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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05 입춘 비행- 예봉산
- 2007.02.02 호감 대화 [펌]
- 2007.01.31 2006 년 12 월, 서울의 명동 밤 유영기
- 2007.01.18 [펌] 예수도 말을 빼앗긴 시대
글
입춘 비행- 예봉산
예봉산 착륙장에 도착하니 12 시가 다 되어 간다.
하늘여행 팀의 황부호 회장께 전화를 드리니 성낙윤 어르신과 대부도로 단 둘이 가신다고 하여 혼자 왔다.
베스트플라이와 서울파라는 문경에서 비행을 하고......
강변 날씨가 정말로 포근하기 이를 데 없어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고 한 켠에서는 모형 헬기를 날리고 있다.
천리안 항동 시삽을할 때 비행 담당 부삽을 열심히 하던사이버를 오랜만에 착륙장에서 만났는데, 전 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
참 정확한 비행을 하면서 팀 비행을 엄격히 하게 하는 사람이다.
팀원들이 하나 둘씩 결혼들을 하더니 비행을 접은 사람들이 많아서, 졸지에 본의 아니게 독립군이 되었으며 정광산에서 비행을 자주한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웠다.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표정이 훨씬 더 밝고 덜 냉소적으로보이는데, 꼭 외국영화 배우 존 말코비치 닮아서 전에 내가 그 이야기를 여러 번 했을 때에 자신도 수긍을 했었다.
참 반가웠다. 사람은 옛 사람이 더 정답다고 하더니......
3 주만에 또 예봉산 비행을 맞으니 이륙장에 올라 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인데, 사이버가 얼마나 올라가느냐고 물어 내 걸음으로 한 25-30 분 정도 걸리는 것 같고, 중간 중간에 로프가 매어져 있어 그런대로 올라갈만 하다고 설명해 주었다.
정말로, 난 힘이 들어서 산에 가고, 쉬기 위해서 걷는다. 여기 예봉산에서도 또 마찬가지다.
첨 부터 가파르게 횡단으로 시작하는 등산 길이 자못 힘이 든다. 지리산 종주 등산에서 처럼 기어 올라가다가 구비 전이나 능선에 도달하기 전에 쉬면서 올라갔다.
떡, 올라가서 기체를 내려 놓으니 온몸이 깃털이다. 온몸에 작용하던 모든 중력이 다 사라진 것 같다. 스트레칭을 오래 하면 그 부분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허리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허리가 없어지는 것처럼 기체를 내려 놓으니 몸 자체가 없어진 것 같다.
그래! 이 맛이야!
솔로로 비행하러 온 사람 하나가 세 번이나 이륙실패를 겪고, 또 한 사람이 한 번 이륙실패를 했다가 두 번째에는 성공하였는데, 여러 사람들이 나무를 스치듯이 떠 오른다. 약한 바람 탓에다 조작 미스이다.
러쎌에게 이륙장에서 보이는 왼쪽 마지막 능선과 그 너머의 능선 사이에서 놀라는 이야기를 다시 듣고, 어디에서 돌리면 좋을지 콜을 해달라고 부탁하고서 기체를 펴고 딱 섰다. 이륙장에서는 고수들도 늘 긴장하고, 그 긴장 맛에 비행을 한다고 하는 판이지만 나 같은 초보비행자는 늘 가슴이 뛴다.
산줄들이 엉키지 않았나를 살펴 보고서 전방으로 돌아서서 라이저를 끼우고, 다시 후방으로 돌아서 기체를 보고 섰다.
약한 바람이나마 불길래 라이저를 당겨서 기체를 세운다. 그런대로 똑바로 올라오는데 우측풍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약 80% 올라올 때 전방으로 돌아서서 오른쪽으로 힘차게 뛰면서 견제를 살짝하니 부웅 떠올라 앞의 나무를 살짝 넘어서 나가니 상승하기 시작하여 왼쪽으로 돌아서 왼쪽 능선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갔다.
눈 아래의 한강이 훤하게 보인다. 참 경치하나 끝내 주는구나라고 다시 한 번 감탄해 본다.
