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경인년에 초에 또 듣고 싶은 노래

기본카테고리 2010. 2. 17. 14:38


나는 조영남의 모란동백이 참 좋다.

무겁지 않고, 정답고, 약간은 허전한 듯한 조영남의 음색 또, 음과 박자가 쉬워서 더욱 편하다.

우리집 안방 창 밖의 모란이 생각나고 뚝뚝 떨어져 땅에 깔린 동백꽃이 떠 오르고 눈 내리는 들판이 눈에 선하다.

대나무의 굳셈이 그 부드러움에서 비롯된 것 같아 대나무 숲을 좋아하여 부드러운 직선의 상징으로 삼는다.

새해 2 월에서 3 월로 넘어갈 때 산에서 듣고 싶은 노래 중의 하나이다.


모란동백


1.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골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2.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골 동백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 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 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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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대한 한시 몇 수[펌]

기본카테고리 2010. 2. 11. 13:57

오늘 한겨레신문 유레카 칼럼에 봄비 몇 수가 소개 되었기에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지고 촉촉해져서 따다가 옮긴다.

엊그제 때이른 봄비가 제법 촉촉이 내렸다.

한쪽에선 눈발이 날리는 등 아직 겨울이지만 입춘이 지났으니 봄비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이번 비가 그치면 남녘에서부터 꽃소식이 큰걸음으로 성큼성큼 올라올 것 같다.

옛 시인들은 유난히 봄비를 즐겼다.

시성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는 <춘야희우>(春夜喜雨)란 시에서,

‘좋은 비는 그 내릴 때를 알아/

봄이 되니 저절로 내리네/

바람 따라 살며시 밤중에 스며들어/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라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비를 찬양했다.

지난해 상영됐던 영화 <호우시절>의 제목은 이 시의 첫 구절인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에서 따온 것이다.

고려 말 충신 정몽주도,

‘봄비 가늘어 흩날리더니/

밤 되자 나지막이 빗소리 들리네/

눈 녹아 시냇물 넘쳐흐르니/

새싹은 얼마나 돋아났을까’

라며 봄의 흥취를 노래했다.(<춘흥>) 봄날의 정취를 절제된 시어로 깔끔하게 묘사한 짧은 시다.

요절한 조선시대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봄비를 보면서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봄비 소리 없이 연못 위에 내리고/

찬바람 비단 휘장 속 스며들 때/

시름에 겨워 병풍에 기대 보니/

담장 위로 송이송이 살구꽃 지네.’(<춘우>)

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인으로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등을 원망하며 27살로 불우하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고아한 정취까지는 아니지만 현대적 정서로 봄비를 노래한 대중가요도 적잖다.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이나 배따라기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는 즐겨 듣고 불리는 노래다.

7080 세대라면 신중현이나 이은하의 ‘봄비’가 귀에 생생할 것이다.

비 오는 봄날 하루쯤은, 올해 11월1일 20주기를 맞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으며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20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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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번개와 태황 형 예찬

기본카테고리 2010. 2. 9. 11:01

오늘 낮에 "6기 박재현 선배 세브란스 병원 1015 호실 입원 가료중 격려 바랍니다. 방수문" 이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여 전화를 하니, 재현이 형님이 며칠 전 집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어서 세브란스 응급실에 갔다가 하루 만에 의식을 회복하였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 뇌혈전 등의 뇌질환, 즉 중풍인가 물어 보니 잘 모른다고 하면서 몇 명이서 오후 7 시에 문병가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7 시에 3 층 로비에 가니 수문이와 6 기 태황 형님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조금 있으니 6 기 백호 형님이 나오셨습니다.

1015 호에 올라가서 재현 형님을 보니 이것 저것 주렁주렁 매단 폴대를 달고 있었지만 위험한 고비를 다 넘기고 이제 회복기에 접어 든 것 같더군요.

이야기를 들어 보니 뇌에 출혈이 몇 군데 생겼지만 수술 단계까지는 아니고 엄청나게 높은 단위의 처방으로 치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씨는 좀 어눌하고, 오른쪽이 미미하게 부자연스러워 보였지만 대체로 정상인에 가까운 모습이라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으니 사업이 침체하여 정리하고 싶어도 정리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꽤나 신경을 썼었나 봅니다.

