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지식인의 두 얼굴(펌)

기본카테고리 2006. 1. 14. 12:19

저는 지식인과 지성인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주관적인 입장입니다)
지식인: 자신이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
지성인: 자신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

아랫글은 "지식인의 두 얼굴"이란 책의 서평입니다. <2006.1.14 일 한토마>

그는 33세의 나이에 23세의 테레즈를 연인으로 삼았다. 그는 “그녀에게 눈곱만큼도 사랑을 느낀 적이 없다”며 “그녀로부터 충족된 욕구는 순전히 성적인 욕망이었을 뿐 그녀 개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천하고 무식한 계집종”이라며 “글은 물론 시계도 볼 줄 모르고,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른다”고 조롱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외출한 적도, 다른이와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없었다.

그는 “아이 양육과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평소 역설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활과 주장은 달랐다. 그는 테레즈가 낳은 아이에게 성도 이름도 주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내다버려야 한다고 힘들게 테레즈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로부터 얻은 4명의 다른 아이도 마찬가지로 처분했다. 그는 자신이 버린 아이 5명의 생년월일을 기록하지도 않았고, 그 아이들이 훗날 어떻게 됐는지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의 이름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프랑스의 대표적 교육사상가로, 인간성의 존엄함을 역설하며 이성과 지성의 해방을 주장했던 계몽주의자, 바로 그 사람이다.

책은 위대한 명성 뒤에 가려진 지식인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뉴스테이츠먼’ 편집장을 지내며 ‘런던타임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기고해온 언론인 폴 존슨은 “지식인을 조심하라”며 “인류의 지도자이자 도덕적 스승으로 자부해온 ‘그들’의 도덕성은 누가 평가하느냐”고 되묻는다.
저자의 비판대에 오른 사람은 다양하다. 공산주의 사상의 대부 칼 마르크스,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 작가 헤밍웨이, 철학자 러셀, 실존주의자 샤르트르, 소설가 조지 오웰 등 이름만 대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저명한 사람이 줄줄이 ‘단두대’에 오른다.
저자는 “자본가의 불법행위와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마르크스도 집안 청소와 요리를 도맡아 했던 가정부에게 동전 한푼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 그의 거짓말 사례를 제시하며 “습관적으로 거짓을 일삼던 못믿을 사람”이라고 평한다. 또 “논쟁을 즐겼다는 철학자 러셀은 뒤돌아서서 저주를 퍼붓던 망상증 환자였고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자였으며 톨스토이는 사창가를 드나들면서도 ‘여성과의 교제=사회악’이라 주장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유명인사라 해서 도덕적 예외가 될 순 없다”며 “그들이 솔직해 보이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경고한다.

<주간조선>

일본의 한반도 지배 은혜론에 대한 반론-한상범 교수의 한승조 비판(펌)

기본카테고리 2006. 1. 12. 18:55

한상범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는 기자와 만나 미리 준비된 반박 글을 내놓았다.

A4용지에 빽빽하게 타이핑된 한상범 교수의 반박문에 친일청산의 의지가 담겨 있는듯 했다.

다음은 한상범 교수의 반박문 전문.

친일파의 일제지배 축복론의 실체를 벗겨보면

한승조가 일본 우익잡지 ‘정론(正論)’ 2005년 4월호에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식민지화를 긍정하고 일본제국주의가 당시에 우리 자매인 여성들에 대한 일본군대의 성노예화한 것을 문제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나아가 한국 안의 친일파 비판은 좌익·용공·친북편에 서는 잘못된 행위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한 행위는 현재 진행되는 과거청산 추진에 의도적으로 제동을 거는 친일파의 반발이고 방해전술의 하나다. 그러한 억지주장의 허구를 벗긴다.

왜 그처럼 파렴치한 자세로까지 나오나?

일제 친일파가 해방 후 미군정시기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배해 온 친일파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 왔다. 그동안 친일파를 비판하고 그 죄상을 말하면 대개는 ‘빨갱이’로 몰렸다.

