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기본카테고리에 해당되는 글 517건
- 2006.10.25 행복론 정리 -諸家의 썰
- 2006.10.19 동종요법의 허구
- 2006.10.19 파벌주의
- 2006.10.13 퍼주기와 핵실험을 연결시키는 조중동- 천하고 값싼 글쓰기 [펌]
글
행복론 정리 -諸家의 썰
1.러셀의 행복론.
행복은보람이다.보람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것,의미있는 일을 성취했을때 느껴지는 흐뭇한 성취감이다.
2.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가장 값진 재산은 행복에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모든 생물이 자기의 고유한 본성에 따라 행동할 때 생겨나며,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특유 한 활동 능력을 완전히 개발해야만 한다고 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그가 도달해야 만 할 완전한 상태도 역시 이성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최대한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덕성의 원천이다.
그는 덕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도덕적 탁월성은 관능적 충동을 억제하는 이성의 지배력을 뜻하는 데 반하여, 지적(知的) 탁월성은 바로 이성 그 자체의 고양과 완성을 뜻하는 것이므로, 결국 후자의 경우가 좀 더 고차적 의의를 지닌다고 보았다. 결국, 명상에 의해 찾아지는 진리가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적 지혜의 행위들을 가장 환희에 찬 덕행들임에 틀림없다."라고 하였다
3.힐티의행복론
“우리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이다”라고 하였다
4.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무언가 욕망할 때, '나는 정말 이것이 필요한가' '이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되물으라고. 욕망을 모두 채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나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5.쇼펜하우어의 행복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네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명랑한 정서,건강한 몸, 정서적 평온, 약간의 외부 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재산에 대하여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당연히 필요한 재산,
두 번째는 여유 있는 재산. 남에게 베푸는 재산이다.
셋째는 불필요한 재산이라고 했다.
이 불필요한 재산 때문에 근심 걱정하고, 건강도 잃어버리고,가정도 잃어버리고 자기 명예도 잃어 버리는 사람이 있다.
6.스탕달의 행복론
사랑하는 방법은 한가지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7.레프톨스토이의 행복론과 3가지 질문
모든 욕망을 버리고 선을 향하는 마음이라고 볼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웃을 사랑하는것, 부모를 공경하는것,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것, 악을 선으로 갚는것, 등등 양심에 대조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단다.
그리고 세가지 질문이라는 것은
1.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2.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3.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무엇인가?
8.에피크로스- 행복론
진정한 최고의 쾌락이란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했다.
즉 불안과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가 최고의 쾌락(행복)이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최고의 쾌락(행복)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몇 가지 쾌락규칙을 만들었는데 ,
1.좋은 쾌락을 선택하라!
* 짧은 쾌락 대신에 영원한 쾌락이 좋다. 부작용이 있는 쾌락보다 부작용이 없는 쾌락이 좋다. 당장 즐거움을 주지만 뒤에 고통을 주는 쾌락을 피해라.(과음)
2. 필수적인 욕망만을 취해라!
* 식욕은 자연스럽고 반드시 충족되어야할 필연적인 욕망이다.그러나 성욕은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필연적이지는 않다.
* 육체적 쾌락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육체적 괘락에만 너무 관심을 두는 것은 오히려 불행과 고통에 이르는 길이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쾌락은 결코 완전하게 만족되지 않기때문에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항상 불만족스러울것이고, 항상 고통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 사치는 자연스러운 욕망도 아니고 반드시 충족되어야할 필연적인 욕망도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욕망을 최소로 억제할 수 있기에, 쉽고 빠르게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궁극적인 쾌락인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3.최고의 쾌락(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절제와 중용이 필요하다.
진정한 쾌락은 취할 것을 취하고 금할 것을 금하는 자제력과 건전한 사유이다.
진정한 쾌락은 고통의 부재와 정신에 의한 욕망의 절제이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의 견해를 돈 문제로 옮겨 필자 나름대로 해석한 바는 다음과 같다.
1.진정한 쾌락은 재정적인 자유이다.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행복은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정신적인 불안으로부터 자유이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자립이 필요하다.
돈을 벌기위해서 하기 싫고 고통스런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 직장에서 쫒겨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재정적인 자립이 필수적이다.
재정적인 자립을 통해 노후가 불안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진정한 쾌락 상태에 가깝다. 재정적인 자유를 얻으면 노동의 고통과 불안으로 부터 자유롭기에 더 행복해질수있다.
2. 진정한 쾌락을 얻기위해서 소비를 절제하라!
당장의 과소비는 나중에 부작용이 나타나는 쾌락이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은 당장 쾌락을 가져다주지만 나중에 갚지 못하는 경우에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저축대신에 소비를 즐겨서 저축 잔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당장은 쾌락을 느낄 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 노후자금이 부족하기에 늙어서도 일해야 하는 육체적 고통을 당해야한다.
또 언제 직장에서 일자리를 잃을까 노심초사 불안에 떨게 된다.
