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잉커플스 27 차 연주회를 만나고....

흔한 생각과 취미 2006. 10. 16. 18:52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만난 행복


국어에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가 있는 것처럼, 음악에도 똑 같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부르기, 듣기, 평하기, 작곡하기가 그에 속할까요?

국어 점수를 매기듯, 음악 점수를 매기면 나는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 봅니다. 실없이...

하하하......뭐 복잡한 계산이 필요 없이 그냥 ‘양가’ 집 머슴이나 잘 할까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종훈이 하고의 인연으로 최근 3 년 정도 불리움 받는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

공연 끝난 후의 뒤풀이에서 우스개 소리랍시고 해대는 뻔뻔한 인류가 늘 있는 법이니

나는 그 단역 역할을 하렵니다.

나는 “10 월 노래” 하면, 그냥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먼저 떠오르는

乙 類의 사람이었으나, 어제의 공연을 보고는 올해부터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甲 類는 못되겠지만요.


이 시월 노래는 “평균자”의 노래 같습니다.

클래식, 특히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갖게 하는 고립적인 고상함과

대중가요가 갖게 하는 표피적인 공감을 다 얻게 하는 그런 노래...

이 노래를 주제로 한 콘서트 역시, 함께 숨 쉬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즐겨서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 콘서트라고 정의합니다.

영혼을 울리는 것이나, 피부를 간질이는 것이 다 나름대로 존재하며

존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한 음악회였습니다.


나는 어릴 때, 특히 고등학교 정도 때부터 클래식 음악 지식과 외국 팝송을 줄줄

읊어 대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주눅 들고 배호 노래나 따라 부르고, 고작 “동무생각”

“고향생각” “바위고개” 들이나 흥얼거리는 것이 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들과 나는 왠지 급이 좀 다른 것 같은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집을 지날 때, 능숙해 보이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

나하고는 아주 다른 세계에서 사는 고귀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싱잉커플스 27 회 정기연주회는 내가 갖고 있는 음악에의 낯선 수줍음, 망설임 같은 것을 잊게 해 준 아주 정갈한 연주회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요들과 가곡, 스페인 전통 민요와 춤으로 짜여진 어제의 연주회는 나에게 또 벅찬 기쁨과 인식을 주었습니다.

즉,

...음악이란 게, 노래란 것은 평등한 것이다.

고귀한 음악이나 비천한 노래 같은 것은 없다.

음악에 계급이란 것은 아예 없다.

오히려이러 저런 것들이 있다는 인식만이 하천하다.

부르는 것이 어렵고 쉬움에 따라 분별되지 않는다.

어떤 느낌으로 영혼과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가에 있다......

초우 가슴아프게 하숙생 라구요 동백아가씨를 부를 때의 님,

마이 웨이, 엘 코도 파사를 부를 때의 님,

스페인 민요를 흥겹게 부를 때의 님들...

모두 하나였지요.

그리하여 보고 듣는 이들과도 하나가 되었지요.

그래서 지휘자 오세종 선생님의 "부부들의 순수한 열정 가득한 화음이 우리 사는 세상 평화로 꽃 피우는 작은 씨앗이 되리라" 는 확신대로 시, 자연과 사람, 예수님, 리듬, 춤, 세월과 노래들이 조용하고 뜨겁게 퍼졌습니다.

시간과 나라를 넘나드는 노래와 리듬과 춤들이 정말로 평화를 꽃 피웠습니다.

나는 목이 터져라고 앙콜을 재청하면서,

또 시월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음악이란 생명을 생명답게 하면 좋은 거 아닐까?

어느 한 때라도, 어느 한 자리라도 하나로 만들고, 평평하며, 균등하게 하면 좋은 것 아닐까?...

라구요.

이제 싱잉커플스님들의 자제들이 타악을 하고, 현악을 하면서 협연을 할 정도가 되었음을 확인하고는 참으로 도타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더군요.

직접 듣는 오랜만의 피아노 소리는 정말로음악을 잘 모르는 나도 "참 좋다!" 하고 탄성을 내게 했습니다.