그 구체적 사례를 몇 가지 보자. 우선 김구 선생께서 민족분열을 염려해 행한 우국활동을 말살하기 위해 빨갱이로 몰아서 죽인 것은 누구인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무산·좌초시키고 친일청산을 외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제거한 것은 누구인가? 조봉암 씨가 이승만정권이 ‘북진(무력)통일’이라는 기만적 비현실적 구호로 국민을 우롱한 것에 대결해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해서 ‘국시위반’이라고 몰아붙여도 안 먹히자 결국 빨갱이몰이로 죽인 것이 친일부류가 아닌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친일파는 자기들의 자행해 온 죄상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빨갱이로 낙인찍어 감시하던 ‘보도연맹원’ 수십만을 집단학살했다. 그러한 무법적 폭거인 살인에 대해서조차도 ‘반공’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실정이다.

박정희와 그 추종배는 보다 노골적으로 일본우익과 유착해서 반민족적 추태를 부려왔다. 박정희는 기시노부스게(岸信介)로부터 세지마류조(瀨島龍三)에 이르기까지 옛날 만주시절 상전에게 충복노릇을 하면서 굴욕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에 따랐다. 전두환과 노태우도 세지마의 충실한 제자였다(이상 세지마 류조, 회상록 幾山河, 産經新聞社발간 참조).

어찌 그 뿐인가? 전두환은 1979년 12·12 쿠데타 거사 실행에 앞서서 일본대사에게 미리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기록은 박선원 씨의 영국 웨릭대학에 제출한 학위논문에서 나타나고 있고 국내의 2002년 국제정치 논총에서도 이미 소개되고 있다(박선원, ‘냉전기 한일협력의 국제정치-1980년 신군부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국제정치논총 제42집 3호 2002년 한국국제정치학회).

그러면 왜 지금 한승조 같은 파렴치한 논의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젓이 등장하는가? 우리 사정을 보면 해방 후에도 일제하에 매국행각을 한 친일파가 60년을 이 땅의 실권을 장악한 기득권세력으로 행세해 왔다. 그들 친일파는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입도 막고 바보로 순치시켜왔다. 그런데 친일파가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그들로선 속이 터질 지경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그들에게는 국민이 일제잔재청산에 나서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아니 겁부터 난다. 예전 같으면 그러한 이들에게 ‘빨갱이 놈들’하고 한마디 매카시즘의 콧바람을 내면 찍소리도 못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들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무지렁이 백성이 몰라도 크게 모르고(?) 겁 없이 날뛰고 있어서 속 터져 죽을 일이다.

그래서 수구 친일언론은 교묘하게 친일파 찬양의 온갖 선전무드를 조성하는 우민정책을 써오고 있다. 수구 언론기관을 동원해서 친일파의 국가발전기여론을 외쳐대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냄새나는 추악한 행실에 분칠을 해서 소란을 떨지만 약발이 안 듣는다. 여기서 미친척하고 극약처방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일부 친일파이고 그들은 일본의 극우 파시스트의 격려와 지원을 받아서 일본식 모델을 따라 온갖 공작을 하고 있다.

한승조가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를 찬양해 온 것은 다들 알고 있다. 이번 경우는 친일파의 입장을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나섰다. 아마도 마지막 카드를 미친 척하고 들이댄 것이라 할까?

친일파의 일제 침략 변호론의 허구를 보자.

한승조는 일본의 우익 월간지 ‘정론’ 2005년 4월호에 일제 군국주의 변호론의 아류격인 친일론을 전개하고 있다. 정론이란 잡지에 등장하는 논객이나 논조가 어떠한 것인가? 이시하라신타로(石原愼太郞) 현 동경도(東京都)지사의 단골메뉴는 극우수구 군국주의와 반(反)한 반(反)중국의 배외주의 논조가 아닌가? 친일파가 어째서 이토록 치사하게까지 되었는지 딱하기만 하다. 이 잡지는 일본 극우신문으로 산케이신문(産經新聞社)이 펴내고 있고 바로 그 배후에는 일본 중등교과서의 가장 우익적 성향으로 침략주의를 미화하는 역사왜곡 출판사인 후소사(扶桑社)가 있다.

