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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불꽃 놀이와 사람 구경 길...
홑겹 트렌치 코트는 내가 혼자 밤을 헤맬 때 입는 유니폼인가 보다.
이번엔 다행인지 불행인지 혼자만의 유영이 아니라 사람의 물결 속을
헤엄쳤다.
엄청난 구경꾼들이 몰려드니 아예 차는 갖고 오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정보를 듣고지하철 영등포구청 역 앞에다 차를 세워 두고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하여, 표를 끊었다.
애초부터 여의나루역까지 가지 말고 여의도 역에서 내려 걸어갈 것과,
왕복표를 끊는 것이 편할 것이라는 역무원의 말을 따랐다.
마침 대봉이 맛있어 보여 20개 짜리 상자 하나를 샀다.
그러나 나의 이런 행각은 쌀 한말, 새끼줄에 묶인 닭 한 마리와 달걀 한줄을
싸들고 서울에 올라 와 만원 버스를 탄 60년대 시골 아저씨의 생각이 증명이 되었다.
표 두장을 끊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세계로 내려갈 때만 해도
화려한 불꽃구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기충천해 있었다.
그러나 플랫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감 상자를 수평으로
들 수 없어 수직으로 들어야한 한다는 상황에 직면하고는
슬슬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다행히 세 정거장 밖에 안되어서 다행이었지 더 멀리 갔으면 크게 고생할 뻔 하였다.
여의역을 빠져 나오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기다랗게 이어지고 있다.
인도엔 포장마차, 핫도그, 쥐포, 뻥튀기, 솜사탕, 뻔데기, 골뱅이, 엿장사 등이
늘어서 있어, 여의도 전체가 하나의 노점상 단지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 사이를 뚫거나 뒤를 따라서 여의나루역까지 감 상자를 들고 가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다.
구불구불 돌아서 결국 여의나루에 도착하여 한강시민공원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개인들이 폭죽 쏘아올리는 소리와 빛이 요란하다.
싸구려 중국제 폭죽이라서 화약냄새가 너무 역겹다.
평소에 시민공원에서 못 터뜨린 폭죽을 오늘은 맘 놓고 터뜨리려는구나 하고
편안히 맘 먹기로 한다.
하긴 불편한 맘은 나에게만 손해를 준다. 어쩌겠는가?
한강공원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잡동사니 음식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사람의 물결을 헤치면서 63 빌딩 쪽을 향해서 앞으로 앞으로......
드디어 63빌딩 앞, 시민공원 주차장 입구까지 도달하는 것에 성공!
원효대교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만큼 많이 모인 사람들...
만나기로 한 사람들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내 봐도 소통이 안 된다.
하다 하다 안 되니 포기할 수 밖에....
포기야말로 평정의 어머니인가?
집착은 불편, 들끓음, 불안정의 어머니인가?
난 평정의 어머니를 택하기로 하였다.
오른쪽의 공연무대에선 알 수 없는 외침과 몸놀림이 멀티비젼을 통해
번쩍거리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흘러 내려간다.
흘러내려 가서는 그냥 흡수되듯이 어둠에 잠겨 버리고 만다.
그래, 뻘에 스며들듯이 다 빨려 들어 가는구나.
불꽃이 쏟아지는 하늘 한 켠- 불꽃의 얼굴과 불꽃의 목소리를 듣다.
8시 10분이 좀 넘어간다.
여기 저기서 여덟시가 넘었는데, 왜 시작을 안하나 웅성거린다.
그 때......
동남쪽 방향, 공연무대 쪽이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탄성......
이야~~~와아~~~
그리고 쏴아~~꽝꽝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비가 쏟아진다.
노랑, 빨강, 하양, 보라, 주황, 초록, 파랑색의 불이 꽃되어 하늘에서
폭포처럼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버려서는 흘러 내린다.
불꽃.....
국화꽃, 무릇꽃, 안개꽃, 해바라기, 파꽃, 연꽃, 씨가 된 할미꽃......