또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김동규 -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2006.10.16>

퍼주기와 핵실험을 연결시키는 조중동- 천하고 값싼 글쓰기 [펌]

기본카테고리 2006. 10. 13. 17:19

2006년10월9일은 우리 민족사에 크게 기억될 날이 될 듯하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의 단일후보로 유엔총회에 추천된 것은 단군 이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까. 그러나 불행히도 이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우리는 북한 핵실험이라고 하는, 민족사적인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1차 핵실험 당일의 충격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햇볕정책·대북포용정책에 사태의 책임을 묻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이하 조중동)는 역설적이게도 무척이나 신이 난 듯이 보인다. 연일 사설과 해설기사에서 지난 8년간의 대북유화정책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마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남대 강연을 계기로 햇볕정책에 대해 히스테리적인 사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오늘 10월12일자 조선일보는 김 전 대통령을 겨냥해 햇볕정책 목숨보다 나라 운명을 걱정해야 한다는 제하에 이른바 ‘퍼주기’가 북핵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北의 실체에 국민의 눈 가린 좌파정권’이다. 굳이 내용소개는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미국이 못살게 굴어서 핵개발 했다”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사설 외의 다수 해설 기사들 논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게 퍼 준 결과가 핵실험이었으니 김대중 정부 이후 지금까지 8년간의 대북정책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당사자들이 책임져라는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간 북핵 문제에 대해 낙관적으로 발언한 것들에 대해 ‘이런 발언만으로도 그는 탄핵감’이라고 했다.


내 주변의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 속한 사람들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상으로 대뜸 하는 말들이 ‘북한 퍼주기’이다. 나는 이렇게 묻곤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퍼 줬는지는 아십니까?”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에서는 “8년 동안 8조원 상당”이라고 썼고 중앙일보 오늘자 사설에서는 “지난 8년간 ··· 4조5천억원”이라고 썼다. 이는 한나라당 진영 의원이 낸 정책자료집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8조원이라는 액수는 8년간 남에서 북으로 넘어간 모든 돈을 다 더한 액수다. 그 중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지원한 액수를 뭉뚱그려서 다 더하면 대략 4조5천억원이다. 그러니까 8년 동안 8조원은 적어도 ‘대북정책’에 의한 ‘퍼주기’와는 거리가 먼 액수로서 대표적인 침소봉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조5천억원에도 다양한 주체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정부가 ‘대북유화정책’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원한 액수는 이보다 적다. 게다가 어디까지를 ‘정책에 의한 퍼주기’로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유화정책=퍼주기’라는 등식은 쉽게 성립될 것 같지가 않다.