(1) 한국의 일본식민지화 찬성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논조는 한승조가 처음이 아니다. 박정희 시대에 이시하라신타로를 만난 박정희의 측근인 박종규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現代史의 分水嶺,文藝春秋社(文春文庫) 1990年, 237쪽 이하).

나는 1990년에 이 책을 읽고 결국 친일파의 민족의식의 빈곤과 국제정세분석의 유치함을 세삼 확인했다.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은 영국과 영일동맹으로 지원받고 미국의 후원 아래 극동의 영미제국의 헌병보조원으로 대리전쟁을 했다. 힘겨운 싸움에서 당시 일본 군사첩보공작의 현역장교인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가 스톡홀름에 주재하면서 레닌에게 혁명자금까지 지원해 1905년 러시아 1차 혁명에 불을 붙이도록 했다. 그는 후에 조선 주둔 헌병사령관으로 1910년에 부임해 한국의병을 무참하게 학살한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한승조식 논리로 따르면 아카시는 1917년 10월 혁명의 전주곡인 1905년 혁명을 일본첩보부가 지원했으니, 일본 육군첩보부는 빨갱이를 도운 이적행위라는 논법이 성립되지 않는가? 정치학을 하지 않아도 역사를 제대로 보는 이라면 1904년대에 일본이 영미 제국주의국가의 양해 없이 한국식민지화가 가능할 수 없었고 그러한 영미제국주의의 일본비호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제국의 영미굴종 예속의 대가였다. 그리고 가사 러시아가 일본에 승리했다고 해도 영미제국주의가 러시아남진을 저지하는 실세로 버티고 있어서 러시아 식민지가 된다는 엉뚱한 가상은 통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일본제국에 예속된 것을 기뻐하고 일본제국의 한국 침탈을 찬양하는가?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다. 그러한 논법의 의도는 짐작 못할 바도 아니가.

(2) 일본의 한국여성 성노예제도의 변호 옹호의 망발

일본제국군대의 성노예로서 조선여성을 강제·연행한 것을 변명한 한국 사람은 한승조가 처음이 아니다. 일본에서 일본제국의 침략을 미화 정당화하며 일본극우 군국주의자들을 기쁘게 한 대가로 명사가 되어서 활약하며 몇 권의 책까지 내고 있는 오선화란 젊은 여인이 있다. 이 여자는 물론 일제시대의 암울한 세상을 살아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일본의 현재의 산업문명과 그 국력에 압도당하고 한국이 초라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녀는 전쟁에서 여인을 강간하는 것은 1950년 한국전쟁당시에 미군이라고 예외였는가 하고 전쟁 중 강간불가피론을 전개하며 일본제국군대의 성노예제도를 변호한다. 이 철없는 이는 일본제국군대가 성노예제도를 여인의 강제연행으로부터 관리유지에 이르기까지 제국정부군대의 권한으로 한 것을 지나쳐 버리고 있다. 한국전쟁당시에 미국군이 여인을 강간하고 매춘공연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미8군에서 관리한 것이 아니고 한국정부가 제도운영을 한 것도 아니다. 특히 전시강간은 군법위반으로 처벌했기 때문에 잘못이고 금지되어 있었다. 이런 사정을 덮어둔 채 모두 하나로 뭉쳐 몰아쳐서 일제의 만행을 변명할 순 없다.

물론 한승조는 오선화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심정은 일본제국군대를 심정적으로 편들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일을 왜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그런데 백주에 처녀를 잡아다가 공창에 수용하는 만행을 국가감독 하에 자행하고 사과·사죄도 안하고 물론 배상책임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국민을 보호할 정부가 그것을 묵인하고 봐줄 수는 없다.

