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난 해엔 꽃도 더 아름답다

팔불출이래도 좋아~ 2008. 9. 11. 17:13

손주 생일은 양력 7 월 24 일 인데,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 꽃들이 많이 피었다.

보통 때에는 난초 화분에서 꽃을 피운다는 게 남의 일인줄 알았는데, 올해에 두 화분에서 꽃이 피었다.

물론 아내와 며느리가 나의 간절한 부탁과 믿음에 부응하여 꽤나 정성을 들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일 주일에 한 번 욕실에 10 여 개의 난 화분을 옮겨서 뿌리로 부터 물을 흠뻑 빨아들이게 하는 방법으로 물을 주었으며,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바람을 잘 쐬 준 덕인 듯하다.



그 이전엔 능소화와 인동이 그렇게 만발하였고, 능소화는 심은 후 제일 활짝 피었다.

추석이 다 되어 가는 요즈음에 와서 비로서 꽃이 다 졌다.



올해엔 특히 목백일홍- 배롱나무-의 꽃이 많이 피었다.

이 나무도 무척이나 관리하기가 힘들 정도로 진딧물과 병충해가 심하다.

더욱이 농약을 치기가 찝찝하여 이웃집이 농약 칠 때 마지 못해 조금씩 쳐 오다가 올해엔 그나마도 중단했다.

작년에 아내가 과감하게 가지들을 쳐 준 때문인지 새 가지가 많이 벋어 빠알간 꽃들이 흐드러졌다.

송이 송이 예쁘고 빛깔이 곱다.

안방 안에서 내다 보이는 목백일홍은 제법 오래가기 때문에 가을이 깊어갈 때까지 즐거움을 준다.




보랏빛 나팔꽃이 수줍고도 예쁘게 피었다.

투명하고도 참 신비로운 빛깔을 띤다.

연두빛 넝쿨에 몇 송이 달린 꽃은 오늘따라 참 예쁘다.

꽃 말은 "기쁜 소식"이라는데 나름대로 꽤나 마음에 든다.



<2008.9.11>

<홍순지 - 도량의 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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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년 여 만의 공룡능선과 반 토막 서북주능-"고통 즐기기 등산기-2"

기본카테고리 2008. 8. 15. 18:24
[중청에서]

대피소 매장에서 라면을 다섯개 샀다. 한 개에 1500 원. 생수는 2리터에 3000 원...

취사장은 지하에 있는데 탱크에 물을 안 채워 넣었는지 꼭 귀한 약수처럼 한 방울씩 나온다.

서북주능 도상에는 물 뜰 데가 없기 때문에 12 탕 까지 가기 위해 물을 충분히 가져가기로 하여,

내가 마실 물 1.8 리터, 지고 갈 물 1 리터를 챙겨 준다.

다풍님은 6 리터, 향기는 4 리터.....

여기서 한계령 쪽과 귀떼기청봉 쪽 갈라지는 삼거리까지는 5.1 키로미터인데 오후 2시가 다 되어 출발하였으니 좀 늦은 감이 든다.

오늘 귀떼기 넘어서 잘 수 있을까? 내리막 길이 태반이니 세 시간 남짓 걸린다면 가능도 하겠지만 지금 컨디션으로는 약 다섯시간 이상 걸려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삼거리까지 부지런히 가보기나 하자라는 생각으로 또 먼저 출발하였다.

[서북주능 내려 가는 길]

나의 산행 습관은 내리막을 좀 빠르게 내려가는스타일이지만, 오늘은 사정이 완전히 다름을 실감하였다.

내리막이나 오르막이 거의 같은 시간을 잡아 먹는다.

오르막에서도 아프고 내리막에서도 아프기 때문이다.

평시 같으면 정말 날아가지는 못해도 아주 수월하게 걸을 수 있는 지형이었는데, 평지 외에는 다 아프니 고역도 이런 고역도 없다.