대충 정부가 갖다 준 돈이 8년간 4조원이라고 해도 1년에 5천억원 지원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한해 예산이 230조원정도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재직 때 말했듯이 OECD 권고 사항 중 하나가 GDP의 약 0.5%를 가난한 나라 도와주는 것인데, 800조원에 육박하는 우리 GDP 기준으로 볼 때 이 액수는 4조원 가까이 된다. 그러니까, OCED에서는 매년 대한민국에게 약 4조원 가량의 돈을 가난한 나라 도와주는 데 쓰라고 권고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등지의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 이만큼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8년간 퍼주기 했지만 따지고 보면 OECD 권고사항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 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빨갱이 원조국”인 구 소련에 떼어먹힌 30억 달러가 ‘북방외교’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다음으로, 조중동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정권의 본질을 잘못 알고 속아 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퍼주기’ 해 봤자 어차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햇볕정책이 작금의 북핵사태를 자초했음은 물론 한미동맹에도 균열을 가져왔다는 결론은 이런 식으로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 핵실험의 결과만을 놓고 과거를 왜곡해서 끼워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과연 북한 핵문제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대단히 본질적인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중동의 주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우선, 햇볕정책이 북한 핵개발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퍼주기를 했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을 리는 없다.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했던 김영삼 시절에는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다가 김대중이 퍼주기 시작하니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결심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좀 더 세련된 주장은 이렇다. 대북지원금이 김정일 손으로 흘러들어가 핵무기 개발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니까 결국 햇볕정책이 핵무기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이전에는 돈이 없어서 핵무기 만들 꿈도 못 꾸다가 대북 지원한 쌀 팔아서 돈이 생기고 보니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한해 국방비가 약 5조원이다. 그 유명한 ‘선군정치’를 펼치는 김정일이 한해 평균 5천억원(실제는 이보다 적겠지만)의 남한 지원금 ‘때문에’ 정권과 체제의 명운이 걸린 핵무기 개발을 결심하고 결행했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조중동의 주장의 핵심은 ‘퍼주기를 했더라도’ 어차피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퍼주기 하면 핵개발 안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조중동이 주장하는 바를 다시 말하자면, 사실 기껏해야 햇볕정책이 북한 핵실험의 주변부적인 요소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한 지금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북한은 왜 남한이 ‘퍼주기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퍼주기 자체가 북핵사태의 전부인 양 오도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에 버금갈 만큼의 명백한 국민기만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미국 언론이다. 한국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무렵 미국에서는 북한 무시 일변도의 부시 외교정책이 대대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조중동이 힘 있는 미국정권에 감히 비판이나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언론은 한국정부를 마음대로 난도질할 수가 있을 터인데 한국정부의 대북화해정책이 북핵사태를 불러왔다는 분석을 찾기가 어렵다. 아마 그런 기사가 났다면 조중동이 수 면에 걸쳐 도배를 했을 터인데 말이다. 보수적인 워싱턴포스트조차 “외교정책 위기의 핵심은 악의 축”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핵문제의 본질적인 질문, 즉 왜 북한은 남한이 ‘퍼주기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다. 뭉턱뭉턱 생각해 보자면, 94년 1차 핵 위기-제네바 합의-2002년 2차 핵 위기-2006년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남한의 대북정책은 김영삼 정부의 강경정책에서 김대중·노무현의 유화정책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클린턴 정부 때 북미공동 코뮤니케까지 발표하며 수교직전까지 갔다가 부시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94년 핵 위기 때는 미국과 한국 모두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했다. 민주당의 클린턴조차 북폭직전까지 갔던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약 대북유화정책이 북한에게 쓸모없는 것이고 강경일변도로 북한을 몰아붙이는 것이 북한에 대한 최선의 정책이라면 1차 핵위기는 카터가 김일성을 만나기 전에 잘 해결이 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쟁일보직전상황이 아니었던가. 1차위기를 넘긴 것은 북미직접대화였고 포괄적 타협이었다. 강경일변도였던 김영삼 정부는 판에 끼이지도 못한 채 경수로 분담금만 떠안게 되었다.

지난 8년간 남한에서는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대북유화정책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까, 이 기간 동안에 2차 핵위기가 생긴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변화와 직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체결까지 갔다가 다시 위기상황이 도래한 것은 워싱턴포스트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느닷없는 ‘악의 축’에 그 기원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말마따나 지금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모두 부시행정부 시기에 만든 것들이다.


북한이 6자회담 불참이유로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것은 미국의 대북금융제재이다. 사실 아직도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불량국가로 낙인찍혀 전략물자반입도 허용되지 않는다. 윈도우 XP나 팬티엄III 등등은 북한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미국의 사실상의 경제봉쇄를 버텨 오던 북한이 마카오 은행계좌 동결로 치명타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정부가 조중동이 주장하듯 유화정책을 버리고 강경정책으로 선회한다고 가정해 보자. 북한은 어차피 수십 년 동안 혼자서도 (중국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잘 살아왔던 나라였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경제제재에도 그럭저럭 버텨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좀 더 제재를 가하는 것이, 그리고 좀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북한에게 큰 위협이 되겠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조중동은 한국정부가 북한과의 타협 없이 강경하게 몰아부쳐 김정일을 굴복시켜서 얻을 것은 꼭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부시조차 초강경으로 밀어부쳐도 굴복은커녕 된서리만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돼서 북한의 선택의 폭을 줄이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조중동의 대북강경책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위험천만한 불장난에 불과하다.


