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론과 우리 정치[펌]

기본카테고리 2006. 11. 15. 12:58
베이컨의 4가지 우상이 지배하는 우리 정치
[고태진 칼럼] 우상 깨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텍스트만보기 고태진(ktjmms) 기자
▲ 국회 본회의장 풍경.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인간의 앎에는 4가지 우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4가지 우상을 우리의 지식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인류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4가지 우상은 각각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특히 정치판은 이러한 우상이 지배하는 사회다. 우상이 타파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우상의 지배는 정파를 가리지 않지만, 특히 '반노무현 = 집권'이라는 우상숭배에 사로잡힌 한나라당이 더 심한 편이다.

베이컨의 4가지 우상

첫째로,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장치되어 있는 우상으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생겨난다고 한다. 베이컨은 우리의 감각이 울퉁불퉁한 거울과 같을 수 있다고 했다. 엉터리 거울은 사물을 엉터리로 비춘다. 또한 종족의 우상에 갇히면 우리는 우리 종족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정치판에는 정당이라는 종족이 지배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라는 종족은 무척이나 결속력이 강하고 종족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자신의 종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예를 들면 1가구2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키고 종부세 기준을 9억원으로 올리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전효숙 후보자가 헌재소장이 되면 헌법이 파괴된다고 굳게 믿는다.

반면 정부나 청와대는 울퉁불퉁한 거울을 보며 현재의 아파트 값 폭등은 공급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도시를 발표하고, 그 때문에 아파트 값이 폭등하니 아직도 공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또 신도시를 더 만들려고 한다. 이제 아파트 값 때문에 우리나라가 '구역별 신분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시장 원리라는 우상을 받들고 있다.

둘째로,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비롯된 것인데, 개인의 좁은 소견에서 빚어지는 착각들, 개인의 호오나 편견, 만족이 빚어내는 우상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동굴에 죄수들이 갇혀있는데 이 죄수들은 자세와 목이 고정되어 있어 어두운 벽만 쳐다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뒤쪽의 불빛에 반사된 다른 죄수들의 그림자만 보고 살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를 말하는 것이다.

14일 오후 국회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이 끝나자마자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이 단상으로 올라가 의장석을 점거한 뒤, '헌법파괴 전효숙 헌재소장 원천무효'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농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모든 시각과 안목은 오로지 반노무현이라는 그림자만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전효숙 헌재소장 지명자를 반대하는 사실상 유일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헌재소장이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한나라당 사람들의 자세와 목은 오로지 반노무현 정권이라는 벽면에 고정되어 있다. 지나친 정쟁이 성난 민심의 역풍을 초래한다는 것은 뒤편의 실체가 아니라 앞쪽의 일렁거리는 그림자만 봐서는 모를 일일 것이다.

오로지 반노무현이라는 동굴의 우상

▲ 한나라당이 14일 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안 상정 저지를 위해 국회 의장석을 점거했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셋째로, 시장의 우상은 인간의 언어가 빚어내는 우상을 뜻한다. 수많은 말들이 오가지만, 언어가 교류되는 과정에서 개념적 약속이 틀리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말이 사용됨에 따라 파생되는 혼란들이다. 한마디로 시장판에서 장사꾼들의 입씨름이다.

"노무현 정부만큼 여성성을 욕보이고, 반여성적 정부는 없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13일 한 말이다. 최초로 여성 총리를 임명하고, 최초로 여성 헌재소장을 지명한 정부가 반여성적인 정부인지, 전효숙 지명자를 정권의 '꼭두각시'로 비난하고 한명숙 총리를 '사죄 전문 총리'로 지칭한 전여옥 의원이 여성상을 욕보인 것인지 잘 분간이 안 간다. 전여옥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어 그 동안 해온 발언들을 보면 그가 전형적으로 시장의 우상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닐까 여겨진다.