불비, 불 소나기, 이슬비, 가랑비......
불꽃의 폭포.....
불 안개......
불 나무.....
눈보라처럼 가루되어 흩어지기도.....
모래처럼 흩뿌려지기도.....
불꽃은 정말 별 모양을 하고 있다.......
터져서 확 피어서는 사방팔방 육십사 방위로 산산이 튕겨나가는 모양은
오각형의 별이다.
하늘의 별은 다섯모의 꽃을 닮아 오각형인가 보다 했더니
불꽃은 별을 닮아서 오각형인가?
불가사리의 다섯모도, 불꽃을 닮았나?
산호와 해파리, 말미잘의 촉수를 닮은 불꽃......
불꽃 속에 불꽃이 있는 것은 꽃 속에 꽃이 있는 겹꽃을 닮았다.
물이 흘러내리듯, 얼음 폭포의 얼음 녹아내리듯......
사람이 만든 물건 중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현란하고 순간적인 것은
아마 불꽃이 대표적인 존재일 것이다.
아마 순간적이기에 이렇게 현란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추하고, 사나운 모양들은 아예 끼어들 여지가 없어서도......
폭죽을 만든 사람들도 자신이 만든 폭죽이 꽃이 되고 비가 되어
저렇게 흐드러질 줄은 미처 몰랐을 거다.
소리가 저리 다양할 줄도......
모래사장에 내리는 빗소리 처럼.....
양철 지붕에 내리는 빗소리 처럼.....
낙엽위에 내리는 눈 소리가 될 줄은 몰랐을 거다.
또 천지를 소리로 삼켜버릴 듯 울리는 천둥소리를 닮을 줄도 몰랐을 거다.
우르릉 쾅쾅!!!!!
타다다당 탕탕!!!!
슈우욱~~~~쾅쾅~~~번쩍!!!!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지는 궤적 역시 화려한 에필로그 이다.
연기로 흩어지기 전의 그 궤적은 거의 한가지 색이다.
바로 오렌지 색, 주홍색......
그리고 흩어지는 연기 역시 잿 빛......
폭죽의 재나 모든 타는 것의 잔재는 역시 잿빛인가?
그래서 잿빛이겠지.......
사람들의 탄성과 즐거움을 삼켜버린 불꽃이 탄식처럼 긴 꼬리를 남기고
스러져 간다.
머리 풀어 헤친 수양버들 같은 긴 한숨을 토하고 스러진다.
오색으로 수 놓은 불꽃을 삼킨 까만 강은 무심히 소리 죽이며 흘러간다.
흘러가는 나의 감상 역시 또 덧없다.
돌아가는 길, 또한 장난이 아니다.
차길이건 사람길이건 사람으로 넘쳐 난다.
여의도 간선로를 빼고는 차로 꽉 차 있다.
골목과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서 여의도 역을 찾아 간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구청역 역무원 말대로 표 한 장을 더 사길 잘했다.
그러나 개찰을 하려니까 표를 뱉어 놓는다.
아까 새 표를 넣고 나왔군 하면서 코트를 펄럭이며 뛰어 넘는다.
만원 전철 칸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끼어 상자를 수직으로 들고 서 있으니
한 아가씨가 자꾸 옷을 내려다 보며 갸웃거린다.
감 상자를 보니 밑이 좀 젖어 있다. 이러다가 구멍이 뻥 나면 어쩌지?
세 정거장 밖에 안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은 올 때도 또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와서 감 상자를 열어 보니 스무개 중에서 일곱 개만
멀쩡하고 나머진 다 터져 있다.
성한 것은 골라서 따로 두고, 터진 감들은 따로 모아 체에 받쳐 놓았다.
터진 감은 이렇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옷을 보니 코트 아랫단과 바지 여기저기가 감물로 젖어 얼룩져 있다.
전철 안의 그 아가씨의 옷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웃음도 나고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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