이번 북핵사태의 근본원인은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그 동안의 모든 과정이 간단히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한의 햇볕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북핵문제에 관한 한 남한의 한계이다. 그 본질은 결국 북미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 햇볕정책의 결과적 실패는 그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변화 없이는 북핵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미국 쪽에서의 더 많은 햇볕이 결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은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문제라기보다 미국과 북한의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중동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들 ‘좌파정권’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독재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대한민국에 대한 자학적 사관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런 조중동이 왜 ‘좌파정권’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학적인 것일까. 민주화가 그리도 못마땅한가. ‘좌파정권’은 (결코 좌파적이지도 않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란 말인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닌가. 노무현의 안일한 대북관이 북핵사태를 불러왔으니까 탄핵감이라고 한다면, 어쨌든 전쟁을 막지 못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란 칭호를 반납해야만 하고 그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라도 해야 순서가 맞지 않나.


한편으로 보자면 대북강경책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조중동에게 이번 북핵사태는 이미 예견된 사건이다. 그들은 대결을 원해왔고 긴장을 원해왔고 파국적 상황을 원해왔다. 이는 일본 보수파나 미국 네오콘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뭇 심각한 그들의 안색 이면에서는 아마도 표정관리 하느라 여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조중동은 어째 신이 나 보인다. 그래,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나?

조중동이여, 차라리 춤이나 한판 춰라!

<2006.10.13 한겨레의 기고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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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진화적 설명

기본카테고리 2006. 10. 10. 15:06

ㅇ 질병에 대한 진화적 접근은 질병의 진화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그 질병에 걸리는 인간의 진화적 설계상 특성을

연구 하는것

ㅇ 예:

* 임산부들의 입덧- 임신 초기에 자주 동반되는 구역질과 구토, 음식혐오증 등의 증상들이 발육 중인 태아를 독소로 부터 보호하도록 진화한 것이라면, 그것들은 태아의 조직분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타날 것이고 태아가 독소에 덜 민감하게 되면 줄어들 것이며 산모가 태아의 발육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는 물질을 함유한 음식을 피하도록 만들 것이다.

* 체내의 철분 함량이 낮은 사실이 어던 특정한 종류의 감염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경우, 그 사실은 감염의 직접원인이라기보다 감염에 대한 신체의 방어 기능 중 일부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 환자에게 철분을 더 투여하게 되면 도리어 감염을 악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ㅇ 질병에 대한 여섯 가지 진화적설명

1, 방어 2, 감염 3, 새로운 환경 4,유전자 5, 설계상의 절충 6, 진화적 유산

1. 방어

예: 폐렴 환자의 흰 피부의 사람의 어둔 안색과 심한 기침의 경우

전자는 신체의 손상 상태이나 후자는 신체의 방어작용이다.

전자: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결핍되면 그 샊깔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피부가 푸르딩딩해진다.

차량 자동변속기에서 나는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같다.

후자: 기침은 호흡경로에 침입한 외부 물질을 몸 빢으로 쫓아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복잡한 작용의 결과이다

횡경막과 가슴근육 및 후두가 상호협동하여점액과 외부 물질을 기관지를 통해 인후로 밀어냄으로써 바깥으로

배출되도록 하거나 산성의 소화액으로 균들을 죽이기 위해 위로 삼켜버리려는 행위이다.

연료탱크가 비어갈 때 켜지는 경고등 같은 것이다.

지나치게 기침을 억제하면 폐렴에 의해 죽을 것이다.

