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을 보고
이 영화를 보러 개봉 첫 날인 2월3일 밤 11시에 아내와 새로 지은 단성사에 갔지요.
글자 그 대로 “블랙 코미디 영화” 의 진수를 보여 준 영화라는 것에 바로 동의하게
합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만든 임상수의 정신세계나 그 이후 성장도를 알게 해 주는
영화 입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영화도 이 정도 수준이면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결코 꿀리지 않을
것이며 감독이 계획하고 있는 해외 영화제에 출품되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재판부가 가위질 해 잘라 낸 부마항쟁, 장례식과 김수환 추기경의 추도사
등의 다큐멘타리 장면이 너무나 아깝고 아쉽고 화납니다.
“엔까와 여자를 좋아하던 사람으로 묘사되어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 했다”
박지만의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의 주요 이유라고 합니다.
난 이 자의 "아버지 명예훼손” 거론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마약에 빠져 창녀촌에서 폐인의 상태에서 발견 되는 등 놀라운 망나니짓을 다해
지 아버지와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면 장사로 만들기가
일쑤이다가 우렁이 색시 같은 변호사와 결혼 하더니 영화를 보지도 않은 채
누군가의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명예훼손” 운운 하다니......
그 뻔뻔함과 추진력에는 역시 같은 유전자가 작용하는가 싶어 존경이 갑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아니, 보고 나서도
“예술과 상상은 자유지만 사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잖은 사람들의 도사 연 하면서
동그란 네모를 그리자는 썰 앞에는 혀까지 움츠려 들고.....
또, 상상력과 실제를 얼마나 잘 섞는지, 얼마나 허구를 사실로 잘 착각하게 만드느냐에
따라서도 영화는 그 수준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기도 하는 건데,
“삽입한 다큐멘타리 장면으로 인해 보는 사람들이 실제와 허구를 착각하게 만든다” 는
근엄무쌍한 판사님들을 보고는 이 영화가 얼마나 훌륭한 영화인지를 웅변으로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필름 자르기 기능사를 자처하고, 그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판사들에게도
가위질 명장 칭호를 얹어 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서 직업에 따라 사람들이 존경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고
경계해야 할 착각인지 알게 되었구요.
거리를 깨끗하게 해 주는 환경미화원은 눈비 오고, 몹시 추운 날엔 보자마자 존경심과
고마움이 듭니다.
그러나 이제 판사는 그 판결을 보고 자꾸 음미해 봐야 존경하거나 경멸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진리에 대한 재발견 아닐런지요?
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여자들이 “노가리는 불알 달 자격도 없는 놈, 육시럴 놈......”
하며 연극 대사를 신나게 외치면서 자신의 지성과 예술성, 기억력을 유감없이
발휘 하면서 연극은 연극일 뿐이라면서 “프로 이상의 실력”이라고 히히덕 거렸었지요.
“나락에 떨어져 힘겨워하는 견제 ‘야당’을, 즉 ‘약자’를 힘껏 짓밟으며 ‘강자’인 집권세력에
아부하고 세 확산에 힘쓰는지 모르겠다” 는 이계진의 영화 시사평을 대하면 도대체 자기의
지적능력을 이렇게 하천하게 만드는 기회와 방법은 또 얼마나 다양하며, 그것을 드러내는
일에 이토록 숨겨진 재능이 있다는 게 감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저주와 비열함을 자랑하는 데에 있어서 전여옥이가 서클링 식 사고의 전형이라면,
이계진은 터널 식 사고의 전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이 영화의 토막들과 나오는 인물들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기억나는 대사들을 떠 올리고 인용하면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왜 이 영화가
블랙 코미디 영화 인지를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1. 젊은 아가씨들이 맨 가슴을 드러내 놓고 수영을 한다.
윤여정이 또 다른 뚜쟁이 비슷한 여자와 한석규(중정 의전과장)에게 어른의 쎈
정력에 감탄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한석규에게 욕설 섞인 제지를 당한다.
