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빛 나게 하는 친구- 석용(♬)

기본카테고리 2005. 4. 26. 19:17

<손현숙 - 친구>

웃음소리 크고 잘 울고 우렁찬 목소리로 꼭 자기 글씨처럼 노래하는 이 친구...
이 친구는 모자란 게 거의 없어 보입니다.
늘 크고 풍성하고 여유있고 밝고 명랑함이 넘칩니다.
그러나 본인만은 항상 베품이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를 빛나게 한다" 라는 성구가 있습니다.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바로 저의 친구 윤석용 입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친구 이야기가 나오면 할 말들이 많습니다.
칭찬도 있고 비판 섞인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대개 한 가지로 일치되는 것은
"대단한 친구다" 입니다.

친구의 대단함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인가 2 학년 때에 설악 대청봉을 넘은 사건 부터 입니다.
용대리 백담사 쪽에서 봉정암 중청 대청을 넘어 희운각 양폭 비선대 설악동으로 이어지는
그 코스는 경치도 빼어나지만 설악 등반 코스 중에선 제일 긴 코스입니다.
그 길을 동행 팀의 등산 일정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당일에 내려 왔다니 정말로
대단한 일이지요.
그 때 같이 등반했던 사람들은 아마 깊은 감동과 더불어 일생의 교훈 같은 것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순박하고 뜨거운 마음씨에 꼭 완주하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더한 데에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심까지 곁들였으니 그 설악 넘기의 과정이 어땠을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합니다.

난 가끔 이 친구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내가 전해 들은 설악 넘기를
떠 올리면서 '그래, 이 손이야. 이 숨결이야...' 하면서 좋아 합니다.

우리는 대학 때 내 나라 내 땅 우리 겨레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같은 아픔을 가졌음을
확인하였고 그것을 나름대로 치료해 보자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 들었습니다.
둘 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해 부모님들을 걱정하시게 만드는 불효를 행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역사와 인간에 대한 정의라는 신념과 할 바 라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운동이 갖는 일종의 관념성을 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 친구는 벌써 부터
복지운동에 뛰어 들었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이웃이냐?" 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친구에게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오직 실천" 뿐이었습니다.
이동 목욕탕 일은 이 친구의 복지운동의 성격을 웅변으로 대변합니다.
구태의연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앞서가는 복지운동은 소외되고 힘 없는 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생각 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친구의 사랑은 자신에 대한 쉼 없는 채찍질과 지극한 감사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멀었다, 너무나 부족하다, 뭔가 더 해야 하는데......' 라는 안타까움이 배인 사랑에서요......
그리고 내가 받은 것이 족하고 넘치다 라는 진정한 감사와 낮춤에서요......
늘 붐비는 이 친구의 병원은 자신을 찾아 오는 앓는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동정과 치료 성과를 말해 줍니다.
환자의 고통과 의사의 아픔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의 영혼 깊은 데에서 용솟음치는 이 사랑과 정열은 우리 겨레의 최대 상처인 분단 극복 노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김구 안창호 선생님을 존경하고 문익환 함석헌 선생님 같은 분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나라의 근원 모순인 분단을 이겨내고 통일을 이루어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숨쉬고 있는 부조리 불공평 분열 갈등 대립들을 몰아내고 착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의의 사회가

될 거라는 확신으로 통일운동을 해 왔습니다.
친구가 실천하고 있는 '앞서가는 복지운동과 통일운동'은 결코 따로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선하고 바른 생각은 꼭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펀 글] 자유주의 유감

그리고 뭔가... 2005. 4. 26. 19:10

‘자유’가 주는 울림은 참으로 깊다.