(덜거덕 소리를 멈추게 하거나 볼을 발그레하려 하다가 연료고갈을 지시하는 램프에 연결된 전선을 끊어버린다면

연료가 바닥나는 일이 자주 일어날 것이다)

2. 감염

바이러스는 유해물들이 아니라 교묘한 적이다. 인간의 방어작용 진화 이상으로 바이러스도 인간의 방어작용을 능가하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오히려 역이용한다. 즉, 끝없는 군비경쟁의 역사처럼 인간은 모든 감염을 뿌리뽑지 못하며 자가면역적 질병(autoimmune disease)들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3. 새로운 환경

인간의 몸은 수백만 년 동안 아프리카 초원에서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수렵채취 활동을 하던 생활에 적합하게 설계되었다. 현재의 기름기 많은 음식 자동차나 마약, 또는 인공조명 중앙난방 등과 같은 것들에 적응하도록 설계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러한 설계와 환경 간의 부조화의 결과가 바로 현대병이다.

심장질환과 유방암이 대표적 예다.

4. 유전자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몇몇은 우리가 좀더 자연적인 환경에서 살던 시절에는 전혀 위험한 것이 아니었던 단순한 급변(quirks)에 불과.

예: 심장병에 걸리게 하는 유전자들은 기름진 음식을 먹기 전 까지엔 위험하지 않았다.

근시 유발 유전자는 사물을 어릴 때부터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아야하는 문명사회에서만 문제

노화를 유발하는유전자는 평균 수명이 짧은 경우에는 거의 발현되지 못하거나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질병을 유발하는 많은 다른 유전자들은 실제로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다른 유전자들과 조합을 이루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예를 들어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유발하는유전자들은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효과를 보인다.

우리의 유전암호들은 돌연변이에 의해 항상 변하고 있다. 드물게나나 이러한 DNA 상의 변화들이 유리한 결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질병을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무법자 유전자(outlaw genes)>인데 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개체를 희생키킴으로써 자신을 전파한다.이는 자연선택이 개체나 종이 아닌 유전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설계상의 절충

자연선택에 의해 보존된 중요한 구조적 변화들에는 그에 따른 대가가 있다.

직립보행은 인간이 음식물과 어린아이르 들고 다닐 수 있게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척추질환을 안겨주었다.

신체 설계상의 뚜렷한 결함들은 실수가 아니라 절충의 결과이다.

즉, 설계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결함의 숨겨진 이점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6. 진화적 유산

진화란 갑작스러운 큰 도약이 아니라 그때그때 이득이 되는 점진적인 작은 변화들을 만들 뿐이다.

뭔가를 위해서 설계가 바뀌어야 하고, 그것은 도 새로운 문제를 유발시켜 또 다른 절충을 필요로 한다.

예로, 기관지 앞으로나 있는 식도를 통해 넘어가는 음식물은 반드시 기관지를 가로질ㄹ야만 위장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질식의 위험을 안고 산다.

ㅇ 유의해야 할 점

다윈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우생학과 결합하면 종의 질적 개선을 목표로 하는 극단이 생긴다.

우리는 환자를 돕는 것이지 인간 종 자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가끔 치료하고, 자주 도와주고, 언제나 위로한다>- E.L. Trudeau 의 동상에 새겨진 문장

ㅇ 자연선택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인 영국의 리처드 도키스는,

"개체란 단지 우전자 복제를 위해 만들어지고 유전자가 더 이상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을 때는 버려지는 매체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견해는 진화가 건전하고 조화롭고 안정된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일반적인 관점을 뿌리째 뒤흔든다. 자연선택은 그런 세상을 창조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우리의 행복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선택은 건강조차도 유전자에게 이득이 될 때만 북돋워준다.

예: 불안 심장마비 근시 통풍 또는 암이 번식 성공도를 증대시키는 데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다면 그것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은 선택될 것이고 인간은 순전히 진화적의미에서는 <성공> 했지만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자연선택은 집단이 아니라 유전자를 선택한다:집단의 이득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어떻게 될까? 그런 유전자는 아무리 그 종 젙에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결국 제거될 것이다.

번식이야말로 자연선택에 의해 극대화되는 진화적 적응도의 핵심 내용임을 강조했고, 레밍에 대해 논의하면서 진화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이들을 돕는 이타적 개체를 선호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의 작용

자연선택이 어떤 계획이나 방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개념이다.

자연선택은 항상 조의 장기적인 복지를 위한 최선의 경로를 밟는가? 아니다.