여당이나 야당, 정부, 청와대 할 것 없이 서로 공격하고 상처 주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서로의 언어는 교류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날아가 꽂히기만 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는 없고 시장판의 '악다구니'만 남았다. 이런 정치판에서 전여옥 의원같은 탈여성적 정치인이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은 나보다 앞서서 성립한 철학체계의 도그마에 속박이 되어 나의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그러한 우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 그것이 만들어 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성추행 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연희 의원이 알고 보니 지역구에서는 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이었다는 사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철저히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며 "지금은 집 사지 마라"고 한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이 사실은 강남 재테크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사실 등이 우리가 극장의 우상에 현혹되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중동의 세금폭탄론, 극장의 우상

또한 우리가 언론이라는 권위를 인정하여 '조중동'의 세금 폭탄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극장의 우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일년에 버는 소득이 면세점 이하이고 가진 집이 중과세의 대상에 들지도 않는 대다수의 서민들이 마치 자기에게 이런 폭탄이 떨어질 것처럼 믿는 것은 다 이런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먼 나라의 철학자 베이컨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섬기는 우상들은 이 밖에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주의 우상'이다. 그리고 요즘 가장 심각한 것이 '물신주의 우상'이다. 그런데 점점 우리 사회는 이런 우상들을 더욱 숭배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그런데 나도 사실 하나의 우상을 가지고 있다. 바로 '국회를 없애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우리 국회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 차라리 인터넷으로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2006.11.15>

네이버는 어떻게 포털 1 위가 되었는가?[펌]

기본카테고리 2006. 11. 8. 11:45
네이버를 보면서 전 많은 생각을 합니다. 조중동보다 강력해진 네이버. 정말 두렵지만, 어쩔수없이 찾게되는네이버.
감히 한국 인터넷 사에 인터넷과 네티즌의 힘이 혁명의 기조가 아니라 옭아메는 부드러운 손길과 당정으로 바뀌는 전환점에 바로 네이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네트스케이프와 익스플로러.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네트스케이프는 익스플로러에 확연히 앞서갔고, 그 기술력은 마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에 나타나는 오류처럼. 이상스럽게도 잡히지않을거 같았습니다.
익스플로러가 이만치 앞서나가면 네스케이프도 그만큼 앞서나갔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결과는 어떠한가요? 이제 네트스케이프 사용자를 찾아볼수없습니다. 이젠 프로그램조차 찾기어렵네요.

ms는 윈도에 익스플로러를 끼워 파는 형식을 취했고, 모든 윈도우가 깔린 컴퓨터엔 자동으로 익스플로러가 탑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네트스케이프를 고집하는 유저가 있었으나. MS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윈도의 형식과 익스플로러형식의 동일화를 꾀하게됩니다. 즉 내 문서와 내컴퓨터. 그리고 통신이라는 외부의 문서. 로 이분된 구조를 "세상의 문서를 종합하는 하나의 창"이라는 개념으로 개념전환이 이루어졋고, 결국 많은 사람들은 익스플로러를 쓰게되었습니다.

엠에스는, 익스플로러가 뛰어나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자사의 프로그램이 좋다고 외쳐대지도않았고, 제발써달라고도 하지않았죠! 단지 "통신과 인터넷이라는 외부 데이터의 접속은 마치 네일기장 네 문서를 네 컴퓨터에서 찾는 작업과 동일한 작업"이라는 개념의 전환을 시나브로 심었습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기교와 편리성에서 편의를 느끼지않습니다.
익숙함에서 편리함을 느끼게되죠.
새로운 신형 텔레비젼보다 지금껏 써왔던 텔레비젼이 더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익스플로러는 네트스케이프보다 기술력으로 뛰어남을 경쟁력으로 삼지않고,
기존 윈도우에서 내부프로그램검색과 정리의 창과 동일한 형식을 취함으로써 익숙함을 주었고 그건 사람들로 하여금 작업의 연속성과 편리성을 주었죠.

지금도 코마의 게시판은 청빈협과 비교도 되지않게 인터페이스밑 검색기능과 보안이 뛰어납니다.그럼에도 많은 젊은 한의사들은 daum의 시스템이 더 편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편함이란. 익숙함의 다른말인거죠.


2. 야후와 다음..그리고 네이버.