평창 활공장에서 보이는 구비구비 평창강보다 훨씬 크고 시원하다.
라이저를 놓고, 자리를 잘 잡아서 하네스에 편하게 앉는데, 자꾸 똑바로 앉게 되어 어깨끈을 너무 당겨 놓았나 싶었다.
콜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 끝 능선에 도달하여 돌려 보기 시작했다. 두어번 돌리니 제법 잘 올라가서 조금 더 돌린 후릿지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기체가 여러 대 떠 있었는데 다들 신나게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 담박에 느껴진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끝 능선에서 8 자를 하느라고 사면 쪽으로 들어가는데 나무와의 거리가 너무 짧게 느껴져서 약간 당황스러워 진다. 이러다가 혹시 저 나무에 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진행하지 않고 왼쪽으로 당기니 다행스럽게 바로 멀어진다.
사실 필은 전부터릿지를 할 때엔 깊게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하였는데 이런 경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좀 무섭다.
빠져 나오니 그런대로 고도 상승이 이어져 몇 번의 왕복을 하는 중에 어느 지점에서 어느 순간에 고도가 뚝 떨어진다. 한 번 더 갔다가 바로 빠져 나와서 한강 가운데를 보면서 날아갔다. 철탑을 지나서 몇 번 왕래 하다가 한강 가운데까지 나갔다가 들어 오니 착륙장 고도가 아직도 약간 높아 한 번 더 깎은 후에 착륙장에 들어가니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 진행을 하니 조금 짧아서 착륙장 직전에서 하네스에서 몸을 일으키고, 조종줄은 한 번 더 감은 후 1.5 미터 쯤 공중에서 차렷을 하여 두 다리로 착륙으로 끝냈다.
예봉산에서 완전 무콜 비행을 하게 된 것이다.
무콜 비행이라는 것이 뿌듯해졌다.
지난 주는 영하 9 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추웠고 어제까지도 만만치 않았는데 오늘은 완전히 봄 날이다.
러쎌이와 사이버는 반소매 차림으로 다닌다.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는 안 맞는데, 풀린다는 예보는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것 같아서 속으로 웃었다.
이렇게 124 회 비행을 기록했다.
<2007.2.4>
<Ventures - Last Train To Th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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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 대화 [펌]
호감 아줌마 7계명
호감 아줌마 7계명
1 칭찬을 차별화시켜라
‘옷이 참 예쁘네요’보다는 ‘여전히 옷 고르는 감각이 탁월하시네요’
하는 식으로 소유물보다는 재능에 대한 칭찬을,
막연하게보다는 구체적으로 칭찬하면 칭찬에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너무 빈번한 칭찬은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므로 금물!
2 호칭도 안티 에이징을 원한다
주부들이 나이 들면서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호칭이다.
‘형님’보다는 ‘언니’로,
‘○○엄마’보다는 ‘○○ 씨’ 하며 이름을 불러 준다면
젊음까지 선물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3 옳은 말 하는 사람보다 이해해 주는 사람이 좋다
이성적으로 판단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 말에 맞장구쳐 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사람은 옳은 말을 해 주는 상대보다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상대에게
끌리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듣고 보니, 그건 네가 잘못했네…’보다는 ‘맞아,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4 자랑은 적당히, 애교 있게(?) 하라
자리에 앉았다 싶으면 늘어지는 ‘자랑’은 주부들 대화 중 빠지지
- 않는 메뉴이지만 (자랑)하는 사람에겐 몰라도 듣는 이에게는 고역이다.
꼭 자랑이 하고 싶다면
‘나 지금부터 벌금 내고 자랑 좀 할게’라는 식의 애교 있는 양해를
- 구한 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자.
5 대화의 1:2:3 원칙을 활용하라
말재주가 없다고 모임을 피하지 말고 ‘1분 동안 말하고
- 2분 동안 들으면서
그 2분 동안에 세 번 맞장구친다’는 대화의 원칙 1:2:3을 활용하자.
6 비련의 주인공은 노(No)
‘내 아이는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하는지 모르겠어’
‘내 팔자는 왜 이러냐’
하는 식으로 얘기할 상대만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 튀어 나오는 불평불만들.