끝청을 오르는 산로도 참 가파르고 많은 땀을 요구하였다.

나름의 조망은 참 좋았으나 몸이 션찮으니 조망 즐기기도 사치에 불과하다.

그저 다리를 쉬게 하기 위해 '좋구나' 하는 마음으로 물끄럼이 쳐다 볼 뿐이다.

올라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대청 일출을 보러 올라가는 사람들이며 오늘 중청에서 잘 사람들 같다.

아주머니 수 십명이 올라가는데 나중에 보니 "성남여성산악회"라는 안내지가 바닥에 깔린 것을 보았다.

그리고 등산로 주변 일부에는 땅을 엄청 넓게 파서 무엇인가를 캔 흔적이 있음을 자주 보았다.

무엇을 캤을까? 천남성인지, 현호색인지?

무언가 군락을 이루었던 모양이다.

물을 좀 많이 마셔서 어깨를 파고드는 무게를 줄이기로 맘 먹어서 로니세롤 탄 물을 아주 자주 마셨다.

몇 년 전에 설악비행을 지켜보기 위해 왔을 때는 그렇게 몸이 지쳐서 다른 음식은 아예 손도 못 대고는 물만 마시고 내려 왔다가 구역질이 심하여 저녁밥도 못 먹었는데 이번 등산에서는 다리는 아플 망정 먹고 마시는 것은 전혀 지장이 없어서 체력을 소진시키지 않고 잘 유지되어 천만다행이다.

이것마저도 힘들었다면 정말로 헬기 신세를 졌을지 모른다.

역시 계속 아프다.

무슨 봉우리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그래도 모란동백과 사랑의 테마와 서른즈음에 등을 흥얼거리며 잠시 잠시 순간 순간 아픈 것을 잊으려 노력해 본다.

어드메쯤 와선가 지팡이가 고장이 났다

내리막에선 늘이고, 오르막에서 줄여서 사용하는 것이 편하여 그렇게 하다가 나사가 고장난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헛디뎌 바위에 오른쪽 정강이 아랫 부분을 찢겨서 피가 나도록 긁히고 말았다.

허술한이음새 부분을압박붕대로 임시로 고정하고 더욱 조심조심 한참을 내려가다가 쉬니 일행 두 사람이 느긋하게 온다.

지팡이의 고장을 이야기 하니, 향기가 양쪽 지팡이를 짚고 내려가시라고 자기 것을 건넨다.

산이 하나도 무섭지 않은 당찬 아가씨다.

나중에 보니 내 지팡이는 완전히 고장나서 뒤에서 버리고 주우다풍님과 하나씩 나눠서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술 비 차 바람을 합쳐서 닉네임을 만들었다고 해서 주우다풍이라는데 썩 괜찮다.

주우다풍은 큰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꽤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아마 좋은 사진이 꽤 될 것이지만 그 무게가 또한 우습지가 않다.

[달과 번개 치는 뭉게구름]

혼자서 다리를 끌면서 내려 오다가 보니 해는 뉘엿뉘엿한데 반달이 떠서 참으로 자태가 곱고, 그 밑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 것도 신비해 보인다.

또한 구름 윗 부분은 석양빛을 담아 바알간 것이 참 멋지다.

그래서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으라고강력하게 권했다.

아마 2008.8 월 설악 등산의 백미 사진이 될거라고 하면서...

그런데 그 구름에서 번쩍번쩍 번개가 이따금 친다.

꼭 조영남의 노래 "제비"의 노랫말, "먹구름 울고 찬서리 친다해도...." 에서처럼...

그래서 제비를 좀 불러 보기도 한다.

이러는 동안엔 아픔을 잠깐이라도 잊는다.

"산을 왜 가나?"

"쉬기 위해서 오른다"

나의 이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처럼 내몰리는 등산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등산 계획 수정 결정]

사람들에게 귀떼기와 12탕은 포기하자고 하였다.