(3)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일제강점 찬양론

일제의 식민지인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럴듯한 일제침략 수긍론은 한승조의 독점상품은 아니다. 친일파가 대개 그 상품을 팔아먹으면서 일본의 수구우익 군국주의 및 국수주의 세력의 귀여움을 받아오고 있다. 한승조 이전에도 안병직 교수란 이가 일본에 몇 년 신세지고 있다가 그러한 논법으로 돌아서서 깜짝 놀라게 했다. 최근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가수 조영남 씨와 비슷한 사례다. 한마디로 조선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깜짝 놀랄 것도 없다. 우선 그런 이의 역사관과 역사의식의 빈곤을 개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 기성세대가 역사교육이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해 시정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선 그러한 민족 비하의식의 맹점을 보고 일본 우익이 노리는 점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일본대학에서 박정희의 평가를 두고 일본의 우익교수와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일본 우익교수나 일본의 우익인사의 주장은 박정희가 일본의 교육을 받은 일제충복이었기 때문에 잘했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는 박정희의 후속 전두환 시절로 군부친일파의 문제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했지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끌면서 논쟁했다. 박정희의 권력으로 치부하고 득세하고 이익을 본 무리나 박정희 신화에 속고 있는 사람은 흔히 박정희의 공로를 들고 우겨댄다. 그들에게는 자기의 기득권고수의 결사적 방어이기도 하다.

(4) 친일파 비판은 빨갱이란 매카시즘의 논법

친일파가 일제시대 해방이후 지금까지 100년을 두고 써먹는 논법은 일제시대는 민족자주 일제반대를 치안유지법의 국체(國體) 또는 국시(國是)위반이라 것이고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도 그랬다. 특히 국가보안법이란 한국판 치안유지법 하에선 용공·친북 빨갱이라고 하는 매카시즘 몰이로 간단히 처리해 버렸다.

그런데 지금 천하의 악법 국보법의 공과를 실사하여 그 폐지가 눈앞에 다가오자 친일파는 나라가 망한다고 소란을 떨며 빨갱이 타령과 친북세력이라는 엉뚱한 모략중상을 한다. ‘김일성이 콩밥이 맛있다고 했는데 너도 콩밥이 영양가가 있다고 하니 똑같은 놈’이라는 식의 세상에서 누구나 웃을 억지로 사람을 잡으려 들고 실제로 많은 사람을 잡았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인사나 당파에게 할 말이 궁해지면 ‘말이 많은 놈은 빨갱이’라는 논리 아닌 억지를 쓰는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의 매카시즘에서부터 일본의 수구우익의 논법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우익이 이론적 대부로서 나카소네가 찬양해마지않은 일본의 외교관이자 해양세력유착론이란 지정학(地政學)책인 ‘전략적 사고란 무엇인가?’(日本中央公論社)를 쓴 오카사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그가 펴낸 ‘요시타 시게루(吉田茂)와 그의 시대’(PHP文庫)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제국을 패전케 하기 위해 한 처분을 두고 그를 빨갱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일방적 양보로서(일본을 불리하게 하는 소련 참전결정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 인용자) 그 배경에는 루즈벨트와 그 측근에 대 소련 친근감, 혹은 측근의 공산당원을 통한 컴민테론(communitarian 공산사회단체의 일원)의 정략이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오카사키의 책 20쪽 인용).”

그들 일제 우익국수주의의 비위를 거스르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도 빨갱이 내지는 그와 유착한 용공분자로 몰려버린다. 기막히게 편리하지만 궤변적인 논리를 결한 무지막지한 논법이다. 힘을 배경으로 한 이 논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고 망신시키고 괴롭혀 왔는가?

일본제국주의 잔재청산과 일제 찬양 친일파잔당의 청소가 안됐기 때문에 온갖 궤변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의 올바른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이것을 그저 친일파의 마지막 발악으로만 봐 넘기기엔 그 한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2005.3>


ⓒ 데일리서프라이즈

산후조리(반 펌)

기본카테고리 2006. 1. 12. 18:37

출산 후 몸 관리와 일상생활- 6 주 플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허해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6~8주 정도. 이 산욕기를 잘 보내야 평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오로