따라서 무분별한 소비는 저급한 쾌락이며 궁극적 쾌락인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결국 절제와 저축은 진정한 쾌락(재정적인 자유)상태에 가깝게 만든다.
당장의 소비보다는 저축이 진정한 쾌락(마음의 평화)으로 가는길 일 수있다.
3.저급한 쾌락을 멀리해라!
에피쿠로스는 사치,향락,섹스탐닉,알콜등이 모두 저급한 쾌락이라고 보았다.
이들 저급한 쾌락은 쾌락자체로도 진정한 행복 상태로 이끌지 못한다는것이다.
또 장기적으로 재정적 자립에 방해가 퓸底?진정한 쾌락(재정적 자유)을 얻기 어렵게 만든다. 술과 섹스에 돈을 낭비하는 사람 치고 부자가 많지 않다.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것이 현명한 삶이다.
진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매일 밤을 술과 섹스에 탐닉하는 사람일까?
사치스런 옷과 고급 자동차로 번쩍이는 사람일까?
에피쿠로스는 그들은 얼치기 쾌락주의자이라고 한다.
진짜 쾌락주의자는 오히려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이며,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당신은 어떤 쾌락주의자 인가?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한 사람이 활발한 성생활을 할 수 있다[펌] (0) | 2006.11.06 |
---|---|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 [펌] (0) | 2006.11.01 |
동종요법의 허구 (0) | 2006.10.19 |
파벌주의 (0) | 2006.10.19 |
퍼주기와 핵실험을 연결시키는 조중동- 천하고 값싼 글쓰기 [펌] (0) | 2006.10.13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동종요법의 허구
동종요법은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의학을 공부한 하네만 (Samuel Hahnemann, 1755-1843)이 그 당시의 치료법에 반대하여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당시 치료법은 아직도 고대의 의학 체계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가 만물은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로 되어 있고 이 4원소는 변하지 않고 다만 물질의 조성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받아들였을 때는 4개 원소가 서로 변환이 가능하다고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4개 원소가 서로
변할 수 있는가 아닌가는 아니고 다만 이 4원소설은 고대 의학의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 4원소설에 기초한 체액설 (humoural theory)을 받아들였습니다. 체액설에 따르면 만물이 4개의 원소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 졌듯이 4가지의 체액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신체의 성질(wet, hot, cold, dry)을 결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체액들이 서로 적당한 비례를 이룰 때 사람은 건강하며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많거나 모자르면 이상행동, 병, 죽음이 오게 되므로 의사의 임무는 네 체액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은 체액들의 정상적인 비율을 회복하게 하는 경향이 있으나 의사는 하제, 찜질, 보리차, 포도주, 방혈, 사혈 등을 써서 이를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방법은 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봅니다.
이런 방법이 병 치료를 떠나 해악이 심했던 문제점을 심각하게 생각해 오던 하네만은 1796년 우연히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증명된 키나피를 과량 복용했습니다. 이때 말라리아 증세와 유사한 경련을 경험한 그는 이와 같이 정상인에게 어떤 물질을 과량 투여하여 나타나는 증상을 가진 병에, 그 물질을 소량 사용하여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원
리에 착안하였다. 그는 실제 90개 정도의 약을 자원자에게 실험하여 확신을 갖고 아이디어를 체계화하여 1810년 "합리적 의학의 원칙"을 출간하였습니다.
하네만은 질병이란 스스로 치유되는 인체의 능력에 교란이 생겨 발생하는 것이므로 약간의 자극을 가하여 치유과정을 유도하면 병을 고칠 수 있으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질병의 증상을 유도하는 약제의 소량 투여라고 이론화 하였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유사의 법칙 "Law of Similia'에 기초한 자신의 의학체계에 동종요법이라는 용어를 붙였는데 그는 이와 반대로 이전의 체액의 균형을 회복시켜 주는 원리를 이종요법(allopathy)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동종요법의 치료의 이론은 1)모든 병은 psora라는 불리는 infectious disorder에 의하여 생긴다. 2)생명체는 신체의 치료를 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3)치료는 과량으로 투여시 나타나는 증상에 의해서 인식하게 될 수 있다 4) 치료가 효과적이려면 희석을 될 수 있으면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종요법에 사용되는 물질들은 대부분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인할 만한 내용이 없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부분의 동종요법에 사용되는 물질들이 희석을 많이 하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가 없지만 일부분은 해로운 경우도 있습니다. 동종요법에 사용되는 약들이 완전히 위약효과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것은 그 물질들이 어떤 경우에는 효과를 나타내는 농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종요법은 단순한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아이디어에서 객관화시킨 것인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양의 오랜 주술 전통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프레이져의 "황금가지"에서 프레이져는 주술에서 특히 공감주술을 동종주술과 감염주술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동종 주술이 바로 동종요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주술은 두가지 사고의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가 유사는 유사를 낫는다라는 원칙으로 이것은 동종요법에서 그대로 사용되는데 이 말은 다시 말해서 결과는 그것의 원인을 닮는다라는 말로도 옮겨집니다. 이것을 프레이져는 유사법칙 (Law of Similarity)라고 하고 둘째는 '한번 접촉한 것은 실제로 그 접촉이 떨어진 후에도 계속 작용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염법칙(Law of Contagion)이라고 부릅니다. 불행히도 동종요법은
이것까지 포함하는 느낌이 듭니다. 바로 극미량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유사가 유사를 낳는다는 가장 보편적인 작용은 아마 적의 상이 괴로워하면 그 상의 당사자도 괴롭게 하고, 그 상이 파괴되면 그도 죽는다는 신앙에서 적의 상을 해치거나 괴멸하려고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민족에 의해서 실천되었던 시도입니다.