2. 삽교천 방조제 완공 기념행사에 다녀오는 헬기 안, 박정희 차지철 김계원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들... 자고로 배꼽 아래 이야기는 흉이 아니라는 박정희의
일본어 이야기......
3. 간간히 드러나는 차지철의 오만방자- “비서실장은 술 상무, 각하의 외로움을
달래 드리는 것이 임무다......”, 김재규 직속 부하인 한석규에 대한 폭행 등 ...
4. 차지철의 잔인성-“캄보디아는 100만 명인가를 죽였다는데, 우리는 만 명만 죽으면
조용해 진다”
5. 박정희의 핵에 대한 생각- “파키스탄의 부토는 국민이 풀뿌리만 먹고 살아도 핵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우리도 핵이 있어야 하는데......”
6. 연회장 풍경- 나중에 박정희의 수발을 들게 되는 한 여자는 한석규에게 자기는
쿨 하다면서 한석규의 위협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애교를 부린다.
엔까 잘 부르는 가수와 여대생을 섭외하고 할아버지는 좌우 양 옆에 하나씩을 두고
술을 마신다. 가수는 일본 노래를 기타 치며 부르고 김계원은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다. 박정희는 여대생의 하얀 손을 양 손으로 주무르며 눈을 지그시 감고서 노래를
흐뭇하게 감상한다.
7. 중정 조사실 풍경- 유신 반대자들에 대한 폭력과 고문의 현장이 몇 개 묘사되며
어떤 조사실에는 윤여정과 다른 뚜쟁이가 책상 위에 무릎 꿇려 앉혀져서
“입조심” 협박을 받는다. 어떤 지하 차도 옆에서 내려져서 “여기가 어디야?” 하면서
무서워하고 황당해 한다.
8. 중정 요원들이 재일 동포와 한국 형제의 상봉 연락 생활비 수수 등을
귀걸이 겸 목걸이 반공법을 잠입 탈출, 회합 통신, 고무찬양, 조직결성 및 자금 수수
등에 적용하는 이야기 들......
9. 궁정동 요리실 풍경- 앞으로 벌어 질 참극에 대해선 전혀 짐작도 못 한 채 요리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10. 뚱뚱한 궁정동 관리 총책임자의 오리무중의 태도-김재규의 거사를 짐작도 하고,
육군참모총장의 궁정동 방문의 의미를 알고, 김재규가 권총을 뒤로 숨기고 연회장을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고 나서
한석규에게 옷 좀 갈아입으라고 권하기도 하고, 자신은 어떤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기도 한다.
11. 김재규가 바지 가랑이 한 쪽을 완전히 벗고 똥 누는 장면- 그렇게 힘과 애를 써도
나오지 않는다.
“에이 썅! 되는 일이 이렇게 없나!” 하면서 화를 낸다. 여기쯤에서 ‘김재규가 만일
대변을 잘 봤으면 참극을 벌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도 들게 한다.
12. 동기 중에서 대령 계급장을 제일 첨 달았고 장래의 육참총장 감이라는 김재규의
칭찬을 듣는 민 대령은 여기서 아주 냉정하고 충직한 심복으로 나온다.
나중에 김재규가 잡히고 연락이 안 되는 것을 알고 한강변의 한 주황색 공중전화에서
아내와 딸과 통화 하면서 사소한 일상사들을 당부한다. “엄마 말 잘 들어~”
13. 중정 소속 운전수는 “운짱 한테 무슨 총을 쏘라는 거야” 하면서도 명령을 따르고,
비번인 한 직원은 좁은 방에서 처자를 옆에 두고 곤한 잠을 자다가 비상 전화호출을
받고 나가서 본의 아니게 가담하여 확인 사살 역을 한다.