사실상 인터넷 초기만해도 컴퓨터를 켜면 겜방부터 시작해서 조립식컴퓨터의 기본세팅까지
초기화면이 yahoo가 뜨는것이 정석이었습니다.
브랜드 컴퓨터의 경우 자사 홈페이지나 마이크로소프트 msn이 기본화면으로 깔리기도했으나
대부분의 AS 기사들은 컴퓨터를 손질봐준뒤. yahoo를 기본화면으로 세팅해주는걸 베이직으로 알고있었지요.

대부분의 컴퓨터의 초기화면이 yahoo인 상황에서. 그리고 야후의 인터페이스에 길들여지고
모든 컴퓨터가 켜지는 순간 자동으로 페이지뷰가 올라가는 야후를 상대로
전세계 어디에서도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야후를 상대로
네이버가 절대지존에 올랐다는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

그 네이버가 지존자리에 오르는데 가장 큰 공험을 한것이 "지식검색"입니다. 거대한 네티즌 위주의 DB구축 작업이었죠. 참 이부분을 보면 만화의 한부분이 떠오르는데, 이런 에피소드 입니다.
남자가 헤어지는 여자를 붙잡습니다.
여자는 매몰차게 뒤돌아서죠.
남자가 고백을 하고 사과를 하고 선물공세를 합니다.
그래도 여자는 돌아서지않죠.
그러자 남자가 말합니다.
"어제밤 청담동 나이트에서 k군과 키스한 여배우 a양이 누구냐면...."
그 말에 여자는 눈이 똥그래져서 "누군데?"라며 얼굴을 돌립니다.

바로 그것이 네이버가 절대 지존이 된 부분이죠. 지식검색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선정적이지도 않은 문장들.


겨울의 시작 - 입동

넌 누구냐?


하나같이 선정적이지않으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은 뭔가 검색하러 들어왔다가..정말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먹고가지요" 하게 되죠. 이젠 저런 화면과 글귀들이 너무나 익숙해졌지만, 모든 포탈의 초창기 기본 프레임은 디렉토리 검색 사전 여행 어학 취미. 등의 목차가 메인화면이었습니다. 이제 그런것을 메인으로 삼는 페이지는 찾기어렵습니다.

즉 포털이 백과사전의 컨셉으로 시작했다면 타블로이드 신문화되고있는것이죠.

사실 이것이 웹이 더이상 혁명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오히려 적이되고있는 지점입니다. 백과사전은 유저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걸 찾지만 타블로이드는 유저가 아닌 편집장의 의도에 따라 유저의 눈의 방향을 정해줘버립니다.

감히 80년대 민중에게 섹스와 스크린과 스포츠가 있었다면. 21세기 민중에겐 네이버가 있다고하면 좀 과장일까요?


그러나 그렇게 부드럽게 보이지않게 자신의 point of view 를 제시한 네이버는 정말 세련되었습니다. 많은 신생 포털이 야후를 따라잡기위해 페이지를 들르면 "한미르를 기본페이지로 설정하시겠습니까? 한미르 즐겨찾기를 추가하시겠습니까?" 의 질문등을 네이버는 하지않습니다. 네이버는 그저 묵묵히. 강한 호기심을 그리고 역동하고 살아있는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실시간으로 말이죠.

많이 익숙한 모습이죠. 청빈협이 그런 네이버의 모습을 많이 닮았지요. 강요하지않습니다. 오라고 하지않고 관심가지라 하지않습니다..사사로운 호기심이 넘쳐흐르고, 살아있는 정보와 실시간 답변을 얻을수 있는곳입니다.



3.네이트와 MSN

초기 메신져는 ICQ에서 시작하여 msn에서 대중화되고 작금의 한국은 네이트가 지배합니다
MSN이 ICQ를 따라잡은건 익스플로러가 네트스케이프를 따라잡듯한 과정일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네이트는 그런 강력한 MSN을 어떻게 따라잡았을까요.