하늘처럼, 긴 강물처럼 마치 모든 불행을 품어 안아줄 것 같은 아득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 자유를 말하면 그것을 향해 한없이 그리움의 눈길을 보낸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몸부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상을 돌아보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우리는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는 말로 인간이 선택의 여지없이 자유롭다는 걸 표현했다. 자유만큼 우리의 영혼을 뿌리부터 흔드는 말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유를 말하기가 늘 조심스럽다. 나의 자유로 인해 생겨날 주변의 파장 때문이다. 가깝게는 가정에서부터, 세속을 벗어던지고픈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것은 남겨진 가족에게 속박이 된다. 멀게는 사회적으로, 집단의 자유표출은 때로 타인을 억압하고 타인의 문화를 짓밟기도 한다.

그것이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면 침략과 제노사이드 같은 실로 참담한 결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세계의 지성들이 도달한 자유의 개념은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자유이다. 적어도 자살의 자유, 절도의 자유, 폭력의 자유 같은 것은 자유의 영역에 두지 않으면서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 자유를 누리는 것이며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해야 진정한 자유가 꽃핀다고 여긴다.

오늘날 자유에 대한 역사적 반성은 미국과 무관하지 않다. 과연 유프라테스강을 건너는 미군들의 마음 속에 깃든 자유주의가 아랍인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 세계시장의 확대를 위해, 미국 혹은 미국인 아니 미국 백인들만의 자유를 위해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을 자유주의로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말레이시아의 학자 무자파르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서구의 자유주의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개념은 사실 인간학대입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아시아적 개념을 촉구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자유주의는 미국에게 절실한 논리였다. 유럽열강이 장악한 식민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식민지 스스로 유럽열강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이때 필요한 논리가 자유주의였고 미국은 이것을 이념으로 삼았다. 세월이 지나 각 나라가 자기의 방식으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문화적으로 자립하자 자유주의는 네오(NEO)라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유령처럼 나타났다. 이 자유주의는 다양성과 조화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를 거부하고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 보존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성도 사라지길 바라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자유로운 시장의 확대와 ‘부드러워 보이는 착취’이다.

그런데 요즘 ‘자유주의’란 말이 심심치 않게 언론을 떠돈다. 보수혁명이나, 건강한 보수라는 말로 치장하면서 미국의 감춰진 이념에 굴복했음을 자백하지는 않는다. 진정 자유주의를 내세우려면 먼저 이라크와 북한을 포함한 제3세계의 자유를 속박하고 보편적인 자유의 가치를 자기들만의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자유주의를 말하면서 왜 집단이고 단체인가. 나는 그들이 집단적으로 해결하고픈 자유가 바로 미국의 자유가 아닌가 묻고 싶다. 미국식 자유주의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지나가고 있는 자유의 길을 통제하고픈 게 아닌가 묻고 싶다.

우리는 지난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통해, 오늘날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자유에 대한 실험대에 올랐다.

우리가 지금 이 자유의 공간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자유의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면 나치즘 하의 독일국민이 겪은 오류를 반복하고 만다. 그들처럼 주어진 자유에 당황한 채 스스로 속박을 택하게 된다면 역사는 지루하게 우리를 과거로 끌고 갈 것이다. 서구가 준 자유주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 자유이고 싶지 않은가. 새삼스레 김수영의 시〈푸른 하늘을〉이 다시금 읽고 싶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역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

신동호/시인

[펀 글] 이회창씨 아들 병역 면제 확률

그리고 뭔가... 2005. 4. 26. 19:07

▶ 이회창씨 아들 병역문제를 확률로 풀어보면

-자 시작 합니다.

1. 알토란 같은 아들이 둘이고 딸이 하나다.
아들 둘은 군대면제이고, 외동딸의 남편인 사위도 면제이다.
이 경우 확률은?

2.면제 받은 두 아들은 모두 체중 미달로 면제다.
아마도 체중 미달 면제는 전체 면제 사유의 대다수를 차지하나 보다
이 경우에서 확률은 ?

3. 체중 미달 면제도 1차 신검부터 면제가 아니라
둘 다 입대 한 뒤에 재신검 하여 면제이다.
둘째 아들은 두 번 입대를 하는데 입대만 하면 체중 미달로 면제이다.
1차 신검에서 면제 아닌 세 사람이 입대를 했는데
셋 다 재검에서 면제를 받고 나오게 될 확률은 얼마일까?