동종주술을 동종요법에 응용되는 것은 동종요법에 사용하는 약이 치료하려는 병과 거의 같은 증세를 일으키므로 치료약이 증세를 일으키다가 쉽게 사라지면 그가 앓고 있는 병이 쉽게 낫는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동종주술이나 모방주술은 모방에 의해서 주술을 실행함으로써 흉조를 없애려고 종종 이용된다. 그것은 가짜의 재난을 진짜 재난으로 대치시켜서 운명을 회피하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운명을 기만하는 방법이 보통 조직화되어 있다. 이곳에서 사람의 운세는 출생한 날이나 시각에 의해서 결정되고, 만일 그것이 연기(緣起)가 나쁜 때에 해당되면 대치 방법에 의해서, 그들의 말에 다르면 악운을 뽑아내지 않는 한 사방이 막힌다는 것이다. 그 악운을 뽑아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예를 들면, 만일 남자가 2월의 첫날에 태어나면 그가 자란 후에 그 집은 불이 난다. 그리하여 때의 기선을 제압하여 그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아들의 친구들은 밭이나 목장에 초옥을 지어 놓고 거기에 불을 지펴서 태운다. 이 의식에 좀더 효과를 내려고 하려면 아이와 어머니를 초옥에 두었다가 위험이 절박하기 전에 불타는 초옥에서 타나 남은 나무와 함께 두 사람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와 같이 구체적인 면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기본적인 원리가 같은 내용의 주술은 서양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또한 감염 주술에 대해서는 앞의 적의 상을 찌르는 것은 동종 주술이지만 그것이 만약 바뀌어서 적의 발자국을 찌른다면 감염주술입니다.
이 두가지 주술이 얼마나 깊이 서양사람들의 생활에 깊숙히 관여하는지는 삶을 잠시만 둘러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주술이 올바른 판단에 근거하지 않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프레이져의 말대로 그 순수한 형태를 취하고 나타나는 어느 곳에서나 그 주술은 하나의 현상이 어떤 영적 혹은 인격적인 작동자의 간섭 없이 자연 속에서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다른 현상을 수반한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이게 이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근대 과학의 기초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고 전체 조직의 기조는 자연계의 질서와 통일에 대한 맹신이지만 참되고 확고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주술과 과학이 다른 것은 신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이겠죠. 과학은 방법적인 엄밀성을 가지고 비과학적인 것을 제거해 나갔으나 주술은 비과학적이죠. 다만 제가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이런 생각도 할 수는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주술의 치명적인 결함이 객관화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을 지나치게 객관화시켰다는 것이긴 합니다. 즉 유사의 법칙이 맞는 것도 있고 틀리는 것도 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 맞다고 가정함으로써 그들은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어떤 유사법칙이 우연히 맞는 경우도 있겠죠. 그런 경우는 주술이 아니라 과학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사실 알러지를 치료하기 위해서 탈감작시키는 과정은 동종요법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종요법과는 다르고 그것은 과학에 포함되었습니다.
Provings
하네만은 약초나 광물 혹은 다른 물질을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하고 이것에서 나타나는 증세를 아주 자세하게 기록한 다음에 이것을 materia medica라는 참고문헌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것을 이용해서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하네만은 사람은 원래 병에 대한 치유력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병을 고칠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는 만성적인 질환이 일종의 evil sprit 인 psora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량의 약을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이것을 계속 희석하여 희석을 할수록 더 효과가 크다는 극소량의 법칙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투여량과 반응에 대한 관계에 대한 현대의 입장과는 반대입니다.
사실 하네만은 vitalism(생기론-생명현상은 물질의 기능 이상의 생명 원리에 의한다는 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기론이 최근에 뉴에이지나 전일론적 관념들과 맞아 들어가기 때문에 요즘에 더 널리 동종요법이 퍼지는 지도 모릅니다.
미국 "식품, 의약품, 화장품 법"(The United States Food, Drug, and Cosmetic Act)는 "Homeopathic Pharmacopoeia of the United States(미국 동종요법 약전)"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입니다. FDA는 동종요법의 약들에게 효과시험에 대해서 기존의 약품과 같은 정도의 요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Homeopathic Pharmacopeia(동종요법 약전)에는 현대 과학적인 testing방법이 아니라 proving을 통해 1800년대와 19년대 초에 실행해 왔으며 현재의 9판에 이르러서는 동종요법에 사용되는 천 가지도 넘는 물질들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물질이 어떤 병이나 증세에 사용해야 되는지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용자(혹은 제조자)가 정해야 합니다. 동종요법 약전은 법적으로는 "약"으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말하지만 법도 아니고 FDA가 효력을 인정한 것도 아닙니다.
