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를 걷다- 팔봉산 등산

흔한 생각과 취미 2005. 4. 18. 11:16

따로,
그리고 같이.....

리냐드님의 백지 컨셉이 성공하였습니다.
무작정 떠나기라는 백지에 날비가 가세하고
필이 산을 추천하고 아이거 방장이 벌천포를 포함하여
그림을 그리니 이렇게 멋진 여행의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같이 떠날 수는 없었기에 아예 포기하고 있다가
팔봉산 사진과 안내를 보고 맘을 굳힌 후,
날비가 같이 한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뒤 늦게 열을 내는 걸
보고선 토요일 아침부터 좀 들썩거리더군요.

토욜 저녁에 나도 일욜에 갈지 모른다는 운을 아이거에게
띄워 놓았는데 밤 11시 넘어서 벌천포라는 이상한 이름의
포구에 자리잡고서 논다는 문자를 아이거로부터 받고는
아침에 일어날 수만 있으면 떠나리라 하고 결심하였지요.

일찍 눈 뜨이면 가고, 늦잠을 자면 쉬리라.....
아침에 눈을 뜨니 다섯시 반이 넘어 갑니다.
슬슬 일어나서 준비하니 여섯시 여...
아내는 무리해서 밤에 오지 말고 하루밤을 자고
새벽에 출발해서 오라고 권합니다.

서부 간선도로정체를 피하기 위해머리와 발바닥을 바쁘게 해서

서산에 도착하니 아침 8시가 조금 넘음..

뜻하지 않게 발목 잡혀 당진에서 합류하여 길 안내 겸
이번 등산 안내를 맡은 당진의 아그님과 통화한 끝에
난 팔봉산 주차장으로 직접가기로 함.
서산에서 벌천포까지 거의 한시간 정도 걸린다고 함.
중간에서 길을 묻고 엉뚱한 임도로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기도
하는 둥하여 주차장에 9시 쯤 도착..

벌천포의 본대는 이제 일어나서 식사 준비하기 시작한다고
하므로 내가 먼저 천천히 올라가기로 함.

9시 20분 경 등산 시작...
길은 1,2봉 안부 까지는 계속 완만한 오르막..
3봉이 정상이라고 하는데 어디까지 가면 알피네들이
따라 와서 합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뚜벅뚜벅 올라 감.

10시가 채 안 되어서 1,2봉 갈라지는 안부에 도착하여 잠시 망설임.
되돌아 오기로 한다니까 하산길에 올라갈까, 막바로 올라갈까
하다가 혹시 하산길에 몸이 지치면 맘 약해질지 모른다
생각하여 갔다 오기로 함.
얼마 가지 않아 덩어리 바위로 이루어진 1봉 정상에 도착..
여기 저기 살펴 보다가 꼭대기까지 기어오름..
예전엔 웬만한 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뛰어 넘었는데
이제 나이드니 우선 불안감 부터 듭니다.
내 순발력과 순간 착지력이 내 맘을 따라 줄까하는
지레 걱정이 듭니다.
그래도 두어번을 뛰어 넘고 긴 높이를 끌어당겨 몇 구비
올라가니 온 땅과 바다가 다 한 시야에 들어 옵니다.
최정상이라는 삼봉의 우뚝함이 탐스러워 보이고
270도 정도 시야의 바다, 90도 정도의 뭍과 산.....
뿌연 바다물과 섬들, 회색빛 갯벌, 모 내려고 갈아서
물 잡아 놓은 논들, 파아란 마늘 밭...
팔봉산은 1봉 부터 만나야 이 산의 진미를 알 수 있을 듯...

날씨는 아주 쾌청하고 바람이 참 시원합니다
모든 나무들이 이제 연두빛에서 막 벗어나 초록 빛깔을
띕니다.
길 가에선 제비꽃과 작은 붓꽃들이 산 손님들을 반깁니다.

다시 안부로 내려 오니 10시 40분 정도.
길이 위험하니 천제사 쪽으로 3키로를 돌아서 가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쉬엄 쉬엄 다시 오르기 시작합니다.
중간 중간에 좁은 철 사다리가 놓여 있어서 현재에는

위험도가 많이 줄었지만 전에는 좀 위험했을 것 같더군요.
중간에 용굴이란 7 미터 정도되는 굴을 만났습니다.
이름이 굴이지 약간 넓은 바위 틈이더군요.
그래도 굴이란 이름 답게 얼마나 서늘한지요.
깔따구인지 모기인지 떼를 지어 사람들을 놀래 줍니다.
모기가 용을 낳은 건지,
용이 모기를 낳은 건지.....
실없는 생각을 혼자서 하면서 2봉에 올랐습니다.

밑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약수를 받아 마신 탓인지
땀을 외부로 잘 배출하는 옷들 때문에 배의 체온을 빼앗겨서
그런지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며 출력예감이 자꾸 듭니다.
서늘한 배를 가끔 따뜻하게 쓸어주면서 요동을 잠 재웁니다.
손에 오이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감히 베어 먹을 엄두를
못 내고 더이상 물을 마시기가 두려워질 정도입니다.

그럭저럭 팔봉산 최정상인 해발 362 미터인 3봉에 오르다.
1봉에서 본 것 보다도 더 멀리 더 많이 보이는 바다와
섬들이 참 아름다웠고 약간 안개가 낀 것 같아 신비감마저
듭니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최정상 답게 정상 주위가 깨끗합니다.