언제 내가 몸 컨디션이 좋을 때에 한계령으로 해서 귀떼기를 거쳐 서북주능과 12 탕을 다시 가자고 했더니 바로 향기가 제일 반색을 한다.

오늘은 삼거리에서 비박하고 한계령으로 내려가자고 하였다.

"네에! 감사합니다!"

"주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능님!"

등산을 일정대로 못한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고 원망할 줄 알았는데, 선뜻 그렇게 하자고 한다.

다풍님은 이러구저러구 별 말은 없으나 그렇게 크게 불만스러워 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고 참 고마웠다.

미안하기 그지 없다.

아아....그래도,

아니 그러고 나니 더욱 더인가?

참 길고

또멀다.

분명히 거리는 줄고 있을 텐데도 도대체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계령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그치질 않는다.

그 때 마다 "안녕하세요" "좋은 산행 되십시오" "반갑습니다" "수고 하십니다" 등의 인사를 연발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이런 다리로 설악을 걷고 있는 것을 모르리라.

군대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 것 처럼 내가 다리를 푹 쉴 수 있는 삼거리는 왜 이렇게 멀단 말인가?

날은 이미 어둡기 시작하여 헤드랜턴을 켰더니 또 접촉불량이다.

그래서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맨 눈으로 내려 오다가 향기가 건네는 랜턴을 머리에 두루고 길을 재촉한다.

산에선 안전사고를 내지를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산을 못 타는 사람들의 금과옥조임을 알기 때문에 더욱 더 천천히 안전하게 걸음을 재촉하였다.

날이 완전히 까매져서 랜턴을 안 비추고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서 8시는 훨씬 더 넘은 모양이다.

이쪽 사면이 서북쪽이기 때문에 노을의 잔명도 들지 않으니 일찍 어두워질 것이다.

[삼거리]

그러다가!

시간의 흐름에 내가실려 삼거리까지 저절로도달한 것 같이 어느 굽이를 돌아가니 딱 삼거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수 많은 봉우리 중에서 어느 한 봉우리를 딱 오르자마자 삼거리 공터가 있었으면 얼마나 실감났을까?

한 굽이의 평탄한 길을 돌자 마자 삼거리를 만나서 허전하기까지 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25 년 여전에 서북주능을 돌면서 죽을뚱 살뚱했고, 몇 년 전 설악비행 때에도 죽을뚱 살뚱했는데, 어떻게 서북주능만 오면 이렇게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닉도 서북주능으로 지은 것이지만 설악의 서북주능이 내게 텃세를 받고 있는 것인가 해서 실없이 웃음도 난다.

이 때 시간이 8시가 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면 중청에서 6 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니 기적같이 내려 온 것이다.

어제 오늘 뻗쩡다리로 걸으면서 다리가 몹씨 아플 때마다 대학 1 학년 때 소아마비 다리로 백담사에서 설악동으로 넘어 간 친구 윤석용의 대단함을 생각했는데 그가 새삼 보고 싶어졌다.

서편에는 아까의 달이 바로 밑으로 번개를 번쩍거리는구름을 보고 있었다.

별도 저렇게 초롱초롱하니 비는 소나기도 안 오겠지 하면서 안심 반 걱정 반도 해 본다.

아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새삼 끔찍해지고 얼떨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이번 등산을 기적의 등산이라고 명명하였다.

[고행의 대가가 철철 넘치다- 설악의 밤]

저녁 밥을 먹고 자리에 누우니 까만 하늘에 맑은 달과 밝고 큰 별들 뿐만 아니라 작은 별들이 꽤나 총총히 박혀있다.

고사목은 보석을 달고 있는 것 같다.

그 고사목을 씻으며 내 귀로 들리는 바람소리는 불어 오는 바람 같지가 않다.

