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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싱잉커플스 30회 공연 후기
수 십 곡을 부른 주인공들은 말짱한데, 구경한 사람이 목이 쉬었다니 나 혼자서 생각해도 웃음이 저절로 납니다.
공식 연주가 끝났을 때 “앵콜!"을 워낙 크게 서 너 번 외쳤더니 금방 목이 푹 가라앉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덕에 종훈이 부자의 보기 힘든 듀엣을 보고 듣게 되었으니 목소리 값은 받은 셈이라서 뿌듯하더군요.
경쾌한 리듬을 타면서 익살 연기하듯, 흥겨운 대화를 나누는듯, 그리고 서로 지긋이 바라보며 정답게 부르는 노래 그림......
부자의 행복이 나에게도 전염되어 아직까지도 가슴이 훈훈합니다.
홍중이는 그걸 보고 들으면서 "역시 끼가 많은 재주꾼이야~" 하면서 감탄합니다.
나중에종훈이에게 들으니 자기가 대학 다닐 때 많이 부르던 "The great pretender" 라는 노래로써,
사랑에 빠져 자의반 타의반 뻥도 치고, 뻔뻔스러워지는 상황을 그린 노래랍니다.
마치 자신처럼......
탄생 34 주년, 서른 번째 정기연주회.
이 합창단이 줄곧해 오던 중증장애인을 위한 소망재활센타와 인도네시아 바탐의 극빈자를 위한 '새 희망학교' 교실 지어주기 지원을 올해에도 어김없이 실천하기 위한 “사랑 나누기” 가 테마라고 이사장님이 소개한 것처럼 여섯 개의 무대로 구성된 올해의 콘서트는 예년보다도 훨씬 짜임새가 있어 보였습니다.
나는 소설이나 희곡 시나리오 건 간에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억지로라도 그 틀을 부여하려 하는 좀 진부한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 콘서트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물의 구성을 네 가지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지요.
예를 들면 네 가지의 혈액형이나 地水火風의 사원소설,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사상, 춘하추동의 사계, 생로병사, 인의예지 등이니 그럴듯하지요?
올해의 서울싱잉커플스 콘서트는 여섯 무대라는 큰 기승전결로 구성된 것으로 보여졌으며,
매 무대 마다 나름의 작은 기승전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올해에는 어떻게 표현하나, 어떤 곡들로 구성하나, 어떻게 하면 청중들이 공감을 하게 할 수 있을까?”를 아주 밀도 있게 짜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스테이지 원에서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을 조용하고도 깊이깊이 찬양합니다.
누가 들어도 프롤로그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은은하게 문을 엽니다.
“모든 이들에게 은총을”, “은총과 축복의 마리아”., 흑인 영가 “여리고 싸움” 등은 이 연주회의 프롤로그와 같은 느낌을 주면서 청중들의 귀와 마음을 편안하게 끌어 들입니다.
나는 “제리코, 제리코....”를 반복할 때 무슨 소린 줄 몰랐는데 연주회 팜플렛을 보고선 “여리고”의 다른 발음인 것을 알고서 조금은 생뚱맞은 상상을 잠깐 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방송사에서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내 보냈는데, 어떤 보수교단에서 성경 구약에 언급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성의 주변을 빙빙 돎으로써 성을 무너뜨렸다는 것을 벤치마킹하여 그 방송사를 에워싸고 빙빙 돌던 때가 생각난 것이지요.
오늘 KBS 홀을 들어올 때 보니 KBS 새 사장 취임을 강하게 반대하는 노조의 살벌한 격문, 거친 구호 등이 곳곳에 붙어 있어 주변이 상당히 어수선하였거든요.
그 소용돌이의 가운데에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연주회를 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어떤 섭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듦니다.
소박하게나마 끝이 아름다운 해결을 위해 서로 노력하게 할 수 있는 연주회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009 년 서울싱잉커플스 연주회는 小雪의 겨울비와 살벌한 정치 구호를 딛고 시작되어 더욱 뜻이 깊었습니다.
스테이지 투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의 장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정과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친구이며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일 겁니다.
잔잔하면서 부드럽게, 그리고 길고 깊게 울려 퍼지는 친구 노래는 아주 각별한 차원의 우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 친구, 저 친구, 이 친구....’ 의 삼인칭 친구도 이인칭 친구가 아닌 ‘또 하나의 나“인 일인칭 친구입니다.
“ 긴 여름은 가고 새벽 비 내리더니,
푸르던 나뭇잎 하나 둘 내려,
그 몸 불태워 하늘 나르고,
하얀 재 되어 밤을 샌다.
밤 톨, 한 웅큼 옛 친구 생각,
친구여 또 여름은 가고,
찬 비 내리더니 푸르던 나뭇잎 또 하나 내려.......”
이 얼마 가슴 적시는 노래인가?
중간에 끼어 있는 글로리아로 친구와 연인들의 사랑에 희미해졌을 정도로 귀에 익은 유심초, 송창식, 최진희의 사랑노래는 청중들을 휘감았습니다.
사랑으로, 사랑이여, 사랑의 미로 들......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나는 사랑의 미로를 반주하고 간주하는 피아노 리듬의 도드라짐에 나름의 감탄을 맛봅니다.
스테이지 쓰리는 영화와 뮤지컬 속의 노래들로 구성되었는데,
한 마디로, “신비”라는 단어를 떠 올리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괜히 마음이 설레고 아련해지는, 기분 좋은 센티멘탈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아픈 듯, 나른한 듯, 어두운 듯, 적시는 듯.......