초창기의 네이버는 한미르나 드림위즈 등 의 검색엔진보다도 절대 나을것이 없는 포털이었습니다.
다음은 무려 피부로 느끼기에 10년 정도의 무료 이메일계정을 나눠주는 엄청난 투자를 통해 자생하는 (스스로 생존할수있는)웹의 생명체를 탄생시켰습니다. 기존에 무료 이메일로 hotmail을 썼던 유저들도 상당후 daum으로 옮겨가게되었습니다. 한글로 된 메뉴를 제공했으니까요. 그 인터페이스의 후짐!!은 이루말로 할수도 없고 지금도 거대포털중 가장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때 기존 무료사용자를 토대로 뿌리내린 카페는 빼도박도 못하는 유저와 상관없는 생명체로 다음을 절대지존의 자리에서 내어주지않습니다.

네이버나 다른 모든 포털도 이메일계정을 무료로 나눠주고, 한창 개인홈페이지 붐이 불때는 서로서로 에게 홈페이지 무료 공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건 사그라 들고 다음만이 살아남았지요. 왜냐면 개인은 둥지를 옮길수 있어도 단체가 옮기는건 너무 어려운일이었습니다. 그당시 동호회가 주류를 이루던 포털은 프리챌과 다음이었는데, 프리챌이 디자인과 모든 인터페이스에서 뛰어났음에도 유료화 정책으로 죽어버렸죠.

이제 거대포털은 짐작합니다. 개인은 언제든 떠날수 있다는걸.
그러나 단체는 관계는 떠나기 힘들다는걸.
그래서 개인을 붙잡아 두지않고 단체를 붙잡아 두려고합니다.
그런데 이미 동호회는 다음이 절대지존입니다.
실상 그런 카페를 네이버에서도 시도했지만, 네이버의 카페는 감히 실패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겨난것이 싸이월드입니다. 이것은 다음의 카페와도 다르면서 새로운 개념이었는데,.
1촌 맺기 라는것이 이것이죠. 개인성을 중시하되 네트웤을 살려놓는것입니다.
기존의 포털이 개인 홈페이지를 제공한게 마치 독립주택같은것이었다면
싸이월드는 아파트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서로서로 연결이되어서 자기집만 혼자서 리모델링하기도 이사하기도 어정쩡하게되어버립니다. 싸이월드는 개인의 독립공간과 함께 카페와는 다른 인간관계를 그 포털안에 생성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쉽게 그 포털을 떠날수 없게 만들었죠.


그 싸이월드를 네이트가 인수했습니다. 기실 싸이월드는 어느정도 비주류의 개혁성향을 가진 사이트였습니다. 아시다 시피 네이트는 SK의 것입니다. 네이버가 삼성의 지분으로 이루어져있듯이.

Sk텔레콤에서 필요했떤건 문자 였습니다. 서로 많은 문자를 보내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질할 사람이 있어야했고. 그런점에서 공적인 느낌이 드는 카페동호회보다. 사적인 네트웤을 이루는 싸이월드의 1촌들은 문자질의 유저로 너무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싸이월드를 인수합니다. 그리고는 다음이 카페라는 빼도박도 못하는 뿌리생명체를 만들었던 것처럼, 무료문자 사용이라는 파격적이고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즉 사람을 빼오는게 아니라 네트웤을 빼내오기위해 무료문자는 강력했습니다.

단지 일개인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 관계 사이에서 편함을 느껴야했던것이죠.
마치 익스플로러가. 웹서핑은 내 문서를 찾는것과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다!라는 개념으로 네트스케이프를 무찔렀듯이. 그런식으로 네이트는, 메신져와 문자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라는 개념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어느순간..친구들은 말합니다.
"나 네이트로 옮겼어. 너도 네이트로와"


4.꼬마와 빈의협.
그래서 하려는 말이뭔데? 라는 질문이 들립니다.

그래서 어쩌자고? 어떻게 하면 익스플로러가 네트스케이프를 이기고, 네이버가 야후를 이기고 네이트가 엠에센을 이기듯. 사람들을 빈의협에서 꼬마로 데려올수 있는건데? 라고 물으시면!!