본인은 스트레스가 해소될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다른
- 스트레스다.
부정적 감정보다는
긍정적 감정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자.
7 작은 빈틈이 타인의 마음을 연다
이성 간에도 너무 완벽한 사람에게는
접근하기 어렵듯 동성 간에도 자신보다 훨씬
잘나 보이는 사람에게는 다가서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기본 심리다.
늘 행복하고 충만해 보이던 사람이
‘실은 나도 고민이 있어’라고 말하며
솔직하게 자신을 열면 훨씬 많은 친구가
그 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中에서 ]
- <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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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년 12 월, 서울의 명동 밤 유영기
연말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개 들뜬다.
그냥 그 들뜨고 노는 분위기에 실려 가고 싶어 한다.
일년 내내 분주하게 일을 하다가 에너지도 떨어지고 긴장도 좀 풀어지고, 뭔가 풀어 놓고 싶은 심리가 되는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우리나라 최근대사의 격동기를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 온 사람들인 4-50 대의 국민들, 통금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 이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어 이 시대의 지배향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6.25 전쟁이 가져 온 시대상을 반영하는정서와 문화가 7-80 년 대까지의 지배향수였던 것 처럼......
12.23 일 토요일, 기선이 화룡이 부부와 오랜만에 연말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 명동을 나가기로 하였다.
광화문 시청앞 청계천 일대에서 루미나리에 (빛의 축제)를 한다고 하고, 명동의 크리스마스 기분을 보고 싶었다.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싶어하는 기선네 계수씨를 위하여 세종문화회관 뒤의 베트남 쌀국수 식당을 찾아 갔으니 8 시가 넘어서 그런지 문을 닫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오랜만에 무교동 낙지를 먹자고 하여 원래부터 유명하다는 청진동의 한 낙지식당을 찾았다. 지나면서 사람들이 많이 먹고 있는 집이 맛있을 것 같아서 무슨 할머니집엔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아주 오래 전,대학 다닐 때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나서 무교동의 어느 다방에서 커피 값 바가지를 씌우길래 싸움을 하고는 나오던 일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들 웃었다.
오늘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토요일이라서 사람들이 많아 식당이나 찻집에서 바가지를 씌우지 않을까 궁금하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참 오랜만에 접해보는 무교동 낙지다. 한 25 년도 넘은 시절에 백단 사람들과 막걸리와 매운 무교동 낙지를 먹고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가물가물하다. 오늘의 낙지 맛은 전 보다는 그렇게 맵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의 입 맛에 맞추기 위해서 달고 덜 맵게 하고 있지나 않나 모르겠다.
낙지볶음과 조개탕, 오십세 주를 시켜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에 얼굴이 금방 벌개진다.
조개탕은좀 우그리고, 한 쪽 손잡이를 일부러 떼어낸 납작한 냄비에 담아 왔는데 제법 운치가 있고 시원하다.
나 화룡이 부부가 특히 술빨이 당겨 많이 마셨다.
나는 항상 기분 좋아야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더 기분이 좋다.
오늘도 즐겁고 기꺼운 기분으로 술을 마시니 흥이 저절로 나고 기분이 날아갈 듯 가볍다.
얼굴로 달아 오르는 열기, 적당히 차 오르는 숨, 풀려가는 듯한 눈이 편안하다.
까짓 것, 얼굴 좀 빨개면 어떠랴......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적당히 배부르고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종로 거리로 나오니 사람들이 매우 북적거린다.
그래, 사람 구경하려고 나왔는데 잘 됐다. 연말엔 사람들이 좀 북적거려야 연말 맛이 나는 거야.
젊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 또래의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일반적 정서라는 거, 지배적인 정서라는 게, 그 흐름이라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저 아저씨 아줌마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나왔을 거라는 생각에서 나는 확실히 보통사람 임에 틀림없다.
프레스센타에 원추형의 큰 빛의 나무를 세웠다. 노랗고 바알갛고 파아란 등들이 참 밝다.
사람들이 보고 경탄해 하며 사진 찍느라고 바쁘다.