동종요법적인 치료가 19세기 정통적인 치료보다는 덜 해롭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약 14000명이 사용하고 22개의 대학이 미국에 있었으나 의학이 발전하고 의학교육이 발전함에 따라서 급속하게 사라져 가거나 현대의학으로 바뀌었습니다. 동종요법을 가르치는 학교는 1920년대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많은 동종요법사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특별히 맞는 치료가 따로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체질 (constitutional type)"에 Ignatia Type은 신경질적이고 눈물을 자주 흘리고 담배 냄새를 싫어하고 "Pulsatilla 는 젊은 여자이고 blond 혹은 밝은 갈색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파란 눈을 하고 있고 성격은 온화하고 걱정을 많이 하기도 하고, 낭만적이고, 감정적이고, 친절하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탑니다. Nux Vomica Type은 공격적이고 매부리코이고 의욕적이고 Sulfide Type은 독립적이다. 이런 등등인데 이것이 과연 진단과 치료에 의거한 분류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Directory of the National Center for Homeopathy에 등록된 동종요법사는 300명 정도인데 이들 중의 절반은 내과의이고 나머지는 자연요법의, 카이로프랙틱, 침술사, 치과의사, 수의사, 간호원, 의사 보조원등입니다.
치료는 위약효과이다.
동종요법의 약들은 광물이나 식물성 물질이나 기타 다른 여러 가지 것으로 만들어진다. 만약에 약들이 물에 녹는다면 이것을 증류수나 알콜에 녹여서 10배 혹은 100배씩 연속해서 희석해 나간다. 만약에 물에 녹지 않는다면 잘 갈아서 분말 lactose (유당)으로 희석해서 사용한다. 이들이 희석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X라는 것은 1/10 희석이라는 것이고 C는 1/100이라는 의미인데 3X 는 1/1000, 5X는 1/100000이고 2C는 1/10000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희석은 대부분이 6X에서 30X이지만 어떤 약은 30C혹은 이상이 되는 것이 판매되기도 합니다.
약간만 계산하면 알 수 있는 것은 포함된 성분이 1몰이 않되기 때문에 분자들이 24X(아보가드로 수가 6.023 x 10^23)이상이면 거의 원래 성분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설사 훨씬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여기서 몇 번 더 희석하면 전혀 성분이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30C를 희석하고 한 개라도 성분이 남아있으려면 지구 크기의 300억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Oscillococcinum
200C 제품인 "감기 혹은 독감 유사 증세를 덜어주는" 이 제품은 이들 성분은 바로 죽인 오리의 간과 심장의 작은 양을 40일간 incubation하여 만들게 되는데 여기서 얻어지는 용액을 필터하고 동결건조한 다음에 다시 물에 녹인다음에 연속해서 희석하고 설탕 입자에 스며들게하여 만들게 됩니다. 200C라고하면 10^400배 희석하게 됩니다. 이 값이 얼마나 하면 우주의 모든 분자의 숫자가 겨우 10^100 밖에 않됩니다. US News & World Report 1997년 2월 17일 판에서에서 이제품을 만드는데 일년에 오리 한 마리만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년도에 2000만불의 판매를 했기 때문에 2000만불의 오리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보가드로수에 의식한다면 12C혹은 24X이상에서는 사실상 원래의 분자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하네만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섞을 때 매우 흔들어주는 과정속에서 어떤 기운이 그대로 남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앞서 말했던 감염주술입니다.) 이것은 물론 증거도 없거니와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물이 접촉했던 수 많은 분자들 중에서 어떻게 이것만이 기억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염 주술은 신념일 뿐이죠. 그리고 감염주술 자체도 서양에서는 끊이지 않고 계속 전통이 내려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동종요법사는 이것이 소량으로 자극해서 면역계를 반응시키는 백신과도 매우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교는 잘못된 것입니다. 백신에서 주요 성분의 양은 측정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이 들어있으며 특히 면역은 항체를 만들어 내지만 동종요법의 극도로 희석된 약은 어떤 측정 가능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또한 제조하는 공간에는 수많은 물질들이 있습니다. 또한 희석하는 과정 중에서 어떻게 필요한 성분만을 골라내서 기억시킬 수 있는지 혹은 동종요법에 필요한 약을 알아내는 과정인 proving과정에서 과연 어떤 성분이 효과가 있는지는 각 희석 과정마다 다 확인을 해가면서 실험을 하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Unimpressive "Research"
대부분의 약들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없는 실정입니다.