쏴아쏴아 거리는 것이,

투둑투둑 나뭇잎을 두르리는 것이 마치 비가 와서 부딪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세밀하게 귀기울이고 눈으로 찾아 보아도 빗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쏴아 거리고 투두둑 거린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이 공간에 딱 어울리는합주를 위해 내 주위의 것들이 바람을 불러 오는 것 같다.

나뭇잎 사이로 별빛들이 영롱하다.

이쪽 저쪽에서 유성이 하늘을 긋고 떨어진다.

정말 오랜만의 별똥들이다.

여름 밤에 시골 마당의 멍석에 누워 하늘을 보며 동요를 부르던 때가 생각난다.

특히 별 삼형제라는 노래...

설악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틀 간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다.

비박 잠이란 것은 잠을 조금이라도 소유했으면 족하다.

나는 거의 못 잔 것 같아도 옆 사람이 내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하니잠이 든 것이 분명하니 불면의 고통은 그 순간부터 없어진다.

까만 티셔츠를 꺼내어 얼굴에 덮고 침낭 안에 누워 있으니 얼굴이 따뜻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니 그 나름대로 편안하다.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대청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자꾸 올라 온다.

와서는 기웃거리고 한 마디씩 하고 걸음을 멈추었다가 오른다.

한 부부가 올라오면서 부인이 대청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는 중에 남편이 와서 마구 야단을 쳐 댄다.

"그 쪽이 아니야. 왼쪽으로 가야 해. 확 메다꼬나 버릴라...."

그러나 내 생각에는 대청으로 갈 사람들인데 남편이 잘 못 알아 귀떼기청봉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그 쪽은 귀떼기예요. 귀떼기 쪽으로 갈 건가요?" 라고 소리쳤는데 아무 대꾸가 없어,귀떼기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길 바랄 뿐이다.

[고행의 대가-설악 여명]

네 시가 다 되니 어느 팀이 와서 여명 경치는 이곳이 끝내준다면서 웅성거리고 소리치고 한다.

그래서 시끄러워 더 눈을 붙일 수도 없고 하여 일어나서 여명 구경에 한 몫 끼었다.

신비한 설악 여명이 펼쳐졌다.

능선의 선과 수평선 같은 직선의 안개 띠와 하늘 빛이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을 모르는 경지이다.

이것도 엄청난 고행의 대가로 뿌듯하게 생각이 들었다.





.

[아아 ! 한계령]

한계령으로 내려가는 거리는 이정표에 3.2 킬로 미터로 나와 있고, 한계령 휴게소에서 여기 삼거리까지는 보통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지만, 전에 내려갈 때 보니 오르막이 역시 가팔라 두 시간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전에 내가 내려갈 때에는 거의 내리막이 많아 한 시간 남짓 걸렸으나 오늘은 아예 시간 계산이 필요가 없다.

아예 네 시간 정도 잡고 내려갈 생각이다.

역시 마음과 예상대로 네 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의 고통과 이 악물기는 어제 보다 훨씬 더 했다.

그나마 내리막 계단이 더 많아 거꾸로 뻗정다리로 내려갈 수가 있어서 빠를 수가 있었다.

보폭 30여 센티로 3 키로를 걷는다면 사실 천 걸음 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한 등산이다.

서울 가서도 이 다리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데 걱정이다.

평지에선 그런대로 참을만한 통증이지만 조금이라도기울어진 데에선 찌르는 통증이 엄습한다.

그나마 붓지를 않고 있으니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해 본다.

서울 가는 차 안에서는 내내 뒷 좌석에서 다리를 뻗었다가 조금 굽혔다가 하면서 결국은 서울에도 오고 말았다.

일행들은 나의 페이스에 맞추느라고 하나도 힘이 안 들었다고 하니 뒤집어 보면 내가 그만큼 민폐를 끼쳐서 십이선녀탕을 못가게 된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언제 내가 공언한대로 나도 서북주능의 나머지를 밟고 십이선녀탕을 만나 보아야겠다.