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하겠습니다.

<2006.11.8>

건강한 사람이 활발한 성생활을 할 수 있다[펌]

기본카테고리 2006. 11. 6. 15:33

지난 7월 1일, 미국 MSNBC 인터넷 사이트가 ‘성관계도 여타 운동처럼 노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킨제이연구소의 정보부 책임자인 제니퍼 바스의 말을 빌려 ‘건강한 사람이 성생활을 활발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 우울증 완화 등 6가지 측면에서 부부관계가 건강에 좋은 이유를 분석했다.
제니퍼 바스는 “성행위를 통해 우울증과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성관계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 그에 따라 숙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주립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정액이 우울증 완화에 기여한다는 사실도 추론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관계를 맺었던 여성들이 피임도구를 사용하거나, 혹은 성행위를 하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우울증 증세가 덜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정액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성분들이 여성의 질을 통해 흡수되어 유익한 작용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남성의 정액에는 칼슘과 단백질, 그리고 칼륨 등이 함유되어 있다.

오르가슴을 통한 통증 완화 효과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통증을 적게 느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여성의 경우 절정의 순간과 그 직전에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자궁수축 호르몬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엔도르핀 성분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실제 미국 럿거스 대학의 베벌리 교수는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낄 때에는, 통증에 대한 인내력이 약 75% 정도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혈압 및 혈관계통 건강 증진
남성의 정액은 혈압을 낮춰주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최근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럴섹스(구강성교)를 한 여성들은 임신중독증의 일종인 자간전증(子癎前症 : 임신중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는 증세)에 대한 위험이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원만한 부부관계를 통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방지하면 뇌졸중 등 발작의 위험도 감소될 수 있다.

전립선암 예방 효과
섹스는 남성들의 전립선암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다. 얼마 전 의학 분야의 3대 저널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의학협회지에도 이러한 연구결과가 보고되었다. 남성이 절정의 쾌감에 도달하여 사정하는 행위가 전립선암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으로서, 자위행위와 이성간의 성관계에 관계없이 사정을 하는 행위 자체가 남성의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는 몇몇 연구결과들이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하고 있다.

상처를 빠르게 치유
성관계를 통해 육체적인 상처를 조금 더 빨리 치유할 수 있다는 증거도 제기되고 있다. 몇몇 실험 결과들이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낄 때, 혹은 그 직전에 분비되는 자궁수축 호르몬이 몸 속의 세포를 재생시켜 당뇨병으로 생긴 고질적인 상처 치유에 도움을 주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노화방지 효과
성관계를 갖게 될 경우 자연스럽게 칼로리를 소모하게 되고, 이는 결국 운동을 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실제 섹스시 소모되는 칼로리의 양은 육상이나 수영 등 격렬한 유산소 운동만큼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운동시 소모되는 칼로리의 양보다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이 노인들에게 부부관계를 하도록 권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2006.11.6>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 [펌]

기본카테고리 2006. 11. 1. 18:38
작가 권정생,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
한겨레 조연현 기자
» 〈강아지똥〉 〈몽실 언니〉작가 권정생 선생
[관련기사]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69)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자가 많은 동화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려고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오두막으로 그를 찾아오지만 그는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는다. 기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인터뷰 같은 것을 한 적도 없다. 어려서부터 앓아온 전신결핵의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홀로 살아가는 그는 “너무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사람을 맞을 자신이 없어서” 사람이 찾아와 불러도 아예 문조차 열어보지 않는다.

그런 그가 김장배추 속에 숨은 흰 속살 같은 얼굴을 내보였다. 지난 29일 그의 마을 정자 나무 아래서 한 ‘드림교회’ 예배에서였다. ‘드림교회’란 이현주(62) 목사가 지난 4월부터 주일이면 좋은 사람과 좋은 장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건물’ 없는 교회다. 이 목사는 이 마을에 찻길조차 없던 1970년대 이오덕 선생으로부터 숨은 ‘인간 국보’의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다녔던 지기다. 그는 ‘드림교회’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런 이 목사의 청으로 엉겁결에 마을 정자 나무 아래 앉았다. 그를 만나고파 이 전국에서 이날 예배에 온 20여명과 함께였다.