4. 둘 다 입대 후 재 신검에서 1차 신검보다 10킬로 빠진다.
재신검 면제 판정 당시의 체중이 다시 나온 기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자 보름 여만에 10킬로 빠질 확률은 ?

5. 종로구 명륜동에 사는 63년생 1699명이 82년 5월에 작성된
병적 기록부를 가지고 있는데 단 한 사람만 81년 10월에 작성된
다른 필체의 서류를 가진다. 하필 이 사람이 위에 나오는 두 아들 중 하나다.
직원 실수로 병적 기록부가 잘못 되어서 신검 통보 안 나온 사람이 주위에 있는가?
아마 구청에서도 병적 업무는 민감한 사항이라 주의를 기울일 터인데...
자 그럼 위의 상황의 확률을 구하여 보자

6. 머리가 좋은 큰아들은 서울대도 시시하다며 유학을 간다.
군 미필하고 유학가본 사람이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귀찮고 사람 잡는 일인지.
그런데 한 번에 3년씩 연기가 되는 등 29살까지 연기가 되고
연기가 되었다는 기록에는 담당자가 우연히 도장을 찍지 않는다.
자 확률을 구해보자!!! (단 최근에는 조금 완화되었으니 확률
계산시 이를 오인하여 틀리지 말도록 하자!!!)

7. 둘째 아들의 기록에는 또 우연히 백부와 백모 이름이 아버지
어머니 대신 올라와 있다. 고아이거나 호적이 복잡한 경우 말고
자기 공식 기록에 백부 백모의 이름이 부모님 대신 올라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의 확률을 구해 보자...(차라리 이건 공모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실수라는 것은 이회창 대신 이희창...이회찬 이라고 적는 것이지
멀쩡한 부모 이름 대신 백부/백모 이름을 적는 게 아닌 듯 하다

8. 그런데 이 실수를 알아챈 직원이 "부","모" 라고 적힌 글자 앞에
"백"자를 덧붙여 기록하는 아주 감동적인 봉사활동을 한다.
지나간 이 기록이 실수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또한 여기 적힌 이름이 실은 백부/백모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도 아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말이다...
자... 지나간 서류를 하나하나 훑어보고 서류더미 중 오류
(그것도 이름..)이 잘 못 된 것을 알고 그것도 (백부/백모)라는 사실까지 알고 고칠
확률이 얼마일까? (순전히 공무원이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

9. 고시공부 하던 둘째 아들이 입대한다. 그런데 휴학계를 제출 안 한다.
그럴 수도 있다. 워낙 공부를 열심히 하여 살이 빠져서 면제가 될
것을 확신했을 수도 있고, 잊어버리고 제출 안 했을 수도 있고,
가족에게 대신 내달라고 부탁했을 수 있다.
자.. 대학에 재학 중 군대에 가는 사람이 휴학계를
제출하지 않고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0. 29살에 잠시 귀국한 큰아들이 입대를 한다.
그런데 하필 그 병원에서 군의관 대빵 진료부장이 신병의 체중을 잰다.
세 차례에 걸쳐 차례차례 해야 할 체중 검사를 한번에 끝냈단다.
물론 그때 하필 쫄다구 군의관(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지하게
바빴을 수도 있다.
자 위의 확률은 얼마일까?

병장이 할아버지보다 더 높게 보이는 이등병 앞에 계급장에
반짝이는 것을 붙인 군위관 그것도 진료부장이 손수 체중을 쟀다니...
그는 진정 인자인가 보다.

