 찾으러 다녔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나무가 스스로 감을 떨구었고 스스로 지켜 내는 것을 알아 낸 것이다.

자신의 종자를 잘 퍼뜨리기 위해 불필요 하게 많은 것을 줄여 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감나무를 보아도 영양이 부족하거나 늙으면씨가 엄청 많고,

영양이 풍부하면 씨의 숫자가 확실히 줄어 든다.

우리 것도 칠 년 전에 씨가 8-12 개나 있어 종자가 나쁜 것인가 했지만

거름을 많이 했더니 씨가 없거나 네 개 이하로 줄어 들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감은 먹을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그 잎도 참 예쁘다.

윤이 반지르 하고, 단풍이 빠알갛게 곱게 들면, 정말 곱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감나무는 사시사철이 다 예쁘다.

겨울의 시골엘 가 보면

하늘을 향해 울퉁불퉁 벋은 가지들과 겉 무늬들은 또 얼마나 예쁜지.....

봄에 새 혀 처럼 새순이 나고 도톰한 꽃 잎이 날 때는 또 어떠 한가?

그 연한 연두색들.....온 하늘을 연두 빛 안개로 덮는다.

윗 시의 감은 사람 마음을 맑게 해 줘서 좋다.

그리고 나의 감은 보아서 좋고, 향기가 나서 좋고, 맛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