내일 심장 초음파를 해 봐서 이상이 없으면 곧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하여도 될 정도라 하여모두들 안심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하였으면 깨어 나서 구름 과자를 먹지 않을 수 없었겠는지요.

현재의 주치의가과거 처방 내역을 보고는 모약 사용 시기를 물어 보았을 때 꽤나 곤란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한참 재밌게이야기 했지요.

사실 재현 형님 본인이 사용하기 위하여 처방 받은 것이 아니라 모 형님의 부탁을 받고서 처방 받았다는 이야기...

태황 형님은 "야, 그게 정말 효과가 있긴 있는 거냐?" 라는 순진한 질문과 이 분야에 노회한 대머리 아저씨의 답변에.....

재현 형님이 빠른 회복기에 들어서 이와 같은 정답고 야한 농담도 스스럼 없이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10 층 병실의 휴게소가아연 활기를 찾게 되긴 하였는데 어떤 여자 보호자 한 분이 티뷔를 보다가 자리를 피하여 우리의 독무대가 되었지요.

바깥에서 만나 식당에 자리를 잡고 물어 보니 재현 형님이 아래까지 내려 와 기어히 한 코 죽이고 올라 가셨답니다.

재현 형님이 올해부터 회장을 맡기로 하였는데 편찮다고 하여 걱정을 하였는데 멀쩡한 것을 보니 한 대의 회장이 아니라 몇 대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젠 막강 6 기에서 태황형백호형 창규형님이 돌아 가면서 하시다가 분위기 봐서 수문이가 하면 되겠다 의견을 나눴습니다.

정말로 6 기 의리는 대단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9 기는 나와 수문이 정도라서 쭉정이 같습니다.

맛있는 삼겹살에 소주 한 병을 가볍게 비우면서 태황 형님의 순진무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선 기분이 좋았지요.

정말 이렇게 백단에 순수한 열정을갖고 있는 사람이라니......

말과 글이 정연하고 실수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태황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꼭 가르침 받는 느낌을 받게 되어 사람들이 좀 거북스러워 할 수 있다는 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태황 형님만큼 지성적인 사람이 백단에 어디 있겠습니까?

이만한 박학다식,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민주주의에 대해 전혀 막힘이 없이 자신의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전에 범구가 그것을 능가했을 수도 있겠지만, 살아 가면서 자기 주변에서 자신의 생각과 에스프리를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태황 형님이 유일합니다.

까마득한 후배들의 이름과 개성까지 기억하고 늘 어울리려 하고, 같이 놀고, 토론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요?

얼마 전 백단모임에 소원하시던 어느 4기 선배님의 모친상에도 후배로선 유일하게 다녀 온 사람이 바로 태황 형님인데, 정말로 의리의 사람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런데 이런 것이 웬만한 사람- 저 같은-은 기껏해야 의무감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태황형님에겐 평상의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바로 이런 모습이 진정성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태황 형님의 이러한 풍부한 감성과 인간성을 존경합니다.

사회단체들에 대한 꾸준한 기부와 참여는 더욱 존경스러운 부분입니다.

많이 해서가 아니라 적은 금액으로 여러 곳에 마음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 백단 까페에서의 태황 형님의 절필 동기와 실행의 자가진단을 듣고는 태황 형님의 외로움과 아쉬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문이는 사람들이 태황형의 글에 댓글을 왜 달지 않는가를 설명하였습니다.

어쩌다가 댓글 달면그 보다 훨씬 더 긴 태황형의 댓글을 만나게 되어 할 말이 없어지고 진력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즉, 못 다는 거지요.

나는 그것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태황형님은 매사에 너무 眞執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진지함이 주는무게, 꼭 편한 것은 아니고 너무 매끄러워서 더 어렵고.....

이럴 땐 진지가 아니라 진집이라고 해야어울립니다.

아니 꼭 그렇지도 않은데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거지요.

그러나 내가 원래 버릇이 없고 천방지축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읽을만 하였습니다만......

오늘도 나이 먹어 가면서 완고해지지 말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헤어지면서 태황형님께 다음과 같은 덕담 한 마디 하여 "알았어!" 라는 동의를 받았습니다.

"태황 형, 여자를 좀 많이 만나~!~"

아주 즐거운 신촌 번개였습니다.

<20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