오로는 분만으로 생긴 상처 분비물, 자궁과 질에서 나온 혈액, 점액, 떨어진 세포 등이 약 3주 동안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오로의 색깔로 자궁 회복 정도와 병균 감염 여부를 알 수 있으므로 늘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산후 3시간부터 3일 정도는 핏덩어리가 없고 냄새가 없는 적색 오로가 나온다. 4일째부터 9일째까지는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는 갈색 오로가 나오고, 10일이 지나면 황색 오로로 바뀐다. 산후 3주부터는 냄새 없는 점액질의 백색 오로가 나온다. 2개월 이상 오로가 계속되면 산부인과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훗 배앓이

늘어났던 자궁이 수축하면서 통증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훗 배앓이. 대개는 3일 후쯤 통증이 없어진다. 배를 따뜻하게 하고 시계 방향으로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면 통증을 줄일 수 있다.


회음부 통증

자연분만 시 열상을 방지하기 위해 회음부를 절개한 후 다시 봉합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분만 후 통증이 올 수 있다. 보통 5일 정도 지나면 통증이 사라지며 좌욕을 해주면 통증을 줄이고 회복을 돕는다. 2~3개월 이상 통증이 계속되면 산부인과를 찾는다.


오로 닦기

자궁이나 질의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 출산 직후에는 2시간 간격, 1주일 후부터는 하루 2회 닦아준다. 우선 산모용 패드를 갈거나 용변을 본 후 손을 청결하게 씻는다. 그 다음 깨끗하고 부드러운 휴지를 사용해 요도가 있는 앞쪽에서 뒤쪽으로 닦는다.


좌욕하기

출산할 때 생기는 회음 부위의 염증을 예방하고 통증을 줄여준다. 출산 당일은 깨끗한 타월을 따뜻한 물에 적셔 분비물을 닦아주고, 2일째부터 하루에 2~3회 좌욕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물을 끓였다가 식혀서 따뜻한 김을 쐬는 정도로 하고 2주 후부터 대야에 약쑥 40g 달인 것을 붓고 통째로 끼운 다음 앉으면 된다. 질 좋은 약쑥을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주의. 좌욕을 마친 후에는 깨끗한 면 수건으로 두드리듯 닦아낸다.


유방 마사지하기

출산 이튿날부터 젖몸살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 산모가 직접 하면 팔목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

?젖꼭지 바깥에서 유두를 향해 마사지한다.

?스팀 타월로 닦는다.

?가슴 밑부분에서 유두 쪽으로 마사지한다.

?가슴 전체를 문질러 풀어준다.

?유두 쪽으로 가슴 전체를 훑듯이 짠다.


산후보양식 먹기

가장 좋은 보양식은 맑은 미역국, 기름기를 뺀 사골국, 멸치 미역국. 호박은 이뇨 작용이 있어 부기를 빼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산후의 부기는 땀으로 빼야 한다. 호박탕을 오래 먹으면 오히려 신장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가물치 또한 콩팥 기능의 이상으로 다리 쪽에 생기는 부기에 효과가 있을 뿐, 기름기가 너무 많아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 한방 전문의의 견해.


산후 조리 약

한의학에서는 산후에는 두 가지 목표로 약을 쓴다. 거혈과 보혈이다. 오로와 상처, 묵은 피를제거 하기 위한 거혈, 모자라는 기혈을 보충하기 위한 보혈이 바로 그것이다.

조리 약을 먹기 시작하는 것은 이를수록 좋다. 증가된 체중과 부기를 빨리 빼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젖 잘 나게 하기와 젖 줄이기

인삼은 젖의 농도를 높여서 젖의 양을 감소시키고 유선을 막히게 한다는 것이 통설이며

엿기름은 젖을 삭힌다.

젖을 잘 나게 하기 위하여 돼지 족발을 많이 먹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한의서를 보면 돼지 족이 아니라 돼지 발굽으로 되어 있으니, 족발 집에서 발굽만 따로 얻어다가 끓여 먹으면 좋을 것이다. 돼지 족발을 많이 먹으면 오히려 살을 찌울 수도 있다.