이명박의 가장 큰 업적인 청계천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비젼을 갖고 제시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김민석과 경합을 벌였을 때 나는 이미, 이명박이가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했었지만, 이것 하나만 갖고도 이 사람은 위인이다. 대통령으로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웬만하면 노무현 다음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꽉 막아 놓은 청계천 시멘 뚜껑 길을 확 걷어 내고 청계천 고가도로를 허물어 낸 그 안목은 확실히 남다르다. 개발 마인드가 지나치게 커서 환경을 오염시킨다거나 인간성을 잃어 버리게 한다든가 하는 우려는 내가 보기엔 개똥과 같다.
이렇게 무슨 일이 있어서 자발적으로 나와 청계, 비록 인공의 덩어리지만, 물을 보고 풀을 보고 걷는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공통의 감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르겠다.
사람들마다 다 즐거워 하고 행복해 한다. 이렇게 행복감을 같이 누리는 사람들이 한 데 모였단 사실도 신기하다.
2004 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집회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건가?
세종로 로타리에서 남대문까지의 차선이 다 꽉 찼었으니.....
시청앞에는 둥그런 대문형의 루미나리에가 설치되어 있었다. 노랑 초록 빨강 주황 하양 색의 작은 전등들이 모인 덩어리......빛의 축제는 중국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에 몇 번 와서 전시를 하는 동안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 우리 부부는 경석이가 해병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김포공항 공터에서 벌어진 빛의 축제를 구경한 바가 있었다.
빛의 축제도 이제는 하도 많다 보니 작은 규모는 좀 시부장찮다.
이제 서울은 편리를 최고로 추구하는 도시 수준은 지난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자동차가 지나가는 곳이 바로 시청앞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수대가 가운데 있었고 이 분수대를 중심으로 하여 로터리를 둥글게 형성하여 수많은 차량들이 교차하고 돌아가고 했다.
세종로 쪽에서(으로), 남대문 쪽에서(으로), 서소문 쪽에서(으로), 을지로 쪽에서(으로), 한국은행 쪽에서(으로) 광교 쪽에서(으로), 덕수궁 옆 골목길 쪽으로, 시청 정문 쪽으로......
무려 10 여 방향의 길이 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로터리를 없애고, 잔디 마당과 스케이트 장을 만들어 시민들이 구경하고 즐기게 하게 했으니 정말로 편익도시가 아니라 복지도시의 향기가 나기도 한다. 시청앞 광장으로 횡단보도가 나고, 숭례문 앞에도 횡단보도가 생겨서 남대문을 지척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명박이가 대단하긴 대단하다.
먹고 사는 일에 지나치게 빠져서 많은 것을 희생하는 시대가 아니라, 적당히 즐기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전에는 좀 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만이 향유하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동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7-80 년 대에꿈 꾸어 왔고 온몸으로 싸워 왔던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이만들어 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경제개발 논리만 갖고도 안되며, 인권논리만 갖고도 안된다는 생각을 새삼 확인한다.
밝고 즐거운 이미지가 삶의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 처럼 정신마저 갉아 먹기도 하지만, 고단한 삶을 한 순간이라도 잊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새로운 힘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에 밀려서 더 내려가고, 사진 찍고 설탕을 녹여서 부어 구은 "뽑기" 를 깨서 빨아 먹어가며 걷는다.
명동으로 가기로 하여 을지로 쪽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니 밤 10 시 밖에 안 되었는데 골목은 벌써 파장한 가게가 많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렇게 쓸쓸해졌다니......
가뜩이나 골목 바람이 휭 휭 많이 부는 곳인데 바람도 어김없고, 어두우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명동 큰 길로 나가니 불빛이환하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구세군의 자선남비는 시청앞에 이어 여기에도 어김없이 있다. 이웃돕기를 위한 길거리 콘서트 비슷한 게 있었는데 초딩 1,2 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율동을 한다. 구세군 남비에 이어 여기에도 돈 만원을 넣고, 아이 하나와 악수를 하였다. 아이의 재롱과 웃음이 아주 예뻤다.
오늘은 뭔가에도 다 기분이 좋고 기쁜 날인가 보다.