아이거와 전화하니 이제 팔봉산 주차장에 들어 선다고 함.
약 11시 반 정도 되었을까...
일단은 더 꾸역꾸역 가기로 하고 팔봉을 향해서 나아감.

철늦은 진달래마저 이미 져서 땅에 흐트러져 뭉개지고
녹아가고 있는데 그 빛이 보랏빛입니다.
피멍이 풀릴 때 보랏빛이 되던데, 진달래도 져서 오래되니
저리 됩니다.
참 그러고 보니 우리집의 모란꽃도 그렇더군요.
하릴없이 약간의 비감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비어 감을
느낍니다.

6봉 정도 되는 곳에 산불 감시 초소 같은 게 있어 들여다 보니
쓰레기만 널려 있음..

7봉에 이르니 왼쪽으론 서태사 0.3km, 오른쪽으론 8봉 0.4km로
적힌 이정표가 나옵니다.
팔봉산에 처음 왔으니 서태사를 구경하자는 생각만 들었다가
서태사를 찾기 시작하자 볼일 생각이 나기 시작..
그러나 꽤 많이 내려와도 서태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산객 들에게 물어 보니 7봉에서 얼마 안 떨어졌다고 함.
그냥 내려가서 알피네를 기다릴까 하다가 서태사를 다시 찾아
거기서 기다리자고 맘 먹고 다시 거꾸로 올라감.

고압선 철탑을 다시 지나 드디어 서태사를 찾음.
7봉에서 내려 오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되는 것을
왼쪽만 생각하면서 찾다가 그냥 지나친 것입니다.

서태사를 들어서니 기와가 아닌 스레트 지붕의 작은 암자입니다.
태극기와 절 표시 만짜 깃발이 펄럭입니다.
바가지 들고 다니는 아주머니와 스님에게 합장하여 인사하니
비글 숫놈이 꽤나 친숙하게 굽니다.
전에 기르던 맥스와 샐리 생각이 나서 한참을 예뻐해 줬지요.
시원한 물을 맘껏 마시고 스님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참 편안하더군요.
스님의 표정도 순해 보이고, 무엇보다도 시골 산 속에서
한가하게 사는 사람의 행복이 보였습니다.
평상에서 마르고 있는 고사리와 취나물, 절 주변의 머위..
일인 듯, 놀이 인듯 풀 뽑는 스님의 한가한 손놀림...
큰 나무로 둘어 싸여 그늘과 바람이 서늘하여 참 편안했습니다.

서울이나 인천에 어쩌다 가보면 너무나 복잡하고 답답하다는
이야기, 서태사는 산신제를 지내던 절이다, 지금은 개인 절이고
신도 수 늘일 욕심도 없으며 먹고 살만큼의 신도수 이다...
비글은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지만 복실이란 저 놈은 자꾸
짖는다.....
하산 길을 물어보니 1.2k만 내려가면 큰 길 나온 단다.
버스를 타거나 아무 차나 세우서 태워달라 하면 잘 태워 준다...

한참을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중에 아이거의 전화가 옵니다.
길을 잘 알으켜 주고 조금을 기다리니 무애 향기 향수 아그가
절 입구로 내려 옵니다.
조금 있으니 날비가 비틀비틀 하면서 다 탈진한 모습을 하고는
가슴에 안깁니다.
아이거 리냐드님 팰킴과 그 덩달이들이 속속 도착하니
절이 다 들썩들썩합니다.
반갑게 악수하고 포옹하고.....
날비는 발목 구두를 신고서 엄청 고생한 듯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쌩쌩해 보였구...
아무튼 따로 떨어져 산에 올랐다가 산중에서 만나니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따로하면서도 같이 한 등산이었습니다.

하산길은 아주 평탄 하여 쉽게 내려 감.
콩과 팔, 기장, 검은쌀, 마늘쫑, 약주, 들기름을 가져 와서
파는 아주머니 들을 만나 약주를 삽니다.
구불구불 산길 겸 농로를 한참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시골길을 얼마만에 걸었는지...
참 평화롭습니다.
팰킴 덩달이가 삘기, 전라도 말로는 삐비를 몇 개 뽑아
나눠 줍니다.
오랜만에 씹으니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잃어버린 그 맛을
생각키웠으나 옛맛이 떠 오르지 않아 좀 애석하였습니다.
그래도 녹아 없어질 때까지 오래오래 껌처럼 씹었지요.

도중에 생강을 저장하던굴에 눈 길이 자주 갑니다.
올챙이들이 바글바글 신나게 헤엄치는 웅덩이와 예쁜 새 집과

꽃잔디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논길 밭길을 걷다 보니
나오지 않을 듯 하던 차 길이 나오더군요.

일행 중에선 향기가 용기가 젤 쎄고 쑥스러움을 젤 잘 이깁니다.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워서 주차장까지 두 사람만 태워 달라고
부탁하여 날비와 내가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갔습니다.
운전하시는 분이 이 쪽 분이라서 그런지 생강 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는 이야길 해 줍니다.
그전엔 생강이 무척 비싸서 생강굴을 많이 만들어 생강을
꽤 많이 저장하였는데 중국 생강이 들어와 이제 생강 농사를
안 짓는 답니다.
여기에 와서도 우리 것이 밀려나는 것을 또 보게 되어
맘 한 켠으로 울적하였습니다.

주차장에 오니 차들은 안전하게 잘 있었습니다.

<2003년 서해 팔봉산 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