자연선택은 가치가 있을 법한 적응은 모두 다 만들어내는가? 아니다.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 논리적 평화

그리고 뭔가... 2006. 10. 10. 10:40

북한의 핵실험에 굉장한 호들갑이다.

미국 일본 중국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다 난리법석이고 우리나라 TV신문 등에서는 태풍 중계 하듯, 월드드컵 경기 중계 하듯이 온갖 춤과 부채질을 해 대고 있다. 이 일이 안 생겼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할 정도이다. 긴 추석 연휴의 시종에서 귀향 길 정체를 즐기면서 중계하듯 한다.

추석 이후의 무료를 이렇게 통쾌하게 깰 일이 생길 수 있다니, 작두 위의 춤 즐기듯 한다.

주식 시장이 검은 월요일을 맞은 것 처럼 공황의 월요일로 몰리기를 바라고 또 바랬으나 생각보다는

조용한 편이다. 제 잇속 챙기는데 세계 으뜸인 뭔 푸어, 뭔 무디스 하는 것들 마저 의외로 무디기 짝이 없다. 수퍼 마다, 백화점 마다 사재기 하느라고 난리 폭동이 나길 기다렸던 사람들 마저 싱거울 정도로 조용하다.

문디 같은 미국 신용 평가 기관들이 딱 짚었다.

"북핵에 따르는 한반도 위험률은 이미 반영될 만큼 반영되어 있다" 고 한다.

노무현이 정부 마저도 뭔가 심심을 떨칠 기회라고 보는 듯이 별 지랄을 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북넘들이 헛 방귀로 쇼하는 것처럼 괜히 헛 기침 치는 것 같다. 뭐, 아니면 말고...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 싼 미 일 중 러의 행태는 더욱 더 가관이고 낮짝 두꺼워 보여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이미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핵실험을 해 대고 현재도온갖 첨단 미사일에다가각종 무기를 잔뜩 가지고 있는 넘들, 미국은 자국을 향해 날라오는 미사일을 쏘아 방어한다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까지 해 오지 않았던가?

중국은 기왕에 엄청난 핵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얼마 전에는 당당하게 핵실험까지 한 놈들이고,

러시아 역시 얼마나 많은 핵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일본도사실 상, 핵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그천문학적인 양의플르토늄으로 약 한 달

정도면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상태인데, 지금에 와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제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며 북한의 핵개발이나 미사일 개발을 비난하고 나서는 것도 코메디이다.
코메디의 소재로서 정치가 관료 재벌 같이 힘 있는 넘은 절대 불가이며 지겟꾼, 청소원, 식모 같은 힘 없고 뭐 없는 사람들만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침 내리던 군사정권 때를 연상케 하는 대목들이다.


미,중,일,러가 모두 핵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과 북한만 핵도 미사일도 갖지 말라고 한다.

사실, 주변 강대국들이 핵을 비롯한 무기를 통한 평화를 추구한다면 당연히 남북한도 핵을 가져야 공평하고 논리적이다.

그래야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더이상 한반도에서 제멋대로 장난치며 우리 한민족을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다.

남북이 핵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가 만약 미국의 경제가 망하고 미국이 더이상 세계경찰 역활을 하지 못한다면 남북은 핵을 가진 중국과 일본 앞에 손쉽게 넘어갈 운명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한국도 핵을 가져야지만 남북한이 강대국들에게 더이상 우롱당하고 지배당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힘을 통한 '논리적인 평화'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모든 국가가 핵을 포기하고 북한도 포기하여 만들어지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미국이 한반도에서 균형추 역활을 해주고 남한을 중국,일본등의 강대국들에게서 보호하고 있으니 핵을 개발하지 말라는 논리는 미국이 남한을 보호해주지 못하게 되면중국,일본에게 얼마나 시달리겠는가?

나는 가능하다면, 이미 "한반도의 비핵화"는 깨졌으니 우리도 핵무기 개발을 선언하여야 진정 자주국방과 독립국가의 이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