11. 큰아들 병적 서류는 국방부 장관이 없다고 했다가
한달 뒤에 국무총리가 있다고 한다. 그사이에 그 서류는
누구 서랍 속에도 있었다고 하고 누구 부하가 보관하고 있었다고도 한다.
그 누구는 병적업무를 총괄하는 이 나라 병무청장이고 몇년 후
한나라당/자민련을 오가며 공천을 받을 뻔하다가 마는 정치철새란다.
또 다른 서류는 실무자가 96년에 파기했다고 하고 그 상급자는
94년에 파기, 97년에 파기하였단다. 자 한 사람의 서류에서 찍히는
도장이 여러 개란다. 그리고 지금껏 서류 중에서 도장이 빠지고
그 서류의 존재가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경우의 확률은 얼마일까?
진짜 아무 문제없이 작성되고 도장이 빠진 데 없는 서류가 한 장도
없을 경우의 확률은 얼마일까

[펀 글] 한국의 공공의료 수준 통계

그리고 뭔가... 2005. 4. 26. 19:04
의료 붕괴로 가는 지름길(공공의료의 수준 통계)

세계에서 의료 수준이 제일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언뜻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면 노벨의학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1901년의 베링부터 올해의 액설과 버크까지 179명의 의학자가 노벨의학상을 차지하였는데 미국인이 91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의료비 역시 미국이 국내총생산(GDP)의 15% 가량을 지출하여 압도적인 1등이다. 프랑스, 영국, 일본 등과 우리나라는 대체로 6~7%를 의료비로 지출하여 미국의 절반 이하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건강 상태도 미국이 으뜸일까? 영아 사망률, 이환율, 평균수명 등 여러 건강지표를 살펴보면 미국은 1등은커녕 선진국들 가운데 뒤쪽에 처져 있다. 노벨의학상 수상자는 1명도 없고, 의료비 지출액수가 미국의 1/30도 안 되는 쿠바 국민들의 건강 수준보다 별로 나을 바가 없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체로 의료의 공공성이 확립된 나라일수록 국민들의 건강 수준이 높고, 반대로 의료를 시장에 의존하여 양극화가 뚜렷한 나라일수록 건강 상태가 나쁘다는 것이 역사와 현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45%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까지 확대할 것과 8%에 지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을 30%로(OECD 나라들은 평균 75%이다) 높일 것을 보건의료 분야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옳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도록 실현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방향키를 거꾸로 잡은 듯하다.

그러한 우려를 낳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 가지만 살펴보자.

지난 16일 국무회의는 〈경제자유구역법〉의 ‘외국인 전용의료기관’ 유치의 어려움을 핑계로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용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외국병원은 국내병원과 동일한 환자를 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병원보다 5~6배 비싼 진료비, 건강보험 제외, 영리법인 허용, 세제 및 자금지원 혜택, 환경 및 고용조건 규제완화 등 각종 특혜를 받게 된다. 이로써 실질적으로 의료시장이 개방되는 것인데, 정부의 왜곡과는 달리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의료의 공공재적 특성 때문에 의료시장 개방에 부정적이다.

이러한 외국병원이 누리게 될 특혜에 대해 국내병원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지금보다 획기적인 수준의 의료수가 인상과 규제완화를 요구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나아가 국내병원의 영리법인화와 건강보험 제외를 주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만족스럽지만 그나마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던 건강보험제도의 기반이 붕괴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민간의료보험의 등장이 필연적이다. 일각에서는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의 장점을 거론한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의 선도국인 미국의 몇가지 실례를 보더라도 그것이 허구임은 명백하다. 영리병원의 진료비는 비영리병원보다 3~11% 비싸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보다 의료진에 대한 인건비 지출이 적은데, 그만큼 의료진의 노동조건이 더 열악하며 그 결과는 환자들에게 전가된다. 그에 따라 중증 환자의 영리병원 사망률은 비영리병원보다 7~25% 높다. 우리나라 어느 생명보험회사는 지난해 2조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보험가입자에게 지출한 돈은 6천억원뿐이다. 나머지는 회사와 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간 것이다. 원리적으로나 실제로나 민간의료보험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해외원정진료를 흡수하리라는 점도 원정진료의 70% 가까이가 외국(특히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한 원정출산인 현실에서 설득력이 없다.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용은 경제자유구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완전히 붕괴시켜 국민의 건강 수준을 더욱 악화시킬 최악의 조치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