명동의 특수는 이제 완전히 한물 가고, 그냥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시청앞과 청계천에 자리를 내 준 것 같다.
20 대에 맛 보았던 해방감, 막연한 기대,퇴폐 분위기가 찐득거렸던 명동.
허전함만이 가로지른다.
그래도 추억의 찌끼는 남았고 나는 그것을 할짝할짝 핥았다.
더 걸으면서 수 십년 전의 정감을 찾아 보려 했으나 사람들이 춥다고 그만 가자고 한다.
그래서 롯데 앞, 을지로 입구 지하철역의 지하로 들어갔다.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늦어서 그런지, 그 많던 인파는 별로 없고 노숙자들이 빈 박스로 잠자리를 만들고 있다.
일부는 이미 한 사람 들어 갈 수 있는 곽집을 만들어 그 안에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곽집을 사진 찍으려고 하니까 어떤 노숙인이 와서 찍지 말라고 하여 조금 다투다가 안 찍는 척하고는 몇 장 찍었다.
화려한 청계천, 번쩍거리는 휘황찬란한 루미나리에, 들뜨고 한 껏 웃는 사람들의 행복과 함께 지하철 로비의 노숙인들의 잠자리가 눈앞에 겹친다.
나는 휘적휘적,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2006 년 12 월의 서울 밤의 하루를 이렇게 겪은 것이다.
쉰 다섯 살의 겨울을 이렇게 보낸 것이다.
<2006.12.23>
<Janis Lan - In the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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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예수도 말을 빼앗긴 시대
‘좌경 목사’로 몰려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정진권 염창교회 목사 사건 등 한국 교회 안에 부는 매카시즘 바람을 다룬 <한겨레21> 643호는 묵묵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목사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정 목사의 동료인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매카시즘 공세를 중단하고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 김기석 서울 청파교회 목사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나는 지금 우울하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목사가 웬 우울 타령이냐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분명 잿빛이다. 햇빛이 부족한 겨울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일생을 걸고 붙잡으려던 진실이 가뭇없이 멀어져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니, 진실은 그곳에 그냥 있다. 다만 우리가 부평초처럼 세파에 떠밀리고 있을 뿐이다. 예수가 좋아서 예수를 따르기로 했고, 정말로 예수를 닮고 싶었다. 마음 씀씀이와 말과 궁행이 오롯이 그분과 일치하기를 원했다. 지금도 그 꿈은 여전하지만 절실함은 적어졌다. 삶이 편안해지면서 예수 정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자각하지만 선뜻 돌이켜지지 않는다.
나는 우울하다. 버림받은 이들의 품이 되어주어야 할 교회가 쉴 곳을 찾아 날아온 새에게 상처를 주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는 모두의 품이 되어주셨다. 그러나 부유하게 된 많은 교회들은 오히려 품을 잃어버렸다. 돈으로 하는 구제사업이나 세련된 행사가 품은 아니지 않은가?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탄식하는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에 대답할 말이 없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한다면서 서울 시청 앞에 모여 시위를 한 뒤에 바퀴 달린 십자가를 끌고 거리를 행진하는 성직자들의 철면피가 부끄럽고, 성탄절을 앞두고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을 단행한 교단장들의 몰상식이 부끄럽다.
△편집장을 맡은 책의 ‘친북반미’시비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정진권 목사는 알록달록하게 채색된 새가 되었다. |
사학법 반대하는 성직자들의 철면피
어느 때부터인가 개신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타매의 대상이 된 듯하다. 전래 이후 계몽의 주체였던 개신교회가 이제는 계몽의 객체로 전락한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신뢰 지수가 가장 낮은 집단으로 인식되는 정치인들조차 선거법을 위반하면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교계에서는 교단장을 뽑는 선거에 금품이 오가는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부도덕한 교역자들의 이런저런 일탈 행위가 발각되어도 그들은 끄떡없다. 왜? 그들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자금 동원력이 있고,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플라톤의 <국가 정체>에 나오는 트라시마코스의 제자가 되고 있다. 그는 “정의란 더 강한 자들의 이익”이라고 말했다.