샤워하기 & 머리감기

샤워는 산후풍 예방을 위해서 되도록 늦게 시작하는 것이 좋지만 불쾌한 기분이 든다면 7일 후에 시작해도 된다. 따뜻한 물을 미리 틀어놓아 욕실 안 공기를 충분히 덥힌 뒤 들어간다. 샤워를 할 수 없는 기간에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전신을 자주 닦아준다. 머리는 허리를 구부리지 않은 자세로 감는다. 앉아서 머리 감기는 3주째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머리를 같은 후에는 재빨리 드라이어로 말려 찬 기운이 들지 않도록 한다.


산후체조하기

산후 2일째 간단한 체조로 근육을 풀어주고 관절을 유연하게 해준다. 운동 시간을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산후 2~4일째 양손을 가슴에 대고 똑바로 누워 가슴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엎드린 자세로도 반복. 계속 누운 채 발을 벌려 안짱다리처럼 만들어 발가락을 폈다 구부렸다를 반복한다. 발뒤꿈치를 바닥에 대고 양발을 함께 폈다가 젖혔다가를 반복.

산후 5~7일째 (앞의 동작에 이어서)누워서 목과 복근을 이용해 고개를 든다. 자연분만한 산모는 발목을 잡아달라고 하고 손을 몸에 붙인 채 윗몸을 일으켜 본다.

산후 2~6주 (앞의 동작에 이어서)똑바로 서서 상반신을 숙이며 손을 바닥에 댄다(10회). 바로 누워 두 다리를 뻗은 채 들어올린다. (5회)

집안 일 하기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는 산후 3주째부터 시작해도 된다. 가벼운 식사 준비와 설거지, 세탁기를 이용한 빨래는 해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4주째에는 청소기를 사용한 청소가 가능하다. 5주째에 들어서야 엎드려 하는 걸레질이나 마당 청소, 빨래 짜기를 할 수 있다.


아기돌보기

3주째부터 아기 목욕을 시킬 수 있고 4주째면 혼자서도 아기를 돌볼 수 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기의 생활 리듬에 엄마가 맞춰가는 것. 아기가 잘 때면 엄마도 따라 잔다. 그래야 밤 수유로 인한 피곤함을 막을 수 있다.


화장 & 미용

2주째부터 가벼운 화장을 해도 되지만 출산1개월까지는 세안 후 기초화장품을 바르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다. 피부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피부 마사지나 팩을 자주 하는 것도 좋지 않다. 5주째부터는 보습팩이나 간단한 영양팩을 한다. 퍼머나 염색은 3개월 후에 할 것.


첫 외출하기

첫 외출은 빠르면 2주, 보통은 산후 3주가 지난 후 남편과 함께 나선다. 겨울철 외출은 찬바람을 많이 쐬지 않도록 특히 조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삼간다. 여행은 산후 5주 이후 의사와 상의해 결정한다.


운전하기

운전은 약 6주째, 혼자 외출이 가능할 때부터 서서히 시작한다. 장거리나 고속 주행은 하지 않는다.


다이어트하기

모유를 먹이지 않으면 3~4개월 이후, 모유를 먹이면 6개월 이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안전.


운동하기

개인차가 있지만 8주 이후부터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 가벼운 요가 등을 할 수 있다. 조깅이나 에어로빅은 3개월 이후부터 할 것.


신 양 자 십 법 - 갓난 아이 키울 때의 주의 사항

1. 차게 할 곳과 덥게 할 곳을 기억하라.

1) 차게 할 곳은 머리와 가슴뿐이다.

2) 덥게 할 곳은 손발, 배, 등 이다.

2. 갑자기 울거나 많이 울 때에는 젖 먹이기를 주의하라.

3. 약을 함부로 사용하지 마라.

놀란다고 하여 경면주사나 청심환을 함부로 먹이지 마라. 피부약이나 양약도 마찬가지다.

4. 열이 나는 것을 정확히 관리하라.

은근히 열이 나면, 바람을 쏘이지 말고 은근히 덥게 하여 땀을 내고,

갑자기 고열이 나면 어름이나 알콜 찜질을 해서 빨리 식혀 주라.