<2008.8.15>

<Helmut Lotti - Adios Muchere>

25 년 여 만의 공룡능선과 반 토막 서북주능-"고통 즐기기 등산기"

기본카테고리 2008. 8. 12. 14:19


[설악은 악산들의 연장이 아니다]

설악은 설악이다.

그저 좀 힘든 악산들의 연장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운악산, 감악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암봉이 멋있고 산 맛이 나는 산들이 어디 한 둘이랴?

올라갔다가 내려 오면 대 여섯 시간 걸리는 산들이 또 한 둘이랴?

아주 어거지로 산행을 했다.

이런 무리한 산행이 또 언제 있었을까?

20 여 년도 지난 한참 전에 명지산에 막걸리 먹고 올라갔다가 조난당했다가 구조된 것 말고는 정말로 어거지 산행이었다.

대개 공룡능선 산행은 대개 다음과 같이 무려 10 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비선대 - 공룡능선 - 대청봉(11km, 10시간 40분)

비선대 -( 3:10)- 마등령 -( 2:20)- 공룡능선1275봉 -( 3:00)- 희운각 -( 1:30)- 소청봉 -( 0:40)- 대청봉


새벽에 일행들과 만나서 고속도로를 달려 와 소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 반 정도..

7시 50분 쯤 출발할 때엔 그야말로 룰루랄라 시작이었다.

1 박 2 일의 일정으로 잡아 마등령 공룡을 거쳐 귀떼기청봉 서북주능 대승령으로 하여 12 선녀탕까지 잡았다.

애초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좀 빨리 걸으면 삼거리나 귀떼기 지나서 비박을 하고 편안하고 여유있게 서북주능을 거쳐 십이탕으로 무난하게 내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한 마디로 크나큰 착오였으며 바로 어거지 산행의 시작이다.

[계단의 천국- 설악]

금강굴 옆을 거쳐 마등령 오르는 길은 안전하기 짝이없는 길이다.

그러나 안전하고 안정적일 뿐, 다리 특히 무릎에 무리가 가는 건 어마어마하다.

내가 제일 가벼운 짐을 졌지만 어깨에 걸리는 배낭의 무게가 온 어깨를 파고드는 것 같다.

웬만한 오르막길은나무계단에 폐타이어를 잘라 붙였지만 여전히 무릎에 무리를 심하게 주고,

돌계단으로 만들어 놓아 모두 다 깔딱고개가 되어 버렸다.

나의오르막 오르기의 주법은 "미리 쉬기" 와 "여러번 자주 쉬면서 출발을 빨리 하기" 인데,

수술을 한후로는 숨이 차서 힘든 대신 다리의 피로는 더 느껴진다.

"힘드는 재미", "지루한 재미"를 씹고 되씹어 가면서 마등령에 도착하니 오후 1 시가넘었다.

소공원에서 다섯 시간 여 걸린 셈이니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등령을 치고 오를 때 무릎에 무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려 파스를 붙이고 무릎보호대를 찼다.

서울에서 일 주일 전엔 왼쪽 무릎이 아파서 약침을 맞은 덕에 왼쪽 무릎은 멀쩡한 대신 오른쪽이 조금 무리가 느껴져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마등령 오르는 길에 만난 어느 고사목. 그 옆에 어린 나무의 파아란 잎들이 꼭 고사목에 새싹이 나서 자란 것 같다>

마등령 정상에 조금 내려와 독수리 고사목 부근 마당에서 누룽지를 끓여먹고 두 시 가까이에 공룡능선을 밟기 시작하다.

한참을 쉬었더니 무릎은 그런대로 견딜만하여 나의 주법대로 걸어 내려 가는데, 오르막 내리막 계단들이 정말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어 향기가 먼저 올라 갔다가 자신의 배낭을 부려 놓고 다시 와 나의 배낭을 지고 올라 가기도 하였다.