근 30여 년 세월을 목회에 전념해온 한 목회자가 ‘친북반미’ 혐의(?)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그가 만든 책 한 권이 빌미가 됐다. 그는 세계감리교대회를 위해 기도하다가 분단 조국의 현실을 참석자들에게 알리고 한반도의 통일과 화해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에서 <사진으로 본 분단 60년>이라는 책자를 만들었다. 그 책에 담긴 내용이 보수적인 목회자들과 장로들의 검열에 걸려들었다. 그들은 즉시 그 책의 배포를 중지시켰고, 책의 편집자인 정진권 목사에게 ‘친북반미’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친북반미’라는 말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불구로 만들고 있다. 그 말은 어떠한 합리적인 대화도 토론도 허용하지 않는다. 대화는 성찰을 위한 거리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 말은 사람들의 견해가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물을 뿐 자신을 반성적으로 돌아보지 않는 자폐적인 말이다.
색칠한 뒤 죽게 만든다
미국 작가 저지 코진스키의 책이 떠오른다. <무지갯빛 까마귀>로 번역된 그의 작품의 원제는 <색칠해진 새>(The Painted Bird)이다. 그 소설은 전쟁의 참혹한 상황 속에 버려진 한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이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겁하고 맹목적인지 책은 보여준다. 그중의 한 인물인 새 장수 레흐는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욕구불만이 생길 때마다 자기가 팔러 다니는 새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놈을 골라내 온몸에 야생화보다 더 알록달록하게 색을 칠한다. 그러고는 새를 숲으로 데려가 목을 가볍게 비튼다. 새가 고통스러워서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면 같은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 초조하게 날아다닌다. 새들이 충분히 모였다 싶으면 레흐는 그 새를 놓아준다. 자유를 누리게 된 새는 기쁨에 겨워 한 점의 무지개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그 새를 맞은 잿빛 새들은 잠시 혼란을 느낀다.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새는 자기가 그들의 동료임을 알리려고 더 가까이 다가가지만, 새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가 일시에 그 새를 공격해서 죽이고 만다.
△예수정신을 몸으로 살아내기 위해 고투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목소리는 주류 담론에 가려 들리지 않는다. 지난 12월28일 열린 정진권 목사를 위한 기도회 모습. |
레흐는 어디에나 있다. 피부색이나 인종, 사상이나 종교의 차이를 빌미로 한 개인 혹은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불관용을 통해 다른 사람의 양심을 구속함으로써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정진권 목사는 지금 색칠해진 새가 되어 우리 앞에 있다. 그를 받아줄 품은 어디인가?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라고 간구했던 볼테르의 기도를 지금 이 땅에서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곤혹스럽다.
어찌하여 오늘날 교회의 언어가 바벨탑의 언어를 닮아가는가? 획일화된 말, 계율적인 말, 일사불란한 말이 횡행하는가? 예수를 침묵시켰기 때문이다. 예수는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사셨다. 유대인과 이방인, 의인과 죄인,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인습적인 경계선을 그분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넘나드셨다. 불통의 세상을 소통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그분은 자기 삶을 바쳤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의 권력 구조는 다양한 소리들을 침묵시키고 있다. 겨울 공화국인가? 심지어는 예수조차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에서처럼 금관에 씌워진 채 말을 박탈당하고 있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예수정신을 몸으로 살아내기 위해 고투하고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주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의 소리만 도드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의한 자들에게는 몰아쳐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고 그들의 거짓된 생각을 깨뜨리던 태풍 같은 예수의 말이 그립다. 가난하고 병들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온전케 하고,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던 미풍 같은 그의 말이 그립다.
교회여,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조롱과 냉소와 저주의 언어가 신의 이름으로 선포되고 있는 이 현실을 어찌해야 할까?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가 부인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는 이 현실을 어찌해야 할까? 암담하다. 하지만 이제 우울을 떨쳐버려야 할 때이다. 믿음의 반대말은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숙명론이니 말이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희망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교회여, 편협한 신앙을 누구보다도 미워했던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교인들이여, 이마누엘 칸트의 충고대로“너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라”
<200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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