5. 머리를 가누질 못하거나 몸을 뒤집기 전까지는 업거나 엎드려 재우지 마라.

6. 큰 소리, 이상하게 생긴 형상 등을 접하지 않게 하라.

7. 아이들의 이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열: 감기 등의 외감병

구토 설사: 식체, 안 좋은 음식 등의 내상병

놀람: 정서 불안, 스트레스, 수면 변화 등의 신경병

8. 무엇이든지 따뜻하게 먹이라. 뜨겁거나 차게 먹이지 마라.

9. 관절들이 유연하여 팔이나 팔목이 잘 빠지는 것을 조심하라.

10. 태교처럼 좋은 음악 들려주기, 좋은 그림 보여주기, 명상, 성경 읽기, 대화를 계속하라.

경각산 정기 비행

기본카테고리 2005. 12. 17. 14:55
지난 10월 9일에 유명산에서 113, 114 회 비행을 한 지 벌써 40일 여일 만의 비행이다.

그날 유명산에선 바람이 약하고 배풍이 섞여 있었지만 처음엔 후방이륙으로 편하게 이륙하였고,

두 번째엔 전방이륙을 했지만, 견제 타임을 자꾸 건너 뛰어서 필만 고생 시키고 말았지요.

이륙실패 세 번...

어휴, 힘들고 창피해라...

이륙장에서 워낙 지친 덕에 바리오 음 들으며 그냥 단단비행의 편안함을 만끽 하였다.

유명산 이륙장이 편하다는 것은 적당한 경사도가 있기 때문에 기체가 쉽게 떠 오른다는 것도

생각이 안 났던 것 같다.

그러므로 견제를 확실히 해 주어야 머리 위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잊었던 듯......

원래 이륙실패는 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지지만, 필에게 미안스럽기 짝이 없었다.

비행을 다 끝내고, 저녁 먹으면서 매탤과 필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듣고는, 전방이륙을 좀 더

연습해야겠다는 결심을 또 해 본다.

11.17일의 경각산 비행은 하늘 행복 만끽하기 비행이었다.

울산의 하늘치기, 베스트플라이의 북적거리는 분위기, 모르진과 단골 후배의 참석은

항동정비를 늘 빛내 주는 양념이고 종합판 이다.

비행만이 있는 정비가 아니라, 웃음과 화합이 있는 정비의 맛을 늘 깊게 해 준다.

2년 만의 고을 비행도 뜻 깊었던 듯 싶고...

나는 이제 미미에서 하늘여행으로 이적하여,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항동식구라는 동질감으로 인해

참 편했다.

차차 적응하기로 결심 한다.

딱 나의 취향에 맞을 분위기 같지만 비행 고수들이 많은 곳이라서 폐나 끼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정비에서는 초보자 배려가 참 극진하기 때문에 정말로 좋다.

비행 경력 7년 짜리 만년초보 비행자를 내 버려 두지 않아서도 좋다.

이륙장에서, 착륙장에서, 하늘에서나.....

바람이 약간 세고, 이리 휙 저리 휙 휙 부는 바람에 공중에서 꽈배기 처럼 뜨기도 하고

한쪽으로 휘익 쓸리는 동안에 열심히 쫓아가서 띄우는 맛이 또 일품이었다.

항상 세심한 배려 덕에 이번에도 세 차례의 비행을 잘 마쳤다.

바리오 음과 고도를 눈여겨 보아 가면서 게 오랜만에 게 걸음 비행을 시도하였다.

1 시간 이상을 비행해야 맘에 찬다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그냥 바람 좋은 날, 약 2-30 분 정도만 산책을 하면 너무나 행복하다.

몇 번씩 이륙하면서라도, 2-30 분씩 떠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사면과 봉우리들을 보는 것...

고고도 비행에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 한다.

맨 얼굴에 부딪는 늦가을 찬 바람, 바람 소리...발 아래 경치...저수지 물 색.....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기 그지 없다.

2005.11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