왼쪽 무릎은 아프지 않아 왼쪽 무릎으로 버티며 오른쪽 다리를 뻐쩡다리로 끌거나 왼쪽 다리를 떼어 디딘 후에 오른쪽 다리를 내려 놓고는 다시 왼쪽 다리부터 출발하는 식으로 걸었지만 한계가금방 왔다.

[멋진 1275 봉]



나한봉 1275 봉 칠형제봉 범봉 신선대를 보는 맛이나 그 부근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은 너무나 뛰어났지만,

출발하기 위하여 걸음을 떼면 온 신경은 무릎으로 쏠렸다.

특히 1275 봉의 웅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웅장해 보인다.

그러다가 로프나 계단이 있는 내리막에서 좀 쉽게 내려 가는 방법을 찾아 냈으니 바로 뒤로 내려가면서 무릎을 굽히지 않는 뻗쩡다리로 내려가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왼쪽 무릎마저 아프기 시작하였다.

산행이 힘들면 웬 봉우리가 그렇게 많고,오르막은 왜 그렇게 긴가?

도대체 끝은 왜 이렇게 안 나는가?

끝은 있기나 한 것인가?

이 종종걸음, 그것도 느릿느릿한 종종걸음으로 언제 희운각에 도착할 것이며 내일의 등산은 어떻게 수행할까?

왼쪽 걸음 한 걸음.

오른쪽 걸음 한 걸음 마다 무릎이 시끈거리고 무릎 바깥쪽이 당기며 힘을 줄 수가 없어 시끈거릴 때마다 "앗!" 하는 비명이 저절로 터진다.

신선대까지만 가도 희운각은 금방이라는데 도대체 신선대는 언제나 나오나...

이름도 예쁜 무너미고개는 어디에 있나?

물 마시느라고, 과일 먹느라고, 쵸코렛 과자 먹느라고....

그리고다리를 편히 하느라고 쉬는 시간을 더욱 자주 가지다 보니 날이 어둡기 시작하여 헤드랜턴을 켰다.

신선대를 한참 지났지만 희운각이아직도 먼 것 같아 랜턴을 켰는데 접촉불량인지라 주우다풍의 일자 랜턴으로 바꿔서 길을 줄였다.

그저 가다 보면 언젠가 도달하려니 하는 느긋함으로 가자고 다짐 다짐을 한다.

"산은 힘드니까 가는 거야"

아파도 시끈거려도 힘이 빠져도 계속 다짐한다.

이 어둡고 먼 길이 이기나, 나의 의지가 이기나 보자.

아플 때에는 저절로 이가 악물어진다.

[결국 내게 온 희운각]

어쨋거나 다리가 옮겨 가서 희운각에 도달한 건지, 희운각이 내게로다가왔는지 모르지만 희운각보이기 시작하였다.

향기가 부지런히 먼저 내려 가 저녁 준비를 위해 물까지 길어다 놓았다.

이 때가 밤 9 시가 다 된 것 같다.

산장 사무소 직원이 다리를 많이 걱정한다.

무릎이 계속 아파서 굽히기가 많이힘들었지만 계곡에 가서 찬물 찜질을 한참 했다.

비박을 하려 했더니 국립공원관리 직원이 대피소에 세 자리 여유가 남았다고 하여 15000 원을 주고 세 자리를 샀다.

희운각 대피소는 아직 수리가 끝나지 않아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등산객을 위하여 임시로라도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어 다행이다.

비몽사몽 하는 동안에 그런대로 새벽이 와서 일찍 등산하는 사람들이 설쳐서 잠을 더 잘 수가 없어 일어나서 침 맞고 파스를 붙였다.

주우다풍님에게서 압박붕대를 얻어 칭칭 감아 보았지만, 피가 안 통하도록 세게 묶으니 너무 저려서 바로 풀었다.

[사람과 친한 설악 다람쥐]

아침 밥을 먹는데 다람쥐가 모여 들어서 과자를 주니 제법 가까이 와서 먹는다.