» ‘교회 종지기’의 나무아래 예배 - 권 선생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 듯 모자를 눌러쓴 채 얘기를 했다. 그와 수십 년 지기인 이 목사도 “이렇게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이렇게 말씀을 오랫동안 하는 것도 처음 본다”고 했다. 권 선생이 생전 처음 베푼 말잔치는 소리 소문 없이 온 산하를 물들여버리는 가을 기운 같은 축복이었다.




작가 권정생이 말하는 하느님과 인간의 뜻

침묵 기도 뒤 사람들은 기도를 나누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하나님께 ‘저를 왜 이곳에 불렀느냐?’고 물었다”며 하나님께서 이러저러한 응답을 주었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이곳에 온 게 하나님 뜻인가요?”

이 목사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권 선생이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을 하든 관성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갖다 붙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습관적인 말’에 대한 일침이었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들에게 그 많은 고통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가요? 인간이 한 것이지요.”

권 선생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엽만이 침묵의 공간 속을 뒹굴었다. 마침내 여든여덟살 난 마을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인간이 저지르고 하느님뜻이라니… 천당가는 것보다 따뜻한 삶이 중요

“할머니가 네살 때 부모가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뒤 아직까지 소식을 모른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버렸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못 오셨을까’만 생각한다. 결혼해 자식 손자까지 다 있는데도 할머니는 아직까지 네살짜리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하느님 뜻인가. 하느님이 일제 36년과 6·25의 고통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권 선생은 “아니다”라고 자답했다. 그 고통 역시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다. 얘기 중에도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으로 산과 들과 마을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마을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 마을엔 당집이 있다. 거기엔 할머니신을 포함해 세 분이 모셔져 있다. 한 분은 후삼국시대에 백제에서 온 장군인데, 죽을 줄 알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살려줬다. 또 한 분은 비구니 스님인데,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 때 와서 사람들을 살려줬다. 당집에선 한해 동안 싸움 안하고 가장 깨끗하게 산 사람이 제주가 되어 정월 보름마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또는 당집 앞을 지날 때마다 스스로 착하게 살려고 자신을 다잡는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평안하게 살아간다.”

그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착하게 살아가라’는 설교를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도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기 일쑤인데 왜 그럴까. 세상에 교회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또 “교회나 절이 없었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자답했다. 그는 “세상에 교회와 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전쟁을 막지 못하는가”라며 다시 낙엽을 바라보았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600만명이나 죽는 고통을 당하고도 왜 그렇게 남을 죽이고 고통스럽게 하는가. 1940년대 유대인들이 처음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올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키부츠 등에 땅도 내주고 함께 살자고 했는데, 이젠 ‘처음부터 막았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한다고 들었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배경이 된 전쟁은 베트남전이다. 프랑스는 당시 베트남인들을 노예처럼 끌어다가 칠레 남부의 섬에 가둬 비행장 건설 노역을 시켰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자 베트남인들은 그대로 남겨둔 채 자기들만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섬엔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베트남 노인들이 살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악행만 얘기하지 자신들이 한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중국도 일본이 난징학살 때 30만명이나 살육한 것을 지금까지 그토록 분개하면서도 티베트인들을 그렇게 죽인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억압만 하고 있다. 미국은 자기는 핵무기를 만 개도 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들만 나쁘다고 한다.”

권 선생은 “모두가 자기는 잘하고 옳은데, 상대방이 문제라고 한다”고 했다. 그것이 불화와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 생각 하고 싶지 않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사의 일들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짓’임을 분명히한 권 선생의 말에 자신의 행동도, 세상의 해악도 하느님에게만 돌리던 핑계의 마음은 쓸려가 버렸다. 그러나 권 선생은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하는 것’을 보고 계신다”며 “그렇기에 홀로 있어도 나쁜 짓을 할 수 없고, 착한 일을 했어도 으스댈 수 없다”고 했다.

안동/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2006.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