뭔가 묘한 기분을 들게 하였습니다.
“미션”, “내일을 향해 쏴라”, “씨스터액터” 등에 나왔던 음악들을 역시 기승전결에 맞춰서 순서를 정하지 않았나 싶은데, 내가 원래 음악적인 소양이 비전문적이라서 잘 모르겠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종훈이가 전에 썼던 대로 , “을”이 편하고 그에 속하는 사람!
스테이지 포는 앨토색소폰,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째즈 사중주입니다.
나는 째즈는 그야말로 음악을 그냥 귀와 몸에 맡기고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오는지, 얼마나 가는지를 따라가는 방법으로 단순하게 들을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그렇게 따라 갔습니다.
첼로인줄 알았는데, 소리가 너무 작고 낮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홍중이에게 이야기 하고 나서 나중에 팜플렛을 보니 바씨스트라고 써 있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여 종훈이에게 물어 보니콘트라베이스라고 하길래 '베이스시트'라고 읽어야 하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원래 악기 중에는 최저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에 사용한다는 이야기까지 듣고는, 늙어서도 배우는 게 많구나 하고 새삼 머리를 두드렸지요.(에구, 무식.....)
오늘의 드레스 코드는 블랙으로 정했나 봅니다.
유니폼도 까만색이고 스테이지 파이브 부터의 자유복장도 까만색이었지요.
겨울비 내리는 밤도 까매서 드레스코드를 정한 분의 선견지명에 감탄했습니다.
거기에다 라틴 코드를 겸함으로써더 절묘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피아노 반주자의 오른쪽 어깨의 십자가 그림에서도 느껴지는 라틴풍은 연주자와 관객을 보다 친숙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가 오늘 여성연주자들의 아름다움은 예년 어느 때 보다도 더 빛났습니다.
여성 독창이 남녀 중창으로, 그리고 합창으로 가면서 서로의 대비와 섞임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게 해준 스테이지였습니다.
자연계는춘하추동의 사계로 대별되고, 춘하추동의 본성은 生長收藏-나서 자라 거두고 감춘다- 이지만, 중간에 변화라는 化의 기전이 있는데 이 스테이지가 바로 변화하여 거두는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스테이지 식스는 역시 에필로그의 느낌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들을 때는 그동안의 아쉬움을 하나씩 모두 담아서 갈무리 하는 것 같았거든요.
우리 집엔 30 년 넘은 모란꽃 나무가 있는데, 모란꽃의 새순도 수양버들처럼 봄의 전령 노릇을 합니다.
매 년 2 월이면 어느 날, 출근 하려고 마당에 나갈 때 문득 자주빛 움을 발견하고는 "아, 겨울이 끝나는구나!" 하면서 아쉬워 하기도 하며 화사한 봄을 기대 합니다.
모란는 목련이 잎이 나기 전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과는 달리, 잎이 어느 정도 무성해지고 나서 아주 크고 풍성한꽃을 피우는데 호박벌이 꼭 날아들기 때문에 나는 호박벌을 모란벌이라고도 부릅니다.
향기가 없다는 고사는 거짓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집 모란꽃을 보고서는 조영남의 “모란동백”을 배웠는데 참 운치 있는 노래입니다.
“사공의 그리움” 은 내가 산에 올라가서는 흘러가는 강을 보며, 바다를 보며 꼭 부르는 노래입니다.
혹은 조두남의 “떠나가는 배”를 부르기도 하고요.
이 노래를 부드럽게 부를 땐 두둥실 떠가는 배를 보는 듯 하였지만 조금 있으니까 템포가 아주 빨라지면서 스스로 노를 힘차고 빠르게 젓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러한 느낌도 안겨 줄 수 있으니 서울싱잉커플스 합창은 확실히 뭔가 달라도 다름을 새삼 느낍니다.
내가 색소폰으로 가끔 불어 보는 노래 중에 하나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인데, 꾸준히 하지 않다 보니 잘 안 외워지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오늘 연주회의 최종점의 노래인 듯 싶었는데 나중에 팜플렛을 보니 내 짐작이 맞았습니다.
이렇게나 끊어질 듯 시작하기도 하는구나 싶어서 귀 기울여 듣고 있는데 결국에는 힘 있게 가는 것을 보고는 역시나 했지요.
그래서 앵콜을 몇 번 외쳤더니 바로 목이 쉬게 된 것입니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늙지 않는 여러분들에게 나도 실려서 늘 젊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행복한 초겨울 밤이었습니다.
이 밤을 선물한 서울싱잉커플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엔 혼자 가는 바람에 쿠키를 못 가져가서 서운하셨지요?)
(연주회가 끝나고서 고교동창들이 모여서 2차를 갔는데, 후기를 길게 쓰라고 강권한다.
내 글은 별로 재미도 없는데.....하면서도 작년엘 못 갔으니 올해엔 더 잘 쓰고 싶어졌다.
신의주 찹쌀순대국집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부부동반한 사람까지 수 십 명이 되는 걸 보고는그 왕성한 의리와 허기진 문화욕에 새삼 감탄하였다.
정회장 부부, 의종이 부부, 홍중이 부부, 광기 부부, 범술이 부부를 비롯하여 승현이, 지해, 형식 등과 재미있고 맛있는 한 때를 보낸 것은 금상첨화의 행복 누리기였다.)
<2009.11.23>
<친구 -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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