1984년 Scofield는 동종요법에 관련된 실험적 연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무수히 많은 실험과 임상연구에도 불구하고 동종요법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약간밖에 없다. 이것은 실험디자인, 실험의 수행, 자료의 수집, 분석과정에서의 오류와 특히 가능성을 보이는 실험을 반복하여 추시하지 못한 때문이며 실험의 규모상 문제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잘 디자인된, 통제된 실험도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말은 동종요법은 효과는 있는데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Scofield는 과학의 기본 방법론을 무시했습니다. 즉 동종요법이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야지 동종요법이 효과가 없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1990년 Review of Epidemiology의 논문은 40개의 임상실험을 위약효과나 혹은 아무 치료도 하지 않은 것과도 비교해서 결론을 내리기는 40개중에서 3개를 제외하고는 실험상의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으며
그 중 3개의 실험 중에서도 1개만 효과가 조금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논문에서는 동종요법이 위약이나 아무 것도 처리하지 않은 것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91년에는 Brit Med J.에서 Kleijnen은 96편의 논문에서 나타난 107건의 통제된 동종요법 실험을 분석하여 "임상 시험의 증거로 보아 동종요법의 효과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낮은 수준의 평가방법과 논문발표의 편향적 성향 때문에 확정적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좀더 평가해야할 합법적인 사례가 하나 있지만 이 경우도 좀더 잘 시험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1994년 Pediatrics에서는 동종요법이 니카라구아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설사에게 약간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있었습니다. 이 주장은 어떤 특정한 날 치료를 한 그룹이 위약그룹에 비해서 설사가 줄었다는 것에 대한 발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Samson과 London은 이 주장이 (1) 진단과 치료계획에 사용된 방법이 믿을 만하거나 증명된 방법이 아님 (2) Product adulteration에 대해서 안전장치가 없다. (3) 치료방법이 작위적이고 (4) 자료들이 이상하게 그룹지어졌고 자료도 일관성이 없으며 (5) 결과의 임상적인 중요성이 의심되고 (6) 결과가 공중보건에는 중요성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mild childhood diarrhea는 적절하게 수분만 보충해주나 탈수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1995년 Prescrire International 은 리뷰 논문에서 "지금까지의 많은 수의 비교 임상시험에도 불구하고 동종요법은 위약효과에 비해서 효과는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1996년 12월에 Commission of the European Communities에 의해 소집된 Homoeopathic Medicine Research Group (HMRG)은 긴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HMRG는 동종요법 내과연구원(역주: 동종요법을 하는 내과의가 미국에는 150명이 있습니다.), 임상시험 연구원, Clinical Pharmacology, biostatistics, 그리고 Clinical epidemilogy(전염병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논문으로 발표되거나 발표되지 보고서를 확인하여 동종요법의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184개의 보고서를 살펴본 후 (1) 이중 오직 17개만이 제대로 디자인되었으며 고려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 이들 17개중의 실험중에 일부는 위약효과보다 좀 나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 그러나 17개의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이들 중에서 어떤 특정한 상황에 어떤 약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효과가 있다고 판단내리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동종요법 연구는 가치가 없고 어떤 동종요법 치료도 특정한 병에 대해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National Council Against Health Fraud는 "동종요법의 파벌주의는 동종요법이 연구자의 진실성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하였습니다.
1997년 London Health authority는 동종요법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따라서 동종요법 치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동종요법사들이 주장하는 실험들을 확인해 본 결과 대부분 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Royal Homoepathic Hospital 의 최근 연구도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종요법 지지자들은 아주 적은 긍정적인 연구를 동종요법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설사 이런 결과들이 반복적으로 나온다고 하더라고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이것은 한가지 병에 대해서 한가지 약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 동종요법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이 옳다는 근거는 아닙니다.
위약효과는 매우 강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약효과는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효과없는 위약에 의존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것 등에 대해서 같이 평가를 해야 합니다. 많은 병들이 점차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동종요법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믿는 사람은 약을 처리하지 않아도 분명히 병이 나을겁니다.