다리 위에서도 먹고, 땅에서도 줏어서 볼록한 볼을 아주 빠르게 움직여 먹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생명이 있는 모두가 다 적응하게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가까워 지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에 적응을 하고, 도토리 등 보다 단 맛에 길들여지고...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소청을 향하여 희운각을 출발하다.

아침에 다풍님에게 진통제를 얻어 먹은 덕인지 무릎이 좀 덜 아픈 듯하여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좀 걸어 보니 진통제 덕이 아니라 평지일 때 좀 편한 것, 그리고 많이 쉰 덕에 좀 편한 때문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마의 돌계단을 올라 보니, 그리고 내리막을 걸어 보니 왼쪽 무릎 아픈 것이 어제 보다 더 심하다.

어찌 이렇게 걸음 걸음 마다 아플 수 있는가?

[더 위력이 막강해진 공포의 깔딱고개]

소청을 오르는 깔딱은 향기 말처럼 전보다 결코 쉬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돌계단이 더 가파르고 불편하여 이를 더 악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주법대로 먼저 출발하여 홀로 고통등산을 수행하였다.

다른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왼쪽이 더 아프구나, 오른쪽이 더 아프구나. 시끈거리며 힘이 빠지는 것이 이렇게 심한데 무사히 하산을 할 수는 있을까?

걸음 떼는 방식을 바깥 쪽에서 안으로 모으며 걷기도 해 보고, 안에서 바깥으로 벌리며 걷기도 해 본다.

왼발을 먼저 들어 오른발을 끌어 올리는 방식, 그 반대의 방식, 첫째 계단, 두번째 계단씩 힘들어 올라가는 방식,

게 걸음으로 걷는 방식, 지그재그로 걷는 방식, 다리를 굽히지 않고 뻗쩡다리로 걷는 방식......

아예 무릎은 구부린 채로 걷는 방식....

마주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이따금 하였지만 자신있게, 안 아픈 것처럼 웃으며 인사하며 올라갔다.

드디어 공포의 깔딱도 끝나고 소청대피소와 중청의 갈림길에 올랐지만 다리는 여전히 아프고 힘들어서 좋은 줄을 모르겠다.

동쪽을 향해서 걷는 것이어서 햇빛이 계속 쬐어 스포츠 타올을 머리로 부터 목까지 내려 햇빛을 가리고 걷는다.

중청으로 올라가는 길에 일행에게 나는 새디스트가 되었다, 고통을 쾌락으로 삼고 있다. 나는 변태다 하면서...

중청산장이 가까이 보이는데도 더욱 짧아지는 속도가 느리다.

<2008.8.15.

<남택상 - 조두남 곡 - 산>

처음 피운 동양란- `漢瓊`

팔불출이래도 좋아~ 2008. 8. 2. 16:11



우리 집에서는 난초 꽃 피우기가 참 어려웠다.

단독이라서 겨울에는 상당히춥고 난이란 게 굉장히 까다로와서 여간한 정성으로는 꽃을 잘 피우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있던 축하난 몇 개를 집에 가져왔더니 아내와 며느리가 정성을 기울였다.

그 덕에 하나도 안 죽고, 두 화분에서 꽃이 핀 것이다.

며칠 전에 아내가 꽃대가 올라왔다고 굉장히 신기해 하고 대견스러워 하면서 더욱 신경을 쓰더니 드디어 꽃이 피었다.

향기는 어떤가 해서 코를 가까이 했더니 역시 은은하고 달치근한 향기가 조용하게 스며들어 온다.

한경이의 탄생과 더불어 핀 꽃이라서 "한경란"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꽃이 핀 것이 감사하기까지 한 것은 처음이다.

<2008.8.2>

<女子十二樂坊 -Sekai Ni Hitsotsu Dake No Hana>
(세상에 하나 뿐인 꽃)