14. 한석규는 의전과장이며 여자 발탁과 뒤처리 하는 역을 하는데 늘 껌을 씹고 다니며
거사 시에 자기의 해병대 동기 친구, 집사람까지 왕래하고 있는 경호실 과장을 죽이지
않으려고 갈등하지만 목줄에다가 총을 쏘게 되어 피투성이로 만든다.
15. 거사 장면- 차지철은 오른쪽 빗장 뼈 아래 부분을 맞고 화장실로 도망 가지만 나중에
난사 되어 죽는다. 박정희는 오른쪽 가슴이 관통되어 피를 엄청 흘리면서 두 여자의]
부축 속에서 죽어가다가 총을 바꿔 온 김재규에게 머리통을 근접 사살 당한다.
할아버지는“ 이게 무슨 짓이야....?” 하면서 어안이 벙벙한 채 총을 맞았다.
김계원은 벌벌 떨고 여자들에게 각하를 맡기고 자기는 우왕좌왕 한다.
16. 영문도 제대로 모르는 채, 민간인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이유로 몰라 보는
위병들로부터 조롱당하는 육참총장...
17. 육본에서 긴급히 소집된 비상 국무회의- 대통령 유고 시엔 총리에게
승계권이 있다고 헌법에 있다, 아니 육법전서에 있다면서 우기는 장면,
‘유고’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 유고란 무고가 있다는 뜻이라는 사람...
18. 박정희 시신을 확인하면서 묵념하고,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된 최규하 에게
일제히 “충성!”을 외치는 국무위원들...
19. 박정희 시신의 국부를 어떤 장군이 황급히 자기 모자로 가려 주는 장면
20. “야수의 심장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라는 김재규, 그를 고문하는 장면...
그리고 에필로그......
윤여정의 목소리가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한 후일담이 이어진다.
찬송가를 목청껏 부르며 사형 당했다는 한석규, 조용히 갔다는 민 대령, 불기소 받은 이들,
식당에서 비상호출로 가담하게 된 요원으로부터 목숨을 애걸하고 살아서 다음 정권의
경호실장이 된 사람.... 등이 읊어지고 명문이라는 김재규 최후 진술의 사실 여부는 알아서
구해 읽고 판단하라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마지막으로 장중한 멜로디의 노래가 나오며 나오는 사람들, 만든 사람들 이름이 나오며
완전히 끝납니다.
바로 이런 영화 입니다.
무슨 명예훼손 인지, 모독인지......
난 솔직히 오히려 박정희의 인간적인 면에 더 친근감이 가기도 하더군요.
영웅호색, 전형적인 마초형인 할아버지, 참한 과부라도 붙여 주고 싶다는 측근들.....
그 절대권력과 쓰러진 권력자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이야기들을 좀 풍자하고
웃자고 한 영화가 무슨 음모론이라는 말인지 도대체가 이해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금의 소란들을 보면 그 시대가 더 오래 갔으면 얼마나 많은 피가 더 흘렀겠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고문당했을까 끔찍한 마음도 역으로 들어 갑니다.
이 두려움은 박정희 뒤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양자와 같은 전두환이
광주에서 국민을 학살하고 수많은 민주 인사들을 죽게 만들고 억울한 국민들을 양산하고
모든 식구들이 다 더러운 재물을 쌓은 것으로도 증명이 되었지만......
블랙코미디는 항상 뒷맛이 가볍지 않고 무겁습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 입니다.
거사 전 인가의 (뒤 인가) 궁정동 안가의 무심한 복도와 방의 분위기들...
약간 어둡고 따뜻한듯하나 좀 허전한 그 느낌이 바로 이 맛 같습니다.
'흔한 생각과 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푹 푹 찌다 쏟아 지는 비 소리를 들으며 (0) | 2005.04.18 |
---|---|
동무 라는 호칭(♬) (0) | 2005.04.18 |
알피네 사람에 대한 새해 덕담 (0) | 2005.04.18 |
아무 것도, 여행도 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듣고... (0) | 2005.04.18 |
휴대폰이 다시 생긴 날 (2) | 200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