불법적인 마켓팅
미국의 가장 뻔뻔한 동종요법 제조사는 아마도 Biological Homeopathic Industries (BHI)일 것입니다. 이 회사는 1983년에 123페이지의 카다로그를 20만의 전국적인 내과의사들에게 보냈는데 이 제품 중에는 BHI Anticancer Stimulating, BHI Antivirus, BHI Stroke 등을 포함한 50종류의 심한 질병에 대한 효과가 있다는 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84년에 FDA는 BHI에 이러한 주장을 몇 가지 제품을 제공하지 말 것과 주장의 정도를 완화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법적인 주장을 계속해왔습니다. 1991년 Physician Reference에서는 Heart failure, syphilis(매독), kidney failure, blurred vision이나 기타 심각한 질병에 동종요법제품의 적절하지 못한 내용을 권장했습니다. 이 회사가 제공하는 Biological Theraphy, Journal of Natural Medicine등은 주기적으로 믿기 어려운 주장을 싣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2년 4월 호는 BHI와 Heel product(BHI에서 제공받는 것을 판매)이 50가지 이상의 병(암, angina pectoris, 전신마비) 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93년 10월 호는 어린이들에게 사용하는 동종요법에 대해서 만들어 졌는데 여기에는 귀나 편도선의 급성 세균감염에 제품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Biological Therapy의 medical editor인 동종요법사가 여러 도시에서 개최한 Heel seminar에서 중요한 내용으로 선택했습니다. 그 뒤에서도 1993년에는 Heel은 500페이지가 넘고 450종류 이상의 병을 치료한다는 주장을 실을 하드커버 책을 내놓았고 여기서 12페이지는 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1998년 네바다의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정골요법 회의에서 추가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좀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 "식품, 의약품, 화장품 법"(The United States Food, Drug, and Cosmetic Act)는 "Homeopathic Pharmacopoeia of the United States(미국 동종요법 약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뉴욕의 상원의원이었던 Royal Copeland의 노력덕분인데 이 사람은 그 당시 가장 뛰어난 동종요법 내과의사였습니다. 1938년에 법이 만들어 질 때 일차적인 관심사가 안정성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극도로 희석하여 사용하는 동종요법 치료제들은 이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라벨링이나 약의 성분에 대한 표시도 동종요법은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62년 수정 법안은 약이
팔리기 전에 그 약이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때에 동종요법에 대해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었으나 FDA는 동종요법약을 일반적인 병에 대해서는 OTC를 허락해 주고 심각한 병에 대해서는 처방하는 것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만약에 FDA가 다른 약에 대해서 가하는 기준을 동종요법에 적용하기만 하여도 동종요법은은 아마 미국에서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FDA당국은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치료가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특히 항암제와 AIDS치료제에 비하면) 다른 중요한 일이 더 많기 때문에 이것을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FDA가 이들을 공격하더라도 로비에 약한 미국 국회에 압력을 가해서 살아나려고 할 것입니다. 어쨋던 간에 FDA는 효과가 없는 약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팔리는 것을 허가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말도 안되는 electrodiagnostic(예를들어 파동의학 장치들이죠) 장치들도 더 이상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됩니다.
1994년 사이비 과학과 돌팔이들에 대한 42개의 유명한 비평의 글은 동종요법 제품의 판매를 막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약국에서 아무런 의사의 처방없이 판매되는(OTC) 동종요법 약도 일반 의약품과 같이 취급하라는 법을 만들도록 FDA에 탄원했습니다. FDA는 아직 이것에 대하여 반응이 없지만 1998년 3월 3일 전직 FDA의 Commissioner인 David A. Kessler는 동종요법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금지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국회가 반대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출처 : '동종요법(homeopathy)의 허구' - 네이버 지식iN)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 [펌] (0) | 2006.11.01 |
---|---|
행복론 정리 -諸家의 썰 (0) | 2006.10.25 |
파벌주의 (0) | 2006.10.19 |
퍼주기와 핵실험을 연결시키는 조중동- 천하고 값싼 글쓰기 [펌] (0) | 2006.10.13 |
질병의 진화적 설명 (0) | 2006.10.10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파벌주의
혹 어떤 이는, “사색 이후의 역사는 피차의 기록이 서로 모순되어 그 시비를 가릴 수가 없어서 가장 역사의 난관이 된다.”고 하지마는, 그들의 시비가 무엇인가 하면 아무 당이 이조의 충신이니, 역적이니, 아무 선생이 주자학의 정통이니 아니니 하는 문제들뿐이라,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면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둘러 임금의 시체를 두 동강이 낸 연개소문을 쾌남아라 할 것이요,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여 명륜당(明倫堂) 기둥에 공자를 비평한 글을 붙인 윤백호(尹白湖)를 걸물(傑物)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냉정한 두뇌로써 회재.화담(花潭:徐敬德). 퇴계.율곡(栗谷:李珥) 등의 학술상 공헌의 많고 적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자학의 정통이 되고 안 됨은 희담(戱談)이 될 분이요, 노론(老論).소론(少論).남인(南人).북인(北人)의 다툼은 그 정치상에 미친 영향의 좋고 나쁨을 물을 뿐이며, 이조의 충성된 종 되고 못 됨은 잠꼬대에 지나지 않을 뿐이요, 개인의 사사로운 덕의 결점을 지적하여 남의 명예를 더럽히고 혹은 애매한 사실로 남을 모함하여 죽인 허다한 사건들은 그 반면에 있어서 당시 사회 알력의 나쁜 습속으로 국민과 나라를 해친 일종의 통탄할 사료가 될 뿐이다. 만일 시어머니의 역정과 며느리의 푸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일에 낱낱이 재판관을 불러 그 굽고 곧음을 판결하려 한다면 이는 스펜서의 이른바 이웃집 고양이 새끼 낳았다는 보고 같아서 도리어 이로써 사학계의 다른 중대한 문제를 등한히 할 염려가 있으니, 그냥 던져둠이 옳다. 그리고 빨리 지리 관계라든가, 국민생활 관계라든가, 민족의 성쇠라든가 하는 큰 문제에 주의하여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것을 구하여 조선 사학계의 표준을 세움이 급무 중의 급무라 생각한다. |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론 정리 -諸家의 썰 (0) | 2006.10.25 |
---|---|
동종요법의 허구 (0) | 2006.10.19 |
퍼주기와 핵실험을 연결시키는 조중동- 천하고 값싼 글쓰기 [펌] (0) | 2006.10.13 |
질병의 진화적 설명 (0) | 2006.10.10 |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 (0) | 2006.10.06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퍼주기와 핵실험을 연결시키는 조중동- 천하고 값싼 글쓰기 [펌]
2006년10월9일은 우리 민족사에 크게 기억될 날이 될 듯하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의 단일후보로 유엔총회에 추천된 것은 단군 이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까. 그러나 불행히도 이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우리는 북한 핵실험이라고 하는, 민족사적인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1차 핵실험 당일의 충격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햇볕정책·대북포용정책에 사태의 책임을 묻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이하 조중동)는 역설적이게도 무척이나 신이 난 듯이 보인다. 연일 사설과 해설기사에서 지난 8년간의 대북유화정책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마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남대 강연을 계기로 햇볕정책에 대해 히스테리적인 사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오늘 10월12일자 조선일보는 김 전 대통령을 겨냥해 햇볕정책 목숨보다 나라 운명을 걱정해야 한다는 제하에 이른바 ‘퍼주기’가 북핵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北의 실체에 국민의 눈 가린 좌파정권’이다. 굳이 내용소개는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미국이 못살게 굴어서 핵개발 했다”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사설 외의 다수 해설 기사들 논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게 퍼 준 결과가 핵실험이었으니 김대중 정부 이후 지금까지 8년간의 대북정책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당사자들이 책임져라는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간 북핵 문제에 대해 낙관적으로 발언한 것들에 대해 ‘이런 발언만으로도 그는 탄핵감’이라고 했다.
내 주변의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 속한 사람들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상으로 대뜸 하는 말들이 ‘북한 퍼주기’이다. 나는 이렇게 묻곤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퍼 줬는지는 아십니까?”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에서는 “8년 동안 8조원 상당”이라고 썼고 중앙일보 오늘자 사설에서는 “지난 8년간 ··· 4조5천억원”이라고 썼다. 이는 한나라당 진영 의원이 낸 정책자료집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8조원이라는 액수는 8년간 남에서 북으로 넘어간 모든 돈을 다 더한 액수다. 그 중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지원한 액수를 뭉뚱그려서 다 더하면 대략 4조5천억원이다. 그러니까 8년 동안 8조원은 적어도 ‘대북정책’에 의한 ‘퍼주기’와는 거리가 먼 액수로서 대표적인 침소봉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조5천억원에도 다양한 주체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정부가 ‘대북유화정책’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원한 액수는 이보다 적다. 게다가 어디까지를 ‘정책에 의한 퍼주기’로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유화정책=퍼주기’라는 등식은 쉽게 성립될 것 같지가 않다.
대충 정부가 갖다 준 돈이 8년간 4조원이라고 해도 1년에 5천억원 지원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한해 예산이 230조원정도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재직 때 말했듯이 OECD 권고 사항 중 하나가 GDP의 약 0.5%를 가난한 나라 도와주는 것인데, 800조원에 육박하는 우리 GDP 기준으로 볼 때 이 액수는 4조원 가까이 된다. 그러니까, OCED에서는 매년 대한민국에게 약 4조원 가량의 돈을 가난한 나라 도와주는 데 쓰라고 권고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등지의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 이만큼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8년간 퍼주기 했지만 따지고 보면 OECD 권고사항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 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빨갱이 원조국”인 구 소련에 떼어먹힌 30억 달러가 ‘북방외교’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다음으로, 조중동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정권의 본질을 잘못 알고 속아 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퍼주기’ 해 봤자 어차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햇볕정책이 작금의 북핵사태를 자초했음은 물론 한미동맹에도 균열을 가져왔다는 결론은 이런 식으로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 핵실험의 결과만을 놓고 과거를 왜곡해서 끼워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과연 북한 핵문제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대단히 본질적인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중동의 주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우선, 햇볕정책이 북한 핵개발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퍼주기를 했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을 리는 없다.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했던 김영삼 시절에는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다가 김대중이 퍼주기 시작하니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결심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좀 더 세련된 주장은 이렇다. 대북지원금이 김정일 손으로 흘러들어가 핵무기 개발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니까 결국 햇볕정책이 핵무기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이전에는 돈이 없어서 핵무기 만들 꿈도 못 꾸다가 대북 지원한 쌀 팔아서 돈이 생기고 보니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한해 국방비가 약 5조원이다. 그 유명한 ‘선군정치’를 펼치는 김정일이 한해 평균 5천억원(실제는 이보다 적겠지만)의 남한 지원금 ‘때문에’ 정권과 체제의 명운이 걸린 핵무기 개발을 결심하고 결행했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조중동의 주장의 핵심은 ‘퍼주기를 했더라도’ 어차피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퍼주기 하면 핵개발 안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조중동이 주장하는 바를 다시 말하자면, 사실 기껏해야 햇볕정책이 북한 핵실험의 주변부적인 요소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한 지금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북한은 왜 남한이 ‘퍼주기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퍼주기 자체가 북핵사태의 전부인 양 오도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에 버금갈 만큼의 명백한 국민기만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미국 언론이다. 한국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무렵 미국에서는 북한 무시 일변도의 부시 외교정책이 대대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조중동이 힘 있는 미국정권에 감히 비판이나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언론은 한국정부를 마음대로 난도질할 수가 있을 터인데 한국정부의 대북화해정책이 북핵사태를 불러왔다는 분석을 찾기가 어렵다. 아마 그런 기사가 났다면 조중동이 수 면에 걸쳐 도배를 했을 터인데 말이다. 보수적인 워싱턴포스트조차 “외교정책 위기의 핵심은 악의 축”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핵문제의 본질적인 질문, 즉 왜 북한은 남한이 ‘퍼주기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다. 뭉턱뭉턱 생각해 보자면, 94년 1차 핵 위기-제네바 합의-2002년 2차 핵 위기-2006년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남한의 대북정책은 김영삼 정부의 강경정책에서 김대중·노무현의 유화정책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클린턴 정부 때 북미공동 코뮤니케까지 발표하며 수교직전까지 갔다가 부시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94년 핵 위기 때는 미국과 한국 모두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했다. 민주당의 클린턴조차 북폭직전까지 갔던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약 대북유화정책이 북한에게 쓸모없는 것이고 강경일변도로 북한을 몰아붙이는 것이 북한에 대한 최선의 정책이라면 1차 핵위기는 카터가 김일성을 만나기 전에 잘 해결이 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쟁일보직전상황이 아니었던가. 1차위기를 넘긴 것은 북미직접대화였고 포괄적 타협이었다. 강경일변도였던 김영삼 정부는 판에 끼이지도 못한 채 경수로 분담금만 떠안게 되었다.
지난 8년간 남한에서는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대북유화정책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까, 이 기간 동안에 2차 핵위기가 생긴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변화와 직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체결까지 갔다가 다시 위기상황이 도래한 것은 워싱턴포스트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느닷없는 ‘악의 축’에 그 기원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말마따나 지금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모두 부시행정부 시기에 만든 것들이다.
북한이 6자회담 불참이유로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것은 미국의 대북금융제재이다. 사실 아직도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불량국가로 낙인찍혀 전략물자반입도 허용되지 않는다. 윈도우 XP나 팬티엄III 등등은 북한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미국의 사실상의 경제봉쇄를 버텨 오던 북한이 마카오 은행계좌 동결로 치명타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정부가 조중동이 주장하듯 유화정책을 버리고 강경정책으로 선회한다고 가정해 보자. 북한은 어차피 수십 년 동안 혼자서도 (중국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잘 살아왔던 나라였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경제제재에도 그럭저럭 버텨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좀 더 제재를 가하는 것이, 그리고 좀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북한에게 큰 위협이 되겠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조중동은 한국정부가 북한과의 타협 없이 강경하게 몰아부쳐 김정일을 굴복시켜서 얻을 것은 꼭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부시조차 초강경으로 밀어부쳐도 굴복은커녕 된서리만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돼서 북한의 선택의 폭을 줄이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조중동의 대북강경책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위험천만한 불장난에 불과하다.
이번 북핵사태의 근본원인은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그 동안의 모든 과정이 간단히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한의 햇볕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북핵문제에 관한 한 남한의 한계이다. 그 본질은 결국 북미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 햇볕정책의 결과적 실패는 그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변화 없이는 북핵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미국 쪽에서의 더 많은 햇볕이 결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은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문제라기보다 미국과 북한의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중동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들 ‘좌파정권’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독재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대한민국에 대한 자학적 사관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런 조중동이 왜 ‘좌파정권’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학적인 것일까. 민주화가 그리도 못마땅한가. ‘좌파정권’은 (결코 좌파적이지도 않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란 말인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닌가. 노무현의 안일한 대북관이 북핵사태를 불러왔으니까 탄핵감이라고 한다면, 어쨌든 전쟁을 막지 못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란 칭호를 반납해야만 하고 그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라도 해야 순서가 맞지 않나.
한편으로 보자면 대북강경책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조중동에게 이번 북핵사태는 이미 예견된 사건이다. 그들은 대결을 원해왔고 긴장을 원해왔고 파국적 상황을 원해왔다. 이는 일본 보수파나 미국 네오콘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뭇 심각한 그들의 안색 이면에서는 아마도 표정관리 하느라 여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조중동은 어째 신이 나 보인다. 그래,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나?
조중동이여, 차라리 춤이나 한판 춰라!
<2006.10.13 한겨레의 기고 글에서>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종요법의 허구 (0) | 2006.10.19 |
---|---|
파벌주의 (0) | 2006.10.19 |
질병의 진화적 설명 (0) | 2006.10.10 |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 (0) | 2006.10.06 |
[老 詩] 지리산 종주- 삶이 지루하거든 (0) | 2006.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